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2.09

 

여행의 끝은 항상 아쉽다. 환상과 작별하고 현실을 마주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기에. 2월 9일 아침이 이런 마음이었다. 분명 아침의 공기는 상쾌해서 폐까지 시원함이 전달되는 느낌이었지만, 머리는 그렇지 않았다. 지난 3일이 너무 즐거웠기에, 환상속에서 벗어나기 싫어서 한숨만 여러번 내쉬었다. 와이프한테 전화를 해서 "돌아가기 싫어~"라고 투정 부렸더니 "다음에 우리끼리 같이 오면 되자나~"라고 타일러 주는데 그새 이런 말 한마디에 마음이 풀어졌다. 

 

한조몬역 근처에 있는 허름한 소바집에서 돈까스 카레와 소바로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70대 전후의 오너라고 생각되는 사장님과 비슷한 동년배 손님이 전부였다. 맛을 기대한 건 전혀 아니었지만 기본적인 응대나 그런 것들은 전혀 되어 있지 않아서, 오히려 눈치를 봐야하는 느낌이었다. 나중에 구글 평점이랑 리뷰를 보니 역시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기본적인 맛은 좋지만 접객 관점에서는 손님이 불편함을 많이 느끼는 곳이라는 평이 대부분. 

 

 

 

체크아웃을 한 뒤, 택시를 타고 도쿄역으로 이동했다. 원래 계획은 나리타 익스프레스를 타고 나리타 공항으로 가기. 그런데 1300엔으로 공항버스를 탈 수 있다고 해서 버스를 선택했다. 더 이상 현금을 쓰기 싫어 스이카 충전을 했는데, 뭔가에 홀린것처럼 스이카로 탑승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불쑥 들어 현금을 내고 티켓을 샀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버스를 기다리는데 아뿔싸, 스이카로 버스를 탑승할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버렸다.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돌아갈 때가 되어서 마음이 풀린걸까, 이런 실수를 안하는데 말이다. 스이카에 충전한 금액은 다음 여행 때 쓰는 것으로 하고 티켓을 내고 빈자리에 앉았다. 1300엔이라는 저렴함은 좋지만 버스가 매우 컴팩트해서 신주쿠에서 타던 공항버스와는 차이가 있었다. 운영하는 회사의 차이겠지만 옆사람과 거의 붙어서 가야한다는게 은근히 불편했다. 

 

1시간 정도 지나, 나리타 공항에 도착했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여정이라는 생각이 순간 스쳐 지나갔다. 이제는 익숙해질대로 낯설지 않은 이곳. 오랜만에 아시아나 항공을 타기에 이번에는 스카이팀 본진이 위치한 북쪽 윙이 아닌, 스타얼라이언스 본진이 모여있는 남쪽 윙을 이용했다. 확 트인 공간과 밝은 채광이 북쪽 윙과 비교될 정도이다. 아무래도 스타얼라이언스 회원 중 하나인 ANA 항공 영향이 큰 듯 싶다. 간단히 체크인을 마치고 (후지산이 보이는 좌석으로 이미 사전 배정을 해두었지), 지체할 것도 없이 패스트트랙을 통과했다. 항상 주장하는 것이지만 한국에도 노약자, 임신부 등 이외에도 특정 등급 이상 고객 또는 클래스 이상 탑승자에게도 패스트트랙을 제공해야 한다. 

 

 

 

CIQ를 마치고 ANA 항공 라운지로 향했다. 나리타 공항 1터미널에는 총 4개의 라운지가 있는데 북쪽 윙에 위치한 대한항공이 운영하는 스카이팀 라운지, 남쪽 윙에는 ANA 항공이 운영하는 ANA 항공 라운지, 그리고 이곳을 허브로 삼고 있는 유나이티드 항공이 운영하는 유나이티드 라운지가 있다. 유나이티드 라운지도 사용 가능하였지만, 몇몇 후기를 보니 ANA의 그것보다 별로라고. 오래전에 ANA 항공 라운지를 이용했을 때, 기대 이상으로 만족한 경험이 있어 오랜만에 ANA 항공 라운지를 이용하기로 했다.

 

스카이팀 라운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질적인, 양적인 면에서 마음에 들었다. 아무래도 스카이팀에 일본 국적 FSC가 없다보니 북쪽 윙의 일부 구역만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반면, ANA 항공 라운지는 우선 공간적인 명에서 매우 넓어서 좋았다. 게다가 제공하는 음식도 수준급으로 서비스 되다보니 자연스레 아시아나 항공의 존재감을 깨닫게 된다. 빠르면 1-2년 이내에 아시아나 항공이 사라질 예정인데, 이렇게 된다면 스타얼라이언스의 기타 항공사를 이용하지 않는 한 나리타 공항에서 이러한 수준급 서비스를 경험하는게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원래 많이 먹는 편은 아니지만 라운지를 즐기기 위해 생맥주를 비롯해서 각종 먹을 것을 바리바리 챙겼다. 창밖으로 보이는 비행기 이착륙을 바라보며 지난 3일간의 행복한 순간들을 추억하고 있는 순간, 옆에 앉아 있던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분들이 짐을 챙겨 일어나는게 시야에 들어왔다. 아버지와 아들 같은 느낌이었다. 같이 여행을 왔나보다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려 했는데 우연찮게 손목으로 시선이 향하는 순간, '우정 팔찌'를 차고 있는데 눈에 들어왔다. 분명 스위프티라는 확신이 생겨, 기쁜 나머지 나도 모르게 혹시 스위프티냐고 물어보았다. 그 사람들도 옆에 앉은 낯선 사람이 갑자기 질문을 하니 당황스러운 모습을 보이다가 그렇다고 답을 해주셨다.

 

나도 모르게 흥분이 되어 그들이 가야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것저것 이야기를 꺼냈다. 나도 스위프티다, 2월 7일에 콘서트에 갔었다, 우정 팔찌보고 스위프티라 생각되어 반가워 말을 걸었다, 나도 우정 팔찌 주고 싶다고 말하며 우정 팔찌를 건냈다. 갑작스럽게 우정 팔찌를 주는 상황이 되니 상대방은 급 놀라면서도 웃으면서 받아줬다. 그리고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길래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자기네들은 중국 베이징에서 왔다고 반갑다고 말을 해줬다. 5분도 채 안되는 순간이었지만, 여행의 마지막까지 스위프티로서 행복함을 느낄 수 있어 좋은 기분이었다. 

 

 

 

 

탑승 시간이 가까워져 라운지와 작별의 인사를 고하고 게이트로 이동했다. 게이트 번호는 분명 두자리수인데, 새틀라이트 건물에 있다고 하길래, 무작정 아래로 계속 이동했다. 가까운 줄 알았는데 지하까지 계속 내려가더니 이번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무빙워크를 타고 이동했다. 탑승 마감 시간은 가까워져 가는데 지하 터널은 끝이 보이지 않아 초조해지다보니 나도 모르게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5분 정도 더 갔을까, 이제 터널은 끝이 보이니 살짝 한숨이 놓였다. 그래도 아직 게이트는 보이지 않으니 스퍼트를 올린다. 터널의 끝은 에스컬레이터였다. 정신 없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저 먼곳에 내가 가야할 게이트가 보였다. 분명 시간에 맞춰서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보다. 보딩 패스 확인을 하고 비즈니스 클래스로 입장하니 따뜻한 미소를 지은 승무원이 자리로 안내해줬다. 이제서야 마음이 놓였다. 혹시나 비행기 못탈까봐 걱정했는데. 

 

 

 

 

 

활주로까지 이동한 비행기는 금새 이륙을 하였다. 후지산을 보고 싶어 (수없이 봤지만) 일부로 좌측 좌석을 선택하였건만, 구름이 가득껴서 이번 여행에서 후지산을 보는건 어렵다고 생각이 들었다. 분명 도쿄를 출발할 때는 구름 한점 없는 맑은 날이었건만, 나리타 도착하고 나서는 비와 구름으로 가득해져버린 회색빛 하늘에 야속함이 살짝 들기도 하였다. 그래도 나리타 공항만큼은 뚜렷하게 보여 좋았다. 그리고 도쿄 도심 상공을 지나면서 보이는 조그맣게 보여지는 건물들을 보며 3일간의 조각들이 마치 영화 필름처럼 스쳐 지나갔다. 작별 인사를 고해야지. 안녕 도쿄. 다음에 또 올게. 

 

 

 

24.02.08 

 

 

창문으로 스며드는 햇빛에 눈이 떠졌다. 아직도 공연 휴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분명 어제 다녀왔는데, 맘껏 즐겼는데도, 행복했는데도,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갑작스럽게 오늘 공연을 가는 사람들이 부러워진다. 공연 분위기에서 빠져나오기 싫어서 테일러의 음악을 들으면서 누워있었다. 오늘은 일정이 없어서 이런 여유를 부리는거다.

 

도쿄의 아침은, 항상 올 때마다 느끼지만, 청량함이라는 단어가 가장 어울리는 듯 싶다. 적절한 따뜻함과 쌀쌀함이 만들어낸 조화라고 해야하나. 발걸음이 가벼워져 어디든 달려갈 수 있을것만 같았다. 분명, 미세먼지가 없어서 그런거다. 아니면 도쿄를 너무나도 좋아해서 도쿄 바이브를 제대로 즐기고 있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날의 아침은 YOASOBI '群靑'을 꼭 들어야만 했다. 

 

 

 

가보고 싶은 카페가 있어, 오모테산도역에서 시부야역 방향으로 하염없이 걸었다. 걸어가는 도중 'United Nations University'가 눈에 들어왔다. 대학원 때 UN 인턴을 마치고 UN뽕으로 가득 차 있었을 땐 UN 건물, 표식만 봐도 좋아했었다. 그때는 지인 찬스를 사용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 구경도 하였는데, 지금은 현실을 살아가는, 다시는 찾을 수 없는 오래된 기억의 일부분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디선가 'Note Coffee' 글을 보고 인상이 깊었던 나머지 도쿄에 간다면 꼭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렇게 오전에 일찍 오게 되었다. 카페 간판이나 표시가 없어서 여기가 카페 맞아?라고 생각할 정도로 어리둥절했는데, 문을 열고 두근두근하면서 내려간 카페는 슈퍼 멋진 공간이었다. 토요일 오전 11시라 사람이 많을까 우려스러웠는데, 나보다 일찍 온 손님 1명을 제외하고는 사람이 없었다.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인 히말라야 커피와 초콜릿 케이크를 주문했다. 과하게 달지 않고 진해서 좋았다. 멀리 떨어지지 않은 활기찬 시부야와는 전혀 반대의 느낌, 그래서 더욱 마음이 들었다. 이곳에 있었던 1시간 동안 단 한명의 사람도 오지 않아서, 먼저 와 있던 분과 이곳을 렌트한 느낌이었다. 이곳에 데이트 상대와 오게 되면 참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고독만이 가득한 카페를 채우는 재즈 음악이 편안해서, 좋은 커피와 함께 음악을 즐기며 상대방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우아함이 여기를 더욱 매혹적으로 만들어주는 듯 싶었다. 다음에 도쿄에 온다면, 이곳은 다시 꼭 와야지. 

 

 

 

 

카페를 뒤로하고 시부야의 레코판으로 향했다. 꼭 사고 싶었던 LP가 있어, 다시 한번 보고 구매 결정을 내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1999년 발매 싱글  'ウラBTTB'를 이틀전 왔을 때 발견했을땐 너무 좋았다. 절판이 되었고 LP라는 것 때문에 중고 시장에서 높은 가격대로 형성된 상태인데, 사카모토 류이치의 사망으로 인해 가치가 더욱 올라가 이때 안사면 나중에는 정녕 못살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발매 당시에 1,500엔이었던 (세금 제외) 가격이 지금은 12,800엔까지 되었으니 어머! 이건 꼭 사야해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몇번이나 집었다가 놓았다가를 반복했다. 마음에서는 지금 안사면 후회할거야라고 사라고 말하는데, 머리속으로는 이번달 카드값 생각해라고 말리니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다음에 왔을 때 'ウラBTTB'가 있을 거라는 장담을 못하기 때문에 더욱 더 망설였다. 테일러 스위프트 에라스 투어 티켓은 프리미엄이 붙었어도 망설임이 없었는데, 심지어 더 비쌌는데도 불구하고, 결국 구매를 포기하였다. 다음에 도쿄에 왔을 때 있기를 바라며. 정 안되면 메루카리라도 뒤져야지. 흑흑. 현생을 사는 인생이라 다음 기회를 꼭 잡아야지. 

 

 

 

레코판에서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와세다 대학으로 움직였다. 대학 탐방이라는 묘미도 있지만, 2021년 오픈한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에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루키의 커다란 팬은 아니지만, 한번 쯤 하루키 세계관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가 있을거 같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모든 작품 이외에도 하루키가 즐겨 들었던 재즈 음악을 들을 수 있고, 하루키의 서재를 간접적으로나마 볼 수 있고, 하루키의 소설에서 즐겨마셨던 커피도 마실 수도 있는, 하루키의 세계관이 집대성되어 있는 공간이라하니 안가볼 수 없었다.

 

와세대 대학은 워낙 유명하니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일본 최초 사립 대학 중 하나이고 일본 뿐만 아니라 글로벌에서도 뛰어난 명성을 지녔으니 학교 분위기를 맘껏 느껴보고 싶었다. 평일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캠퍼스 주변은 조용하기만 했다. 게이오 대학을 갔었을 때는 전혀 이렇지 않았다. 심지어 그때는 주말이었는데도. 학교 행사라도 있나 싶어, 후문 근처에서 대학 관계자분께 물어보니, 이번 주는 와세다 대학 부속 고등학교 입학 시험 기간이라고 말씀을 해주셨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에는 사전 허가를 받은 사람들 이외에는 (학교 관계자) 외부인 출입이 전면 통제 된다고 덧붙여서 말해주셨다. 순간, 머리를 몇대 맞은 느낌이었다.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입학 시험 기간인줄 전혀 몰랐으니. 아쉬움이 매우 컸지만 다음에 오면 되자나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은 비롯 못갔지만, 후문 거리에서 5분 거리에 있는, 하루키가 자주 다녔다는 재즈 킷사 'Jazz Nutty'에 왔다. 전혀 킷사처럼 보이지 않던 곳. 간소한 판자를 대놓은 벤치 시트가 시선을 끈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니, 마스터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로 안내해주셨다. 맥주를 마실까하다 다른 재즈 공연때 맥주로 할테니 커피로 결정하였다. 주문을 하면 주전부리로 킷사 이름과 어울리는 아몬드와 비슷한 견과류를 주셨다. 맛있었다. 

 

대학가 근처임에도 대학생보다는 중장년의 재즈 매니아 분들이 분위기를 즐기고 계셨다. 양쪽에 놓인 대형 스피커로 인해 들리는 재즈의 밀도가 공간을 가득채우는 깊어지는 느낌이었다. 분명, 마스터가 스피커를 세팅할 때부터 위치나 각도에 대해 많이 고민하시지 않았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더욱 놀라웠던 건, 출입문을 닫으면 밖으로 절대 음악 소리가 새어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섬세함 덕분이랄까, 영화 위플래쉬에서 셰이퍼 음악 스클의 빅밴드 공연을 1열에서 관람하는 듯 했다. 

 

박찬욱 감독의 중후한 느낌을 뽐내는 마스터, 아오키 이치로(青木一郎)상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여쭤보았다. 다른 손님이 나오지 않으면 괜찮다고 하셔서 최대한 사진을 많이 담아 보려 했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Love For Sale, Milt Jackson Quartet 연주를 듣자니 시간이 멈춘 듯 했다. 마스터가 자신의 취향을 명확하게 안다는 것과 그 취향을 오랜 시간 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결과가 '나만의' 취향으로 가득찬 공간으로 된 것이 멋있고 부러웠다.

 

나오면서 마스터에게 "한국에서 꼭 와야한다고 들어 이렇게 찾아왔느데 기대 이상으로 만족했습니다. 멋진 공간과 음악에 반해 한동안 잊지 못할거 같습니다. 다음에 다시 꼭 오겠습니다"라고 말씀 드렸더니 정말로 감사합니다라고 화답해주셨다. 다음 도쿄에 온다면 이곳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지.

 

 

 

간단히 저녁을 먹고 도쿄에서의 마지막 일정인 'Jazz Spot Intro'로 향했다. 다카다노바바역 근처에 위치. 7시쯤 도착했는데 이미 만석. 마스터가 간신히 마련해준 자리에 착석해 즉흥 연주를 감상했다. 1975년에 문을 연 'Jazz Spot Intro'에 대해 설명을 하자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랜다. 매주 화, 수, 목, 일요일 저녁 6시 30분부터 자정까지 날 것의 라이브 재즈 공연을 보고 듣고 즐길 수가 있다. 이것만으로 부족하다 싶어,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도쿄에서 최악이라 여겨지는 출퇴근 시간대의 사이쿄선 혼잡도를 뛰어넘는 인구 밀도, 날것의 그 자체의 매력인 잼 세션, 그렇지만 재즈에 대한 뜨거운 만큼은 도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 연주자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즐기는 여러 나라에서 온 관람객들. 이것들이 조화를 이루니 'Jazz Spot Intro'의 매력이 더욱 돋보이게 된다. 

 

악기만 있다면 누구라도 연주가 가능한 마법사가 되는 장소라는 표현이 정말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적, 나이, 성별, 인종에 상관없이 악기 하나만으로 재즈를 좋아하는 이유만으로 멋진 공연이 진행되고, 새로운 세션들의 합주가 멋진 바이브를 만들어내는 순간, 이곳의 매혹에 빠졌다. 하모니카 하나만으로 라이브 세션을 하셨던 노년의 신사의 연주는 중간중간마다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를 이끌어 냈다. 이렇게 멋질 수가. 어떤 말로도 그 시원함을 표현할 수 없었다. 도쿄에서 아름다운 보석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수십번 도쿄를 다녀봤지만, 이렇게 가슴을 뛰게 만드는 곳은 없었던 거 같은데 이제서야 여길 오다니. 단순히 알고 있는 장소가 아니라 '알고 있으면 좋은 장소'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였다. 도쿄에 다시 온다면 무조건 하루는 이곳에서 보내야 하는 나의 필수 코스가 될 것 같다. 

 

 

 

 

2시간 정도 정처없이 시간을 보냈을까, 연주에 빠져 정신을 차리니 호텔로 돌아가서 짐을 챙겨야 할 때가 왔다. 다음에 또 올테니 조그마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바에서 나와 다시 호텔로 향했다. 스이카 카드를 충전하기 싫어 (거의 다 써서) 남은 동전을 긇어모으니 티켓을 살 수 있을 정도는 된다. 스이카만 쓰다가 이렇게 쓰니 낯설기는 하다. 3일 동안 어쩌다 보니 음악 투어라는 컨셉으로 다녔는데, 대만족이었다. 테일러 스위프트, 블루 노트 도쿄, Jazz Nutty, Jazz Spot Intro 등 음악과 관련된 곳만 다니니 도쿄 여행이 더욱 재미있고 즐거웠다. 벌써부터 다음에는 어디를 갈지 벌써부터 고민하고 있다. 

 

 

 

호텔에서 바라보는 밤의 도쿄가 정말 아름다웠다. 

 

정확히 30일 남았다. 녹황색사회 (緑黄色社会)와 세카이노 오와리(SEKAI NO OWARI) 콘서트까지.

 

5월 30일에 나고야에서 『緑黄色夜祭 vol. 12』 콘서트를 보고, 다음날 도쿄로 이동해 6월 1일에 사이타마에서 세카이노 오와리 深海』를 보고 귀국하는 일정이다. 이게 다 테일러 스위프트 에라스 투어 이후 생긴 콘서트 병이다. 

 

어차피 내한 공연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되고(SEKAI NO OWARI는 그래도 2017년 내한 때 갔었음 후후), 설마 공연이 성사되더라도 경쟁률은 어마어마하게 치열하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니 차라리 일본을 가는게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청량한 느낌의 여름 곡 'サマータイムシンデレラ' 라이브도 기대되고, 동화 같은 '眠り姫'를 다시 듣는 것도 설레고. 하루코 누님의 기타치는 모습에 반할거 같고, 사오리 사마의 피아노에 빠질거 같고. 

 

이제 한달 남았는데 미칠듯이 기다려진다. 제발 시간아 빨리 흐르렴. 

 

 

' 緑黄色社会 - サマータイムシンデレラ'

 

 

'SEKAI NO OWARI - error'

 

 

11월에는 YOASOBI 돔투어도 간다. 생각만해도 행복해진다. 

 

8개월만에 돌아온 여름 고시엔 소식. 날씨가 점차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지니, 어느새 여름의 야구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대회 4개월을 남기고, 일본 고교야구 연맹에서는 '2부제'를 도입한다는 발표를 하였다. 

 

 

 

2부제를 도입하게 된 가장 큰 배경으로는 '폭염'이다. 2023년 고시엔 기간 동안 재해급 더위로 인해 일부 선수들이 열사병 증상을 호소하여 고시엔 역사상 처음으로 5회가 끝나고 10분 정도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쿨링 타임' 제도가 시행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수들과 관객들의 안전을 위해 이번 대회를 시작으로 경기를 오전과 오후로 나누는 '2부제'를 시범 실시하기로 결정이 되었다. 

 

2부제의 내용은 즉슨 다음과 같다.

 

1. 개막일 포함 첫 3일간, 그리고 준결승전과 결승전 경기를 오전과 오후로 나눠 진행

2. 개막일 당일 

  - 개막식: 기존 오전 9시에 시작하던 개막식을 오전 8시 30분으로 앞당김 

  - 경기: 4경기에서 3경기로 단축. 제 1시합은 오전 10시에 시작하고 경기가 끝나면 휴식 진행. 오후 4시부터 나머지 시합 진행

3. 대회 2~3일: 제 1시합과 제 2시합은 오전 8시부터 연속으로 진행. 이후 휴식을 취하고 오후 5시부터 제 3시합을 시작 

4. 준결승전: 준결승전 1차전과 2차전은 각각 오전 8시 35분, 10시 35분 시작. 

5. 결승전: 기존 오후 2시에 시작하던 경기를 오전 10시로 앞당겨서 시작. 

 

 

 

2023년 7월부터 도입에 대한 논의가 수면에 떠올랐지만, 관객의 안전한 입장과 퇴장(특히 학교 응원단)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적용은 무리라는 판단이 나와, 따라서 올해 시범적으로 도입한다고 한다. 작년 8월 고시엔 기간 동안 니시노미야 지역의 평균 낮 온도는 34도였고, 일본 기상청에서는 야외활동 자제 주의보를 내렸다. 올해도 비슷하거나 더욱 심각한 폭염이 예상되고 있어 일본 고등학교 야구 연맹은 이와 같은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다만 전면 도입은 충분한 데이터가 쌓이지가 않아 개막일 첫 3일 이후에 진행되는 경기들은 기존과 동일하게 오전 8시 시작, 하루 4경기 진행을 유지하기로 하였다. 올해 데이터를 바탕으로 내년에 전면 도입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 한다. 

 

이미 2부제를 도입한 대회들도 있다. 초등학교의 고시엔이라 불리는 "전일본 학교 어린이 야구 대회(全日本学童軟式野球大会)"는 어린이들의 안전을 위해 오래전부터 오전에 2경기, 오후에 2경기로 나눠 2부제를 시행 중에 있다. 그리고 2018년 여름 고시엔 교토부 대회는 더위를 피하기 위해 처음으로 2부제를 지역예선 8강 부터 도입하였다.  제 3시합부터 오후에 시작하였고, 당시 일부 제 4시합 경기는 밤 10시 가까이가 되어 끝났다고 하니, 2부제에 대한 장단점은 이번 대회에서 많이 참고를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부에서는 교세라돔을 이용하는 것도 대안으로 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한신 고시엔 구장이 지닌 역사적인 가치, 야구 소년들의 로망이 커서 교세라돔을 고시엔의 대체 장소가 되는 것은 아직까진 시기상조로 보이는 듯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시엔도 변한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바탕으로 2018년부터 조금씩 더위로부터 선수들을 지키고자 하는 야구 연맹과 학교 관계자들의 노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바뀌는 올해 경기 규칙이 과연 어떠한 결과를 보여줄 지 많은 기대가 되는 편이다. 2024년 8월 7일, 여름 고시엔 기대해주세요! 

 

2024.02.07. 여행 2일차. 

 

 

시간을 보니 벌써 4시다. 숙소에 돌아왔을 때가 2시반이었고, 편히 쉬면서 3시에 발표된 도쿄돔 좌석을 확인하고 공카에서 이런저런 반응을 보다보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나갔다. 도쿄돔 좌석이 애니패스에 나타난 순간, 공카 반응이 매우 흥미로웠다. 도쿄돔 좌석이 어디에요라는 일반적인 질문부터 이 좌석 별로일까요, 어떤 의미인지 잘 이해가 안간다는 등 여러 반응으로 가득했다. 한국에서도 많은 스위프티들이 도쿄돔에 왔으니 이런 반응이 나온다는 건 자연스러웠다. 

 

 

몸을 최고의 컨디션으로 만들었으니 이제 콘서트를 즐기러 가야지. 원래 계획은 지하철을 타고 미타선의 스이도바시역에서 내리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그렇게 가려니 귀차니즘 발동하여 호텔에서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도쿄돔에 가까워질수록 창밖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코스튬이 점차 변하는게 보였다. 테일러와 함께 하고 싶어, 테일러의 시간을 즐기고 싶은 것만으로도 즐거워하는 스위프트의 모습을 보니 나도 가슴이 점차 두근두근거렸다. 

 


 

에라스 투어의 2023년 마지막 콘서트가 끝나고, 11월부터 1월까지 약 3개월동안 테일러 스위프트에게는 많은 일이 있었다. 먼저 타임지가 선정한 '2023년 올해의 인물'이 되어 타임지 커버를 장식하였다. 2017년에도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었긴 당시에는 5명의 다른 여성들과 공동 선정이 된 것이었고, 자신의 본업이 아닌 다른 활동이 선정 배경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연예인 최초로 자신의 본업으로 되었기에 그 의미가 더욱 컸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2024년 에라스 투어의 재개를 앞두고 열린 그래미 시상식에서 역사상 최초로 4번째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했다. 그전까지는 시상식 최초로 올해의 앨범상을 세 번 수상한 역사상 네 번째 가수이자 최초의 여가수 기록을 가졌는데 스스로가 자신의 기록을 갱신하며 음악 역사의 새로운 페이지를 만들었다. 어떤 의미냐면 불멸의 아티스트라 할 수 있는 스티비 원더, 프랭크 시나트라, 폴 사이먼도 3번밖에 하지 못한 올해의 앨범상에 그녀는 '1'을 더했다는 것이다. 앨범이 출시될 때마다 그녀는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넘으며 상업적으로도 음악성으로도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사로 잡는 기염을 선보였고 이번 수상을 한 앨범 <Midnights> 앨범은 그 정점에 있는 앨범이었으니 그녀의 수상에는 전혀 이견이 없었다고 본다. 

 

 

 

이번 그래미 시상식에서 그녀는 자신의 정규 11집 앨범 <THE TORTURED POETS DEPARTMENT>의 발매 예고를 깜짝 발표하였다. 마치 정규 10집 앨범 <Midnights>의 발매 예고를 MTV VMA에서 Video of the Year를 받으며 최초로 깜짝 발표했던 것과 비슷했다. 테일러의 수상에 기뻐하고 있던 나를 비롯한 스위프티들은 그녀의 깜짝 발표에 기절초풍을 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2022년 10월에 <Midnights> 앨범이 발매되고, 2023년 3월에 에라스 투어가 시작했으니 따지고 보면 1년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투어를 진행하면서 앨범 제작을 했다는 것이다. 이번 앨범 수록곡이 31곡이니, 소처럼 일한다라는 말이 무엇인지 테일러를 통해 증명이 되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마지막으로 테일러의 새로운 남자친구인 '트레비스 켈시'가 뛰고 있는 캔자스 시티 치프스가 슈퍼볼에 진출을 확정하였다. 그때부터 미국 언론들은 테일러가 과연 도쿄 공연을 끝내고 슈퍼볼이 열리는 라스베가스에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내용을 놓고 주요 뉴스로 다뤘다. 메이저 언론들 이외에도 유튜버, 커뮤니티 등에서도 많은 언급이 있을 정도로 캔사스시티 치프스가 슈퍼볼에 진출했다는 것보다 테일러의 이야기가 더욱 많은 관심을 끌었다. 이에 대해 주미 일본 대사관은 공식 트위터를 통해 공식 성명을 발표할 정도였다. 간략히 말하자면 12시간의 비행 시간과 17시간의 시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있게 말하는데, 슈퍼볼이 시작하기 전에 라스베가스에 도착할 것이다라는 내용이었다. 센스있게 Speak Now, Fearless, Red를 사용한 것은 좋았다지. 한 나라의 대사관이 움직일 정도이니 테일러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믿겨지지가 않을 정도다. 

 

 

 


 

 

택시를 타고 도착한 도쿄돔 시티는 이미 스위프티들로 가득했다. 형형색색의 코스튬을 입고 돌아다니는 그대들을 보면서 역사적인 현장에 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도쿄를 가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반신반의했는데, 확고하게 결정을 내려서 도쿄에 온게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결정을 한 나를 정말로 칭찬하고 싶다. 하하하하하. 굿즈를 살까도 했지만, 대기에만 거의 1시간 30분 가까이 걸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깔끔하게 포기했다. 굿즈 사려고 했다간 공연을 제대로 보지 못할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쿄돔 앞은 이미 축제 현장이었다. 표현하자면 전세계 스위프티들의 5년만의 정모라고 할 수 있을거 같다. 아시아의 스위프티들은 어떠한 수단을 써서라도 도쿄를 왔야했었고 (나를 포함해서), 미국을 비롯해서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 등 서구권 스위프티들도 도쿄로 몰려들었다고 하니 뉴스로만 보았던 에라스 투어의 파급력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처음 보았을 뿐인데 테일러 스위프트라는 공통점 하나만으로 친해질 수 있었던 곳이 여기지 않았나 싶었다. 서로 말도 통하지 않지만 가까이 가서 '우정 팔찌'를 교환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감정을 느낀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이었다. 지구 평화가 여기서 이루어지는구나. 정말 테일러 스위프트는 우주 대통령이라는게 느껴진다.

 

공카에서 만난 몇몇 한국 스위프티들을 공연 시작 전에 만났다.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낯선 느낌은 전혀 없고 오랜만에 본 친구처럼 '우정 팔찌'를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교환하고, 테일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주고, 정신없이 이런저런 잡담을 하다보니 공연은 시작하지 않았는데도 마치 공연 중인 것처럼 텐션은 매우 높아졌다. 빨리 공연을 보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공연까지는 이제 1시간 남짓 남았다. 공카분들과는 재미있게 즐기라고 서로 인사를 한 뒤, 입장 게이트로 이동했다. 보안이 까다로울 줄 알았는데 생각한 것보다는 그렇지 않았다. 애니패스 앱을 켜서 QR 코드로 본인 확인을 한 뒤, 별도의 짐이 있다면 따로 검사하는 것 이외에는 입장의 난이도는 어렵지 않았다. 드디어 도쿄돔에 입성이구나!!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홈구장이지만, 나에게는 테일러와 함께하는 공간이다. 

 

 

 

드디어 공연장에 들어왔다. 벌써 자리는 많이 차여 있었다. 저 멀리 VIP석도 사람들로 바글바글. 처음에는 S석이라 시야제한석일까봐 걱정이 앞섰는데, 그렇게 나쁜 자리는 아니다. 아주 또렷하게 테일러를 보는 것은 못하지만 공연 무대를 넓게 볼 수 있으니 이거라도 만족할 따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VIP 구역에 있는 사람들이 부러운 것은 사실이었다. 욕심을 조금만 더 내볼껄. 이리저리 사진을 찍고, 계속 떨리는 마음으로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필시 나 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닐까.

 

6시가 가까워지자, 대형 스크린에 보여지고 있는 시계의 숫자가 줄어들었고 6시가 되는 순간 공연장의 모든 빛이 꺼지더니 스크린이 양쪽으로 갈라지면서 'Miss Americana' 음악이 흘리면서 댄서들이 화려하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왜 비명을 질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좋아서 그런거 같았다. 그리고 댄서들 가운데서 테일러가 등장하는 순간, 도쿄돔은 환호, 감탄, 기쁨의 소리로 가득찼다. 그리고 대망의 'Cruel Summer'이 흘러나오는 순간 또 다른 비명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영화로 이미 보고 와서 기분이 덜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그냥 좋아서 괴물 같은 내 목소리지만 테일러가 부를 때 따라 불렀다.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인데 공연장은 이미 절정의 순간이었다. "Hello, Tokyo!"라고 말할 때는 도쿄돔 무너지는 줄 알았다. 

 

20대 때는 수많은 공연을 다녔지만 나이가 들다보니 이러한 공연을 가는 것도 낯설었다. 하지만 큰 마음을 먹고 여기에 오니 정말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마치 자신의 학창시절로 돌아간 듯 공연을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있으면 꼭 가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3시간 동안 쉬지 않고 열심히 공연하는 테일러를 보며 내 생애 언제 이런 공연을 다시 갈 수 있고 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정말 테일러의 체력이 대단하고, 자신의 무대에 매우 열정적인 모습을 보며 테일러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에 눈물이 흘렀다.우리의 윗세대가 비틀즈, 마이클 잭슨의 시대를 살았더라면 나는 테일러의 시대를 경험하고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앞으로 이런 기회는 다시 없을 것이라 생각하니 정말 잘 왔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티켓 가격도 전혀 아깝지도 않았고 그 이상의 만족을 얻었으니까 뭐가 부족하랴. 데뷔 앨범부터 최신 앨범까지 10개의 시대를 관통하며 같이 테일러의 팬으로서 있었구나라고 새삼 추억이 소록소록 들었다. 나 정말 여기 온거 잘한거 같아, 스스로에게 칭찬해줘야지. 

 

 

 

 

 

 

 

 

마지막 곡 'Karma'가 끝나며 컨페티가 휘날리는데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3시간이 짧게만 느껴졌다. 더 해줘도 좋은데, 이대로 보내기 아쉬울 정도였다. 괜히 하루 공연만 티켓을 샀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카에서 4일 공연 내내 간다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나도 그럴게 할 걸. 아쉽다. 내 인생 언제 다시 테일러의 콘서트를 갈 수 있는 순간이 다시 올까. 앞으로 몇 달간은 오늘 하루의 추억으로 버티고 오늘을 기억하고 힘을 내면서 살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굿즈를 아니 살 수 없었다. 도쿄돔에서 빠져 나오는 사람들, 굿즈를 사기 위해 줄서는 사람들, 도쿄돔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 사람들 등이 한꺼번에 모이니 정신이 없었다. 일반 머챈을 사기에는 긴 줄을 기다리는게 자신이 없어서 (이때 어느 정도 체력이 망가진 거 같은 느낌) 타워레코드 굿즈라도 사야지하고 줄을 섰다. 그나마 짧은 줄이었다. 15분쯤 줄을 서서 기다리니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뭘 살까 고민을 하는데 뒤에서 사람들이 기다리니 얼른 빨리 골라야했다. 그래서 결국 고른것은 'Midnights' 앨범 LP 2장! 어차피 살거, 여기서 사는게 낫겠지.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도쿄 공연이 끝나고 몇일 뒤에 나온 일본 뉴스를 보니, 약 3,000억원에 가까운 경제효과가 4일간 발생했다고 한다. 전년도 동기간 비교해서 22만명의 방문객이 증가를 했고, 도쿄도 한정으로 세금이 200억 가까이 추가로 증가했다는 것은 덤이고. 이러니 각 나라 정치인들이 자기 나라에서 공연을 해달라고 요청하는게 십분 이해가 갔다. 나같아도 그럴 듯.

 

 

 

 

정신 없이 갑작스럽게 온 도쿄였지만 정말정 단 한톨의 먼지만큼의 후회도 들지 않은 공연이었다. 이제 5월부터 유럽 공연이 시작되는데, 호시탐탐 기회를 노려야지. 내한도 해줬으면 좋겠다. 몇배의 가격을 내더라도 후회하지 않을테니 제발제발 꼭! 공연의 여운에 빠져서, 행복의 극치를 느껴서 도쿄에서의 두번째 밤은 쉽게 잠이 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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