11월은 우리의 결혼기념일이 있는 달.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멋진 옷으로 차려입고, 분위기가 있는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것을 먹으며 한참 멋을 부렸을텐데, 육아가 시작되고 나서는 그러한 시간을 내는 것도 사치라고 생각될 정도로 어려워졌다. 그래도 결혼기념일이니 분위기는 내야지. 업무 시간 도중, 짬을 내어 케익을 주문하고, 꽃가게에 가서 이쁜 꽃을 주문하고. 

 

결혼기념일을 준비하며 지금까지 우리에게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잠시 생각해보았다. 출퇴근이 적당한 거리에 우리만의 보금자리를 찾았고, 그곳에서 알콩달콩한 신혼을 즐기고, 엄마를 쏙 닮은 이쁜 아이가 우리에게 와주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함의 전부였다. 그렇지만 모든 것이 완벽하지는 않았다. 특히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부터는. 물론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로 인해 행복하고 충만한 순간이 더 많았지만 가끔씩은 서로가 서로에게 매우 예민해져 어쩌다 이런 말까지 하게 되었는지, 그 시작조차 생각나지 않는 실얼음판의 순간을 마주했을 때도 있었다. 내가 이러려고, 로 시작하는 여러 생각들. 아내도 그랬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시간들이 지나고 나면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 예민했었다 생각이 들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힘든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육아는 정말 녹록치 않은 일이다. 마음과 몸이 동시에 지치니 평소 같으면 쉽게 넘어갔을 말도 민감하게 받아들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인내의 순간에는 서로를 배려하고 걱정하는 순간들이 많았다. 그런 순간들이 있기에, 서로에게 원망할 수 있던 시간에도 카페에서 커피 2잔과 빵을 먹으면서 아쉬웠던 것을 아내의 시선에서, 남편의 시선에서 바라보니 마치 아무일도 아니었던 것처럼 다시 원래의 우리들로 돌아오고는 했다. 

 

 

 

어느 주말이었다. 차를 몰고 우리만 아는 조용한 카페를 갔다. 항상 가는 곳이지만 가을이 되면 유독 더 아름다워져 오랫동안 머물고 싶어지는 곳.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실내가 아닌 야외에 자리를 잡고 와이프는 커피를 마시고 나는 아이와 함께 단풍놀이를 했다. 떨어지는 낙엽에 아이가 웃는 표정이 정말 이쁘다. 아이만이 가질 수 있는 순수한 웃음의 결정체다. 시바견도 있어 아이가 흥미를 느끼고 다가간다. 혹시나 다칠까봐 노심초사했는데, 시바견이 너무 착해 가만히 있다. 아이도 시바견을 정말 좋아하나보다. 꺄르륵 꺄르륵 그 웃음에 나도 와이프도 함께 웃었다. 작년에도 이맘때쯤에 와서 은행으로 가득한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벌써 1년이 지났구나. 와이프도 나도 얼굴에는 주름이 많아지는게 보여지지만, 아이의 즐거움으로 오늘보다 내일이 더 행복해질 우리가 있다는게 기대된다. 

 

Marriage hath in it less of beauty but more of safety, than the single life; it hath more care, but less danger, it is more merry, and more sad; it is fuller of sorrows, and fuller of joys; it lies under more burdens, but it is supported by all the strengths of love and charity, and those burdens are delightful.

17세기 영국의 제레미 테일러 주교의 말을 빌리자면 "결혼 생활은 독신 생활보다 덜 아름답지만, 많은 안전함을 주고 있다. 더 많은 관심을 보여주겠지만, 덜 위험하고, 더 즐거우면서도 슬플 것이다. 더 많은 슬픔과 기쁨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지금보다 더 많은 부담을 짊어지겠지만, 사랑과 자비로운 모든 힘에 의지되고, 그 부담은 기쁠 것이다"라고 하셨다. 


 

 

우리에게 결혼기념일 축하하고, 우리 같이 힘을 내보자!

 

 

 

 

23.09.24 

 

도쿄의 아침은 화창함 그 자체. 구름 한점 없는 파란색 하늘이다. 떠나는 날, 이렇게 날씨가 맑다니. 청량한 하늘을 보는 건 좋지만 오늘에서야 이런 날씨를 본다는 건 억울할 따름이다. 

 

 

 

 

나리타 공항까지는 공항버스 리무진을 탔다. 공항까지의 시간은 나리타 익스프레스와 엇비슷하지만, 마지막까지 도쿄 타워와 레인보우 브릿지 그리고 도쿄만을 거쳐서 지나는 멋진 경관을 볼 수 있어 리무진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혹시 리무진을 타게 되면 운전기사 기준 오른쪽에 앉으면 오다이바와 도쿄만을 보는 대신 도쿄 타워를 보기가 어렵고, 왼쪽에 앉으면 도쿄 타워와 신주쿠 교엔을 볼 수 있다. 리무진은 도쿄 도심을 순환하는 수도고속도로를 따라 움직인다. 수도고속도로 신주쿠선(4번 노선)을 타고 계속 가다보면 어느샌가 요요기 공원과 신주쿠 교엔을 지나쳐 어느샌가 수도고속도로 도심환상선(C1 노선)으로 진입한다. 여기서 도쿄 타워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도쿄 타워가 금새 눈에 보였다가 빠른 속도로 뒤로 사라지면서 이제 본격적으로 도쿄 도심과는 안녕이다. 

 

하지만, 여기서 아쉬워할 수는 없지. 수도고속도로 도심환상선에서 벗어나 수도고속도로 다이바선으로 노선을 변경한다. 레인보우 브릿지, 오다이바, 도쿄만을 마지막으로 감상할 시간이다. 날씨가 덕분인지, 아름다운 것들이 더더욱 아름답고 멋지게 보인다. 왜 하필 돌아가는 날에 청량한 하늘이 되는 것인지 하늘도 참 무심하다. 리무진이 천천히 가기를 바라지만, 아니 교통 체증이 있기를 잠시나마 바랬지만, 도로는 막힘이 하나도 없이 쭉쭉 뻗어간다. 그리고 수도고속도로 완간선으로 진입한다. 이제 공항까지 쭉 가면 된다. 정말로 도쿄와 작별의 인사를 할 시간이다. 

 

 

 

 

리무진은 나리타 공항 3터미널, 2터미널 순서로 사람들을 내려주고 1터미널에 도착했다. 남쪽 윙이 스타얼라이언스 본진이라면, 북쪽 윙은 스카이팀 본진. 북쪽 윙이라고 하니, 나카모리 아키나의 8번째 싱글 '북쪽 윙(北ウイング)이 떠오른다. "날 좋아해 준 사람들이 북쪽 윙에 갔을 때 웃을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다"며 아키나가 직접 붙인 제목이라는데 갑자기 흥겨워지는 느낌이다. 

 

映画のシーンのように
영화의 한 장면처럼
すべてを捨ててく Airplane
모든 것을 버리는 Airplane
北ウイング 彼のもとへ
키타윙 그의 곁으로
今夜ひとり
오늘 밤 혼자
旅立つ
여행을 떠나요

 

대한항공 카운터에서 티켓과 여권을 보여주고 잠시 기다리는데, 직원이 갑자기 티켓 변경이 되었다고 말을 해준다. 좌석이 바뀌었나라는 생각을 잠시 했는데 그것이 아니었고 돌아온 대답은 이와 같았다. 

 

"특별하게 오늘은 퍼스트 클래스로 업그레이드하여 모시겠습니다" 

 

응??응???? 뭐라고???? 퍼스트 클래스??? 다시 귀를 의심하였지만, 받아본 티켓에는 '01A'라는 번호가 선명하게 적혀있는 것을 보니 진짜 퍼스트 클래스이게 맞다. 도쿄에 올 때 퍼스트 클래스를 탔는데 (퍼스트 클래스 후기), 한국에 돌아갈 때 다시 퍼스트 클래스라니. 아니 우주의 기운이 이렇게 오는 것인가? 믿겨지지 않을 정도이다. 한번도 아닌 두번 연속 퍼스트 클래스라니. 돌아가면 로또를 꼭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필시 로또를 사라는 운명의 징조라고. 날아갈것만 같은 산뜻한 기분으로 스카이팀 Priority 고객 전용 패스트트랙을 통과해 보안 구역에서 출국 심사까지 마치니, 도쿄와 작별할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는게 느껴진다. 

 

 

 

나리타 공항의 대한항공 라운지는 스카이팀 공용 라운지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작다. 인천공항 라운지와 비교한다면 수수하고 아담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나리타 공항 자체가 오래되어 터미널의 확장 공간이 없다는 것도 원인이겠지만, 원월드의 일본항공과 스타얼라이언스의 전일본공수의 허브 공항이다보니 상대적으로 스카이팀에게 제공 가능한 공간이 제한 될수 밖에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배경이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이러한 이유로 라운지에서 제공되는 서비스도 한정적이다. 삼각 김밥 4종류, 가벼운 스낵, 커피를 비롯한 주류 등? 이정도가 전부이다. 예전에 이용했던 전일본공수 라운지에서는 쉐프가 직접 우동, 스시 등을 만들어주었을 뿐더러 개인 좌석도 매우 넓어서 매우 마음에 들었는데 대한항공 라운지는 그게 아니다보니 살짝 아쉬움 마음이다.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나리타 공항의 대한항공 라운지가 좋은 이유를 딱 하나만 말해보자면 활주로가 보인다는 것이다. 실시간으로 비행기 이착륙을 볼 수 있어 날씨가 좋다면 멋진 장면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다. 자리가 비록 협소하지만 (생각보다 의자가 편하지 않음) 창가에서 이착륙 장면을 보고 있으면 어떤 이유에서는 모르겠지만, 말로는 표현하기 어렵지만,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느낌이 든다. 여행을 마무리해서? 집에 돌아가서? 비행기를 보니 좋아서? 글쎄 잘 모르겠다. 

 

라운지에 들어오자마자 화이트 와인을 마셨는대도 비행 탑승 시간까지 아직도 1-2시간이 남아 생맥주를 2잔 마신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여행 내내 읽지 못했던 <the Nineties>를 읽다보니, 어느새 탑승 시간이 되어 라운지를 나선다. 

 

 

 

게이트 앞에서 짧은 대기를 마치고 가장 먼저 탑승권 확인을 한 후, 보딩 브릿지로 향한다. 일본에 올 때도 가장 먼저 탑승하는 경험을 했는데, 이번에도 똑같은 영광을 다시 체험하다니.  

 

한번 경험을 해봐서, 퍼스트 클래스를 탄다는 흥분된 기분이라기 보다는 차분한 감정이 커서 경험의 차이가 역시나 큰 차이를 주는구나라고 생각이 든다. 다만 다른 것은 몰라도 기내 좌석만큼은 편했으면 하는 소원이 있었다. 지난번에는 코스모 슬리퍼라 전체적으로 편하게 왔지만 기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을 거의 이용하지 못할 정도였으니 이번에는 그렇지 않기를 빈다. 

 

 

 

 

비행기에 탑승하자 승무원이 좌석으로 안내를 해준다. 다행히도 지난번과는 다르게 프레스티지 플러스 형태의 좌석이다. 보잉 777-200ER 기종으로 보이는데 기존에 있었던 코스모 슬리퍼를 제거하고 프레스티지 플러스로 대체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아무래도 도쿄와 인천 수요가 많다보니 이렇게 변형을 하게 되지 않았나 추정이 된다.

 

잠시 자리에 앉아 있으니 승무원께서 웰컴 드링크를 가져다 주신다. 지난번에는 오렌지 쥬스만 마셨지만 이번에는 웰컴 드링크 전부를 선택하였다. 언제 다시 퍼스트 클래스를 타보겠다. 이럴때 맘껏 호사를 누려야지. 도쿄행일때는 퍼스트 클래스가 만석이었는데 이번에는 만석은 되지 않았다. 다행히 내 옆자리는 아무도 앉지 않아 좀 더 편하게 마지막 여정을 즐길 수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퍼스트 클래스에 앉으니 몸이 이제 사르륵 녹는듯한 느낌이다. 지난 4일 동안 정말 열심히 이곳저곳을 다닌 것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다음에도 이렇게 열정적으로, 전투적으로 다닐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어느덧 비행기는 활주로를 향해 이동을 한다. 이제 정말 가는구나. 

 

 

 

이륙한 비행기는 어느새 도쿄 상공을 지나가고 있다. 그리고 저 멀리 후지산의 모습이 점차 보이기 시작한다. 다행이다 날씨가 맑아서. 후지산을 볼 수 있어서. 날씨가 맑다 하더라도 후지산 주변은 구름이 많아 보이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하는데, 오늘은 구름이 많지만 후지산이 선명하게 보이니 마음이 놓인다. 

 

나리타 공항에서 이륙한지 10-15분이 지났을려나. 후지산을 가장 가까이 지나는 타이밍이다. 멀리서도 저게 후지산이라는게 느껴진다. 지난 3월에 바라본 후지산은 아직도 추워서 정상 부군이 눈으로 뒤덮여 있었던 반면(생각 이상으로 구름으로 뒤덮여 있었다는), 이번에는 가을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름 기온을 유지하고 있어 정상 부근의 눈이 사라져 있다. 참고로 후지산을 보려면 인천에서 도쿄를 갈 때는 오른쪽 좌석, 도쿄에서 인천을 갈 때는 왼쪽 좌석에 앉아야 한다. 

 

 

 

후지산은 해발 고도 3,776m라고는 하지만 상당히 높은 등반 난이도가 있다고 한다. 게다가 한라산처럼 1년 내내 개방하는 것이 아닌 7,8월 단 2개월만 등반을 허락하기에 그때는 엄청난 인파로 붐빈다고 한다. 언젠가 누군가의 후지산 등반기를 읽어보았는데 (후기는 여기로) 힘든 과정이 너무나도 자세하게 묘사되어 힘들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후지산 정상에서 일출을 바라보고 싶은 욕망 아닌 욕망이 생겼다. 지금은 이렇게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보고 있지만 내년 여름에는 후지산 등반을 해봐야지. 그리고 그전에 체력도 키우고 그래야겠다.

 

 

 

서서히 멀리 멀어져가만 가는 후지산을 뒤로 한채 기내식이 준비가 되었다. 이번에는 특별하게 사전 주문을 하지 않아, 메뉴 중에 스테이크를 선택한다. 사실 공항에서 다과 등을 많이 먹어서 살짝 배가 부른 상태였는데도 마지막 기내식을 즐기기 위해 억지로라도 먹어야지. 아니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다 먹어야지. 와인은 마시지 않는 것으로. 여기서 더 마시면 취해서 그대로 쓰러져 버릴거 같아 와인은 과감하게 포기하고 콜라로 대신했다. 포만감도 몰려오고, 여행의 긴장감도 풀리고, 집에 돌아간다는 기쁜 마음이 겹쳐 눈이 조금씩 감긴다. 커피를 마실까하다, 1분이라도 더 잠을 자고 싶어 기내식을 후다닥 치우고 좌석을 180도로 조절한 뒤 시트를 덮고 잠을 잔다. 오래 잠은 못자겠지만 1시간정도면 꿀잠을 잘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얼마나 잤을까. 어느덧 비행기는 인천국제공항과 가까워지고 있다. 승무원들도 착륙 준비를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을 보니 나도 좌석을 다시 원위치로 하고 필요한 것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가방에 넣는다. 그리고 시간을 때우고 싶어 밖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저 아래에 매우 낯익은 건물들과 도로들이 눈에 보인다. 엇? 저기 내가 사는 동네자나! 자세히 보면 어디에 우리집에 있는지도 알 수 있을 정도다. 비현실적이고 절대로 발생하면 안되겠지만, 여기서 바로 뛰어내려 바로 집으로 가고 싶다는 마음이다. 언제 공항에 도착해서 다시 공항버스를 타고 집에 와야하는지를 더더욱 생각하면 말이다. 

 

 

 

공항까지는 착륙까지 이제 10분도 채 남지 않았다. 집에 돌아왔구나라는 안정감이 들면서도 내일부터 현실로 다시 돌아갈 것을 생각하면 살짝 머리가 아파온다. 하지만 도쿄에서 정말 좋은 기억들과 생각들을 만들고 와서 가끔씩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버틸 수 있는 비타민이 될 것이다. 도쿄 여행을 보내준 와이프에게 가장 크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고, 스스로에게도 이것저것 보러 다니느라 고생했다고 수고했다고 말해줘야지. 

 

 

 

이렇게 즐거웠던, 잊혀지지 않을 4박 5일 도쿄 여행이 끝났다. お疲れ様でした。

 

 

신은 2023년, 오랜 시간 우승 경험해보지 못한 야구팀에서 특별한 선물을 각각 선사해주었다.

 

먼저, 8월에는 게이오 고등학교에 107년만의 고시엔 우승을 가져다 주었고 

 

 

이후에는 미국의 텍사스 레인저스에게 창단 첫 월드 시리즈 우승을 가져다 주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의 한신 타이거즈에게 38년만에 일본 시리즈 우승을 전달해주었고

 

 

몇일 전에는 대만의 웨이취안 드래곤즈에게 24년만의 우승을 쥐어주었고

 

 

마지막으로 한국의 LG 트윈스에게 29년의 기다림 끝에 3번째 우승을 선사하셨다. 

 

 

12살의 꼬꼬마는 29년이 지난 40대 아재가 되어버렸다. 무슨 설명이 필요 있겠는가. 감동의 눈물만이 가득하다. 

 

 

23.09.23.

 

 

야나카 긴자 구경을 즐겁게 마무리 했으니, 이번 여행의 마지막 장소로 이동한다. 목적지는 카미샤쿠이역. 이곳에 가는 목적은 단 하나다. 나에게 아주 특별한 라면을 먹기 위해서. 이번 여행은 생각 이상으로 도쿄보다 도쿄 주변을 많이 구경하고 있다. 마쿠하리, 초후, 히요시, 그리고 마지막 일정으로 카미샤쿠지이까지. 정신 없이 돌아다니고 있지만 마지막까지 열심히 다녀야지. 

 

 

 

니시닛포리역에서 카미샤쿠지이역까지는 50분 정도? 이케부쿠로역에서 갈아탈까 잠시 고민했지만, 타카다노바바역에서 갈아타는거 이동 거리를 잠시나마 줄일 수 있을거 같다는 생각에 이렇게 가기로 했다. 타카다노바바역은 일본 전체 전철역 승하차량에서 전체 12위를 기록하고 있다. 일단, 도쿄 서부 지역 직장인들의 출퇴근을 맡고 있는 세이부 신주쿠선이 지나가고 (세이부 신주쿠역이 종점이긴 하지만, 대부분은 이곳에서 하차하는 편이다), 게이오 대학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와세다 대학(정확히는 니시 캠퍼스), 가큐슈인 대학, 가쿠슈인 여대 등 주요 대학교가 몰려 있다보니 사람들로 매번 붐빌수 밖에 없는 구조가 되었다. 다만, 야마노테선과 세이부 신주쿠선의 환승은 개념 환승의 정석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쉬운 구조로 되어 있다는 점은 매우 마음에 든다. 시간이 되면 와세다 대학 구경도 하고 싶었는데, 너무 배가 고파서 다음에 방문하자. 

 

 

 

 

세이부 신주쿠선을 타고 얼마나 갔을려나, 드디어 카이샤쿠지이역에 도착했다. 5분만 걸어가면 아주 특별한 라멘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떨린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무도 모를거다. 코로나 이전에는 출장 때문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고, 지난 3월에 왔었을 때는 가게가 쉬는 날이라 아쉬움을 머금고 돌아서야만 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무조건 가야겠다는 의지가 강했고, 여기까지 왔다. 

 

드디어 가게에 도착했다. 저녁 영업이 시작하기까지는 10분 정도 남았다. 브레이크 타임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내 앞에는 벌써 2명의 대기자가 줄을 서서 가게가 오픈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이분들도 나처럼 특별한 라멘을 먹으로 오셨구나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옷차림을 보니 일부러 여기까지 온 사람은 아닌거 같고 동네 주민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어느새 가게 문이 열렸다. 심호흡을 깊게 하고 가게로 들어간다. 오랜 시간, 이 순간이 오기를 학수고대만 했는데 드디어 실현이 되는거 같아 거대한 기대감과 기쁨만이 가득한다. 

 

 

 

 

키오스크에서 라멘과 교자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처음 오는 곳이지만 분위기는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드디어 이곳에 왔다는 꿈이 이루어져서 그런가, 흥분만이 나에겐 가득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문한 라멘과 교자가 나왔다. 얼핏 평범하게 보이는, 어디에서나 판매하는 그런 라면과 교자처럼 보이겠지만 절대로 그렇지가 않다. 특별함만이 가득할 뿐이다. 

 

 

 

이렇게 평범한 라멘과 교자에 나는 왜 집착아닌 집착을 보였을까. 그 이유는 바로. 

 

『'빛의 전사 마스크맨 (일본명: 光戦隊 マスクマン)』

 

여기에 온 이유는 '빛의 전사 마스크맨' 때문이었다. 초딩 때 본 걸로 기억하는데 (아니면 입학전에) 비디오 가게에 가면 항상 후뢰시맨, 바이오맨과 함께 3대 전대물로 불렸던 '빛의 전사 마스크맨'의 레드 마스크가 배우 은퇴를 하고 운영하는 라멘 가게라 시간을 내서라도 오고 싶었다. 팬이라면, 그것도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다면 당연히 와야하는게 인지상정이 아닐까. 1987년 2월에 첫 방영을 했으니 3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스토리가 선명하게 기억나고 오프닝은 아직도 쉽게 따라 부를 정도로 여전히 잊혀지지 않는 80-90년대의 황금 시절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인간의 육체엔 미지의 힘이 숨겨져있다. 단련시키면 시킬수록, 무한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 빛의 전사 마스크맨 '한국판 오프닝'

 

 

▶ 빛의 전사 마스크맨 '일본판 오프닝'

 

 

레드 마스크 역을 맡으셨던, 마스크맨의 주인공은 사장님(본명 이나바 가즈노리)은 지금은 나이가 많이 드셨지만, 아직도 얼굴에서는 옛 모습이 많이 보인다. 레드 마스크로 활약하던  그 시절을 보면 잘생김 그 자체라고 느껴질 정도로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사람은 잘 생겨야 한다. 남자라면 잘생겨야 한다. 

 

혹시나 사진을 찍는게 가능할까 싶어 정중히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여쭤보았는데 안된다고 거절을 하셨다. 아무래도 나 같은 덕후들이 많다보니 매번 이렇게 사진을 찍자는 요구를 부담스럽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고, 영업 중인데 다른 손님께 폐를 끼친다고 느껴질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니 이해가 되었다. 그래도 너무나도 아쉬워서 요리하시는 뒷모습이라도 찍었다. 고마워요 레드 마스크ㅠㅠ 

 

 

 

레드 마스크 이후 몇 번의 작품을 하셨지만 이후 완전히 배우 일을 그만 두시고 이곳에서 라멘 가게를 운영하시는데, 가게에는 여전히 마스크맨의 추억을 간직하고 싶었던 모양이시던지, 초상화를 비롯하여 각종 마스크맨 관련 굿즈들을 전시해두고 있으셨다. 사장님은 더더욱 그러시겠지만, 나도 전시되어 있는 각종 포스터, 굿즈 등을 보면서 마스크맨을 정말로 좋아했던 어린 시절의 모습이 소록소록 떠올랐다. 비디오 가게에 가면 마스크맨 최신편을 빌려서 집에서 몇번씩 돌려보고, 동네 친구들과 액션 포즈를 하면서 놀고, 비디오 가게에 가서 언제 다음편 나오는지 물어보고. 그리고 최신편이 나오면 엄마한테 돈 받아서 최신편을 빌리러 가고.그리고 레드 마스크를 보면서 나도 저렇게 멋지게 변신해서 지구를 지켜야지라고 상상도 했었고.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던 그 어린 시절이었다. 

 

지금 우리가 <해리포터> 1편을 추억하듯, 아재들이 <나홀로 집에>를 추억하듯. 여기서 중요한건 영화의 완성도가 아닙니다. 솔직히 <나홀로 집에>. 이거 잘 만든 영화 아니거든요. <해리포터> 1편? 시작적으로는 훌륭하긴 하지만 영화의 완성도를 논하기는 아쉽습니다.

중요한 건 영화의 완성도가 아니라 니가 그때 10살이었다는 거죠.

- 부기영화, 범블비 리뷰 중. 

 

 

라멘을 다 먹고 추억에 쌓여 가게를 나오는데 잠시 자리를 비우셨던 사장님이 다시 가게로 돌아가시는 것을 보고, 급히 달려가 악수를 청하면서 인사를 하였다.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한국에서 온 팬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저에게 있어 영웅이었습니다.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셔서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렸더니 "감사합니다"라고 웃으시면서 대답을 해주셨다. 정말 기뻤다. 팬이라면 가장 행복하지 않을까. 한때 어렸을 때의 영웅을 이렇게 만나봤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에서 최고의 만족을 경험한 느낌이다. 

 

 

 

 

 

 

기쁨이라는 감정만을 마음에 가득 담아 다시 신주쿠역으로 돌아간다. 카미샤쿠지이역에서 개찰구를 지나가려고 하는데, 뭔가 낯읽은게 눈에 보여 잠시 다가가서 보았다. 그것은 오늘의 세이부 라이온즈 경기 결과표였다. 치바 롯데와의 경기에서 2-1로 세이부 라이온즈가 승리한 결과를 이렇게 역무실 앞에서 보여주고 있던 것이었다. 세이부 라이온즈의 모기업은 세이부 철도, 내가 타는 열차는 세이부 철도에서 운영하는 열차.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세이부 라이온즈의 경기를 놓친 사람들에게도 역에서 내리거나 탈 때 보여주는게 예상외의 센스라고 느껴졌다. 인터넷으로 대부분 경기 결과를 확인하겠지만, 그렇지도 못한 사람들도 있을테니 이러한 배려 혹은 한번이라도 홍보를 하고자 하는 것이 느껴졌다. 

 

 

 

숙소에 도착해 짐 정리를 끝내고, 이대로 마무리 하기 끝내기가 싫어 어제 갔던 뮤직바를 다시 간다. 홋카이도 크래프트 맥주를 마시며  King Gun의 '白日'을 신청해 듣고 기분 좋은 마음을 여전히 유지한채 바를 나왔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 택시를 잡고 도쿄 타워를 간다. 낮에는 많이 가봤지만, 이렇게 늦은 밤에는 처음이다. 

 

 

 

 

도쿄 타워는 음. 생각나는 드라마가 하나 있는데 1999년작, '오버타임( オーバー・タイム). 개인적이지만, 지금 봐도 매우 멋진 어른들의 드라마. 세기말 감성 보다는 30대의 연애 감정이 가슴팍에 아른거렸던 드라마. 주인공 나츠키와 카에데의 친구 같은 연인, 연인 같았던 친구라는 관계가 현실적이어서 좋았던 드라마. 도쿄 타워가 보이는 서로의 방에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Spitz의 '楓'를 들으면서 전화 통화를 하는 장면은 몇번이나 반복해서 보았던 기억이 도쿄 타워를 보니 떠오른다. 

 

 

 

추억으로만 가득찬, 여름의 기운이 가시지 않은, 도쿄에서의 마지막 밤이 끝났다. 

작별을 고할 시간이다. 

 

 

"Thank you the most generous thoughtful loving fans on the planet. 
This is all because of you and all for you. 
(지구상에서 가장 다정한 팬 여러분께)"

 

 

우리는 지금 테일러 스위프트 시대에 살고 있다. 전 세계가 테일러 스위프트 'The Eras Tour'에 열광하고 있다. 각 나라 정치인들이 직접 편지를 보내 자국에서 투어가 진행되기를 희망한다고 전하고, 투어가 열리는 도시에서는 임시로 도시 이름을 테일러와 비슷하게 변경하는 등, 가히 테일러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이다. (제발 지배해줬으면) 

 

테일러 스위트트의 이번 투어가 만들어내는 경제 효과는 가히 그 어떤 투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다. 누군가는 그녀의 투어를 올림픽, 월드컵, 슈퍼볼과 비교해야 한다고 하였다. 숫자로 표현하자면, 2024년 11월 마무리 예정인 투어의 예상 수익은 10억 달러 이상. 지난 7월 8일, 스웨덴에서 끝난 엘튼 존의 'Farewell Yellow Brick Tour'가 기록한 9억 3천만 달러의 수익을 가뿐히 뛰어 넘을 것이라 월가의 애널리스트들은 전망한다. 단순히 콘서트 수익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녀의 투어가 열리는 도시에는 수많은 팬들과 그들의 가족, 그리고 일반 관광객까지 방문하며 그로 인해 지역 경제가 살아나는 진정한 경제 효과가 발생하고 있다. 예를 들어, 투어의 첫 시작이었던 애리조나 글렌데일 지역의 상점들은 올해 초 열렸던 제 57회 슈퍼볼보다 더 많은 이익을 얻었다고 한다. 또한 보스턴에서는 콘서트가 시작되기도 전에 호텔, 레스토랑 예약이 끝났다고 한다. 그리고 미국 투어의 마지막을 장식한 LA에서는 총 6번의 공연이 열렸는데, 이 기간 동안 LA를 방문한 관광객이 약 42만명이고 인당 평균 1300달러의 소비가 발생하였다고 알려졌다. 여기에 더해 LA 지역의 GDP가 3억 2천만 달러가 증가했다고 LA 타임즈가 추정하였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행차가 지나간 도시에서는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의 경제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코로나때 무너진 관광 산업이 살아나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그녀가 가져다 준 경제적 축복 덕분에 호황을 누린 미국의 각 도시들은 이에 보답을 화끈하게 하였다.

 

 

 

미네소타 주지사는 그녀의 공연이 열렸던 6월 23일과 24일 이틀간을 'Taylor Swift Days(테일러 스위프트의 날)'로 지정하였고, 피츠버그 시장은 주말 한정하여 도시 이름을 'Swiftsburg'라 변경하고, 캔자스 시티 시장은 실제로 있는 'Swift Street'를 'Swift Street (Taylor's Version)'으로 바꿔버렸다. 워싱턴주의 천연자원부는 그녀를 '명예 지질학자'로 임명하는 한편, 플로리다 템파에서는 시청과 다리 곳곳을 빨간색으로 점등하였다고 한다. (세금으로만 73만 달러 수익이 들어왔으니 당연히 이정도는 해야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에서는 그녀를 '명예 손님'이라 지칭하고, 뉴질랜드 항공에서는 호주 투어를 가는 사람들을 위해 비행기 안에 특별 좌석을 마련하고, 편명도 그녀의 앨범 1989에서 따온 'NZ1989'로 바꿀 예정이라고 한다. NASA 고다드 우주센터에서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그녀의 앨범이 출시된 해에 맞춰서 촬영한 역사적인 우주 사진 10장을 개재하였다고 발표하였다. 이정도면 그냥 슈퍼스타가 아니라 지구 대통령이라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마이클 잭슨 이후로 이렇게 사랑받는 슈퍼스타가 누가 있었을까. 앞으로는 전혀 없을거 같다는 생각이다. 

 

이번 투어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블록버스터 투어'라 할 수 있다. 단순히 투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 문화적 · 사회적인 파급력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Eras Tour 하나만으로 57개의 공연이 끝난 현재, 2억 2,5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였다고 한다. 그녀가 진행하였던 5개 투어에서 기록한 수익을 다 합치더라도 지금 투어 기록을 뛰어 넘을 수 없다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것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아직 89개의 공연이 남아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전무후무한 지구 역사상 투어 신기록이 세워지는 것이다. 티켓 판매와 각종 굿즈 판매를 더하고 영상화 권리까지 가져가고 (테일러 스스로 제작사를 만들어버렸다), 2차 상품 판매까지 감안한다면 어마무시한 수익이 창출되는 것이다. 그것 뿐이겠는가. 관광업, 여행업, 패션업 등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산업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니 그녀 혼자만으로 지구 경제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음악적 권리를 지키기 위해 애플과 스포티파이를 굴복시켰고, 티켓마스터는 그녀에게 공식적인 사과를 할 정도로 정치권도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각국의 내노라하는 정치인들이 자국에서 투어가 열리기를 희망하고 있다.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는 테일러 스위프트에게 트위터를 통해 센스있게(테일러의 노래 가사를 응용한) 캐나다에서 투어가 열리기를 희망하였고, 테일러는 이에 화답하듯 밴쿠어에서 3번, 토론토에서 6번의 공연을 추가시켰다. 호주에서는 시드니와 멜버른에서 공연이 열릴 예정인데 그녀의 행차에서 제외된(?) 퍼스, 브리즈번, 아들레이드 주지사를 비롯하여 주요 지역 정치인들은 그녀의 방문이 무산된 것을 아쉬워하며 추가적인 공연을 요청하였다. 그녀의 광팬이라 할 수 있는 가브리엘 보리크 칠레 대통령은 직접 그녀에게 서신을 편지를 보내고 유튜브를 통해서 브라질, 멕시코, 아르헨티나에서만 열리는 남미 투어에서 칠레를 포함해주기를 간곡히 부탁하였다. 

 


 

 

그녀의 월드 투어 마차 행렬은 아시아에서는 일본과 싱가폴만을 간택하였다. 나름대로 한국도 매력적인 곳이었겠지만, 아무래도 공연할 장소가 없을 뿐더라, 음반 시장 자체가 상대적으로 작다보니 매력을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2011년 Speak Now 투어때 한국에 와준 그녀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국내 정치인들은 해외 정치인들처럼 센스를 발휘할 생각도 전혀 못하고 있으니 더더욱 아쉬움만이 클 뿐이다. 아예 테일러 스위프트가 누군지도 모를 인간들이 수두룩 하겠지. 

 

그나마 다행인건 CGV 독점으로 'Taylor Swift: The Eras Tour' 공연을 상영한 것 정도? 단 3일간이었지만 그것마저도 납득할 수 있었고 이해하고 행복할 수 있었다. 국내에서 본 사람은 5천명 내외.  그녀의 기념비적인 10집 앨범 <Midnight>가 발매되고, 그녀는 각 앨범을 테마로 삼은 The Eras Tour를 기획하게 된다. 거기에 영상화하겠다는 아이디어까지.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주요 대형 배급사들(소니, 디즈니, 파라마운드, 유니버설, 워너 브라더스 등)과 미팅을 진행했지만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결국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공연을 봐주기를 희망했고, 스스로 회사를 설립하고 미국 유명 영화관 체인 회사인 AMC와 협업하여 직접 배급하는 결정을 내렸다. 몇가지 조건(주말 상영, IMAX 상영 등)이 충족되면서 그녀의 영화는 전 세계적인 흥행을 거두었다. 진행 중에 있는 투어의 대흥행과 함께. 

 

 

 

<Lover> 앨범으로 시작한 투어. 올드 테일러의 귀환이자, 당시 연인이었던 (지금은 과거가 되버린) 조 알윈과의 사랑에 빠진 그녀가 표현하고 싶었던 모든 감정들이 고스란히 콘서트에서 볼 수 있어서,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시간을 되돌려 지금의 그녀를 만들어 준 <Fearless> 앨범 시대로 돌아갔다. 겁이 없었던 당당함으로 무장한 그녀가 혜성처럼 등장했던 그 시절로. 지금의 우리가 10-20대 어린 나이였을 때, 기타를 치며 컨트리 음악을 부르며 무대 위로 등장한 10대의 그녀를 처음 알게 된 그 시절. 10대의 테일러가 부르는 10대의 사랑 이야기가 아닌, 30대의 테일러가 부르는 10대의 사랑 이야기를 듣게 되니 색다른 느낌이었다.

 

■ Lover  

 

 

■ Fearless

 

 

 

과거의 향수에서 벗어나 펜더믹의 한 가운데서 예고도 없이 공개한 <evermore> 앨범 시대로 돌아왔다. 사람들과의 거리가 여전히 간격을 유지하고 있을 때, 17편의 서로 다른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며 언젠간 이 시절이 지나갈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토닥해주는 느낌이다. 'Champagne Problems'를 부르기 전, 테일러는 이 곡을 만들며 꼭 공연에서 들려주고 싶다고 말하였는데, 팬더믹으로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소파이 스타디움에서 이 노래가 끝나고 8분간의 기립 박수가 있었다고 하는데, 왜 그랬는지 알거 같았다. 나라도 분명 그렇게 했었을 것이다.

 

고요함과 차분함이 이어질거 같았던 무대는 순간 <reputation> 앨범으로 전환이 된다. 테일러의 모든 시절을 통틀어 가장 많은 질타와 조롱, 그리고 공격적이고 피로감을 불러 일으켰던 흑화된 테일러의 시기였으니까. 판매량으로는 그해 최고의 성적을 기록하였지만 평가로는 안좋았으니까. 그리고 케이티 페리와 카니에 웨스트와 있었던 각종 이슈들에 대해서도 정면 돌파를 선택한 그녀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더 이상 밝기만한 소녀가 아니에요라고 음악적으로 과감한 변신을 추구한 당시의 선택은 결국, 테일러 스위프트만이 좋은 상황이 되어버렸다. 결국은 'Don't Blame Me', 'Look What You Made Me Do'라는 걸출한 콘서트용 노래가 추가가 되어버렸으니까. 이렇게 고조될 것만 같았던 공연은 <Speak Now> 앨범으로 넘어가며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Enchanted' 한곡만 불렀지만 연보라색 드레스 하나로 공연장을 압도해버렸다. 과감한 연출력이다. 

 

 

■ evermore

 

■ Reputation

 

■ Speak Now

 

 

다시 흥을 즐겨볼까요?라고 말하면서 소파이 스타디움이 강렬한 붉은색으로 뒤덮이며 <Red> 앨범으로 전환이 된다. 컨트리 음악과 작별을 고하고 본격적으로 팝으로 뛰어드는 시기이다. 혹시 'Red'가 나올까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이번 세트리스트에는 포함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We are never getting back together'는 하나의 뮤지컬을 보는 것처럼 댄서들과 코러스와의 호흡이 유쾌하고 멋졌다. 왜 댄서들과 코러스들도 섹시하고 멋있는지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대망의 ' All Too Well (10 minutes version)'이 나오는 순간, 소파이 스타디움이 침묵에 빠졌다. 테일러의 팬이라면 가장 사랑하고 좋아하고 듣고 싶어하고 느끼고 싶어하는 노래니까. 개인적으로 2014년도 그래미 공연(링크)이 가장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테일러 버전이 더 마음에 든다. 앞으로 10분 버전만 주구장창 들어야지 :)

 

그리고 테일러의 디스코그래피에서 가장 평가가 좋은 <folklore> 앨범으로 빠져든다. 세계적인 봉쇄령이 내려진 2020년, 테일러가 겪은 감정의 변화들을 Betty, James, Augustine의 각자의 이야기로 풀면서 이야기를 전해준다. 팬더믹이 없었다면 절대로 나오지 못했을, 아니 설마 나왔다 하더라도 분위기가 달랐을법한 따뜻한 앨범을 오두막 컨셉의 무대에서 동화책을 읽어주듯 불러주었다. 압도적인 높은 선호도였던 Cardigan이 세트리스트에는 없었지만 Betty와 august(리뷰는 여기로)를 들을 때는 눈물이 날 뻔했다. 다음에는 기회가 있다면 <folklore>의 노래들로만 구성된 투어가 있어 각각의 배경을 살린 무대를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 Red

 

■ folklore

 

 

이제 공연이 끝나가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아직도 중간이다. <Red> 앨범이 컨트리와의 안녕을 고한 순간이었다면, <1989> 앨범은 공식적인 팝 앨범이자, 그녀의 전성기가 시작되는 시작점이기도 했다. 예상되로 <1989> 앨범의 라인업은 텐션을 높이는 곡으로 가득하다. 'Blank Space' 뮤비에서 골프채로 차를 부시는데, 역시나 이 공연에서도 골프채로 차를 때려부수는 연출을 하신다. 역시나 연출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불가능했을텐데 그것을 해낸다. 'Shake it off'에서 <1989>를 마무리 할 줄 알았는데 'Bad Blood'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reputation>처럼 이제는 이 노래를 즐기는 거 같아 보인다. 

 

<1989>가 끝나면서 마지막 <Midnights> 앨범으로 넘어온다. 그녀의 기념비적인 10집 앨범이다. 라벤더색의 반짝이는 의상을 입고 등장한 그녀는 'Lavender Haze'를 부른다. 1950년대 미국에서 사랑에 빠졌다는 관용구로 Lavender Haze라는 표현이 자주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라벤더색과 정말 어울렸다. 테일러 스스로도 사랑에 빠졌을 때 빛나는 순간을 다룬 멋진 표현이라고 생각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 앨범의 리드 싱글이자, 테일러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인 Anti-Hero가 흘러나왔다. 누구나 자기에 대한 좋고 싫은 점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솔직하게 표현한 곡이라 하는데, 그 자체로도 좋았다. <Midnight> 앨범이 아직 귀에 쏙쏙 들어오지는 않지만, 계속 귀에 익숙해지고 좋아해야지. 

 

 

■ 1989

 

■ Midnights

 

 

다시 시간을 되돌려 2005년, 테네시 주 네슈빌. 블루버드 카페에서 금발의 10대 소녀가 기타를 치며 오디션을 보았다 (테일러의 오디션 영상). 이름은 테일러 스위프트, 장르는 컨트리. 오디션을 본 수많은 사람 중 한명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잊혀질 줄 알았다. 많은 사람들은 그녀가 성공하지 못하고 이름 없는 가수로만 남아있을 것이라 믿었다. 18년이 지난 2023년, 그녀는 혼자만의 힘으로 거대한 스타디움을 7만명의 사람들로 가득 채우고, 스타디움에 들어가지 못한 2만명의 사람들이 주차장에서 그녀의 음악을 들으며, 환호하고, 열광하고 있다. 그리고 전 세계가 그녀의 횡보에 집중하고 있다. 

 

1집 <Taylor Swift>에서 10집 <Midnights>까지, 각기 다른 감정과 분위기를 담아 만든 소중한 앨범과 노래들을 그녀는 Eras Tour를 통해 맘껏 선사하였다. 자신이 얼마나 모든 앨범을 사랑하는지, 음악 하나하나를 소중히 하는지, 그것을 증명하고자 노력한 모습이 투어에서 맘껏 보였다. 슈퍼스타로 거듭나면서, 불화를 해결해야 했고, 루머를 마주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며, 잠재력을 계속 선보이고 있다. 혼자서 빛난 것이 아닌, 같이 함께한 댄서들과 코러스 그리고 밴드까지.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는 모습에서 테일러와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현장에 있는 팬들의 모습에서 즐기고 있다는 것을 영상을 통해서 보면서 나도 저런 표정을 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면서 아시아 투어가 열리는 도쿄와 싱가폴의 티켓을 알아보게 되었다. 매진이긴 하지만, 어떻게든 가보고 싶다. 정말이다. 

 

엔딩 크레딧은 'Long Live (Speak Now 투어의 라이브)'. 테일러의 팬들이라면 '찬가'라 여기는 곡. 테일러가 팬들에게 사랑을 담아 전달하는 팬송. 눈물이 흘렸다. 가사 한줄 한줄을 쓸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가기 전까지는 정말 망설였는데, 3시간이라는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테일러가 전달하는 고마움. 정말로 뜻 깊은 시간이라 감동이었다. 행복으로 가득차서, 벅차서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Remember this moment"

이 순간을 기억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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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23.

 

아키하바라에서의 아쉬움과 씁쓸함을 뒤로 하고, 이번 여행에서 꼭 가고 싶었던 닛포리로 향한다. 몇달 전에 보았던  「남은 인생 10년(余命10年)」 (영화 리뷰는 여기로)에서 주인공 커플이 해질 때 손잡고 거닐 던 야나카 긴자를 가보고 싶어서였다. 아키하바라에서 열차를 기다리며 생각해보는데, 이곳에서 우에노 방향으로 가본적이 한번도 없었다. 거의 츄오-소부 완행선을 타고 신주쿠로 돌아가거나, 야마노테선을 타더라도 반대쪽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우에노, 닛포리, 스가모 등 지역은 2000년에 처음 도쿄에 왔었을 때, 가보고 안가봤기에 23년만에 가보게 된다. 

 

 

 

닛포리에 도착, 야나카 긴자로 쉬엄쉬엄 걸어가야지. 오전 내내 회색 구름으로만 가득했던 하늘이 어느새 파란색으로 변해있었다. 그리고 구름 사이로 햇빛이 휘날리며, 닛포리에 온걸 환영해. 너에게 가장 멋진 하늘을 보여줄게라고 말하는 듯 싶었다. 여기 골목에는 무엇이 있을까, 골목마다 고개를 쏙 내밀고 탐색해본다. 그러다가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다. 바로 '러.브.호.텔.' 푸하하하하. 호텔 이름이 '愛'다. 쉽게 눈에 띄는 매우 직관적이고 매력적인 네이밍이다. 건물 자체도 작아서 과연 영업이 될까 호기심이 들면서도 주택가 한가운데에 있다는 것에 놀라울 따름이다. 방음은 잘 되어 있을려나, 보이지는 않을려나 등등 별의 별 상상이 떠오른다. 그런데, 다른건 다 알겠는데 서비스 타임이란 의미가 무엇일지 매우 궁금했다. 그래서 일웹을 뒤져보니 다음과 같은 의미라고 하더라. 

 

  • 휴식 : 시간이 정해져 있는, 우리나라로 치면 대실과 비슷한 의미. 
  • 서비스 타임: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는, 대실과 비슷하지만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는 의미. 
    (예: 서비스 타임이 오전 6시부터 저녁 8시까지라면 휴식 시간과 동일한 가격에 해당 시간에 머무를 수 있음

 

 

 

러브호텔을 뒤로하고 다시 큰 길을 따라 조금만 더 걸어가니, 낯익은 거리와 계단이 눈에 들어온다. 영화에서 주인공 커플이 두 손을 잡고 석양을 바라보며 데이트 하던 길거리, 두 사람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던 계단이다. 전혀 예상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그 장소를 한번에 발견하다니. 반가울 따름이다. 

 

 

 

어떤 작가의 에세이에서 야나카 긴자를 이렇게 표현했다. 인생을 놓고 싶을 정도로 최하까지 떨어진 상태, 무작정 길을 걸어 야나카 긴자에 도착했는데 거기서 바라본 일몰이 정말로 아름다워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계속 오다보니, 지금까지 살아있을 수 있었다고. 아마 그때부터 야나카 긴자가 어떤 곳인지 매우 궁금했었다.  특히, 야나카 긴자 상점 거리를 앞에 두고 있는 「유야케 단단」 (夕やけだんだん) 이라 불리는 계단에서 바라보는 석양은 도쿄타워, 스카이트리의 그것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고 해서 꼭 가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었지만, 닛포리에 도착한 하늘은 다시 구름으로 가득. 하지만, 지난 3일 내내 보이지 않았던 햇빛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심 기뻤다. 적어도 석양을 살짝이라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으니까. 유야케 단단 근처에서 얼마나 있었을까. 시시각각 변화하는 구름 사이로 때로는 석양이 환하게 보이다가 다시 구름속으로 숨었다가를 반복한다. 완벽한 오렌지색의 석양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은 크지만 빛과 구름이 만들어내는 장관을 보는 것만으로도 감탄이 쏟아진다. 도쿄타워에서, 스카이트리에서 바라 본 석양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석양을 바라보니 기분이 색다르다. 야나카 긴자에 온 것이 후회되지 않을 정도이다. 완벽한 오렌지색을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다음 기회가 있으니까, 또 다시 오면 되니까. 

 

 

 

 

토끼처럼 「유야케 단단」 계단을 총총 걸어서 내려간다. 야나카 긴자 상점 거리를 가야지. 지난 몇 년 동안 도쿄의 동쪽 지역, 동쪽 도쿄라 불리는 다이토구, 스미다구, 분쿄구, 아다치구 등이 관광지로 급부상하고 있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라 할 수 있는 우에노, 아사쿠사, 오시아게, 아메요코 상점 거리 이외에도 스가모, 야나센, 닛포리 등 관광객이 가지 않을 듯한 지역들에도 관광객의 유입이 크게 증가하였다고 한다. 서쪽 도쿄로 대표되는 신주쿠, 시부야, 이케부쿠로 등 지역이 세련됨, 트렌디, 도회적이라는 키워드로 사람들을 이끈다면, 동쪽 도쿄라 불리는 우에노, 닛포리, 스가모 등은 촌스러움, 시골스러움이라는 단어로 매력을 듬뿍 뽐내는 느낌이다. 

 

<신주쿠 및 이케부쿠로에서 자주 보이는 사람들> 

 

<우에노 및 야나카에서 자주 보이는 사람들> 

 

 

에도 시대부터 사찰과 서민적인 상가들로 가득했던 '야나카', 나츠메 소세키, 모리 오가이 등 문인 작가들이 많이 살았던 '센다기', 그리고 1900년의 역사를 지난 빨간 도리이가 매력적인 네즈 신사가 있는 '네즈'. 3곳 거리의 이름을 따서 '야네센'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한때는 사람들이 줄어들어 '사찰과 무덤 밖에 없는 낡은 거리'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곳에 애정을 가진 3명의 주부가 복고풍의 거리 풍경과 유서 깊은 신사와 절, 축제와 사람 사는 냄새를 소개하는 일본 최초의 지역 잡지 『야나카·네즈·센다기(谷中・根津・千駄木)』을 창간했고 잡지의 매력이 퍼져나가면서, 자연스럽게 도쿄를 대표하는 산책 명소가 되었다. 

 

사람이 2명 정도 서로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상점 거리에는 한눈에 봐도 오래된 가게들이 쉽게 눈에 들온다. 다이쇼 11년(1922년)에 설립된 전통 과자점 '고토노아메(後藤の飴)', 멘치카츠로 유명한 '니쿠노스즈키(肉のすずき)' 등 쉽게 볼 수 없는 개인 상점들로 가득한 거리를 느긋하게 걷다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대단한 것을 파는 것도 특별한 것 보는 것도 아니지만, 느긋하게 걸으면서 이것저것 사먹는 소박한 즐거움이 도쿄 여행의 매력을 다가온다. 

 

 

 

 

 

 

 

자, 이제 어린 시절의 영웅을 만나러 가야지. 

 

 

"나는, 세계 최고의 재즈 플레이어가 될거다 (オレは、世界一のジャズプレーヤーになる)"

 

 

솔직하게 말하자면, 영화라기 보다는 라이브 공연을 보는 느낌이었다. 음악으로 가득찬, 음악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영화관에서 보는게 아깝지 않았다. OTT나 핸드폰으로 보았다면 분명 후회했을 것이다. JAZZ는 조용하고 세련된 이미지지만, JASS가 연주하는 곡은 아마추어임에도 좋은 의미로 거칠고 뜨겁고 진심으로 멋지다고 생각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드러머 타마다 슌지의 성장. 다른 멤버들과 비교하여 스스로 열등하다고 생각하고 연주 후 관객에서 싸인을 받지 못해 우울해 하고 있을 때, 관객 중 한명이 조용히 다가와 '드럼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말을 건네 주었다. 결과 뿐만 아니라 과정도 지켜보고 있다는 사람이 있다는 희망을 느낄 수 있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그리고 타마다 슌지는 그러한 장벽을 극복하고 멋진 드럼 솔로로 관객들을 뜨겁게 매료시킬 수 있었다. JASS가 해체되는 장면도 아름답게 어우러졌다. 우린 친구지만, 언제까지나 밴드를 할 수는 없다고. 세계 최고의 재주 연주자가 되려면 멈출 수 없다라고, 옆에 서서 눈물을 멈추지 않는 타마다 슌지의 모습은 그가 밴드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증거다.

 

 

지난 도쿄 여행에서 타워 레코드에서 산 블루 자이언트 LP. 멋진 음악의 시간을 즐겨야지. 

그리고 SO BLUE의 모티브가 된 블루 노트 도쿄, 꼭 가야지. 도쿄에 갈 이유가 또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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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3. 

 

게이오 고교 구경(관련글은 여기)을 마치고, 게이오 대학 구경을 한다. 게이오 대학은 세부적으로 보면 총 6개의 캠퍼스가 있지만 대표적으로 미타 캠퍼스, 히요시 캠퍼스, 쇼난 후지사와 캠퍼스로 구분할 수 있다.

 

미타 캠퍼스가 대학본부, 고학년 중심의 문과 계열 및 로스쿨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반면, 히요시 캠퍼스는 일부 학과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학과의 1~2학년생의 수업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입학과 졸업 행사가 열리는, 게이오의 시작과 끝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다. 히요시 캠퍼스 중앙에는 2020년, 새로 만들어진 기념관 홀이 있다. 1958년 건립된 기존 건물은 수용 인원의 한계, 그리고 워낙 낡아 꾸준한 리모델링 요청이 있어왔고 아예 건물을 헐고 새롭게 만들자는 의견이 대두되어 이렇게 새로 만들었다고 한다. 실제로 예전 기념관홀을 보면 정말 이게 학교 건물이야?라고 생각할 정도로 이상한 외관이라 차라리 이렇게 현대식으로 바꾼게 훨씬 깔끔하고 나아보인다 (옛 건물 외관).

 

게이오 대학 구경을 하면서 다음 여행을 가게 된다면, 시간이 허용한다면 현지 대학교 구경을 하러 다녀야지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대단한 이유라기 보다는 나중에 아이가 본격적으로 공부를 할 때, 유명 대학 등을 보여주면서 보다 공부에 확고한 목표를 가지게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석사와 박사를 해외에서 하고 싶었던 나의 개인적인 욕망도 있어서 현지 대학을 구경하면 마치 학교를 다녔던 느낌일 받기에 다음부터는 그렇게 해볼까 싶다. 

 

 

게이오 대학 구경을 마치고 다음 장소인 아키하바라로 향한다. 그전에 도쿄역을 잠시 들려야지. 생각해보니 도쿄역까지는 메구로선을 타고 바로 갈 수 있지만 히비야역에서 내려 걷는게 귀찮아서 (이미 게이오 고교 구경하면서 많이 걸어서 아침부터 지친 상태), 무사시코스기역에서 한번 환승하면 도쿄역까지는 한번에 갈 수 있다는게 더 나을거 같아 그렇게 가기로 결정했다. JR 요코스카선을 타면 도쿄역까지는 단 3정거장. 시간상 비슷하지만 도큐 메구로선을 타는 것보다 정차역이 많이 줄어들어서 조금 편하게 가는게 더 이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간과하지 못한게 하나 있었으니 환승 거리였다. 무사시코스기역은 하나이지만 도큐 토요코선과 JR 요코스카선은 별개의 플랫폼을 사용하고 있어 양쪽으로 환승시에는 엄청난 거리를 걸어야 한다. 도보로는 10분 거리라고 나와 있지만, 나에게는 절대로 10분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20분 정도?라고 해야하나. 그것도 계단을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다보니 더더욱 거리가 길게만 느껴진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도큐 메구로선을 타고 갔어야 했나, 그런 생각까지 들 정도다. 

 

 

 

하지만 JR 요코스카선을 탄다면 좋은 점은 도카이도 신칸센을 최소 1회 이상은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무사시코스키역의 JR 요코스카선이 도카이도 신칸센 바로 옆에 위치해 있어 열차를 기다리다 보면 도쿄 또는 시나가와행 또는 신오카사카행 열차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할 수 있다. 이미 몸은 기진맥진한 상태였지만 신칸센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만큼은 좋았다. 당장이라도 신칸센을 타고 어디라도 가면 좋을텐데. 한때 에반게리온 신칸센을 운영할 때, 신오카사에서 하카타까지 산요 신칸센을 타본적 있지만, 도카이도 신칸센(도쿄 - 오사카)은 아직이기에 신칸센을 보면서 제발 한번 탈 수 있는 기회를 바라는 간절한 소원을 빌었다. 

 

YOASOBI의 나고야 콘서트를 응모했기에, 만약 당첨이 된다면 콘서트 참석 이동 계획은 다음처럼 이동하기 않을까 싶다. 이렇게만 된다면 도쿄역에서 신오사카역까지 신칸센으로 이동할 수 있어 도쿄역에서 하카타역까지 전부 신칸센으로 이동한 경험을 쌓게 되는 것이다. 

 

이동 계획 : 김포 국제공항 → 하네다 → 도쿄역 → 나고야역(1박) → 신오사카역 → 간사이 국제공항

 

 

 

JR 요코스카선을 타고 도쿄역까지 잠들어버렸다. 게이오대와 게이오 고교를 둘러본게 전부 다인데 지쳐버리다니. 다른 건 둘째치고 발목이 너무나도 아픈게 여행의 어려움이 되는 것 같다. 최근부터는 오랜 시간 걸어다니는게 단순히 힘든것을 벗어나 일정을 제대로 소화하기 어려울 정도까지 되어버렸다. 체력이 많이 떨어진 것도 일부 영향이 있겠지만, 평발이라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지 않나 추측해본다. 그나마 체력이 있던 20대 시절에는 하루 종일 걸어다녀도 살짝 피곤만 할 뿐, 이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걸 보면 한번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봐야겠다는 생각이 점차 커지고 있다. 

 

도쿄역에 도착했다. 아키하바라로 바로 이동할 생각도 있었지만 잠시 도쿄역을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쿄의 현관이라 불리는 도쿄역은 도카이도 신칸센과 도호쿠 신칸센의 기점이자, 재래선인 도카이도 본선과 도호쿠 본선의 시발역 역할을 하고 있다. 일평균 승차량 또는 일일 발착 열차 수로는 다른 역(신주쿠역, 우메다역 등) 비교하면 낮은 규모이지만, 여러 관점에서 보면 일본 철도의 살아있는 역사라고 할 수 있겠다. 

 

도쿄역 주변은 최근 2-3년간 일본에 불어닥친 부동산 열풍을 반영하든 신축 또는 리모델링이 완료된 건물이 많이 보인다. 부동산 열풍은 단순히 도쿄역 일대만 그런 것이 아닌 시부야, 긴자, 신바시, 시나가와 등 핵심 부도심 일대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코로나 이후 일시적인 반등의 결과일까 아니면 본격적인 경기 회복의 신호탄이지는 아직 그 누구도 확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부동산 붐이 과연 일본 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많이 궁금할 따름이다. 

 

 

도카이도 신칸센의 다이어를 보면 저런 스케줄로 운영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촘촘한 스케줄이다. 최소 3분에서 최대 9분 사이의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배차 간격을 두고 있다. 등급 구분, 정차역 제한 등으로 미친듯한 다이어가 돌아가는 역량을 가진 JR 도카이에 더욱 놀라울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능력을 바탕으로 전체 JR 회사 중에 가장 높은 영업이익을 내고 있다는 것에 대해, 그리고 정부 지원 없이도 회사 단독으로 시나가와역에서 신오사카역까지 고속 자기부상 노선을 건설하고 있다는 것에 더더욱 놀라울 따름이다.

 

 

간략한 설명을 하자면, 13시 39분부터 14시 49분까지 약 1시간 동안 21편의 열차가 도쿄역에서 출발한다(특별 편성 포함). 21편의 열차 중에서 17편이 최고 등급인 노조미, 2편이 중간 등급인 히카리, 그리고 나머지 2편이 최저 등급인 코다마. 

 

  • 노조미: 신오사카역까지 정차역은 시나가와역, 신요코하마역, 나고야역, 교토역까지 총 4개로 고정. 
  • 히카리: 매시 3분과 33분에 출발. 정차역은 노조미가 정차하는 역을 기본으로 시즈오카역과 하마마츠역에 정차하는 패턴, 기후하시마역과 마이바라역에 정차하는 패턴으로 구분. 차이는 나고야역 전후 정차 여부.
  • 코다마: 신오카사역까지 모든 역 정차. 

이와 같은 기본 구조로 편성을 설정함에 따라 히카리가 정차하는 동안 노조미를 1~2편 먼저 보낼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만들어지는 동시에 30분 배차 차이가 있는 히카리는 몇 분 차이를 두고 신오사카에 도착하는 규격화를 이루어졌다. 그렇기에 만약 인명사고 등이 발생하는 경우, 결국에는 이 모든 다이어가 무너지는 것이다. 이러한 다이어를 느껴보기 위해 도카이도 신칸센을 더더욱 타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든다. 그렇기에 제발, YOASOBI 나고야 콘서트 당첨되기를! 

 

 

짤막한 도쿄역 구경을 마치고 아키하바라로 향한다. 지난 3월에 왔을 때 사지 못했던 피규어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진 채. 예전에는 아키하바라를 일정의 가장 최우선 순위로 두었을 뿐더러 최소 2번은 왔었을텐데 이번에는 전혀 그러지 않았다. 최우선으로 오기는 커녕, 다음 일정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잠시 들리는 수준? 정도였다. 그것도 1시간 내외로 보고 마무리하자라는 계획까지도 세웠다. 

 

아직까지도 몸과 마음은 활활 타오르는 덕후이지만, 예전만큼은 아닌 거 같다. 예전 같았으면 무조건 뭐라도 사야해라는 강박관념으로 대형 샵부터 조그마한 샵까지 뒤졌는데, 지금은 몇 군데 돌아다니고 (대충 위치를 아니까), 없으면 다음에 오면 되겠지라는 마음이 더 커진 것 같은 느낌이다. 한때 유키 미쿠에 미쳤었을 땐 (지금도 여전하지만), 왠만한 샵은 다 뒤졌는데, 지금은 아마존이나 라쿠텐에서 직구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이 앞선다. 그래서인지 이번에는 정확히 3군데 (리버티, 스루가야, 트레이더)만 들어갔고, 트레이더에서 지난 번에 구경조차 못했던 라이자 피규어를 손에 넣었다. 후후. (31,000엔 주고 샀다)

 

 

관심이 많이 줄어든 이유로는 아무래도 아키하바라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도 한몫을 하는 듯 싶다. 코로나 이전에는 덕후질을 할 수 있는 샵들이 많아 원하는 취향에 따라 돌아다니고 구경하는 재미가 컸었다. 이러한 다양성이 덕후질을 보다 촉진하고 즐겁게 만드는, 즉 말하자면 덕후들이 핵심 소비층으로 있으면서 라이트한 사람들이 모이는 형태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코로나를 경험하며 수많은 규모에 상관 없이 희귀한 상품을 취급하였던 중고 상점들이 폐업을 하고 사라지면서 핵심 소비층이었던 덕후들도 함께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를 라이트한 외국인 관광객들이 대신을 하면서, 특히 중국(또는 대만, 홍콩 등) 중고물품 판매상들이 그 자리를 많이 대체하며 그나마 남아있는 상품들마저도 싹스리하는 수준까지 와버렸다. 

 

결론적으로는, 코로나 이전에 갔었던 아키하바라는 다양하고, 독특하고, 새롭고, 구경거리로 가득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아키하바라는 타겟 대상을 확장하는데는 성공하였지만, 오타쿠의 문화가 많이 사라져버리고 있는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을 강하게 느끼며 씁쓸함이 가득할 뿐이다. 이렇게 글을 쓰면서도 다음에 도쿄에 가면 나는 분명 아키하바라를 갈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또 돌아다니면서 열심히 무엇을 살까 고민하겠지만, 예전만큼은 아닐 거 같다는 느낌부터 드니 변해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만이 크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아키하바라에 머물렀던 시간은 정확히 1시간 10분 밖에 되지 않았다.  

2023.09.23 

 

107년만에 고시엔 우승을 한 게이오 고교를 직접 방문했다. 고시엔을 보면서 언제쯤 우승 학교를 탐방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우연치 않게 가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게이오 고교가 우승해서, 도쿄에서 가까운 요코하마에 있어서, 그리고 도쿄 여행을 와서. 단 하나의 운이 오기에도 힘든데, 3가지 운이 한꺼번에 맞아떨어져서 이렇게 방문할 수 있구나.

 

 

신주쿠역에서 후쿠토신선을 타고 약 40분간 남쪽으로 향하면 요코하마에 위치한 히요시역에 도착한다. 역을 기준으로 서쪽지역은 히요시 상업거리, 동쪽 지역은 게이오 대학 히요시 캠퍼스이다. 히요시역에 가까워질수록 겉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떨리면서 설레는 마음이 커진다. 내가 다닌 학교 아닌 그저 고시엔에서 우승한 학교일 뿐인데 이런 감정이 드는 이유는 뭘까. 고시엔에 관심 가진지 8년만에 처음 방문하는 우승 고교라서 그런걸까. 여튼 기분이 좋은 것은 사실이다.

 

지난 8월 23일에 우승을 하고, 약 한달이라는 시간이 지나서 고시엔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을까 가는 길 내내 노심초사하였다. 다행이도 역에서 나와 바로 정면에 보이는 히요시 상업거리 중심에는 우승 기념 현수막이 아직도 걸려있었다. 그럼 그렇지. 107년만의 우승인데 벌써 내리면 학생들도 그렇고 상인들도 그렇고 많이 아쉬워할 거 같다고 생각한다. 아마 올해가 끝날때까지는 걸려있지 않을까 싶다. 

 

게이오 고교가 우승했을 때 이곳 거리 분위기가 어땠는지 상상을 하고도 남는다. 내가 다니는 학교 대표로 출전하는 것을 넘어 내가 자라온 마을, 나아가서는 지역을 대표한다는 의미가 크기에 유대감이 상상 이상으로 크다. 8월 우승 당시의 뜨거웠던 분위기는 많이 가라앉았지만, 거리 곳곳에 남아 있는 우승 축하 기념 흔적을 보면 얼마나 많이 우승을 자랑스러워했는지, 축하했는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자, 이제 학교를 구경하러 가야지. 게이오 고교는 앞서 말한 것처럼 게이오 대학 히요시 캠퍼스 교내에 위치해 있다. 히요시 캠퍼스로 들어가는 길은 히요시 이초 나미키(銀杏並木) 라 불리는 은행나무 가로수 길이다. 말 그대로 일렬로 늘어선 은행나무라는 뜻인데, 11월이 되면 가로수가 밝은 노란색으로 불타오르는 듯하게 변하여 절경을 이룬다고 한다. 그래서 사진작가들에게는 매력적인 가을 촬영 장소가 된다고 하니 그때 다시 한번 오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은행나무 가로수길을 지나 드디어, 감격스럽게도 게이오 고교가 눈에 보인다. 전체적으로 하얀색의 투박한 느낌의 건물이 바로 게이오 고교이다. 역시나 우승 기념 현수막이 학교 본관 출입구 옆에 자랑스럽게 걸려있다. 

 

 

『제 105회 전국고등학교야구선수권대회 

우승 게이오기주쿠고교

주최 / 아사히신문사 · 일본고교야구연맹』

 

 

1888년 미타 야구 클럽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게이오 고교 야구부는 1916년 전국 중등학교 선수권 야구 대회(현 고시엔)에서 첫 우승을 달성하였다 (우승 이야기는 여기로). 이후 게이오 고교 야구부로 개명하였고, 1950년부터는 도쿄부가 아닌 카나가와현 대표로 고시엔에 참가하기 시작하였다.

 

게이오 고교 야구부의 모토는 「エンジョイ・ベースボール」  (엔조이 베이스볼). 야구부의 헤어스타일에서 이러한 느낌이 강하게 보여지고 있는데 태평양 전쟁 이전부터 두발 자유를 허용해왔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일본 고교야구는 삭발, 그것도 완전 삭발이라는 일반적인 인식이 강한데 그런 것을 최근이 아닌 오래전부터 탈피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게이오 대학의 시작이 '실학' 또는 '실용적인 학문'을 추구하는 것으로 시작하였으니 그러한 학풍이 고등학교까지 이어지며, 자유스러운 분위기가 야구부에서도 풍겨져 나오는 듯 싶다. 고시엔 우승 이후, 게이오 고교 야구부 감독 모리바야시 타카히코 감독은 인터뷰에서 '엔조이 베이스볼'이라는 의미를 이렇게 표현했다. 

 

어른이나 보는 사람이 고교야구는 이래야 한다는 이미지를 만들어 계승해 나가고 있습니다. ‘삭발로 전력질주’, ‘이기든 지든 눈물’, 이런 청춘스토리를 멋대로 만들어 이어 나갑니다. 선수들도 그런 이미지에 박혀 있다고 느낍니다. 선수 뿐만이 아니라 지도자나 주위에 있는 어른들이 모두 함께 변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래라저래라 하는 시키는 야구는 어떤 것도 재미없습니다. ‘가르치는 위험’에 대해 조금더 생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가르친다=선수들이 잘하게 된다. 팀이 강해진다’는 건 환상일 뿐입니다. 조금 돌아가도 선수가 생각하게 하고, 시행착오를 통해 최종적으로 스스로 잡는 것이 진정한 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표방하는 ‘엔조이 베이스볼’은 ‘야구를 즐기자’입니다. 무엇이 즐기는 것이냐고 하면 당연히 스포츠이므로 이기는 겁니다. 자신의 기량을 향상시키고, 팀도 강해지고, 그 결과 승리라는 열매를 얻는 것입니다. 결국 모두가 하는 일입니다. 덧붙인다면 ‘보다 높은 레벨의 야구를 즐기자’ 하는 의식입니다. 보다 수준 높은 무대에서 야구를 하고 거기서 보이는 경치를 즐기는 것입니다. 고교야구에서는 역시 고시엔이겠죠. 져도 좋다는 건 전혀 없습니다. 승리는 탐욕스럽게 추구합니다.

 

원문 보기: 「青春ストーリーを、大人が勝手に作っている」坊主文化や球数制限で揺れる高校野球

번역문 보기: 승리를 추구하는 엔조이 베이스볼 Enjoy Baseball (출처: 코치라운드)

 

 

「青春ストーリーを、大人が勝手に作っている」坊主文化や球数制限で揺れる高校野球、慶應

「選手だけでなく、指導者や周りにいる大人、みんなで変わっていく必要がある」

www.huffingtonpost.jp

 

고시엔을 보는 사람들 중에는 게이오 고교가 중고일관교(사립재단에 속하여 소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순으로 에스컬레이터처럼 진학한다는 의미)이기에 학생들을 입시를 빌미로 긁어모았다 그래서 우승했다라고 비난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물론 누군가에는 비난할 수 있는 이유가 되겠지만, 전국구 강호학교들(예: 치벤가쿠엔, 오사카 토인, 리세이샤, 센다이 이쿠에이, 하나마키히가시 등)도 우수한 선수들을 확보하고자 전국적으로 스카우트를 하러 다니고, 고시엔 본선 진출을 미끼로 학생들을 모집하기에 게이오 고교만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게이오 고교 건물은 1934년에 완공되어 1945년까지 대학 예과, 즉 대학 학부에 입학하기 위한 자격을 준비하는 공간이었다. 한국으로 치면 의과 대학, 치과 대학 등에 존재하는 예과 과정과 유사한 형태다. 당시에는 이러한 과정이 인문 대학, 이과 대학, 미술 대학 등 학문 분야를 막론하고 존재한 것이다.

 

하지만 1945년 일본이 전쟁에 패망하고 연합군 최고 사령부(GHQ)가 건물을 몰수하며 대학 예과의 기능을 상실하였고, 1949년에 게이오 고교의 전신이었던 게이오 대학 사범학과(당시 고등학교 과정)가 고등학교로 전환되며 이곳에서 본격적인 생활을 시작하며 자리잡게 되었다. 게이오 고등학교 건물은 카나가와현 100대 건물로 지정되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학교 내부를 구경할 수 있을까 싶어 문을 열고 들어가 본다. 주말이라 학교는 조용하지만 부활동을 위해 학교에 나온 학생들이 간혹 보이기도 한다 (참고로 게이오 고교는 남고이기에 여고생은 흑흑). 일본 고등학교를, 그것도 명문 고등학교에 들어간다는 것이 기쁘면서도 혹시나 민폐가 될 수 있을거 같다는 생각도 한편에는 있기에 최대한 조용하면서 빠르게 보고 나갈 계획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는 어언 수십년이 지났지만, 당시의 느낌이 떠오른다. 차가움이 느껴지는 복도, 철컹하고 열리는 사물함, 끼익하고 열리고 닫히는 교실문까지 모든 것이 낯설지 않은 익숙함으로 가득찬다. 교실은 어떨까 싶어 문이 열려있는 교실 중 하나를 들어가본다. 완전히 들어가지는 않고 상체만 쏘옥 교실 안으로 넣어 구경을 한다. 부활동을 위해 학교에 나온 학생들이 잠시 짐을 두고 나간거 같은 느낌. 칠판, 칠판 옆 안내문들, 책상, 의자, 빔 프로젝트가 교실의 전부이다. 일본 고등학교라, 게이오 고교라 하면 다른 무언가가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오래전에 다녔던 고등학교 모습과 똑같아 오히려 친숙한 느낌이 들 정도다. 

 

 

야구부가 연습하는 야구장까지 가려 했으나 학교 내에서 바로 연결되지 않고 한참 돌아서 가야하는 것을 알게되서 게이오 고교 구경은 여기서 멈추는 것으로 결정한다. 오늘 갈 곳이 생각보다 많아서 여기서 시간을 지채하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아쉽지만 여기서 작별인사를 고하고 다시 히요시역으로 향한다. 

 

 

게이오 고교 구경은 여기서 마무리.

 

 

P.S 긴자 쿄분칸에서 구매한 주간 베이스볼 2023 고시엔 리뷰 특별판을 샀다. 게이오 고교가 표지 모델이 되는 등 이번 고시엔이 워낙 관심을 받았기에 안살 수가 없었다. 1회전부터 결승까지 주목 받았던 선수들을 SUMMER HEROES로 선정하고, 주요 경기 리뷰 등 알찬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 

 

 

모리바야시 타카히코 감독: 우리의 우승뿐만 아니라 고교 야구의 새로운 모습으로 이어지는 승리였다고 생각합니다. 

 

[2023 SUMMER HEROES - 게이오 고교] 

좌측: 어떤 상황에서도 의지할 수 있는 2학년의 오른팔, 오야케 마사키. 

우측: 팀의 기세를 올린 신데렐라 보이, 미나토 마루타.

 

 

[2023 SUMMER HEROES - 센다이 이쿠에이 고교] 

좌측: 세대를 대표하는 오른팔 콤비, 유다 토우마 

우측: 서로 신뢰했다, 타카하시 코우키 

 

 

올해의 고시엔과는 정말 마무리다. 끝. 

2023.09.22 

 

긴자에서 돌아와 숙소에 잠시 들려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다음 일정의 중심인 쵸후시의 중심지 쵸후역로 향한다. 도쿄도에 있으나 도쿄 23구에는 속하지 않는 행정 구역, 타마 지구이다. 한국으로 비유하자면 서울과 인접한 광명시, 과천시, 안양시라고 할 수 있겠다. 쵸후역까지는 신주쿠역까지는 케이오선을 타고 20분 내외 정도. 여행이든 출장이든 수십번 도쿄를 왔지만, 도쿄를 벗어나는 것은 처음이다. 쵸후로 가는 이유는, 대학원때 함께 GSA를 했었던 앨리샤가 여기서 살고 있어 만나기 위해, 그리고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무대 탐방을 하기 위해서다. 

 

 

신주쿠 서부 지역의 철도 교통을 책임지고 있는 일본의 16개 대형 사철 중 하나인 케이오 전철. 우스갯소리로 케이오 전철이 멈추면 타마 지역, 특히 쵸후시, 후추시, 히노시에 사는 사람들의 출퇴근이 불가능하다라고 할 정도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케이오 전철이 멈출리는 없으니 (극단적인 다이어로 사고가 발생하는 것을 제외한다면) 그런 걱정은 살짝 내려 놓자. 

 

앨리샤와의 약속까지는 아직도 2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 오늘 가보고자 했던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花束みたいな恋をした)」 촬영지 중 한 곳을 먼저 가보기로 한다. 신주쿠역에서 케이오선을 타고 치토세가라스마역에서 내린다. 서쪽으로 갈수록, 신주쿠역에서 멀어질수록 화려한 고층 빌딩이 사라지고 수수한 저층 건물들이 눈에 많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런 변화를 보는 것도 새로운 곳으로 가보는 것도 여행의 묘미인듯 싶다. 역에서 내려 가장 먼저 간 곳은 슈퍼마켓. 성환이형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폴리탄 이야기가 나왔는데 슈퍼마켓에 가면 나폴리탄 소스를 살 수 있다고 해서 냉큼 눈에 보이는 이곳으로 들어갔다. 잠시 둘러보니 나폴리탄 소스가 눈에 보인다. 드디어 소스를 구하다니! 이제 한국 가서도 나폴리탄의 맛을 그대로 느껴봐야지. 

 

 

현지 사람들의 사는 동네를 본다는 것은 여행자로서 큰 특권인 듯 싶다. 아시아, 중동, 남미 등 배낭여행을 할 때 여러 좋았던 모습들 중에 기억이 난다면, 현지 사람들의 생활을 경험하는 것이었다. 거창히 말하자면 투어이고, 소박하게 말하자면 천천히 걸어다니기. 시리아 다마스커스의 대형 바자르, 이란 야즈드의 이름 모를 올드 타운, 볼리비아 코차밤바의 시내 거리 등 현지 사람들의 생활이 보여지는 곳을 구경하다보면 어느샌가 이들의 삶의 가운데에 들어가있는게 느껴진다.

 

주택가로 이루어진 동네를 걷고 있다보니 모든게 호기심투성이다. 집 구조는 어떨까, 어떤 가게가 있을까, 무엇을 하는 곳일까 등 동네 사람이 아니고서는 모를만한 것들이 궁금함을 이끌어낸다. 항상 고층 건물로만 가득했던 사람들로만 가득했던 공간에서 벗어나 현지 사람들이 있는 주택가 골목길을 걸어다니니 마치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느낌이라 여겨진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많아 봐와서 아주 익숙한 형태의 맨션이나 단독주택이 있고, 맛있는 냄새가 풍겨오는 빵집이 보이고, 목욕탕 같은 건물도 있고, 이발소라 여겨지는 곳도 있고, 심지어 한국어 간판이 걸린 음식점이 있고, 모든 것이 새롭고 관심을 일으킨다. 여기네 사람들의 삶도 내가 사는 곳의 삶과 큰 차이는 없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유명한 것은 하나도 없지만 내가 살고 있는 동네 같은, 정말 평범한 동네라서 나와 같은 낯선 이방인에게는 일상적인 모든 것들이 흥미를 자극한다. 

 

유독 놀라운 것은 생각 이상으로 동네가 깨끗하고, 조용하다는 것이다. 역주변 번화가(그래봤자 버스 정류장, 마트가 있는 정도)를 제외하고 기괴할 정도로 소음이라 여겨지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일본도 우리나라 같이 배달이 활성화 되어 있지만, 오토바이가 아닌 자전거로 기반의 배달이 이루어지니 원천적으로 소음 발생을 차단한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와 일본의 상황이 다르겠지만, 오토바이 배달 행태를 보면 개선해야 할 것들이 한두가지가 아니다고 생각한다. 신호위반은 기본, 교통질서 위반, 불법 주정차, 무면허 운전 등 온갖 요소들이 신경 노이로제의 원인이다. 이러한 것들은 강력한 규제와 처벌이 이뤄져야 무서움을 알고 안할텐데 온정주의가 모든 것을 망치는 듯한 느낌이다. 할말은 많지만 여기까지. 

 

 

 

주택가 골목길을 따라 조금만 더 걸으면 첫번째 성지순례 장소인 빵집이 나타난다. 이름은 '기무라야(木村屋)'. 주인공 무기(스다 마사키)와 키누(아리무라 카스미)가 연애를 시작하고 달달한 시절을 보내는 초반에 야키소바빵을 사러 들리는 빵집이다. 영화의 흥행으로 성지순례를 하러 오는 사람들이 빈번하다고 들었다. 오늘로써 나도 그 인원 중 한명이 된다. 

 

빵집은 영화에서 나온 것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촬영할 때와는 시간이 흘렀기에 세부적인 모습들은 살짝 변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영화에서의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 밖에서 사진을 찍은 후에 안으로 들어갔다. 늙으신 할머니 한 분만이 가게를 지키고 계시는데 느낌상으로는 저분이 빵집 주인이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마치 빵을 사러온 것처럼 어떤 빵을 살까 짧게 고민하다 고로케 3개를 계산하였다. 3개에 350엔. 이 정도 가격이면 너무나도 혜자다. 계산을 마칠 쯤, 조심스럽게 문의를 드린다. 

 

"すいません。 お店の写真とらせていただいてもよろしいでしょうか?

" 楽に撮ってください。"

 

 

 

▶ 영화 '빵집 장면'

 

빵을 팔지만, 빵집 같지 않은 느낌. 한쪽 벽에는 각종 그림 액자가 걸려 있고, 다른 한쪽에는 군것질용으로 보이는 과자와 음료가 있다. 아마, 엄마와 함께 오는 아이들 또는 초등학교 학생들을 위한 것 같다는 추측이 든다. 도심의 세련되고 깔끔한 느낌의 빵집과는 거리가 전혀 반대 분위기가 감도는, 지금은 거의 사라진 예전 우리네와 비슷한 평범한 빵집이다. 그래서일까. 더욱 정감이 간다. 계산대 옆에는 남녀 주연 배우 스다 마사키와 아리무라 카스미의 친필 사인이 영화 포스터와 함께 전시되어 있다. 영화에서 빵집이 등장한 시간은 고작 10초 내외였음에도 불구하고, 연애 초반의 산뜻한 느낌을 표현하였던 상징적인 장소였기에 배우들도 여기서 촬영이 즐거웠기에 이렇게 친필 사인까지 해주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좋아하는 영화의 장소에 올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데 친필 사인까지 보다니, 흥분의 도가니에서 쉽게 벗어날 수가 없었다. 

 

 

첫번째 성지순례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다시 치토세가라스마역으로 돌아와 케이오선을 타고 쵸후역으로 간다. 약속 시간까지는 약 1시간 30분 정도 남았으니, 계획대로 두번째와 세번째 성지순례를 충분히 마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나의 바램과는 달리, 쵸후역에 도착하니, 흐리기만 했던 구름은 어느새 폭우를 동반한 비 구름으로 바뀌어 있었다. 성지순례를 포기하고 카페에서 기다릴까도 생각했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안간다면 분명 후회할 것이라고 느껴 일단 가보기로 마음을 정했다. 도보로 약 15-20분 정도 걸리는 장소. 비만 안왔다면 걸어가면서 주변 구경도 하였을테지만, 이런 날씨에 걷는다는 것은 무리였기에 버스틀 타기로 했다.

 

아뿔싸, 비가 내리는 금요일 퇴근 시간이라 도로가 정체이다. 중심 도로까지 빠져나가는데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 아무래도 세번째 성지순례는 못갈 확률이 점차 높아지고만 있다. 6 정거장 뒤에 내려야 하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안내소리에만 집중한다. 물론 마음은 비를 원망하면서. 정류장에 도착해서 목적지까지 걷는다. 비가 내리는 것을 넘어서 퍼붓듯이 쏟아져 내린다. 하필 왜 비가 오는거야. 

 

퍼붓는 피를 뚫고 간신히 두번째 성지순례지인 오토자카 다리(御塔坂橋)에 도착했다. 이 곳에 와야했던 이유는 딱 하나, 영화에서 남녀 주인공의 첫 키스가 이루어진 장소이기 때문이다. 썸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두 남녀는 이곳 횡단보도에서 역사적인 첫 키스를 하고 사귀기로 하였다. 그렇다면 당연히 오지 않을 수 없지 않는가.

 

두 사람이 키스를 하였던 위치를 추정,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비 때문에 매우 불편하다. 일단 한 손에는 우산이, 다른 한 손에는 핸드폰이 있는데 바람이 불고 각도가 맞지 않는 등 사진 찍기가 영 쉽지 않다. 여차저차해서 사진을 찍긴 하였지만 흔들리거나 초점이 맞지 않는 등 제대로 된 것을 찾기가 어려웠다. 날씨 상태가 계속 안좋아져서 이대로는 세번째 성지순례 예정지인 남녀 주인공이 동거를 시작한 집이 있는 타마가와라 다리(多摩川原橋)는 눈물을 머금고 포기하기로 결심하고 다시 쵸후역으로 돌아간다. 

 

※ 그날 숙소로 돌아와 확인해보니 두 사람이 키스를 했던 곳은 오토자가 다리 남쪽 횡단보도였다. 북쪽 횡단보도에서 키스를 한 장소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남쪽 횡단보도와는 고작 50m 정도 차이였는데. 마지막까지 확인을 하지 않았던 나의 큰 실수다. 안타까울 따름이다. 하아. 

 

 

▶ 영화 '첫 키스 횡단보도 장면'

 

다시 쵸후역으로 돌아오니 5시 50분. 앨리샤가 퇴근을 하고 쵸후역으로 오고 있는데 시간이 조금 걸릴거 같다는 연락을 주어서 근처 New York이라 상호명이 있는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우산을 썼는데도 생각보다 비에 많이 젖어 추위를 느꼈는데 따뜻한 라떼를 마시니 몸이 살짝 녹는다. 핸드폰을 충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까. 앨리샤가 카페에 들어오는게 보인다. 지난 3월에는 신주쿠에서 만났는데, 그때 쵸후로 가겠다고 약속을 해서 이곳에서 만난다. 6개월만에 다시 만나는 소중한 인연. 

 

근처 이자카야로 이동, 쵸후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 너무나도 잘한 결정이었다고 앨리샤한테 말한다. 앨리샤도 쵸후 자랑을 하면서 이곳저곳에 볼거리들이 많이 있다고, 다음에도 꼭 오라고. 맥주 한잔을 곁을여 6개월단의 서로의 근황을 먼저 물어본다. 앨리샤는 여전히 옛 직장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하며 자신의 집에 초대를 할까 무척 고민을 했다고 한다. 자신이 요리를 잘 못하니 남편이 요리를 만드는 것도 고려했었다고. 서로의 이야기 이외에도 일본에 오기전부터 궁금했던 여러 이슈들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대학원 사람들의 최근 근황에 대해서도 공유하며 15년전의 추억에 잠겼다. 

 

만난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았는데 벌써 시간은 9시 30분. 작별을 고할 시간이다. 쵸후에 초대해줘서 고맙다고 앨리샤에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다음에도 쵸후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다. 앨리샤도 다음에는 더 좋은 장소를 구경시켜주겠다고 하며 와줘서 고맙다고 한다. 6개월만의 만남은 3시간으로 끝났지만, 좋은 인연을 먼 곳에서 다시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알찬 시간이었다. 

 

 

케이오선을 타고 다시 신주쿠역으로. 앨리샤를 만난 즐거움이 가득하였지만, 왠지 한편으로는 세번째 성지순례를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여전히 컸다. 이대로 돌아가기는 아쉬워, 후보로만 생각해둔 장소를 가보기로 결심했다. 신주쿠역과 가까운 메이다이메이역에서 내려, 성지순례 장소로 향한다. 막차를 타기 위해 남녀 주인공이 처음 만나는 장소인 열차역과 결국 막차를 놓쳐 24시간 카페로 향하면서 서로의 공통 취향을 발견한 굴다리다. 

 

▶ 영화: '서로의 공통 취향을 발견한 굴다리 장면'

 

 

 

▶ 영화: '막차를 타기 위해 메이다이메이역 앞에서 부딪혀 만나게 되는 두 사람 장면'

 

메이다이메이역은 메이지대학의 이즈미 캠퍼스가 근처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인지 비오는 금요일 늦은 밤인데도 불구하고 역은 매우 혼잡하다. 메이다이메이역의 일평균 이용객 수가 17만명 가까이 된다고 하는데 환승역인 것을 감안하여도 높은 수치다. 역시 대학생들의 영향력은 매우 크다. 역 근처 술집에도 사람들이 가득하다. 이대로 집에 가기 아쉬워하는 대학생들, 직장인들, 또는 일반인들인가 보다. 

 

 

성지순례를 마지고 10시가 넘어서야 숙소에 돌아왔다. 비만 내렸을 뿐인데 몇일간 고된 고생을 한 듯한 느낌이다. 그런데, 뭔가 이대로 씻고 잠들기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사람들과 시간을 함께 한 것은 좋았지만, 그 외의 것들은 비 때문에 제대로 즐기지 못한 느낌? 그래서 간단히 샤워만 하고 옷을 갈아입고 우연히 발견한 뮤직 바를 방문한다. 

 

일본은 건물 안 또는 상가 내부에 진주처럼 숨어있는 바가 꽤 많은데, 여기도 그렇다. 겉에서 보기에는 전혀 그렇지 않게 보이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면 세련된 음악과 무거운 온도감의 조명의 분위기로 둘러쌓인 스타일의 바가 있다. 어둑한 느낌이 딱 좋다. 테이블도 많지 않고 아늑한 공간에서 좋은 스피커로 좋은 음악과 한잔 즐기는 느낌이다. 

 

신주쿠에 있는 바 치고는 술 값이 싼 편이지만 커버차지가 별도로 700엔이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게 즐길 수 있는 가격이다. 한쪽 벽면에는 최근 핫한 음반들을 볼 수 있도록 전시해 두었다.  「First Love 初恋」 드라마로 다시 인기를 끌고 있는 우타다 히카루의 한정 LP도 눈에 보인다. 한국에서는 구하기가 어렵다는 히비키가 900엔으로 저렴하길래 주문했다. 그리고 오아시스의 Don't Look Back In Anger를 신청해서 감상한다. 

 

 

뮤직 바에서 나와 숙소로 바로 들어가기 싫어 호텔 주변을 한바퀴 천천히 걷는다. 떠오르는 생각은 역시 아쉬움. 비만 아니었다면 다 좋았을텐데. 그러면서 예전부터 스스로에게 물어보던 질문에 답을 찾은 느낌이 들었다. 결국,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를 만나느냐도 아닌, 무엇을 보느냐도 아닌, 날씨라는 것. 

 

 

비 안개로 뒤덮은 초록색의 도코모 타워만이 밤을 강하게 빛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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