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8월 31일: 도쿄 도착 및 요코하마에서 우타다 히카루 'Science Fiction' 공연 보기2
2. 9월 1일: 오전에 간토다이 이치 고교 탐방, 그리고 교토로 이동해 교토 국제 고교 방문
3. 9월 2일: 한신 고시엔 구장 관람 후 100주년 인증 후 간사이 공항으로 이동해 귀국

 

 

2박 3일의 여행 일정은 원래 이랬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고시엔 우승 고교 방문하기. 그래서 고시엔 준결승에서 교토 국제 고교와 간토다이 이치 고교를 응원했다. 순전히 학교 탐방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혹시나 아오모리 야마다 고교 또는 카미무라 가쿠엔 고교가 결승에 진출했다면 학교 방문은 불가능했었을 것이다. 아오모리 야마다 고교는 도호쿠 신칸센을 타고 가볼 생각을 했었겠지만, 카미무라 가쿠엔 고교는 망설임도 없이 포기했었을 것이다. 여튼 교토 국제 고교와 간토다이 이치 고교가 결승전에 진출했고 고시엔 구장 개장 100주년이라는 기념을 위해 2박 3일 동안 도쿄, 교토, 오사카를 전부 볼 수 있다는 희망에 가득차 있었다.

 

 

[고시엔 후기] 고시엔 우승 팀, 게이오 고교 탐방기.

2023.09.23 107년만에 고시엔 우승을 한 게이오 고교를 직접 방문했다. 고시엔을 보면서 언제쯤 우승 학교를 탐방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우연치 않게 가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게이오 고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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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 바램과는 달리, 출국 전부터 일본 주요 뉴스 헤드라인은 태풍 산산에 관한 내용으로 가득차 있었다. 태풍 산산이 오는 것은 이미 뉴스를 통해 알고 있었고, 내가 가는 시점에 상륙하는 것도 인지하고 있어 큰 동요는 하지 않았다. 올해 일본을 갔었을 때마다 비가 왔으니 이번에도 그정도 수준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일본 큐슈 지방에 상륙한 이후, 산산의 이동 속도는 느려졌고 엄청난 양의 비를 쏟아 부으면서 말 그대로 교통을 마비시켰다. 콘서트 3일전이였나? 이번 여행의 주된 목적이었던 우타다 히카루의 카나가와 콘서트도 태풍 상황에 따라 취소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공지도 있었으니 산산의 영향이 어떤지 감히 느낄 수 있었다. 혹시 교토를 못가는 건 아닌지라는 불안도 있었지만, 신칸센이라면 갈 수 있을거야라는 일말의 희망은 있었다. 

 

걱정한 것과는 달리 도쿄의 비는 생각보다 많이 내리지 않았다.우타다 히카루 콘서트도 정상적으로 진행 되었다. 이정도 비라면 내일 교토를 갈 수 있겠다는 내심 들었다. 콘서트를 가기전 보았던 뉴스로는 도카이도 신칸센은 여전히 미시마역 사이와 신오사카역 사이는 전면 운행 중단 중. 계획이 뒤틀어질거 같은 불안감이 생겼지만 비가 그다지 심하게 느껴지지 않아 내일은 괜찮겠지라고 콘서트에 같이 간 신이치상에게 말했더니, 신이치상은 절대 그렇지 않을거야라고 웃으면서 답해주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JR 도카이 홈페이지에 접속을 해서 신칸센 상황을 보니 어제처럼 신칸센 운휴라는 안내가 메인 페이지에 떠있었다. 설마 오늘도?라는 생각이 가득해서 아키하바라를 가면서 도쿄역을 지나가보았다. 아니나다를까, 홈페이지와 동일하게 '도카이도 신칸센 전면 중지'라는 안내가 전광판을 통해 계속 나오고 있었다. 그나마 어제보다 나은 건, 미시마역까지는 코다마 등급으로만 제한적으로 운행하고, 이후부터 나고야역까지는 운휴, 그리고 신오사카역까지는 코다마 등급만 평상시보다 감소하여 운행한다고 것이었다. 어떻게든 신칸센을 타야겠다고 줄 서 있는 일부 관광객들을 제외하고 신칸센 출입구는 말 그대로 한산 그 자체였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아쉬움이 가득한 탄식이 나왔다. 호쿠리쿠 신칸센을 타고 이동하는 방법도 고려해보았지만, 일정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했기에 결국 교토 국제 고교와 한신 고시엔 구장 방문은 포기하였다. 

 

숙소에 짐을 두고 아키하바라에 도착하니 잠시 그쳤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차라리 여름 장마처럼 확 쏟아지면 좋을텐데 그렇지 않으니 불쾌지수만 높아진다. 간토다이 이치 고교가 있는 신코이와역까지는 6정거장. 그리 멀지 않지만 더위와 습도 그리고 피로 때문에 움직이는게 귀찮아지고, 이런 날씨에 정말 가야하나라는 생각만 가득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교토 국제 고교를 못가니 간토다이 이치 고교는 꼭 가야지라는 마음으로 움직였다.

 

신코이와역에서 내려 개찰구를 통과하니 간토다이 이치 고교의 준우승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붙여져 있었다. 고시엔이 끝난지 2주 정도 지났지만, 아직도 축하하는 모습을 보니 좋아보였다. 학교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든 없든,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학교가 전국 대회에서 달성한 대단한 업적을 함께 기뻐한다는 것에 좋다고 느껴졌다. 매일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일상으로 느껴지겠지만 나에게는 흥미로우면서 관심있는 모습으로 비쳐졌다.  

 

간토다이 이치 고교는 신코이와 역에서 도보로 약 10-15분 거리로 나온다. 남쪽 출구로 나오니 '신코이와 뤼미에르 상점 거리'가 정면에 보였다. 신주쿠구, 시부야구 등 상업 지구와는 다르게 전형적인 거주 지역이기 때문에 이곳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현지 주민들이었다.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여행의 묘미는 시장 구경인 듯 싶다. 내가 사는 문화권과 다른 배경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일상을 보낼까를 상상한다면 시장에서 그 정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작년 게이오 기주쿠 고교를 방문했었을 때도 히요시 상점 거리가 독특하게 보여졌고 올해는 이곳이 그렇게 감상이 되어진다. 관광객이 아닌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하기에 물건은 새롭거나 다채롭지 않지만 오래된 투박함이 좋게만 보였다. 9월이 막 시작했지만 벌써부터 할로윈 용품들을 판매하는 것을 보니 이제 곧 가을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더 걸어가니 저 멀리 커다한 현수막이 자랑스럽게 걸려져 있는게 눈에 보였다. 

 

『제 106회 전국고등학교야구선수권대회 

 준우승 간토다이 이치 고교

주최 / 아사히신문사 · 일본고교야구연맹』

 

 

준우승이어도 이렇게 기뻐하고 좋아하는데, 만약 우승이었다면 얼마나 더 자랑스러워 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매일 이곳을 거쳐가는 간토다이 이치 고교 학생들을 비롯해서 학부모들, 학교 관계자들이 이렇게 상점회에서 현수막을 걸어준 것만으로도 엄청난 자부심이 생기지 않았을까 느껴졌다. 현수막뿐이 아니었다. 동도쿄 대표로 고시엔 본선 출장을 축하하는 포스터도 여전히 여러 가게에 붙어 있다보니 새삼 고시엔이라는 

 

'신코이와 뤼미에르 상점 거리'를 벗어나 주택가로 들어섰다. 구글맵 기준으로 5분만 걸어가면 간토다이 이치 고교가 나온다. 일본 주택가를 거닐때마다 항상 느끼지만 정말 조용하다. 지난번 앨리샤가 살고 있는 초후를 갔었을 때도 느꼈던 것과 비슷한 분위기를 경험한다. 역 주변을 제외하고는 사람이 다니는 것을 보기가 힘드니, 조용함을 넘어 쓸쓸함이 들 정도이다. 내가 걷는 소리조차도 민폐가 될 것 같다는 생각도 스쳤다. 그럼에도 곳곳에 보이는 작은 가게 등에서는 아직까지도 간토다이 이치 고교의 고시엔 본선 출장을 축하하는 포스터 등이 붙여져 있어 쉽게 눈에 띄었다. 확실컨데 간토다이 이치 고교 재학생들이 자주 오거나, 재학생 부모 또는 졸업생이 운영하고 있거나, 순수하게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학교이니 응원하고 싶어 붙여 놓았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잠시 걸으니 간토다이 이치 고교의 모습이 나타났다. 1925년 설립된 간토다이 이치 고교의 시작은 실업 고교였다. 상업과 계열로 학생 모집을 하고 이후 전기과, 기계과, 건축과, 공업과 계열이 추가되며 규모를 점차 확장하였다. 하지만 1973년부터 일반 학교로의 전환을 모색하였고 동시에 실업 계열 학과의 모집을 차레로 중단하였다. 그리고 2012년에 공업과 계열 모집 중단을 끝으로 일반 고교로의 전환을 완료하였다. 올해는 남녀 공학이 된지 20주년이 된 해이며, 2025년 4월에는 학교 설립 100주년이 되기에 올해 고시엔에서는 다른 학교보다 남다른 목표가 있었을 것이다.

 

간토다이 이치 고교 야구부는 이곳 도쿄에 위치하고 있지 않다. 차를 타고 약 40분 거리에 있는 치바현 시로이시에 야구부 전용 기숙사와 인조잔디 구장 1개, 일반 구장 1개가 있다. 간토다이 이치 고교처럼 인구 밀도가 매우 높은 대도시권에 위치한 학교의 야구부는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학교와 멀리 떨어져 있다. 도심에 야구부 전용 훈련 부지를 구하고 시설을 투자하는 것에 막대한 비용이 투입될 뿐더러, 늦은 시간까지 훈련을 하는 야구부 특성상 환경적으로도 제한적이기에 이와 같은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간토다이 이치 고교가 설립된 1925년 사진을 보면 학교 주변은 이미 현재와 같이 일반 거주지로 가득채워져 있었다. 따라서 게이오 기주쿠 고교처럼 학교 내에 야구부 훈련 그라운드가 있는 것은 매우 특별하다고 볼 수 있다. 

 

학교 정문은 현재 주차장 공사로 인해 접근 불가. 아무래도 후문으로 가면 학교를 더 자세히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5분 정도 걸었다. 작년 게이오 기주쿠 고교 탐방을 시작으로 이렇게 고시엔에서 우승 또는 준우승하는 학교를 탐방하는 것도 점차 재미가 생긴다. 더불어 관광객으로서 전혀 가볼 수 없는 지역을 구경하는 즐거움도 있으니 내년에는 8강 이상 진출 고교 방문이라는 컨텐츠도 심각하게 고려해봐야겠다. 

 

후문에 도달하니 고시엔 준우승 기념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2015년에 4강에서 아쉽게 탈락했지만 9년이 지난 올해는 준우승을 했으니-그것도 1점차로 아쉽게-당연히 학교로서는 경사를 축하하지 아니할 수 없었을 것이다. 교내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사전 허가를 받지도 않은 전혀 관계없는 일반인이었기에 학교 밖에만 머물렀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후문 경비실의 나이 드신 경비원에게 "고시엔 준우승 축하한다. 준우승이라 아쉽다"라고 말했더니 "감사합니다"라고 웃으면서 대답을 해주셨다.  

 

 

[대회 14일차] 결승 - 68년만에 천년수도로 돌아온 진홍의 대우승기

三振!!史上初、 決勝戦の延長タイブレークを制しました。甲子園 100年の夏、京都国際 初優勝!! 求心に残るダブルエースを擁し、高校野球の原点に立ち返る野球で栄冠を手にしま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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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막을 자세히 보니 '우승'라고 급히 붙힌 흔적이 보였다. 고시엔 우승을 예상하고 현수막을 만들었다가 준우승이 되다보니 급하게 '준'이라는 단어를 작게라도 붙여서 (크게는 못하고) 축하고 싶었던 마음이었나보다. 결승 경기가 한쪽의 우위가 아닌 연장까지 가며 1점차 승부로 끝났을 정도로 치열한 접전이었으니 학교측도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결과로 인해 급작스럽게 취한 조치로 보여서 그런지 더욱 준우승이 더욱 안타깝게만 느껴졌다. 

 

먹구름으로 가득했던 하늘이 갑자기 비구름으로 확연하게 바뀌는게 보여 학교 구경은 여기서 마무리하였다. 계획대로였다면 오전에 이곳을 보고 교토로 갔었을텐데 그러지 못한게 많은 아쉬움이 들었다. 날씨만 괜찮았다면, 아니 태풍만 아니었다면 어떻게든 교토 국제 고교를 갔었을텐데. 통제 불가능한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서는 뛰어난 인간의 기술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진리를 다시 한번 느꼈다. 그래도 준우승한 간토다이 이치 고교를 방문한 것만으로도 좋았다. 올해 멋진 경기를 선보인 간토다이 이치 고교 야구부 선수들에게 마음속으로 고생했다라는 생각을 남기며 올해 고시엔 준우승 고교 방문을 끝냈다.

 

三振!!史上初、 決勝戦の延長タイブレークを制しました。甲子園 100年の夏、京都国際 初優勝!! 求心に残るダブルエースを擁し、高校野球の原点に立ち返る野球で栄冠を手にしました。
삼진!! 역사상 최초로, 결승전 연장 타이브레이크를 제압하였습니다. 고시엔 구장 100년의 여름에, 교토 국제 국제 고교가 첫 우승을 하였습니다. 가운데에 새긴 더블 에이스를 품고, 고교야구의 원점으로 다시 돌아온 야구로 우승을 손에 쥐었습니다. 

    - 니시무라 잇키가 헛스윙으로 마지막 타자의 삼진을 잡는 순간, 캐스터의 우승콜 
 
 

"68년". 교토부 대표 고교가 천년수도 교토에 '진홍의 대우승기'를 다시 가져오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제 38회 대회였던 1956년, 류쿄헤이안 대학 부속 고교가 우승한 이래 반세기가 넘어서야 교토 국제 고교가 고시엔에서 최초로 우승하였다. 승리가 더욱 뜻깊었던 이유는 고시엔 역사를 통틀어 사상 최초로 한국계 학교가 정상에 등극하였기 때문이다. 야구부가 창립된 1999년, 제 81회 대회 교토부 지역 대회에 출전했던 1회전에 탈락한 미미한 실력의 학교가 2024년 제 106회 대회에서 3,715개 고교의 경쟁을 뚫고 일본 제일이 되었다. 

[1999년 야구부 창립 후, 처음 출전한 고시엔 교토부 대회 예선]
[2024년 사상 최초로 고시엔 우승]

 
 


 
 
1. 경기 결과: 교토 국제 고교 (우승)

학교명 1 2 3 4 5 6 7 8 9  10 R H E
교토 국제 고교 (교토) 0 0 0 0 0 0 0 0 0 2 2 9 2
간토다이 이치 고교 (동도쿄) 0 0 0 0 0 0 0 0 0 1 1 4 0

 

 
2. 경기 내용
 교토 국제 고교 

교토부의 여름 고시엔 결승 기록
연도 (대회) 학교명 스코어 상대교 결과
1915년 (제1회) 교토부립 제2 중학교 2-1 아키타 중학교 우승
1921년 (제7회) 교토부립 제1 상업중학교 4-16 와카야마 중학교 준우승
1928년 (제14회) 헤이안 중학교 1-3 마츠쇼 중학교 준우승
1933년 (제19회) 헤이안 중학교 1-2 추코 상업 학교 준우승
1936년 (제22회) 헤이안 중학교 1-9 기후시립 상업 학교 준우승
1938년 (제24회) 헤이안 중학교 2-1 기후 시립 상업 학교 우승
1946년 (제28회) 교토부립 제2 중학교 0-2 나니카 상업 학교 준우승
1951년 (제33회) 류코헤이안 대학 부속 고교 7-4 쿠마가야 고교 우승
1956년 (제38회) 류코헤이안 대학 부속 고교 3-2 기후 시립 상업 고교 우승
1981년 (제63회) 교토 상업 고교 0-2 호토쿠 가쿠엔 고교 준우승
1997년 (제 79회) 류코헤이안 대학 부속 고교 3-6 치벤 가쿠엔 와카야마 고교 준우승
1998년 (제80회) 교토 세이쇼 고교 0-3 요코하마 고교 준우승
2005년 (제87회) 교토 외대 니시 고교 3-5 토마코마이 고교 준우승
2024년 (제106회)  교토 국제 고교 2-1 간토다이 이치 고교 우승

 

- 결승전의 수훈 선수를 뽑자면 당연히 나의 원픽은 나카자키 루이(中崎琉生, 3학년). 9이닝 동안 104개의 공으로 간토다이 이치 고교 타선을 피안타 4개, 탈삼진 5개, 무실점으로 깔끔하게 막아내며 에이스로서 진면목을 여실히 보여줬다. 9회말 만루 상황 이전까지는 어떤 주자도 2루 이상 진루를 허용하지 않는 안정된 피칭으로 프로에서 주목하고 있는 투수라는 것을 각인시켰다. 허용한 4개 안타 중 단 하나만이 외야로 나갔을 뿐, 나머지는 내야 안타 등으로 높은 제구력을 보여주었다. 니시단 고교와의 3회전에 선발로 등판하여 활약을 펼칠 때, 이를 지켜본 현 닛폰햄 감독이자 니시단 고교 OB였던 '신조 츠요시'는 나카자키 루이를 극찬하였다. 좌타자를 변화구로 공략하는 방법이나, 극도의 긴장이 넘치고 있음에도 전혀 떨리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칭찬하였다. 그러한 모습을 다시 결승전에서 보여주었다. 

 

나카자키 루이가 교토 국제 고교로 진학한 배경에는 2021년 교토 국제 고교를 4강으로 이끈, 당시 에이스였던 모리시타 류다이(현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투수)의 영향이 컸다. 당시 1학년이었던 나카자키 루이는 팔꿈치 부상으로 피칭 연습을 하지 못하지만 회복 훈련을 하며 묵묵히 팀을 이끄는 선배의 등을 바라보며 에이스로서의 자격이 무엇인지를 배웠다. 그리고 1년 뒤에 야구부에 입부한 니시무라 잇키(西村一機, 2학년)도 모리시타 류다이를 동경한 수많은 사람들 중 한명이었다. 입부 후에는 니시무라 잇키는 모리시타 류다이의 등이 아닌 나카자키 루이가 팀을 하나로 만드는 뒷 모습을 보며 스스로 성장했다고, 그의 존재에 감사를 항상 말하고 다녔다. 그렇게 두명의 에이스가 있는 팀은 서로 경쟁하며 함께 성장해왔다. 

 
정규 이닝이 끝나고 2006년 이래 사상 두번째이자 2018년 연장 타이브레이크가 적용된 첫 결승 연장. 10회초 교토 국제 고교의 공격. 첫 타자 니시무라 잇키가 우전 안타를 치며 무사 주자 만루가 되었다. 다음 타석에는 리드오프 카네모토 유고(金本祐伍, 3학년)가 들어섰다. 유일한 한국계이자, 주전 멤버 중 교토부 출신 5명 중 한명이자, 이번 대회 0.360 타율을 기록 중에 있어 그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풀카운트 접전 끝에 6구째 공이 낮게 들어오며 볼로 판정되는 순간, 카네모토 유고는 힘껏 손을 쥐며 환호하며 1루로 출루하였고 3루 주자는 웃음을 지으며 홈으로 들어왔다. 전광판에 길게 늘어져 있던 0의 행진이 1로 바뀌며 경기는 교토 국제 고교의 분위기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공격에서 미타니 세이야(三谷誠弥, 3학년)가 타석에 올라왔다. 중학교 3학년때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며 야구를 놓을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너라면 할 수 있다'라고 항상 말해준 아버지의 말을 기억하며, 아들이 고시엔에 출장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아버지의 꿈을 이뤄주고 싶었다. 그리고 우익수 깊이 날아가는 희생 플라이로 승부를 결정 짓는 1점을 추가로 만들어냈다. 

 

 
교토 국제 고교의 10회말 수비가 시작되었다. 9이닝을 책임졌던 나카자키 루이 대신 니시무라 잇키가 구원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수비 실책으로 무사 만루 상황이 되었고, 니시무라는 다음 타자를 땅볼로 유도해 아웃을 잡았지만, 3루 주자가 홈을 밟아 1점을 내주었다. 이로 인해 니시무라의 23이닝 연속 무실점 기록이 깨졌으나, 그는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1점 차로 쫓기는 상황에서, 여전히 1사 1, 3루였기 때문에 추가 실점 방지에 집중했다. 간토다이 이치 고교의 1번 타자에게 연속 4개의 볼을 허용해 다시 만루 상황이 되었고, 이어 2번 타자의 땅볼이 2루수 미타니 세이야 앞으로 향했다. 미타니는 공을 잡자마자 홈으로 송구했고, 포수 오쿠이 소다이(奥井颯大, 3학년) 는 홈으로 파고드는 3루 주자를 태그 아웃시키며 추가 실점을 막았다. 하지만 여전히 만루였고, 이제 우승까지 아웃 카운트 하나만 남은 상황. 니시무라는 간토다이 이치 고교의 3번 타자 사카모토 신타로(坂本慎太郎, 2학년)를 상대하게 되었다. 첫 번째 공은 스트라이크, 두 번째는 볼, 세 번째도 스트라이크. 그리고 마지막 4구째, 직구가 아닌 슬라이더를 바깥쪽 코스로 던졌다. 타자는 충분히 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배트를 휘둘렀지만, 공은 포수 미트에 빨려 들어갔다. 헛스윙 삼진, 쓰리아웃.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 니시무라 잇키는 양손을 번쩍 들었고, 모든 선수들이 마운드로 뛰어나와 사상 최초고시엔 우승이라는 기쁨과 즐거움을 만끽하였다. 

 
1915년 교토부 제2중학교(현 토바 고등학교)가 고시엔 첫 우승(당시 명칭 전국중등학교선수권대회)을 기록하고, 1924년 히로시마 상업 고교가 고시엔 구장에서 첫 우승을 달성한 이래 총 63개 학교가 고시엔에서 첫 우승을 하였다. 그러한 역사의 순간에 교토 국제 고교가 사상 64번째로 고시엔의 첫 우승 학교가 되어 100주년을 맞이한 고시엔 구장에서 새로운 궤적을 만드는 페이지에 가장 처음으로 이름을 새겼다. 
 
[교토 국제 고교 선수별 고시엔 성적] 

투수

투수명 ERA 이닝 투구수 피안타 탈삼진 자책  WHIP
나카자키 루이 1.45 31 441 26 33 5 1.03
니시무라 잇키 0.00 24 339 11 14 0 0.92

 
타자 

등번호 타자명 타율 타수 안타 타점 출루율 장타율 OPS
1 나카자키 루이 0.308 13 4 0 0.308 0.308 0.616
 2 오쿠이 소다이 0.294 26 5 2 0.429 0.412 0.841
 3 타카기시 에이타로 0.188 18 3 1 0.278 0.188 0.466
 4 미쿠니 세이야 0.360 29 9 1 0.393 0.360 0.753
 5 시미즈 우타 0.208 26 5 1 0.208 0.208 0.416
 6 후지모토 하루키 0.391 27 9 4 0.440 0.565 1.005
 7 카네모토 유고 0.360 29 9 4 0.429 0.440 0.869
 8 사와다 하루토 0.375 27 9 1 0.423 0.375 0.789
 9 하세가와 하야테 0.400 26 8 4 0.455 0.450 0.905
 11 니시무라 잇키 0.571 10 4 2 0.571 0.714 1.285
13 핫토리 후우마 0.100 10 1 2 0.100 0.100 0.200

 

 

간토다이 이치 고교

도쿄의 여름 고시엔 결승 기록
연도 (대회) 학교명 스코어 상대교 결과
1916년 (제2회) 게이오 보통 중학교 6-2 오사카 이치오카 중학교 우승
1920년 (제6회) 게이오 보통 중학교 0-17 칸세이 가쿠인 중학교 준우승
1925년 (제11회 와세다 실업 고교 3-5 타카마츠 상업 학교 준우승
1976년 (제58회) 오르베린 고교 4-3 PL 가쿠엔 고교 우승
1980년 (제62회) 와세다 실업 고교 4-6 요코하마 고교 준우승
1989년 (제71회) 테이쿄 고교 2-0 센다이 이쿠에이 고교 우승
1995년 (제77회) 테이쿄 고교 3-1 세이료 고교 우승
2001년 (제83회) 니치다이산 고교 5-2 오미 고교 우승
2006년 (제88회) 와세다 실업 고교 4-3 토마코마이 고교 우승
2011년 (제93회) 니치다이산 고교 11-0 세이코 가쿠인 고교 우승
2024년 (제106회) 간토다이 이치 고교 1-2 교토 국제 고교 준우승

 

- '안타가 적더라도 수비로 지켜내 결승까지 올수 있었다'고 말하는 간토다이 이치 고교의 주장 타카하시 텟페이(高橋徹平, 3학년). 여름 지역 대회 이전까지는 수비에서 많은 실책을 범하면서 이길 수 있었던 시합을 패배한 적이 많았다. 그래서 선수들은 더욱 공격적인 모드로 수비 훈련을 하였다. 철저한 연습의 결과는 고시엔이라는 정상의 무대에서 결과로 나타났다. 고시엔에서 결승까지 포함한 5경기에서 기록한 실책은 단 3개밖에 되지 않았다. 자신들의 특기인 '공격의 수비'를 어김없이 발휘하며 마지막 이닝까지 단 하나의 실책도 없이 활약하였지만, 자신들의 고시엔 첫 우승이라는 목표는 후배들에게 맡기며 준우승에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간토다이 이치 고교는 하타카나 켄신(畠中鉄心, 3학년)을 선발로 출전시켰다. 하타카나 켄신은 초등학교 1학년부터 투수로만 활약했고 등번호는 항상 1번이었다. 에이스 번호를 과시하는 타입은 아니었으나 자신의 노력에 대한 증거였기에 언제나 자랑스러워했다. 빠른 구속의 소유자도 아니고 신장도 작았지만 제구력과 변화구가 매우 뛰어나 올해 센바츠까지는 등번호 1번을 달고 활약하였다. 하지만 같은 학년의 카이 하루(坂井 遼, 3학년)가 빠른 직구로 두각을 보여주기 시작하며 경기에 등판하는 일이 잦아졌다. 요네자와 타카미츠 감독은 거칠지만 빠른 볼 스피드를 지닌 사카이 하루의 폭발력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에이스 넘버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 결국 등번호 1번은 그에게 부여되었다. 사카이 하루에게는 여전히 높은 신뢰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하타카나 켄신에게는 복잡한 감정이 생겼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우선 순위는 팀이 우승하는 것이고, 내 목표는 팀의 전국 선수권 우승"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결승이라는 큰 무대에서 선발로 등판하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거기에 신중한 투구로 교토 국제 고교의 타선을 6이닝 동안 74개의 공으로 피안타 6개 무실점으로 막으며 자신의 고교 마지막 여름을 빛나게 마무리하였다.

 
1점 뒤진 10회말 간토다이 이치 고교의 마지막 공격. 사카모토 신타로(坂本慎太郎, 2학년)가 들어섰다. 초등학교 4학년때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꼭 고시엔 우승이라는 선물을 해주고 싶다는 각오로 가득차있었다. 2아웃 주자 만루였기에 안타든 볼넷이든 출루에만 성공한다면 승부를 다시 원점으로 돌릴 수 있는 기회였다. 어쩌면 역전 사요나라 우승도 바라볼 수 있었다. 교토 국제 고교의 투수는 구원으로 등판한 니시무라 잇키. 이날 따라 니시무라 잇키는 자신이 가장 잘 던지는 체인지업의 제구가 쉽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따라서 직구보다는 변화구에 대응하는게 더욱 유리할 것이라 사카모토 신타로는 생각했다. 
 
1구는 바깥쪽으로 빠지는 직구로 스트라이크, 2구는 체인지업으로 볼, 3구는 다시 바깥쪽으로 빠지는 스트라이크가 되며 볼카운트는 1볼2스트라이크로 사카모토 신타로가 코너에 몰리게 되었다. 어떻게든 배트에 공을 맞춰야겠다고 각오를 하였다. 그리고 4번째 공이 스트라이크 존을 향해 들어오다가 바깥으로 빠지는 궤적을 그렸고, 사카모토 신타로는 강한 스윙을 하였으나 공은 포수 미트에 잡히며 헛스윙 삼진이 되었다. 고시엔 구장이 환호로 뒤덮이는 순간, 교토 국제 고교 선수들이 마운드로 뛰쳐나오는 그때, 사카모토 신타로는 고개를 끝까지 들지 못하고 비통한 눈물만을 흘렸다. 

 

간토다이 이치 고교는 사상 최초 고시엔 우승을 달성하는데 실패하였다. 1987년 센바츠에서 처음으로 결승에 진출하였지만 준우승에 그치며 '자감의 대우승기(紫紺の大優勝旗)'를 가져오지 못했다. 그리고 2011년 고시엔에서 니시다이산 고교가 도쿄도 대표로 우승한 이래 13년만에 다시 '동쪽의 수도'에 '진홍의 대우승기'를 손에 넣고자 하였지만 교토 국제 고교에 막혔다. 동도쿄 대표로만 한정하면 1995년 테이쿄 고교가 우승한 것이 마지막이었으니 아쉬움은 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시엔에서의 자신들의 최고 기록을 기존의 4강에서 준우승으로 새로 만들었으니 어쩌면 뜻깊었던 대회로 느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비롯 일본 제일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자신들의 바램을 다음의 야구 소년들이 이뤄주기를 바라며 간토다이 이치 고교는 뜨거운 추억만을 간직하며 100년의 성지에서 여름을 마무리하였다. 

 

[간토다이 이치 고교 선수별 고시엔 성적] 

● 투수

투수명 ERA 이닝 투구수 피안타 탈삼진 자책  WHIP
사카이 하루 0.00 18⅔ 255 12 16 0 0.80
하타나카 켄신 1.40 19⅓ 266 19 11 3 1.14
오고 타케루 1.50 6 88 5 0 1 1.00
사카모토 신타로 0.00 2 41 1 2 0 2.00

 

 타자 

등번호 타자명 타율 타수 안타 타점 출루율 장타율 OPS
1 사카이 하루 0.400 8 2 0 0.500 0.400 0.900
2 쿠마가이 슌스케 0.333 19 6 2 0.333 0.389 0.722
3 에치고 슌스케 0.533 20 8 1 0.611 0.600 1.211
4 코지마 소오 0.118 20 2 2 0.118 0.176 0.294
5 타카하시 텟페이 0.167 21 3 1 0.286 0.333 0.619
6 이치카와 아유 0.118 19 2 1 0.118 0.118 0.236
7 사카모토 신타로 0.176 22 3 1 0.250 0.235 0.485
8 히다 유고 0.200 23 4 1 0.273 0.200 0.473
9 나루이 사토시 0.250 21 4 2 0.316 0.250 0.566
10 하타나카 켄신 0.000 5 0 0 0.400 0.000 0.400
11 오고 타케루 0.000 1 0 0 0.000 0.000 0.000
12 호리에 타이키 0.000 2 0 1 0.000 0.000 0.000
13 타키카와 유이토 0.500 2 1 0 0.500 1.000 1.500

 

 


 
 


 
 

 
교토 국제 고교의 고시엔 첫 우승을 끝으로 14일간의 치열했던 제106회 고시엔이 마무리가 되었다. 고시엔을 보아온지 이제 어느덧 9년째인데, 이번만큼 경기 리뷰를 제시간에 하지 못하였다. 매경기를 시청하였지만, 회사에서 중요한 업무가 겹치면서 데드라인을 지키기 위해 집에서도 업무를 계속 하고, 작년과는 다르게 보다 작성하는 내용(예: 지역 대회 리뷰, 학교별 본선 프리뷰 등)이 많아지며 그만큼 할애하는 시간이 많아지다보니 이러한 사정이 생기게 되었다. 고시엔이 끝난지 한달만에 결승 리뷰를 한다는거 자체가 스스로에게 매우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게임 출시 준비를 본격적으로 하는 내년에는 경기 시청이 가능할까라는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과 비교하여 다양한 정보와 데이터를 찾고 정리하여 기록으로 남길 수 있어서 자랑스럽다는 생각도 함께 한다. 2015년에 처음 고시엔을 보면서 페이스북에 기록을 남겼지만, 블로그로 이전한 작년부터 경기 리뷰 등 내용이 풍부해졌다고 느낀다. 

[넷토고시엔 106회 고시엔 엔딩 테마 'ずっと好きだから’]

 

앞으로 남은 일을 간략히 정리해보면, 아직 경기 사진들을 올리지 못한 일부 포스팅을 수정하고, 간토다이 이치 고교 방문 후기를 작성하고, 제 106회 고시엔 뒷 이야기 (학교별 및 선수별)와 각종 기록들을 정리하고, 교토 국제 고교 우승 관련된 개인적인 내용을 포스팅하는 것으로 올해 고시엔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11월에 어쩌면 교토와 오사카를 가게 된다면 그때 교토 국제 고교와 고시엔 구장 방문 후기 어쩌면 작성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106회 고시엔에 작별을 고해야지. 

 

1. 경기 결과: 교토 국제 고교 승리 (결승 진출)

학교명 1 2 3 4 5 6 7 8 9 R H E
교토 국제 고교 (교토) 0 0 0 0 0 3 0 0 0 3 6 1
아오모리 야마다 고교 (아오모리현) 2 0 0 0 0 0 0 0 X 2 5 0

 

 

2. 경기 내용

교토 국제 고교 

- 야구부원: 61명

- 출신 유명 야구선수: 나카가와 하야토(한신 타이거스), 모리시타 류다이(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신성현, 황목치승 등


교토 국제 고교 (교토)




▽ 1회전: 7-3 vs. 삿포로 니치다이 고교 (남홋카이도) 

▽ 2회전: 4-0 vs. 니가타 산업 대한 부속 고교 (니가타현) 

▽ 3회전: 2-1 vs. 니시단 고교 (후쿠오카현)

▽ 8강전: 4-0 vs. 치벤 가쿠엔 고교 (나라현)

 

학교 창립일 야구부 창립 첫 출장 출전 횟수 준우승 횟수 우승 횟수 통산 전적
1947년 1999년 2021년 3회 0 0 7승 2패

 

- 에이스 나카자키 루이(中崎琉生, 3학년)는 준결승전을 앞둔 하루 전, 지난 3월의 일을 떠올렸다. 센바츠 1회전에서 9이닝 끝내기 패배를 아오모리 야마다 고교에게 당했는데 다시 승부처에서 만나게 되었다. 자신들에게 패배를 안긴 상대를 그것도 결승 티켓을 놓고 격돌하는 것이기에 더욱 신경이 쓰였다. 그러면서 "한 번 패한 상대에게 또 한번 지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센바츠까지는 주장을 맡고 있었지만 투구에만 집중하라는 노리츠구 코마키 감독이 감독의 지시로 캡틴이라는 자리를 후지모토 하루키(藤本陽毅, 3학년)에게 넘겼다. 그는 "주장으로서 부담은 내려 놓았다. 하지만 에이스로서 마운드에 있는 한 책임감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투지를 불태웠다.

 

1회말 아오모리 야마다 고교의 공격. 몸이 덜 풀린 것인지 나카자키 루이의 공은 강력하지 않았다. 아오모리 야마다 고교는 2개의 볼넷, 안타, 희생플라이를 몰아치는 집중력을 선보이며 2점을 내며 달아났다. 센바츠의 나이트메어가 재현되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카자키 루이는 다시 마음을 가담고 2회부터는 전력 투구를 펼치기 시작했다. 비록 2실점을 하였지만 4회까지 피안타 3개, 탈삼진 2개로 에이스로서 역할을 다했다. 그리고 어쩌면 자신보다 뛰어난 에이스라 할 수 있는 후배 니시무라 잇키(西村一毅, 2학년) 에게 마운드를 넘기고 벤치로 돌아왔다. 

 

2점차를 뒤진 6회초. 미타니 세이야(三谷誠弥, 3학년), 사와다 하루토(沢田遥斗, 3학년)의 연속 안타와 후지모토 하루키의 볼넷이 이어지며 1사 만루 기회를 만들었다. 타석에는 우익수 하세가와 하야테(長谷川 颯, 2학년). 가운데로 들어오는 상대 투수의 2번째 공을 힘껏쳤다. 배트에 맞은 공은 우익수 쪽을 향해 멀리 날아갔고, 그 사이 2루와 3루에 있던 주자가 전력질주하며 홈에 들어왔다. 그토록 바랬던 동점이었다. 흥분이 가시지 않는 상황에서 핫토리 후마(服部颯舞, 3학년)이 타석에 들어섰다. 망설임도 없이 초구를 쳤지만 내야 땅볼이 되었다. 하지만 3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오는 속도가 더 빨랐고 타자 주자는 아웃이 되었지만 득점에는 성공하며 3대2로 역전하는데 성공하였다. 이제 모든 것은 니시무라 잇키에게 맡겨졌다. 결승에 진출하겠다는 간절함이 아오모리 야마다 고교의 그것보다 컸을까. 6회부터 9회까지 4이닝 동안 볼넷으로 타자를 출루시킨 것 이외에는 단 한개의 안타도 내주지 않았다. 마지막 타자를 2루수 앞 땅볼로 잡아내며 3아웃을 만드는 순간, 교토 국제 고교 선수들은 모두 환호하며 벤치에서 뛰어나왔다. 3년전 선배들이 만들었던 4강이라는 기록을 뛰어넘어 사상 최초로 결승에 진출하는 의미스러운 성과를 만들었다. 

 

주장 후지모토 하루키는 자신들보다 체격에서 뛰어난 아오모리 야마다 고교 선수들을 의식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힘으로는 자신들이 뒤지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있었다. 교토 국제 고교 선수 중 체중이 75kg 이상인 선수가 1명 밖에 없는 반면, 아오모리 야마다 고교 선수 중 75kg를 넘는 선수는 3명 이상이 있었다. 교토 국제 고교 나인의 평균 신장은 172.7cm, 평균 체중은 71.9kg로 숫자상으로도 결코 몸집이 큰 팀이 아니었다. 신체적으로 불리함을 알고 있기에, 상대를 의식하면 아무것도 소용없다는 것은 당연하였다. 오히려 자신들만의 야구를 철저히 하자고 마음을 굳혔다. 그래서 장타로 위기를 타개하는 것이 아닌, 끈질기게 상대를 몰아붙이는 자신들만의 야구를 하였다. 그래서 이날 만든 6개의 안타 모두는 단타였다. 상대방이 예측하지 못한 곳으로 안타를 만든다거나 낮고 강한 타구를 날리는 연습을 중시해온 결과였다. 

 

경기가 끝난 후, 노리츠구 코마키 감독은 승리에 대해 "2점을 뒤지고 있어 역시 여기까지인가라는 분위기가 벤치에 감돌고 있었지만, 상대 투수 교체 시점에 턴어라운드가 되었다. 6회에 만들어진 찬스를 선수들이 노력해서 결과로 만들어서 대단하면서 감동하며 지켜보았다"고 표현하였다. 나아가 결승이라는 무대에 대해서는 "확실히 당당히 싸워 새로운 결과를 만들고 싶다"고 각오를 내비쳤다. 교토 국제 고교의 나인이 만든 결승이라는 무대가 이제 빛을 발할 시간이다. 

- 주요 선수 성적 (투수)

투수명 ERA 이닝 투구수 피안타 탈삼진 자책  WHIP
나카자키 루이 4.50 4 55 3 2 2 1.25
니시무라 잇키 0.00 5 66 2 3 0 0.80

 

 

 아오모리 야마다 고교

- 야구부원: 86명

- 출신 유명 야구선수: 카와라다 쥰페이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호리오카 하야토(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키나미 세이야(한신 타이거즈) 등


아오모리 야마다 고교 (아오모리현)





▽ 2회전: 9-1 vs. 나가노 니치다이 고교 (나가노) 

▽ 3회전: 5-0 vs. 이시바시 고교 (토치기현)

▽ 8강전: 1-0 vs. 시가 가쿠인 고교 (시가현)

 

학교 창립일 야구부 창립 첫 출장 출전 횟수 준우승 횟수 우승 횟수 통산 전적
1918년 1954년 1993년 12회 0 0 15승 12패

 

- '진홍의 대우승기'까지는 단 2번의 경기만 남았다. 지난 3월에 만난 교토 국제 고교와는 5개월만에 다시 결승 티켓을 놓고 또다시 격돌하게 되었다. 선발 투수는 세키 코이치로(関 浩一郎, 3학년)가 아닌 시모야마 타이고(下山大昂 , 2학년)였다. 3회전과 8강정에서 선발로 출전 9이닝 동안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아오모리 야마다 고교의 차세대 에이스로서의 모습을 전국에 각인시켰다. 그리고 4강에서 선발로 다시 출전, 아오모리현 역사 최초로 고시엔 결승 진출이라는 대기록의 주인공이 되는 기회를 얻었다. 5회까지 교토 국제 고교의 타선을 단 2안타로만 제한하며 팀의 승리를 확신할 수 있었다. 

 

타선에서도 1회부터 득점을 하며 시모야마 타이고의 부담을 덜어주고 결승 진출이라는 기대를 한껏 높였다. 1사 주자 1,2루에서 4번 타자 하라다 아츠키(原田純希, 3학년)의 우중간을 가르는 2루타가 터지며 2루 주자가 홈에 들어오며 선제 득점을 만들었다. 그리고 다음 타자 요시카와 유다이(吉川勇大, 3학년)의 중견수 희생 플라이로 3루 주자가 홈인하며 스코어는 2대0이 되었다. 

 

그리고 6회 에이스 세키 코이치로가 마운드에 올랐다. 시모야마 타이고가 계속 던질 가능성도 고려했지만 가부토모리 다카아키(兜森崇朗)은 시모야마 타이고는 내일을 위해 쉬어야한다고 생각해 과감히 내렸다. 세키 코이치로가 4이닝만 막아주면 승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2경기 15이닝 동안 단 1실점만 했던 우완 에이스가 공략당하고 말았다. 연속 안타 2개와 볼넷 1개로 주자 만루에서 상대 타자에게 우전 안타를 허용하며 동점을 만들어주었고 다음 타자에게는 희생 플라이로 1점을 내주며 3대2로 승부가 뒤집어지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1점을 따라잡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았지만 교토 국제 고교의 좌완 에이스 니시무라 잇키를 끝까지 무너뜨리지 못했다. 그렇게 맞이한 9회말 마지막 공격. 4번부터 이어지는 중심 타선의 공격. 4번 타자 에이스가 신중함 끝에 볼넷을 골라내어 오랜만에 1루에 발을 디딛었다. 다음 타자 요시카와 유다이가 초구를 노려 힘껏 배트를 휘둘렀지만 유격수 앞 땅볼로 더블 아웃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타석에는 6번 타자이자 주장인 하시바 코스케(橋場公祐, 3학년)가 들어섰다. 어쩌면 마지막 타석이 될 수 있어 더욱 신중함을 기했다. 스트라이크, 파울, 볼을 계속 만들어내며 기회를 만들려했다. 그리고 니시무라 잇키가 6구째를 힘껏 던졌을 때 하시바 코스케는 힘을 모아 배트를 휘둘렀다. 아뿔싸. 2루수 앞 정면으로 향하는 땅볼이 되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전력 질주를 하였고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까지하였지만 거기까지였다. 심판의 아웃 콜이 선언되며 쓰리 아웃. 아오모리 야마다 고교의 첫 4강. 일본 최고에 단 1경기만 남긴채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주장 하시바 코스케와 요시카와 유다이는 중학교 3학년 때 아오모리 야마다 리틀 시니어에서 일본 제일을 경험한 적이 있다. 그리하여 고등학교에서도 일본 제일을 경험하고 싶어 자연스레 아오모리 야마다 고교에 진학하였다. 초반에는 현내에서 유망한 선수들과 전국에서 모여든 우수 선수들 때문에 조그마한 '간격'이 있었다. 하지만 사투리 등을 서로 가르치며 자연스럽게 거리가 좁혀졌고, 아오모리현 지역 대회에서는 벤치 멤버들이 대기 멤버들에게 우승 메달을 걸어주면 유대를 돈독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결국 고시엔 4강에서 탈락이 확정되자, 하시바 코스케는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마지막까지 고시엔에 와서 아오모리 야마다의 역사를 바꿀 수 있어서 자랑스럽다"고 3년간을 돌아보며, 끝까지 눈물을 보이지 않고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경기 후 3학년보다 더 슬프게 울었던 2학년에 대해서는 여러 부분에서 부담이 있겠지만 내년에는 고시엔 4강 이상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응원의 메세지를 남기며 일본 제일의 꿈을 후배들에게 맡기고 봄 여름 총 7경기를 치른 고시엔 구장을 떠났다. 

- 주요 선수 성적 (투수)

투수명 ERA 이닝 투구수 피안타 탈삼진 자책  WHIP
시모야마 타이고 0.00 5 67 2 2 0 0.40
세키 코이치로 6.75 4 37 4 2 3 1.00

 

 

※ 경기 특별 호외

 

1. 경기 결과: 간토다이 이치 고교 승리 (결승 진출)

학교명 1 2 3 4 5 6 7 8 9 R H E
카미무라 가쿠엔 고교 (가고시마현) 0 0 0 1 0 0 0 0 0 1 8 3
간토다이 이치 고교 (동도쿄) 0 0 0 0 0 0 2 0 X 2 3 0

 

 

2. 경기 내용

 간토다이 이치 고교

- 야구부원: 92명

- 출신 유명 야구선수: 사토 쇼마(치바 롯데 마린즈), 오코에 루이(요미우리 자이언츠), 이시바시 코타(주니치 드래곤즈), 나카무라 유타(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등


간토다이 이치 고교 (동도쿄)




▽ 2회전: 7-1 vs. 호쿠리쿠 고교 (후쿠이현) 

▽ 3회전: 3-2 vs. 메이토쿠 기주쿠 고교 (고현) 

▽ 8강전: 2-1 vs. 도카이다이 사가미 고교 (카나가와현)

학교 창립일 야구부 창립 첫 출장 출전 횟수 준우승 횟수 우승 횟수 통산 전적
1925년 1927년 2007 7회 0 0 18승 8패

 

- 오고 타케루(大後武尊, 3학년). 동도쿄 대회에서는 1회전과 5회전에 등판하였지만 이후부터는 등판을 하지 못했다. 고시엔 멤버로는 선발 되었지만, 막상 경기에 와서는 단 한번도 출전하지 못했다. 전령으로서 감독의 메세지를 전달한 것이 전부였다. 팀의 승리에 기여를 할 수 있다면 전령이어도 좋았지만 마음 한켠에는 자신도 경기에 뛰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등번호 1번의 사카이 하루(坂井 遼, 3학년)와 등번호 10번의 하타카나 켄신(畠中鉄心, 3학년)의 두명으로 구성된 강력 투수진 사이에 그가 들어갈 자리는 보이지 않는 듯 했다. 그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언제든지 출전할 수 있도록 연습은 빼먹지 않았고, 기회가 될 때마다 숙소에서 요네자와 타카미츠 감독이나 동료들에게 '강력 어필'을 하였다. 자신의 3학년 마지막 여름이기 '던지고 싶어, 또 던지고 싶어'라는 마음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기회는 폭풍우처럼 갑자기 찾아왔다. 

 

 

준결승, 팀 역사상 최초로 결승 무대가 걸려 있는 중요한 경기. 고시엔 구장내의 실내 연습장에서 워밍업을 하는 도중 요네자와 감독으로부터 선발로 출전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요네자와 감독은 오고 다케루를 선발로 결정한 배경에 대해 "어제 늦게까지 카미무라 가쿠엔 고교의 영상을 보았는데 배트를 신중하게 휘두르고 제대로 맞추려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하타카나 켄신은 완급 능력은 뛰어나지만, 파워가 뛰어난 오고 타케루가 맡는게 좋다고 생각했다"고 기용 의도를 밝혔다. 

 

동경하던 성지에서의 첫 등판. 바라던 일이었지만, 오고 타케루는 놀라워하면서도 자신감을 보였다. 하타나카 켄신은 "첫 이닝을 잘 던지면 다음 이닝은 편안해져서 잘 던질 수 있을 것이다"고 격려를 불어넣어줬다. 요네자와 감독도 "지금까지 해왔던 일을 믿고 던져라"고 힘을 불어넣어줬다. 

 

마운드에 오른 오고 타케루는 기대에 부응했다. '간토다이 이치 고교의 투수는 2명만이 아님을 보여주겠다(関東第一のピッチャーは2人だけじゃないことを見せる)'고 마음속으로 맹세했다. 첫 고시엔 경기에 출전하여 긴장이 컸는지 선두 타자에게 볼넷을 내주는 등 2아웃 2루의 위기를 맞이했다. 그리고 맞이한 카미무라 가쿠엔 고교의 부동의 4번 타자 쇼바야시 코다이(正林輝大, 3학년)와의 승부. 2S1B에서 4구째, 날카롭게 떨어지는 스플릿으로 유격수 땅볼을 유도해 위기를 넘겼다. 4회초에 비록 1실점을 했지만 140km 전후의 직구에 체인지업, 스플릿 등 다양한 구종을 선보이며 강타의 카미무라 가쿠엔 고교 타선을 막았다. 5회까지 단 1실점만 내주며 호투한 오고 타케루는 6회에 에이스 사카이 하루에게 공을 건내주며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큰 무대에서 제대로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벤치로 돌아오면서 문득 겁이 났다. '내가 1점을 내주는 바람에 지는 것이 아닌가'라는 걱정이 컸지만 동료들은 그를 보며 '수고했어!", "고생했어"라는 말로 반갑게 맞아주었다. 

 

반면 타선은 카미무라 가쿠엔 고교의 에이스 이마무라 타쿠미에게 6회까지 단 하나의 안타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노히트로 꽁꽁 묶였다. 이대로 경기가 마무리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때쯤, 7회초가 되었다. 선두타자 에치고 슌스케(越後駿祐, 2학년)가 이마무라 타쿠미의 두번째 공이 배트에 맞으며 중전 안타로 첫 히트를 내며 1루로 출루하였다. 다음 타자가 땅볼로 아웃되었지만 7번 타자 쿠마가이 슌노스케(熊谷 俊乃介, 3학년)의 우전 안타와 우익수 실책으로 기어이 바라던 1점을 냈다. 그리고 다음 타자 이치카와 아유무(市川 歩, 3학년)의 평범한 땅볼이 2루수 실책으로 안타가 되었고 그 사이 3루에 있던 쿠마가이 슌노스케가 홈으로 들어오며 2대1로 역전에 성공하였다. 벤치에서 바라보던 오고 타케루의 얼굴에는 눈물이 흘렸다. 그렇게 맞이한 9회 1 1,2루 위기에서 전령으로 사카이 하루를 비롯한 내야진에게 감독의 메세지를 전했다. '웃는 얼굴로 즐겁게 하자'가 작전의 전부였다. 카미무라 가쿠엔 고교의 등번호 13번 타마키 코타(玉城功大, 3학년)가 사카이 하루의 5구째를 받아쳤고 중견수 앞으로 공이 떨어졌다. 2루 주자는 홈으로 전력 질주. 중견수 히다 유고(飛田優悟, 3학년)는 공을 잡고 즉시 홈으로 공을 던졌다. 노바운드로 홈으로 향한 공은 정확히 포수 미트에 잡혔고 아슬아슬하게 홈플레이트에서 주자를 태그. 모든 시선이 심판의 콜에 집중되었다. 심판은 손을 위로 들며 아웃을 소리쳤고 18,000명의 관객으로 가득찬 구장은 큰 환호성으로 뒤덮였다. 28년전 마츠야마 상업 고교가 결승전에서 이룬 기적의 백홈이, 다시 재현이 되는 순간이었다. 간토다이 이치 고교가 역사상 최초로 고시엔 결승 무대에 진출하게 되었다.

 

준결승에서 선발로 등판한 오고 타카루는 "불안도 긴장도 있었지만 사카이 하루 하타카나 켄신 못지 않게 연습해왔기 때문에 나를 믿고 던졌다"고 회고했다. 결승 진출에 대해서도 "경기에서 이겨서 결승에 진출해서 이렇게 기쁜 적은 처음이다. 역전했을 때부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결승에서 첫 우승을 걸고 투수 3명이서 열심히 하고 싶다"고 눈물을 글썽이며 기쁨을 가득한채로 인터뷰를 마쳤다. 

- 주요 선수 성적 (투수)

투수명 ERA 이닝 투구수 피안타 탈삼진 자책  WHIP
오고 타케루 1.80 5 77 4 0 1 1.00
사카이 하루 0.00 3 66 4 6 1 1.25

 

 

 카미무라 가쿠엔 고교

- 야구부원: 56명

- 출신 유명 야구선수: 하츠키 류타로 (히로시마 도요 카프), 와타나베 리쿠(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타이 카츠토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등


카미무라 가쿠엔 고교 (가고시마현)




▽ 1회전: 8-5 vs. 키사라즈 종합 고교 (치바현) 

▽ 2회전: 4-3 vs. 추쿄다이추쿄 고교 (아이치현) 

▽ 3회전: 7-1 vs. 오카야마 가쿠게이칸 고교 (오카야마현)

▽ 8강전: 8-2 vs. 타이샤 고교 (시마네현)

 

학교 창립일 야구부 창립 첫 출장 출전 횟수 준우승 횟수 우승 횟수 통산 전적
1965년 2003년 2007 7회 0 0 12승 6패

 

- 카미무라 가쿠엔 고교 응원단이 위치한 1루 알프스 스탠드에는 작년의 캡틴, 이마오카 아유무(今岡歩夢)가 자리잡고 뜨거운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작년에는 고시엔 그라운드에서 결승 티켓을 놓고 접전을 펼쳤지만, 아쉽게 패배하며 가고시마현 최초의 결승 진출을 이뤄내지 못했다. 이번 대회에 다시 그가 나타난 이유는 OB로서 후배들을 응원하겠다는 바램과 함께 자신과 함께 고시엔 그라운드를 밟았던 동생 이마오카 타쿠마(今岡拓夢, 2학년)를 위해서였다. 제 105회 고시엔에서 이마오카 형제는 나란히 주전으로 뽑히며 꿈의 무대에서 사상 최초로 팀을 4강까지 이끌었다. 그러나 준결승에서 센다이 이쿠에이 고교를 넘지 못하고 6대2로 결과를 받아들이며 결승 무대에서는 오르지 못했다. 형제가 함께 일본 최고가 돠는데는 실패하였지만, 동생 이마오카 타쿠마에게 자신의 꿈을 건내며 "다시, 여기로 꼭 돌아와!"라고 응원했다. 그리고 동생이 다시 형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팀을 이끌고 다시 4강의 무대를 밟았다. 

 

지난 경기에는 난조를 보이며 초기 강판을 당했던 에이스 이마무라 타쿠미가 선발로 등판했다. 아무리 난조가 있었다 하더라도 이마무라 타쿠미에 대한 팀의 신뢰는 높았다. 이마무라 타쿠미가 아니었다면 분명 자신들은 이곳에 없었을 것이라는걸 알고 있었으니까. 거기에 부응하듯 6회까지 무실점 무안타로 팀의 1점차 리드를 지키고 있었다. 어쩌면 1998년 마스자카 다이스케가 고시엔에서 기록한 노히트를 26년만에 다시 달성할 수 있는 조짐도 보였다. 타선도 4회초 쇼바야시 코다이(正林輝大, 3학년)와 카미카와토코 유키(上川床 勇希, 3학년)가 안타를 합작하며 귀중한 1점을 만들었다. 하지만 거기서 만족하면 안되었다. 이마무라 타쿠미의 어깨를 가볍게 해주기 위해 타선도 신중하게 공을 고르며 1루로 나가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다. 하지만 운명의 7회 갑자기 난조를 보이며 안타 2개를 내주었고 우익수 실책이 겹치며 순식간에 2점을 헌납하며 쫒는 입장이 되었다. 그럼에도 공격 기회가 아직 2번이나 남았고 1점차였기에 충분히 뒤집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9회초, 이와시타 리쿠(岩下吏玖, 3학년)의 좌전 안타와 카미카와토코 유키(上川床 勇希, 3학년)의 우전 안타로 2사 주자 1,2루를 만들었다. 발이 빠른 이와시타 리쿠가 있었기에 단 하나의 안타라면 충분히 동점을 만들어 볼 수 있었다. 타석에는 등번호 13번의 대타 타마키 코타(玉城功大, 3학년)가 들어섰다. 이번 고시엔의 첫 등판. 여름 대회까지는 등번호 7번을 달고 있었지만 고시엔 본선에서는 등번호 13번을 받았다. 선발로 출전이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화려한 스타나 레귤러가 될수는 없지만, 언제든지 모두의 기대에 응해주도록 노력할 것이다"라고 스스로 말하며 기분에 변화를 주었다. 그리고 맞이한 중요한 타석. 낮게 들어오는 직구를 받아쳤고 공은 투수를 지나 중견수 앞으로 떨어지는 안타가 되었다. 공이 배트에 맞는 순간, 이와시타 리쿠는 전력 질주를 하였다. 그리고 홈을 향해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하였다. 그러나 그의 손이 베이스에 닿기 전에 간토다이 이치 고교의 포수 쿠마가이 슌노스케가 그를 먼저 태그를 하였다. 순간의 찰나였지만 심판은 아웃을 선언했다. 그 순간 카미무라 가쿠엔 고교 나인은 무릎을 꿇고 고시엔 땅에 엎드렸다. 

 

작년 4강을 경험한 쇼바야시 코다이, 이와시타 리쿠, 카미카와토코 유키, 마스다 유키(増田有紀, 3학년)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이번 여름은 작년 여름과는 다를 것이라 굳게 믿었지만 자신들의 여름이 이제 없다는 것에 비통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에도 자신들의 여름을 함께 해준 모든 동료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였다. 끝까지 마운드를 책임진 이마무라 타쿠미는 "정말 이 팀에서 어느 곳보다 더 길게 여름을 함께 하고 싶었는데 속상하다"고 울먹였다. "나를 믿어준 동료들에게 감사하다는 마음이 전부다. 그리고 우리가 이루지 못한 일본 제일을 목표로 후배들이 열심히 해주면 좋겠다"고 말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올해는 형과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이마무라 타쿠마는 형과 한 약속, 결승에서 고시엔 그라운드 흙을 가져다 주는 것을 지켜주고 싶었다. 하지만 다시 한번 4강에서 멈추며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패전이 결정되자 분한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형이 그랬듯 고시엔 그라운드 흙은 가져가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내년에는 주장이 되어 하야세 사쿠, 이리키타 카즈키와 함께 팀을 고시엔으로 이끌겠다는 맹세도 하였다. 내년이야 말로 일본 제일의 흙을 가지고 돌아가겠다고 굳센 마음을 먹으며 자신의 2학년 여름을 마무리하였다. 

- 주요 선수 성적 (투수)

투수명 ERA 이닝 투구수 피안타 탈삼진 자책  WHIP
이마무라 타쿠미 1.13 8 96 3 5 1 1.00

 

 

3. 제 1시합 수훈 선수

쿠마가이 슌노스케: 9회초 2아웃에서 기적의 백홈을 만들어내며 사상 최초로 결승 티켓을 얻게 만든 주인공이었다. 그리고 7회말 공격에서 기어코 홈으로 들어와 귀중한 역전 득점을 얻어냈기에 수훈 선수로서 자격이 있었다. 

 

※ 경기 특별 호외

 

1. 경기 결과: 카미무라 가쿠엔 고교 승리 (4강 진출)

학교명 1 2 3 4 5 6 7 8 9 R H E
카미무라 가쿠엔 고교 (가고시마현) 0 1 0 1 1 0 4 1 0 8 12 2
타이샤 고교 (시마네현) 1 0 0 1 0 0 0 0 0 2 9 2

 

 

2. 경기 내용
카미무라 가쿠엔 고교 

- 예상대로 에이스 이마무라 타쿠미(今村拓未, 3학년)가 선발로 등판했다. 2년 연속 4강 진출을 해야한다는 부담과 타이샤 고교의 돌풍때문이었을까, 3이닝 동안 2점을 내주며 4회에 강판을 당했다. 카미무라 가쿠엔 고교에게 있어서는 가장 큰 위기였다. 구원으로 올라온 하야세 사쿠(早瀬 朔, 2학년)는 공을 건네는 에이스에게 "나에게 맡겨주세요"라고 가볍게 말을 건낸 뒤 마운드에 올랐다. 선배들을 이기게 하자라는 마음으로 남은 이닝을 책임져 꼭 4강으로 팀을 이끌겠다고 다짐했다.

 

올해 3월, 센바츠에서 오사카 토인을 상대로 투구를 하였지만 3명의 타자와 맞붙어 1실점을 내주었고 결국 팀은 2회전에서 패배하였다. 그 당시 "이마무라 타쿠미 선배에게만 의존하며 일본 최고가 될 수 없다"고 마음을 잡으며 "더 날카로운 체인지업과 더 많은 제구력을 높이겠다"고 맹세했다. 패배 이후 일주일에 두번씩 하던 허들을 두 발로 뛰어넘는 점프 훈련을 늘렸고, 구속은 최고 속도 145km까지 올라갔으며 변화구도 날카로워졌다. 그리고 에이스가 내려간 빈자리를 제대로 제대로 메꾸었다. 타이샤 고교가 5회를 제외한 나머지 이닝에 매번 주자를 출루시켰지만 후속 타자 7명을 변화구로 삼진을 잡아내며 2년 연속 4강에 진출하는 값진 성과를 만들었다. 

 

 

타선에서도 이마무라 타쿠미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는 하야세 사쿠를 서포트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고 7회초에서 승부가 갈렸다. 선두 타자 마스다 유키(増田有紀, 3학년)가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으나 다음 타자 이리키타 카츠키(入耒田 華月, 2학년)가 볼넷, 그리고 이마오카 타쿠마(今岡拓夢, 2학년), 쇼바야시 코다이(正林輝大, 3학년), 이와시타 리쿠(岩下吏玖, 3학년), 카미카와토코 유키(上川床 勇希, 3학년)의 4타자 연속 안타로 4점을 득점하며 1점차의 아슬아슬한 리드를 5점으로 벌리며 하야세 사쿠의 어깨를 가볍게 해주었다. 경기가 끝난 후 하야세 사쿠는 인터뷰에서 "우선 이길 수 있어서 기쁘다"고 웃는 얼굴로 말하며 "상대의 응원을 마치 나를 위한 응원이라 생각하고 신나게 던졌다"고 밝혔다. 작년 여름에 이어 2년 연속 준결승에 오른 것에 대해서는 "목표하는 것은 일본 제일, 높은 레벨을 지닌 상대와의 경기가 계속 되지만 계속 이기는 마음으로 대회를 이끌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 주요 선수 성적 (투수)

투수명 ERA 이닝 투구수 피안타 탈삼진 자책  WHIP
이마무라 타쿠미 3.86 3 79 4 3 1 2.33
하야세 사쿠 0.60 6 82 5 7 0 1.00

 

 

타이샤 고교 

-32년만의 출장, 63년만의 승리, 107년만의 3승, 그리고 93년만의 8강 진출. 이번 여름, 타이샤 고교가 승승장구할 때마다 보고되는 숫자들은 모두 임팩트로 가득차 있었다. 이날도 역시 그랬다.

 

1루 알프스 스탠드는 시마네현 이즈모시에서 이른 아침 버스 7대에 나눠 250여명의 시민들을 비롯하여 총 19대의 버스를 타고 온 약 2,800여명의 응원단으로 가득 찼다. 강호 고교들을 차례차례로 격파하고 유일하게 8강에 진출한 타이샤 고교의 쾌진격에 전에 없을 정도로 흥분해 있어 버스에 올라탄 시민들은 '고시엔에서 전력으로 응원하고 싶다"고 힘을 실었다. 버스 응원 투어는 현지 여행사가 3회전이 끝난 17일 밤에 기획하였고 바로 매진되었다고 한다. 학교에서 판매한 응원단 티켓은 18일 오전 9시부터 판매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판매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어서 한시간 앞당겨서 판매를 시작하였다. 17일 밤 9시부터 줄을 선 사람도 있었다고 하니 타이샤 고교의 흥행은 단지 학교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현상으로 퍼졌다. 이날 응원에 참가한 나카스지 카즈미상은 1960년에 고시엔에 출장했을 때 당시 타이샤 고교의 주장이었다. 그는 타이샤 고교의 활약에 "학생들이 시합을 거듭할 때마다 능숙해져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평소 연습 시합이나 대회를 관전하러 가는데, 고시엔에서의 경기는 대단하였다. 후회없이 싸우고 고시엔을 즐겼으면 좋겠다"고 응원했다.

 

이날 선발은 계속되는 연투로 피로가 누적된 에이스 마니와 유타(馬庭優太, 3학년)를 대신하여 키시 코스케(岸恒介, 3학년)가 등판하였다. 고시엔 무대에서는 아직 등판한 적이 없지만 시마네현 지역 대회에서는 2경기 출전 10이닝 무실점 호투를 펼친적이 있었다. 타이샤 고교의 전략은 단순했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먼저 카미무라 가쿠엔 고교의 에이스 이마무라 타쿠미를 빠르게 강판시킨다. 그리고 키시 코스케가 호투를 펼치고 타선에서 점수를 내면 마니와 유타를 구원으로 올려 더 이상 점수를 내주지 않는다라는 전략이었다. 그렇게 타이샤 고교 타선은 초반부터 이마무라 타쿠미를 계속 괴롭혔다. 쉽게 배트를 휘두르지 않았고 컨택을 계속하며 이마무라 타쿠미의 이닝당 투구수를 계속 늘리게 만들었다. 결국 선제점을 내준 이마무라 타쿠미는 3회가 끝나고 다시 마운드에 오르지 못하였다. 스코어는 3대2로 1점을 뒤지고 있었지만 충분히 해볼 수 있는 점수차였다. 선발 키시 코스케도 3실점 하였으나 안타를 단 3개만 허용할 정도로 전력으로 피칭을 하고 있었다.  

 

 

5회초, 에이스 마니와 유타가 마운드에 올라왔다. 마운드에 그가 들어설 때, 1루 알프스 스탠드의 2,800여명의 타이샤 고교 응원단은 환호했다. 에이스가 있으니 에이스를 믿으니 이 경기를 승리하고 107년만에 4강에 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런 바램과는 다르게 에이스의 어깨는 무거워보였다. 1회전부터부터 3회전까지 3경기 연속 선발로 출전, 풀이닝을 소화했고 특히 3회전은 11회 연장 타이브레이크까지 책임을 지며 총 492개의 공을 던졌기에 체력이 쉽게 올라오지 않았다. 결국 7회초 대거 4점을 내주고 말았다. 점수차는 크게 벌어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경기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 어떻게든 카미무라 가쿠엔 고교에게 추가 실점을 하지 않기 위해 분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경기는 8대2로 타이샤 고교가 패배하였다. 107년만의 4강 진출을 희망했던 이즈모시에서 날라온 타이샤 고교의 회오리 바람이 여기서 멈추었다. 

 

 

카미무라 가쿠엔 고교의 교가 제창이 끝나고 타이샤 고교 선수들은 멀리서 자신들을 위해 4시간이나 걸려서 온 알프스 스탠드의 응원단에게 눈물의 인사를 보냈다. 응원단은 크게 졌다는 것에 개의치 않고 멋지게 활약해준, 93년만에 8강이라는 위대한 업적을 만들어준 학생들에게 따뜻한 박수와 격려의 환호를 보냈다. 알프스 스탠드에 있던 타이샤 고교의 전 야구부 매니저이자 마니와 유타 선수의 누나 마니와 아유미는 동생의 호투에 눈물을 글썽였다. 고시엔 출전은 남매의 비원이었는데, 동생이 드디어 그 꿈을 이뤄주었다. 고시엔에 데려와 준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3승이나 해주어서 잘했다고 전하고 싶다고 마음을 밝혔다. 

 

돌풍의 중심에 있었던 에이스 마니와 유타의 뺨을 타고 내리는 비에 굵은 눈물이 뒤섞였다. 4경기에서 도합 492구를 던졌지만 힘의 차이를 실감했다, 스스로의 준비가 부족해서 팀이 패하였다고 스스로를 자책했다. 이시토비 분타 감독은 마니와 유타에게 수고했다라는 말을 전했다. 고시엔에서의 많은 것이 되살아나고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는 감독에게 이렇게 끝내버려서 너무 미안하다고 말을 하였다. 

 

42세의 젊은 나이로 타이샤 고교의 역사를 만든 이시토비 분타 감독은 결과는 자신의 탓이며, 선수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동료를 믿고 경기를 해주었다며 칭찬을 하였다. 에이스 마니와 유타의 출전에 대해서는 선수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과 끝까지 던지게 하고 싶은 마음에 갈등이 컸다고 털어놓았다. 3학년 투수진에게 이에 대해 물어보니 '끝까지 마니와 유타가 던졌으면 좋겠다'고 하여 5회 등판을 허용하였으면서도 그의 미래를 걱정하는 복잡한 심경이 없지는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타이샤 고교의 역사의 문을 새로이 열고 나간 중심에는 분명 마니와 유타가 있었다고 말하며, 그가 없었다면 93년만의 8강은 어려웠을 것이라며 그를 치하하였다. 마지막으로 "타이샤 고교의 역사가 움직인 것은 틀림없고, 올해 대회는 앞으로의 100년을 향한 시작이며 그 야망은 무한대"라고 앞으로의 활약을 맹세했다. 

 

이번 대회 No.1이라 할 수 있는 열렬한 성원을 받은 마니와 유타는 "굉장히 사랑받고 있다고 생각해 기뻤고, 행복한 장소였다"고 인터뷰서 말하며 고시엔의 흙을 가지고 돌아가지 않을것이라 하였다. 내년에 후배들이 8강 이상의 경치를 보여줄 것이라 굳게 믿고 있어서 그 때 나눠달라고 생각한다고 인터뷰를 마쳤다. 시합이 끝난 직후 타이샤 고교가 있는 시마네현 이즈모시에는 마치 타이샤 나인의 건투를 기리듯, 큰 무지개가 하늘에 걸렸다. 8강 유일한 공립의 별이 전국에 용기와 감동을 선사하며 100년의 고시엔 구장에 작별을 고했다. 

- 주요 선수 성적 (투수)

투수명 ERA 이닝 투구수 피안타 탈삼진 자책  WHIP
키시 코스케 4.91 3⅔ 64 3 1 2 2.18
야마모토 케이타 0.00 0⅓ 13 1 0 0 6.00
마니와 유타 7.20 5 91 8 3 4 1.80

 

 

 

3. 제 4시합 수훈 선수
 하야세 사쿠: 에이스 이마무라 타쿠미가 강판당하며 갑작스럽게 마운드에 올라왔지만 7명의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내며 팀의 2년 연속 4강 진출이라는 위대한 업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올해보다 더욱 내년이 기대되는 하야세 사쿠다. 

 

※ 경기 특별 호외

 

 

 

1. 경기 결과: 교토 국제 고교 승리 (4강 진출)

학교명 1 2 3 4 5 6 7 8 9 R H E
치벤 가쿠엔 고교 (나라현) 0 0 0 0 0 0 0 0 0 0 6 3
교토 국제 고교 (교토) 0 0 0 2 1 0 1 0 X 4 11 1

 

 

2. 경기 내용
교토 국제 고교  

- 2021년, 제 103회 고시엔 4강에서 치벤 가쿠엔 고교와 맞붙었던 교코 국제 고교. 에이스 모리시타 류다이(森下瑠大, 당시 2학년)가 분투하였으나, 1대3으로 패하며 4강 진출에 만족해야만 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2024년, 운명의 다이얼처럼 4강 티켓을 놓고 양팀이 다시 맞붙게 되었다.

 

작년 가을, 고마키 노리츠구 감독은 새로운 팀을 만들며 지키는 야구를 표방했다. 역대 구성한 팀과 비교하여 '장타력이 낮다'라는 이야기를 주변으로부터 종종 들었다. 그럼에도, 나카자키 루이와 니시무라 잇키를 중심으로 더블 에이스 체재를 구축했고, 공식적 10경기에서 9실점을 내주었지만 지켜서 이기는 야구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철학이 변한 계기는 올해 센바츠 1회전이었다. 나카자키 루이가 호투하였으나 1점차로 아오모리 야마다 고교에게 석패하였고, 패배의 원인을 장타의 차이에서 절감했다. "9개의 포지션을 비교했을 때, 어떤 하나도 우위에 있지는 않았다. 앞으로 이렇게 가다가는 경기에서 계속 질 것만 같아 걱정이 많았는데 선수들 사이에서는 이기고 싶다, 잘하고 싶다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고마키 노리츠구 감독은 당시를 회상했다. 

 

그런 고민을 가지고 장타력을 키우고 싶었으나 팀의 고민거리였던 좁은 그라운드가 문제였다. 네트까지의 거리는 70미터도 되지 않은 세로로 긴 운동장이 교토 국제 고교 야구부의 연습장이었다. 그래서 고안했던 것이 장타 대신 '낮고 강한 안타'를 만든다라는 야구 스타일로 바꾸는 것이었다. 열악한 환경을 자신들의 강점으로 만들기 위해 네트를 넘지 않는 높이에서 낮고 강한 안타로 만드는 연습을 거듭해왔다. 

 

그리고 8강에서 만난 치벤 가쿠엔 고교. 경기 초반부터 단타로 치벤 가쿠엔 고교 투수진을 계속 압박했다. 매이닝 한번도 쉬지 않고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센터로 내야 사이를 빠져나가는 안타가 계속 성공하였다. 거기에 상대 실책까지 더하며 4대0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이번 대회에서 4경기 연속 두 자리수 안타라는 기록까지 만든 교토 국제 고교는 외야를 넘기는 강력한 장타는 없었지만 강력한 낮은 안타로 타선이 착실하게 득점을 거듭하였고 니시무라 잇키가 지키는 야구를 선보이며 펼친 자신만의 야구로 3년전처럼 4강 무대에 올랐다. 이제 새로운 목표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 주요 선수 성적 (투수)

투수명 ERA 이닝 투구수 피안타 탈삼진 자책  WHIP
니시무라 잇키 0.00 9 118 6 2 0 0.89

 

 

치벤 가쿠엔 고교

- 4점을 뒤진 9회초 2사 1루, 치벤 가쿠엔의 주장 치바나 루키아(知花琉綺亜, 3학년)가 타석에 들어섰다. 끝까지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간절했고 필사적으로 매달렸지만 니시무라 잇키가 던진 5번째 공을 배트가 하늘을 가르며 삼진 콜이 울렸다. 여름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몸에 힘이 빠지며 눈을 질끈 감았다. 

 

치바나 루키아는 2021년 치벤 가쿠엔 고교가 준우승하였을 때 당시 중심 선수였던 마에카와 우쿄(前川右京, 현 한신 타이거즈)를 동경해 치벤 가쿠엔 고교에 진학하였다. 2학년의 여름은 3회전에서 아쉽게 패했지만 주전으로서 잠재력을 보여주었기에 코사카 마사키 감독은 작년 가을부터 치바나 루키아를 주장으로 선임하였다. 단순히 그의 실력만을 보고 결정한 것이 아니라 부원 사이에서 그가 보여주는 인품이 훌륭하였기 때문이었다.

 

4강 티켓을 두고 맞붙은 교토 국제 고교와의 대결에서 치바나 루키아는 4타수 2안타로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도루도 성공하며 유니폼은 언제나처럼 새카매졌다. 4점째를 내준 7회말 2사 2루에서, 마운드에 있는 다나카 켄신(田中謙心, 2학년)에게 달려가 삼진을 잡고 이닝을 마무리하자라고 격려해주며 가볍게 등을 두드려주었다. 다나카 켄신은 치바나 루키아가 말해준 것처럼 삼진을 잡으며 위기를 넘겼다. 

 

작년 여름을 넘어 3년만에 8강에 올랐지만, 목표하였던 일본 제일이 되는 것에는 도달하지 못하였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9회 마지막 타자로 타석에 들어섰을 때의 심경에 대해 "학교에 입학하여 주위 부원들의 수준이 높아 스스로 바닥까지 떨어진적도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은 신세를 진 모든 사람들에게 보답하자는 생각이었다"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그러면서 "캡틴으로서 폐를 끼친적도 많았지만, 누구하나 불평없이 따라와 준 동료들은 최고였다. 이런 분한 경험을 살려서 후배들은 봄에도, 여름에도 일본 최고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눈물을 훔치며 후배들에게 뒤를 맡겼다. 

- 주요 선수 성적 (투수)

투수명 ERA 이닝 투구수 피안타 탈삼진 자책  WHIP
스기모토 마히로 0.00 2⅓ 35 3 1 0 1.29
아사이 하루토 3.00 2 33 5 1 1 3.00
다나카 켄신 1.50 2⅔ 39 2 2 0 0.75
타치가 후우가 0.00 1 13 1 1 0 1.00

 

 

3. 제 3시합 수훈 선수
니시무라 잇키: 2경기 연속 풀이닝을 던졌음에도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에이스 나카자키 루이의 부담을 덜어주는 한편, 3년만에 다시 4강 진출을 이끌며 차세대 에이스로서의 면목을 전국에 각인시켰다. 

 

※ 경기 특별 호외

 

 

1. 경기 결과: 아오모리 야마다 고교 승리 (4강 진출)

학교명 1 2 3 4 5 6 7 8 9 R H E
시가 가쿠엔엔 고교 (시가현) 0 0 0 0 0 0 0 0 0 0 9 0
아오모리 야마다 고교 (아오모리현) 0 0 0 0 0 0 1 0 X 1 4 1

 

 

2. 경기 내용
 아오모리 야마다 고교 

- 주전 20명 중, 10명이 아오모리 야마다 중학교 출신으로 구성되어 있는 아오모리 야마다 고교. 요시카와 유다이(吉川勇大, 3학년), 하시바 코스케(橋場公祐, 3학년), 사쿠라다 사쿠(桜田 朔, 3학년), 후지타 이부키(藤田一颯, 3학년), 쓰치마 리쿠토(対馬陸翔, 3학년) 5명은 3년전 아오모리 야마다 중학교의 전국 우승을 함께 이뤄낸 멤버들이다. 중학교때부터 지금까지 6년간 함께 해왔기에 그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알고 있어 이번 고시엔에서도 3년전에 만든 일본 최고라는 꿈을 다시 이루고 싶은 마음을 같이 만들고 있다. 특히 요시카와 유다이에게는. 

 

일본 18세 이하 야구 대표팀 후보 합숙에 참가한 선수 중 최고의 스윙 스피드를 기록하는 등 강력한 타격력이 특기를 보유하고 있고, 특히 올해 봄 센바츠에서는 3경기에서 2개의 장타를 포함하여 안타 5개, 2타점의 활약으로 팀의 8강 진출에 기여했다. 하지만 이번 고시엔에서는 3회전까지 포함하여 8타석에서 단 하나의 안타도 만들지 못했다. 요시카와 유다이가 타석에서 아웃될때마다 나머지 동료들은 벤치에서 먼저 나와 웃으면서 "잘하고 있어"라고 격려를 해주었다.

 

 

그렇게 맞이한 7회말. 스코어는 여전히 0대0이었다. 선두 타자 사토 류키(佐藤隆樹, 2학년)가 안타로 출루하고 다음 타자들이 땅볼, 희생 플라이로 그를 3루까지 진루시켰다. 그리고 요시카와 유다이의 타석이 돌아왔다. 투수는 이번 이닝에 구원으로 올라온 시가 가쿠엔 고교의 에이스 와키모토 테루토(脇本耀士, 3학년). 144km/h의 빠른 직구가 포수 미트에 꽂히며 스트라이크가 되었고 그대로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카부토모리 타카아키 감독은 잠시 경기를 멈추고 나리타 타쿠(成田匠玖, 3학년)를 전령으로 보냈다. '자신감을 가지고 원하는 공을 쳤으면 좋겠다"라는 감독의 말을 전하고 돌아오기 전에 "긴장을 풀어, 잘할거야"라는 자신의 마음을 덧붙였다. 요시카와 유다이는 미소를 지었고, 이런 모습을 본 나리타 타쿠는 요시카와 유다이가 분명 안타를 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심리적 변화가 되었을까. 

 

다시 타석에 들어섰고 세번째 공이 눈에 들어오는게 보이자, 망설임 없이 크게 배트를 휘둘렀다. 배트에 맞은 공은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가 되었다. 3루 주자가 홈에 들어오는 걸 확인하자, 요시카와 유다이는 1루에서 주먹을 크게 쥐며 하늘로 뻗으며 승리의 포즈를 지었다. 9타석만에 첫 안타가 팀에게 승리를 안겨주는 결승타가 되었다. 벤치에서 그를 지켜보던 4명의 동료들도 그가 다시 살아난 것에 기쁨 환희의 미소를 지어줬다. 좋아하는 단어는 "함께 「一緒に」". 글러브 안쪽에 자수로 놓여져 있다. 그라운드에는 나 혼자가 아니다, 동료가 있다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는 요시카와 유다이. 그는 동료들과 아오모리 야마다 고교가 봄 센바츠에 8강에서 머물렀던 아쉬움을 여름 고시엔에서 4강에 진출하는 결과로 만들었다. 

- 주요 선수 성적 (투수)

투수명 ERA 이닝 투구수 피안타 탈삼진 자책  WHIP
시모야마 다이코 0.00 3 35 0 0 0 1.00
세키 코이치로 0.60 6 69 6 3 0 1.17

 

 

시가 가쿠엔 고교

- 고교 3년의의 은퇴식은 시가현 대회도 고시엔도 아닌 5월에 있었던 다른 학교와의 연습 경기였다. 마지막 타석에 모든 것을 걸었고, 아웃 코스에서 들어오는 변화구를 쳤지만 타구는 좌익수에게 잡혔다. 그렇게 자신의 고교야구의 마지막 여름이 끝났다. 시가 가쿠엔 고교의 응원 단장 아라이 히로시(荒井浩志, 3학년)의 이야기다. 

 

동경하던 중학교 선배를 따라 고향이었던 미에현을 떠나 시가현의 이곳으로 진학을 하였다. 시가 가쿠엔 고교 야구부는 미에현에서 경험한 것과는 전혀 다른 레벨의 야구를 하고 있었다. 쉽게 담장을 넘기는 동급생들을 보며 스스로 '파워로는 상대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여 다른 부분을 더욱 연마했지만, 결국 공식적에서 주전 멤버로 뽑히지 못하며 여름을 맞이했다. 주전 멤버 발표 날, 동료들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듯 평범하게 행동했지만, 미에현의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었다. 

 

"미안해 엄마, 멤버에 못들어갔어. 기숙사에도 넣어줬는데 좋은 결과를 보여주지 못했어 미안해" 라고 울면서 이야기를 했다. 아들의 이야기를 들은 어머니는 "열심히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괜찮아"라고 다정한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눈물은 멈추지 않았지만, 절대 여기서 그만두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며 다른 방법으로 팀을 응원하고 싶었다. 

 

시가 가쿠엔 고교는 오래전부터 창의적인 응원으로 유명하였다. 6월부터는 본격적으로 일주일에 세번 이상 기숙사 식당에서 후배들과 함께 응원 안무 연습을 하였다. 문화제에서 반응이 좋았던 트와이스의 , 유명 개그맨의 몸개그 등을 자유롭게 변형하여 모두가 함께 응원이 가능하도록 안무를 짰다. 알프스 스탠드에서 브라스 밴드의 리듬에 맞춰 아라이 히로시를 따라 응원 안무를 하는 모습은 전국적으로 화제가 되었다. 아라이 히로시는 자신들의 응원이 선수들을 100%, 120%로 만들 수 있다면 더욱 더 봉사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그러면서 아직 시가 가쿠엔 고교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고, 이런 응원단에 응원 받고 싶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좋을거 같다는 조그마한 바램도 덧붙였다. 경기는 1-0으로 시가 가쿠엔 고교가 석패를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가 가쿠엔 고교가 역사상 가장 좋은 성적인 8강을 거둘 수 있었던 것도 아라이 히로시와 응원단의 강력한 응원 덕분이었다. 

- 주요 선수 성적 (투수)

투수명 ERA 이닝 투구수 피안타 탈삼진 자책  WHIP
츠치다 유키 0.50 6 82 2 7 1 0.50
와키모토 테루토 0.48 2 25 2 0 0 1.00

 

 

 

 

3. 제 2시합 수훈 선수

요시카와 유다이: 그간의 부진을 털어내는 팀의 승리를 가져오는 귀중한 1점을 만들어서 4강 진출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 경기 특별 호외

 

1. 경기 결과: 간토다이 이치 고교 승리 (4강 진출)

학교명 1 2 3 4 5 6 7 8 9 R H E
간토다이 이치 고교 (동도쿄) 0 0 0 0 0 0 1 0 1 2 7 1
도카이다이 사가미 고교 (카나가와현) 0 0 0 0 0 0 0 0 1 1 5 0

 

 

2. 경기 내용
간토다이 이치 고교

- 고교 통산 60개의 홈런으로 프로에서 높은 주목을 받고 있는 간토다이 이치 고교의 주장 타카하시 텟페이(高橋徹平, 3학년). 하지만 고시엔 본선에서는 심각한 부진에 빠져 있었다. 지난 2경기에 선발 출전, 7타수 2안타 평균 타율 0.286의 기대 이하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었다. 4강의 문턱이 바로 앞에 보이는 상황에서 맞이한 도카미다이 사가미 고교와의 8강 첫번째 경기. 참고로 양팀은 2015년, 제 97회 준결승에서 대결한적이 있다. 이때는 도카이다이 사가미 고교가 10대3으로 승리하며 결승에 진출했다. 그리고 9년만에 다시 재대결이 이뤄졌다.

 

타격 폼이 살아나지 않고 있었지만 타카하시 텟페이는 4번 타자라는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 계속 선발로 출전하며 스윙을 하였다. 어떻게든 경기 감각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2회초 첫 타석. 살짝 높게 가운데로 오는 슬라이더를 받아쳤지만, 3루 땅볼이 되며 아웃이 되었다. 4회초 두번째 타석. 이번에도 가운데 들어오는 직구를 휘둘렀지만 이전과 동일하게 3루수 앞 땅볼로 연결되며 아웃이 되었다. 양팀 모두 단 1점도 내지 못하는 치열한 투수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7회초 세번째 타석에 타카하시 텟페이가 들어섰다. 이번만큼은 안타를 치고 싶다라는 간절한 마음이 있어 스스로의 자존심을 내려 놓고 배트를 짧게 잡았다. 그리고 초구 130km/h 체인지업을 자연스럽게 스윙을 하였고, 배트에 맞은 공은 높은 아치를 그리며 고시엔 구장에서 가장 깊은 왼쪽 중앙 관중석 맨 앞줄에 떨어졌다. 자신의 통산 61번째 홈런을 기록하는 동시에, 대회 7호 홈런이자, 계속되는 0의 행진을 끝내는, 자신의 부진을 끝내는 순간이었다. 1루와 3루를 돌며 한손을 치켜 올렸고, 벤치로 돌아오자마자 두팔을 번쩍 들었다. 벤치 멤버들도 타카하시 텟페이처럼 양손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 타카하시 텟페이가 영웅이 된 사람만이 할 수 있다는 '근육 포즈' 세러머니를 하니, 멤버들도 함께 따라하며 환호하였다. 에이스 후지타 류세이(藤田琉生, 3학년)에게 얻은 홈런이라 더욱 타카하시 텟페이에게 의미있게 다가왔다.

 

1점차 리드를 아슬아슬 지키고 있는 9회초. 에치고 슌스케(越後駿祐, 2학년)가 우전 안타를 쳐냈고, 우익수가 잠시 주춤하는 사이 전력 질주하며 2루까지 출루하였다. 다음 타자 코지마 소오(小島想生, 3학년)가 친 공이 땅볼이 되었으나 높은 바운드가 되며 3루수가 못잡고 유격수가 간신히 잡았으나 타자 주자는 이미 1루에 안착했고 투수의 와일드 피칭으로 3루까지 진루한 에치고 슌스케는 여유있게 홈으로 들어왔다. 점수는 2대0. 간토다이 이치 고교의 승리가 거의 만들어졌다. 9회말, 마운드에는 하타카나 켄신( 畠中鉄心, 3학년)에 이어 등번호 1번 에이스 사카이 하루(坂井 遼, 3학년)가 올라왔다. 1사 주자 1,2루에서 송구 실책으로 1점을 내주긴 했지만, 더 이상 추가 실점을 하지 않고 마지막 타자를 우익수 플라이 아웃으로 잡으며 간토다이 이치 고교가 4강에 진출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2015년 준결승에서 만난 도카이다이 사가미 고교에 리벤지 승리를 하는 동시에 9년만에 4강에 진출하는 감격을 누리게 되었다. 

 

이날 홈런을 친 주장 타카하시 텟페이는 "이전 타석까지는 주장으로서 4번 타자로서 해내야 한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어 스스로 고통을 받았는데, 마음을 내려놓고 비우고 공을 치니 자신의 최고의 스윙이 되었고 놀라웠다"고 기쁜듯이 소회감을 밝혔다. 그리고선 아직 만족을 못하고 반성할 점은 많기에 잘 대비헤서 결승까지 꼭 가고 싶다고 강한 의지를 밝혔다. 

- 주요 선수 성적 (투수)

투수명 ERA 이닝 투구수 피안타 탈삼진 자책  WHIP
하타카나 켄신 2.03 8⅓ 98 5 2 1 0.72
사카이 하루 0.00 0⅔ 9 0 0 0 1.50

 

 

도카이다이 사가미 고교

- 도카이다이 사가미 고교가 처음으로 2루를 밟은 것은 9회말 마지막 공격때였다. 히가 류토(日賀琉斗, 2학년)와 사이타 와쿠(才田和空, 3학년)의 연속 안타로 만든 기회였다. 그리고 겨우 1점을 내고 마지막 타석에는 4번 타자 가네모토 칸다(金本貫汰, 2학년)이 들어서 있었다. 기회를 득점으로 만들 수 있는 선수였기에 벤치에서도 1루 알프스 스탠드 응원단도 그를 응원했다. 초구 직구를 바로 받아쳤고 높게 올라간 공은 더 이상 뻗지 못하고 좌익수에게 잡히고야 말았다. 희비가 교차했다. 9년만에 4강 진출을 노렸던 도카이다이 사가미 고교가 더 이상 다음으로 가지 못하고 여름의 끝을 마주해야만했다. 

 

에이스 후지타 류세이(藤田琉生, 3학년)는 8⅓이닝 동안 2실점만 허용하며 뛰어난 피칭을 펼쳤다. 4강에 대한 간절함을 던져 공을 던졌으나 결국 자신이 꿈꿔왔던 여름에 도달하지 못했다. 패배가 확정되고 상대 교가를 바라보면서도 끝까지 울지 않았던 그가 울음을 터트렸을 때가 감독의 이야기가 나올때였다. "하라 슌스케 감독을 일본 최고의 감독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고 말하며 흘러내리는 눈물을 막지는 못했다. 1년전까지만해도 성지에서의 열투는 상상도 못했던 후지타 류세이. 2023년 여름 대회로부터 1개월 전, 왼쪽 팔꿈치가 골절되었고 야구를 그만둘까도 생각도 하였다. 하지만 동료들은 후지타 류세이의 복귀를 간절히 응원했고, 결국 올해 봄 대회에서 부활하며 등번호 1번을 얻었다. "시합 종료까지 절대로 슬픈 표정을 드러내지 않겠다"고 맹세했고, 끝까지 버티며 승리를 믿고 싸웠지만 그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경기가 끝난 후 후지타 류세이는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아직 무엇을 할지 정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오늘의 분함을 잊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싸워 나가고 싶다"고 자신의 야구 인생을 확고하게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뒤를 이어 마운드에 올랐던 후지타 타쿠토( 福田拓翔, 2학년)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내년에는 새로운 팀의 DNA를 만들 꼭 고시엔에서 일본 최고가 되기를 바란다고 슬픔에 젖은 후지타 타쿠토를 격려하고 안아주었다. 

 

2021년 도카이다이 사가미 고교에 부임하여 처음 맞이했던 고시엔을 경험한 하라 슌스케 감독도 "선제점을 얻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다만 선수들은 서두르지 않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야구를 했다"며 경기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멋진 여름이었다. 나 자신도 꿈속에서 있는 듯 싶었고, 선수들은 반짝반짝 빛났다"며 눈물로 목을 메우며 인터뷰를 마쳤다. 

- 주요 선수 성적 (투수)

투수명 ERA 이닝 투구수 피안타 탈삼진 자책  WHIP
후지타 류세이 0.84 8⅓ 95 6 3 2 0.96
후지타 타쿠토 0.00 0⅔ 9 1 0 0 1.50

 

 

3. 제 1시합 수훈 선수
 타카하시 텟페이: 지난 부진을 털어내는 솔로 홈런으로 팀의 승리를 가져왔고 9년만의 4강이라는 결과를 만들었다. 

 

※ 경기 특별 호외

 

 

3対2、島根・大社が、西東京・早稲田実業をやぶり、創部初の夏3勝目!。神々の国からやって来た 少年たちの快進撃は 100年の甲子園で まだ続きます。
3대2, 시마네 타이샤 고교가 서도쿄 와세다 실업 고교를 누르고, 야구부 창단 최초로 여름 대회 3승을 거두었습니다!! 신들의 나라에서 온 소년들의 쾌진격은 100년의 고시엔 구장에서 아직 계속 됩니다. 

     - 3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와 점수를 내며 경기가 종료되는 순간, 캐스터의 승리콜

 

1. 경기 결과: 타이샤 고교 승리

학교명 1 2 3 4 5 6 7 8 9 10 11  R H E
와세다 실업 고교 (서도쿄) 0 0 0 0 0 1 1 0 0  0  0 9 7 3
타이샤 고교 (시마네현) 1 0 0 0 0 0 0 0 1  0  1X 6 8 1

 

 

※ 양팀 학교 소개 

와세다 실업 고교 (선수권 대회만)

 

학교 창립일 야구부 창립 첫 출장 출전 횟수 준우승 횟수 우승 횟수 통산 전적
1901년 1905년 1915년 30회 2 1 43승 28패

 

- 야구부원: 48명 

- 출신 유명 야구선수: 오 사다하루, 사이토 유키, 키요미야 코타로, 안권수 등

 

 타이샤 고교 (선수권 대회만)

학교 창립일 야구부 창립 첫 출장 출전 횟수 준우승 횟수 우승 횟수 통산 전적
1898년 1901년 1915년 9 0 0 4승 8패

 

- 야구부원: 64명 

- 출신 유명 야구선수: 

 

2. 경기 내용

 타이샤 고교 

- 결론부터 말하자면 타이샤 고교의 93년만의 8강 진출이라는 스토리가 만들어졌다. 이번 경기는 고시엔에서 어쩌면 보기 힘든 흥행 포인트들이 다 맞물려 있어, 모든 관심과 주목이 쏠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주요 포인트를 잡아보면。

 

① 공립학교 vs 사립학교

② 고시엔 1회 대회부터 이번 대회까지 개근한 학교간의 대결 (총 15개 고교가 개근) 

③ 고시엔 구장 개장 100주년 기념 

④ (8강 진출할 경우) 93년만의 진출 vs. 9년만의 진출 

⑤ (우승할 경우) 109년만의 첫 승리 vs. 9년만의 3번째 승리 

 

- 경기 전부터 7회까지

객관적으로 보면 타이샤 고교 전력이 와세다 실업 고교의 그것보다 훨씬 뒤지고 있었다. 경기가 시작하기 전까지는 모두가 타이샤 고교가 일방적으로 맞는 전개가 이뤄질 것이라 예상하였다. 하지만 시합이 시작하자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흐르며 올해 고시엔 역사상 최고의 스토리가 만들어졌다. 

 

1회말, 와세다 실업 고교의 에이스 나카무라 코다이(中村心大, 2학년)를 상대로 시모죠 신노스케(下条 心之介, 3학년)가 우전 안타로 1타점을 올리며 순조로운 출발을 알렸다. 타이샤 고교의 에이스 마니와 유타(馬庭優太, 3학년)는 이번 경기에도 선발로 등판하며 자신의 여름 경기 선발 횟수를 8번으로 늘렸다. 그리고 6회까지 와세다 실업 고교 타선을 안타 7개와 삼진 5개 1실점으로 막으며 8강 진출을 위한 집념을 불살렀다. 그리고 맞이한 7회초 평범한 싱글 안타가 될 수 있었던 공을 중견수 후지와라 유우(藤原 佑, 3학년)가 알까기를 하며 공을 빠트리며 뒤로 계속 굴러갔고, 타자 주자는 전력을 다해 달려 베이스를 밟으며 홈으로 들어왔다.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으로 기록되며 2대1로 리드 당하기 시작했다. 공을 빠트린 후지와라 유우는 자신의 실책을 탓하며 무너져 내린 듯 외야에서 고개를 숙이고만 있었다. 에이스 마니와 유타도 처음에는 어이 없는 실점에 넋이 나갔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후지와라 유우를 향해 두손을 뻗으며 "괜찮아"라고 격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후지와라 유우도 글러브를 낀 손을 들으며 "미안해"라고 답해주었다. 추가 실점 없이 이닝을 마무리하고 벤치로 돌아올 때, 3루 알프스 스탠드에 있는 2,800여명의 응원단은 후지와라 유우에게 큰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었다. 아직 3이닝이 남아있으니까. 걱정말라고. 

 

- 7회부터 9회까지 

1점이라도 내기 위한 타이샤 고교의 공격은 매세웠고 어떻게든 주자를 출루 시켰지만 후속 타자들이 아웃이 되며 기회를 찾지 못했다. 그리고 정규이닝 마지막 공격인 9회말. 타석에는 마니와 유타가 들어섰다. 인코스로 들어오는 134km/h 속도의 직구를 받아쳤으나 땅볼이 되며 2루수 앞으로 향했다. 하지만 악송구가 되며 1루수 뒤로 공이 빠졌고 이틈을 틈타서 2루까지 출루하였다. 그리고 다음 타석에는 타카하시 토와(高橋翔和, 3학년). 기습 번트로 친 공은 3루수 앞으로 흘렀다. 그 순간 3루에 있던 마니와 유타는 전속력으로 홈으로 들어오며 귀중한 점수를 추가하며 다시 경기를 원점으로 돌렸다. 그리고 타자 주자 타카하시 토와는 송구 실책으로 1루에서 세이프가 되었다. 1루 알프스 스탠드를 제외한 모든 경기장이 환호로 들썩였다. 무사 주자 1,2루였기에 추가 안타 하나만 나온다면 경기를 그대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다음 타자였던 후지와라 유우가 번트를 치며 자신은 아웃이 되었지만 한 베이스씩 진루시키는 기여를 하였다. 그리고 타석에 들어선 2번 타자 후지에 류노스케(藤江 龍之介, 3학년). 이때 만큼은 마니와 유타는 두손을 꼭 모으며 후지에 류노스케의 타석을 계속 지켜보았다. 힘껏 휘둘렸지만 땅볼이 되었고 3루수가 잡아 1루로 던졌다. 1루수 키를 살짝 넘어가나 싶었지만 1루수가 잡으며 타자 주자를 아웃시켰고, 바로 홈으로 던지며 들어오는 3루수를 포수가 태그 아웃하며 타이샤 고교의 역전 기회가 사라졌다. 

 

- 10회부터 11회까지 

연장 타이브레이크에 들어선 10회와 11회 와세다 실업 고교의 공격을 슬기롭게 막았고 이제 11회말로 경기는 접어들었다. 대타 야스마츠 다이키(安松大希, 2학년)의 기습 번트가 3루수 방향으로 흘렀다. 하지만 공은 파울 라인을 넘을듯 아슬하슬하게 굴러갔지만 결국 선을 넘지 않았고 3루수가 1루로 빠르게 공을 던졌으나 간발의 차로 안타가 되었다. 무사 주자 만루가 되었고, 타석에는 마니와 유타가 기다리고 있었다. 타이샤 고교 벤치와 3루 알프스 응원단은 1점만 내기를 바라는 간절함으로 가득찼다. 그리고 마니와 유타가 132km/h의 낮은 직구를 받아쳤고 공은 땅볼이 되며 투수 사이로 빠져 나가며 중견수 앞으로 흘러갔다. 순간 모든 관중들이 와!!!라고 소리를 질렀다. 3루 주자가 홈 플레이트를 밟았고, 전광판의 숫자는 2에서 3으로 바뀌며 3회전 마지막 경기가 끝났다. 3루 주자였던 타카하시 소라(高橋蒼空, 3학년)는 홈에 들어왔을 때 감격의 표정을 지으며 손을 굵게 쥐고 하늘로 손을 뻗었다. 사요나라 안타를 친 마니와 유타는 두손을 활짝 뻗으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2시간 40분의 혈투는 타이샤 고교의 93년만의 8강, 이번 대회 유일한 공립 고교의 베스트8이 만들어진 기념비적인 순간이었다. 


이날 최고의 경기를 보인 에이스 마니와 유타는 승리에 대해 "스스로가 응원 받고 있는 것을 굉장히 느꼈다. 너무 행복해서 앞으로 이런 기회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 안타에 대해서는 무조건 직구로 올 것으로 믿었다. 직구를 제대로 받아칠 수 있어서 다행이었고, 지금까지 친 안타 중 가장 기분이 좋은 안타였다고 들뜬 기분을 표현하였다. 그리고 8강전에 대해서는 "피로와 상관 없이 무조건 던지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주장 이시하라 하야토(石原勇翔, 3학년)는 연장 11회 타이 브레이크 끝에 승리한 것에 대해 "공이 중전 안타가 된 순간 기쁨이 폭발했다. 목표했던 8강에 진출하게 되어 기쁜 마음으로 가득하다"며 흥분이 식지 않은 모습으로 인터뷰를 하였다. 그리고 "그라운드에 들어서는 순간 만원 관중으로부터 응원을 받게 되어 굉장했다. 그 응원을 힘으로 바꾸려고 했고, 일체가 된 응원 덕분에 이길 수 있었다"고 말하였다. 

 

교가 제창이 끝나고 타이샤 고교 선수들은 3루 알프스 스탠드를 향해 전속력으로 기쁜 마음으로 뛰어갔다. 자신들을 위해 응원하로 온 사람들과 함께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 93년만의 승리를 같이 나누기 위해. 치열했던 그라운드에 선수들의 흔적만 가득했던 곳에 달빛이 비추는 동안 고시엔 구장에는 새로운 역사의 한 페이지가 만들어졌다. 

- 주요 선수 성적 (투수)

투수명 ERA 이닝 투구수 피안타 탈삼진 자책  WHIP
마니와 유타 0.90 11 149 7 6 1 0.73

 

 

와세다 실업 고교 

- 2006년 사이토 유키(斎藤佑樹)를 앞세운 와세다 실업 고교는 고시엔 첫 우승을 달성했다. 1915년에 제 1회 대회에 참가한 원년 멤버로서 우승까지 걸린 시간이 91년이나 걸렸으니 그만큼 감격이었을 것이다. 당시 맞대결한 학교는 다나카 마사히로를 앞세운 고시엔 최초 3연속 우승을 노리고 있었던 도마코마이 고교였으니 기쁨은 수십배였을 것이다. 이후 9년만에 제 97회 대회에 진출, 4강까지 갔으나 센다이 이쿠에이 고교에 막혀 결승 진출에는 실패한다. 그리고 9년만인 제 106회 대회에 진출, 8강을 앞두고 타이샤 고교와 맞붙게 되었다. 3개 대회 모두 이즈미 미노루(和泉 実) 감독과 함께한 시간이다. 

 

- 경기 전부터 7회까지

치열한 서도쿄 지역 대회를 뚫고 올라왔다는 자신감, 타격은 살짝 아쉬운 면을 보이고 있지만 프로 진출이 확실하게 보이는 이번 고시엔의 최고 타자인 우노 신지로(宇野 真仁朗, 3학년)와 어리지만 경험이 풍부하여 팀을 지탱하고 있는 에이스 나카무라 코다이(中村心大, 2학년)가 있어 쉬운 경기가 될 것이라 믿었다. 아니 그랬었었어야만 했다. 1루 알프스 스탠드에는 도쿄에서 온 3,000여명의 응원단이 푸른 하늘(紺碧の空)』을 부르며 자신들의 응원해주고 있었다. 작년에 게이오 고교가 그랬듯이 우리도 응원을 받아 8강 이상을 노릴 것이다라는 마음으로 가득했다. 

紺碧の空 仰ぐ日輪
감벽의 하늘 드높은 태양
光輝あまねき 伝統のもと
광휘가 널리퍼지는 전통의 근본
すぐりし精鋭 斗志は燃えて
뛰어난 정예들의 투지는 불타고
理想の王座を占むる者 われ等
이상의 왕좌를 갖는 것은 우리들이다
早稲田 早稲田 覇者 覇者 早稲田 
와세다 와세다 패자 패자 와세다

 

1회말, 어이없이 1점을 내주었다. 아직 몸이 풀리지 않아서 상대의 기습에 잠시 흔들린 것이다라고 이즈미 미노루 감독은 생각했다. 상대 에이스 마니와 유타는 지난 경기까지 252개의 공을 풀타임으로 던졌기에 쉽게 무너질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5회까지 단 4개의 안타만 기록했을 뿐, 타자들이 전혀 공을 배트에 맞추지 못했다. 지난 2회전도 단 5개의 안타밖에 기록하지 못해 답답한 타선이었기에 불안한 기색이 조금씩 보이는 듯 싶었다. 그리고 6회초 공격. 타카사키 노부히로(高崎亘弘, 3학년)와 이시하라 유세이(石原優成, 3학년)가 연속 안타를 치고 나가며 1사 1,2루가 되었다. 다음 타자 야마나카 하루토(山中晴翔, 2학년)가 볼넷으로 출루, 주자는 만루가 되었다. 그리고 타석에 들어선 쿠니미츠 카케루(国光 翔, 3학년)가 슬라이더를 받아쳤지만 2루수 앞의 땅볼이 되었다. 하지만 3루 주자가 그 사이 홈 베이스를 밟고 들어왔고 1대1 동점이 되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경기. 이때까지 나카무라 코다이가 던진 투구 수는 97개, 타이샤 고교의 마니와 유타는 91개였다. 생각보다 많은 투구수를 했지만 아직 여유가 있었고, 불펜에서는 더블 에이스 카와카미 신(川上 真, 2학년)이 언제든지 등판할 수 있도록 몸을 풀고 있었다. 그렇게 맞이한 7회초 공격. 선두 타자 우치조노 코타(内囿光太, 3학년)는 가운데로 들어오는 직구를 받아쳤다. 평범한 안타라 생각했지만 타이샤 고교의 중견수가 공을 뒤로 빠트리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속도를 줄이던 우치조노 코타는 순간 전속력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못해도 3루까지는 갈 수 있었을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여전히 홈까지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 보여 다시 홈까지 파고 들었고 한발 차이로 홈에 들어오며 인사이더 더 파크 홈런을 스스로 만들었다. 전광판은 2대1로 와세다 실업 고교의 리드를 알렸다. 

 

- 7회부터 9회까지 

이제 굳히는 것밖에 없었다. 7회까지 125개의 공을 던진 에이스 나카무라 코다이가 공을 카와카미 신에게 넘기며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1루 알프스 스탠드의 응원단은 1점 리드를 지키고 내려오는 나카무라 코다이에게 격려의 박수를, 앞으로 2이닝을 지켜야 하는 카와카미 신에게는 힘을 내게 하는 응원을 해주었다. 예상대로 타이샤 고교 타선은 빠른 공에 적응하지 못하여 주자를 전혀 출루시키지 못하였다. 1점차 리드라는 아슬아슬하지만 유리한 상황으로 맞이한 9회말. 이제 경기를 마무리하기까지는 아웃 카운트 3개만 남았다. 타석에는 마니와 유타가 들어와 있었다. 이때부터 상황이 바뀔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평범한 2루수 앞 땅볼이었지만 2루수 우치조노 코타가 급한 마음이었을까, 1루수에게 던진 공이 뒤로 빠지는 악송구가 되었고 금새 주자는 무사 2루가 되었다. 긴장으로 가득찬 카와카미 신은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듯 넘기려고 하였다. 그러나 다음 타자에게 안타를 맞았고 무사 1,3루 계속되는 위기를 맞았다. 결국 다음 타자의 번트를 막지 못하면서 1점을 실점하는, 동점을 허용하는 최악의 결과를 만들어버렸다. 이후 주자들을 범타 처리하며 9회말을 마무리하였지만 고개를 푹 숙이며 벤치에 들어왔고 나카무라 코다이는 먼저 나가 그를 다독여주었다. 힘내라고. 

 

- 10회부터 11회까지

와세다 실업 고교는 다시 한번 승리에 집념을 불타 올랐다. 하지만 기세는 이미 타이샤 고교로 넘어간 상황. 어떻게든 분위기를 반전시켜여만 했다. 10회 공격에서 상대의 밀집 수비로 점수를 내지 못하고 다시 맞이한 10회말. 와세다 실업 고교의 수비 시프트가 바뀌었다. 수비에 정평이 있는 내야수 니시무라 사토시(西村悟志, 1학년)를 기용해 내야에만 5명의 수비가 있는 극단적인 시프트를 만들었다. 스퀴즈만은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라고 연습으로만 해왔던 시프트를 처음으로 그것도 경기 승패가 갈리는 상황에서 실전에서 실시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울 따름이었다. 비책은 성공했다. 니시무라 사토시는 번트를 잡은 뒤 3루를 바라보았고, 늦었다고 판당되어 1루로 공을 던져 타자 주자를 아웃시켰다. 그리고 1루수는 그사이 홈으로 파고 드는 3루 주자를 확인하였고 홈으로 던지며 아웃시키는 활약을 펼쳤다. 점수를 내지 못하면 점수를 주지 않겠다는 선수들의 투지가 더욱 빛을 바랬다. 그렇게 맞이한 11회말. 여전히 마운드는 카와카미 신이 지키고 있었다. 투구수는 26개. 충분히 던질 수 있었다. 그러나 번트가 문제였다. 선두 타자의 번트가 3루쪽으로 떨어졌지만, 공은 파울 라인을 넘을듯 말듯 굴러갔다. 3루수 타카사키 노부히로가 공을 지켜보다 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하여 급히 공을 잡아 1루로 송구하였지만 타자 주자가 먼저였다. 이즈미 미노루 감독은 전령을 보냈고 내야수들은 마운드에 모여 전령을 들으며 지시를 전달 받았다. 마음을 가라 앉히고 다시 마운드에서 투구 준비를 하는 카와카미 신을 위해 벤치 멤버들은 소리를 지르며 응원했다. 특히 나카무라 코다이가 그랬다. 그리고 맞이한 타자가 친 공이 땅볼로 투수 발 사이로 빠져 나가며 중전 안타가 되는 순간 카와카미 신은 패배를 직감하며 마운드에 고개를 숙였고 중견수 미사와 유토(三沢由和, 2학년)는 3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가는 것을 바라봐야만 했다. 승부의 희비가, 9년만의 8강 진출의 꿈이 물거품이 되어 사라져버렸다.

 

타이샤 고교의 교가가 울려퍼지는 동안, 와세다 실업 고교 선수들은 눈물을 흘리며, 특히 패배를 만든 카와카미 신은 눈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울고 있었다. 응원단에게도 인사를 하고는 아예 그라운드에 주저 앉아 자신이 패배를 만들었다는 것에 슬픔을 억제하지 못했기에 주변에서 부축해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응원단은 달랐다. 비록 경기에 졌으나 멋진 경기를, 투혼을 보여준 선수들에게 큰 박수로 고생했어, 수고했어라는 말을 전하였다. 

 

와세다 실업 고교 주장 우노 신지로는 경기가 끝난 후 인터뷰에서 "솔직히 졌다는 실감을 하지 못하고 있다. 내일에도 동료들과 연습라고 있는 미래밖에 보이지 않았고, 한 번 더 다음 스테이지에서 성장해가는 팀을 보고 싶었다"며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또한 경기 후반에 대해서는 "몇번이나 끝내기 패배를 당할 것 같은 장면이 있었지만, 그걸 극복하였을 때 그라운드에서 본 고시엔 구장의 경치나 함성은 지금까지 경험한 적 없는 인생의 가장 진한 시간이었다"고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경기를 돌아보았다. 이즈미 미노루 감독도 "정말 멋진 플레이였다. 60세가 넘어 이렇게 좋은 경기, 좋은 경험을 하게 해주는 선수들이 대단했다. 선수들이 정말 아름다웠다"고 감동적으로 말하며 자신의 또다른 고시엔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고시엔 그라운드 흙을 담고 벤치를 정리하고 나가는 선수들을 향해 모든 관중들은 박수를 쳐주었다. 단지 선수들이 고생한 것이 아니라 야구 소년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멋짐을 보았기에 어느 팀이 올라가도 이상하지 않았을 고시엔 역사에 두고두고 회자될만한 명장면을 만들어주었기에 격려와 응원의 박수를 선수들이 다 나갈때까지 쳐주었다. 

- 주요 선수 성적 (투수)

투수명 ERA 이닝 투구수 피안타 탈삼진 자책  WHIP
나카무라 코다이 1.50 7 125 5 5 0 1.14
카와카미 신 0.00 3 37 3 0 0 1.00

 

 

3. 제 4시합 수훈 선수

마니와 유타: 진짜로 마니와 유타가 혼자서 하드 캐리한 경기였다. 11이닝 완투, 149개 공을 던졌고, 1타점으로 93년만의 8강을 이끌었다. 정말로 타이샤 고교의 돌풍을 기대하고 싶다.  

 

※ 경기 특별 호외

 

1. 경기 결과: 카미무라 가쿠엔 고교 승리

학교명 1 2 3 4 5 6 7 8 9 R H E
카미무라 가쿠엔 고교 (가고시마현) 1 0 0 2 4 0 0 0 0 7 12 0
오카야마 가쿠게이칸 고교 (오카야마현) 0 1 0 0 0 0 0 0 0 1 5 1

 

 

2. 경기 내용
카미무라 가쿠엔 고교
- 에이스 이마무라 타쿠미가 벤치 멤버에 포함되었고, 2선발이자 카미무라 가쿠엔의 미래 에이스로 여겨지는 등번호 10번의 하야세 사쿠(早瀬 朔, 2학년)가 마운드에 올라왔다. 2경기 연속 풀이닝 281구를 던진 이마무라 타쿠미에게 회복 시간을 주고 8강에서 선발로 등판시키는 것을 염두해둔 전략이었다. 

 

시합 직전, 오다 다이스케 감독은 이번 경기가 카미무라 가쿠엔 고교의 앞으로의 가는 방향을 미리 보는 경기라 될 것이라 선수들에게 말했다. 감독의 철학은 1주일 이내 투수 1명의 투구수를 500개 미만으로 제한하는 것. 이마무라 타쿠미가 에이스지만, 투수 보호를 위해서는 이번 경기 선발 등판은 안한다고 말하였다. 대신 일본 제일이 되기 위해서는 등번호 두 자리 수 선수가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합이 반드시 있다고 말하며, 오늘은 영혼의 계투로 가겠다고 등번호 10번의 2학년 하야세 사쿠에게 경기를 맡겼다. 

 

상대는 오카야마 가쿠게이칸 고교. 앞선 두경기 모두 무실점으로 마무리한 수비가 매우 뛰어난 학교. 그렇기에 하야세 사쿠는 "던질 수 있는데까지 던진다"라고 말하며 경기를 시작했다. 경기 초반은 쉽지 않았다. 선두 타자부터 연속 사사구 2개를 내주는 등 1점을 내주며 다시 경기를 1대1로 원점으로 만드는 등 제구에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마음을 가다잡았고, 자신의 주무기인 슬라이더를 과감히 냉정하게 던지기 시작했다. 3회 이후 하야세 사쿠가 허용한 안타는 단 2개. 날카롭게 휘어지는 슬라이더는 오카야마 가쿠게이칸 고교 타선에게 배트를 공에 붙일 틈을 주지 않았다. 하야세 사쿠가 힘을 내었는지, 타선 부응하듯 5회초에 빅 이닝을 만들었다. 무사 만루에서 카미카와토코 유키(上川床 勇希, 3학년)의 중전 안타로 2점을 추가하였고, 8번 타자 후지타 유준(藤田侑駿, 3학년)이 7구까지 가는 끝에 중전 안타를 치며 나머지 주자 2명을 홈으로 불러들이며 또다시 2점을 냈다. 스코어는 7대1로 분위기는 카미무라 가쿠엔 고교로 흘렀다. 그리고 하야세 사쿠의 130번째 공이 금속성 소리와 함께 우익수 글러브에 빨려 들어가며 경기가 마무리가 되었다. 9이닝 5안타 1실점 완투승. 하야세 사쿠의 완벽했던 피칭이었다. 

 

다시 시간을 돌려 올해 3월 센바츠. 2회전에서 오사카 토인 고교와 경기할 때 선발 투수 난조로 급하게 구원으로 등판한 하야세 사쿠. 하지만 3명의 타자를 상대하며 1실점을 하였고, 상대의 분위기를 다운시키지도 못한채 2이닝만 던진 후 마운드에서 내려왔고 팀은 결국 패배하였다. 스스로가 팀을 이기게 하는 피칭을 할 수 없었다, 오사카 토인 고교 선수들의 빈팀없는 경기 운영에 많은 것을 느꼈다, 더 성장한 고교생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반성과 다짐을 느꼈다고 경기 후 말했다. 그리고 플레이 중에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야구 이외에도 모든 행동을 바꾸는 방법을 행동을 하였다. 그런 결과가 쌓인 것을까. 주자가 출루해있어도 냉정해져서 아웃을 하나하나 쌓을 수 있었다고 인터뷰에서 웃으며 말했다. 

 

팀의 2년 연속 8강 진출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에, 자신이 한 것이 아닌 외야수들이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며 이마무라 타쿠미를 쉬게 만들수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좋았고, 우리의 목표는 일본 최고가 되는 것이라고 겸손하게 대답하였다. 「いちき串木野市」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는 그의 오른팔 소매에서 봄보다 훨씬 성장했다는 모습과 카미무라 가쿠엔 고교의 미래를 맡길 수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주요 선수 성적 (투수)

투수명 ERA 이닝 투구수 피안타 탈삼진 자책  WHIP
하야세 사쿠 1.00 9 130 5 5 1 1.00

 

 

오카야마 가쿠게이칸 고교

- 2019년 제 101회 대회에 출전했을 때, 3회전에서 토치키현 대표 사쿠신 가쿠인 고교를 만나 18대0으로 대패를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그리고 2024년에 다시 3회전에 진출하며 선수 모두는 8강 진출하자라는 목표를 만들었다. 이번에 만나는 상대는 가고시마현 대표 카미무라 가쿠엔 고교. 작년 4강, 이마무라 타쿠미라는 압도적인 에이스를 보유한 학교. 하지만 이마무라 타쿠미는 선발로 등판하지 않았다. 대신 2학년 하야세 사쿠가 선발로 나와서 내심 8강이 가능할 듯 보였다. 우리에겐 지난 경기에 등판하지 않고 쉬었던 에이스 오카다 코다이(沖田幸大, 3학년)가 선발로 활약하고, 점수는 비롯 많이 못내지만 수비 하나만큼은 자신이 있었기에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다. 

 

에이스 오카다 코다이의 제구가 불안하게 보였지만 수비를 촘촘하게 하고 찬스가 오면 점수를 낼 것이다라는 마음으로 가득했다. 1회초에 실점하였지만 2회 말에 상대 선발 하야세 사쿠의 불안을 노려 1점을 내며 동점으로 만들었다. 이런 희망에도 불구하고 제구력이 흔들렸던 오카다 코다이는 5회를 시작하자마자 단 하나의 아웃도 못잡고 2실점하며 결국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구원으로 올라온 토리야마 케이스케(鳥山恵佑, 3학년)는 단 3타자만 상대하며 추가로 2점을 내주었고 자신의 볼을 니와 토모노리(丹羽知則, 3학년)에게 건넸다. 6점을 끌려가는 상태에서 올라온 니와 토모노리는 9회까지 4⅓이닝을 무실점으로 입술을 깨물며 버텼다. 더 이상의 실점은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첫 실점 이후 각성한 하야세 사쿠가 140km/h에 가까운 공을 던지며 타선을 아예 고사시켰다. 결국 마지막 대타로 나온 나가레 히비키(永礼 響, 2학년)의 높이 뜬 공이 우익수에게 잡히며 경기는 마무리가 되었다. 5년만에 노렸던 8강 진출이 다시 한번 좌절되며 오카야마 가쿠게이칸 고교의 여름이 끝났다. 오카다 코다이와 니와 토모노리는 서로를 안아주며 자신들의 여름이었다는 것에 눈물을 흘렸다. 

 

 

니와 토모노리는 고시엔 3경기에 출전, 14⅓이닝을 던지며 단 1실점도 하지 않았다. 이번 여름에서 그가 내준 유일한 실점은 오카야마현 대회 3회전에서 소시 가쿠엔 고교에게 내준 1점 밖에 없었다. 니와 토모노리는 인터뷰에서 "저의 무실점 보다는 시합에 져서 8강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 분합니다. 하지만 오키타 코다이가 없었으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고 시합을 끝낸 소회를 밝혔다. 치바 롯데의 사사키 로처럼 왼발을 넓게 벌리고 던지는 다이나믹 폼을 가지고 있는 니와 토모노리가 고시엔 평균자책점 0.00이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다음 스테이지에서 큰 비약을 해주기를 앞으로 바란다. 

- 주요 선수 성적 (투수)

투수명 ERA 이닝 투구수 피안타 탈삼진 자책  WHIP
오카다 코다이 3.75 4 86 9 5 5 2.25
토리야마 케이스케 54.00 0⅓ 12 1 0 2 6.00
니와 토모노리 0.00 4⅓ 48 2 1 0 0.46
나카다 세이지로 0.00 0⅓ 7 0 0 0 3.00

 

 

 

2. 제 3시합 수훈 선수
하야세 사쿠: 이마무라 타쿠미를 대신하여 올라와 9이닝 1실점으로 베스트8으로 가는데 직접 기여를 하였다. 봄에는 실패로 가득해지만 여름엔 성장하며 등번호 10번의 가치를 증명하고 또 증명했다. 

 

※ 경기 특별 호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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