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ank you the most generous thoughtful loving fans on the planet. 
This is all because of you and all for you. 
(지구상에서 가장 다정한 팬 여러분께)"

 

 

우리는 지금 테일러 스위프트 시대에 살고 있다. 전 세계가 테일러 스위프트 'The Eras Tour'에 열광하고 있다. 각 나라 정치인들이 직접 편지를 보내 자국에서 투어가 진행되기를 희망한다고 전하고, 투어가 열리는 도시에서는 임시로 도시 이름을 테일러와 비슷하게 변경하는 등, 가히 테일러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이다. (제발 지배해줬으면) 

 

테일러 스위트트의 이번 투어가 만들어내는 경제 효과는 가히 그 어떤 투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다. 누군가는 그녀의 투어를 올림픽, 월드컵, 슈퍼볼과 비교해야 한다고 하였다. 숫자로 표현하자면, 2024년 11월 마무리 예정인 투어의 예상 수익은 10억 달러 이상. 지난 7월 8일, 스웨덴에서 끝난 엘튼 존의 'Farewell Yellow Brick Tour'가 기록한 9억 3천만 달러의 수익을 가뿐히 뛰어 넘을 것이라 월가의 애널리스트들은 전망한다. 단순히 콘서트 수익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녀의 투어가 열리는 도시에는 수많은 팬들과 그들의 가족, 그리고 일반 관광객까지 방문하며 그로 인해 지역 경제가 살아나는 진정한 경제 효과가 발생하고 있다. 예를 들어, 투어의 첫 시작이었던 애리조나 글렌데일 지역의 상점들은 올해 초 열렸던 제 57회 슈퍼볼보다 더 많은 이익을 얻었다고 한다. 또한 보스턴에서는 콘서트가 시작되기도 전에 호텔, 레스토랑 예약이 끝났다고 한다. 그리고 미국 투어의 마지막을 장식한 LA에서는 총 6번의 공연이 열렸는데, 이 기간 동안 LA를 방문한 관광객이 약 42만명이고 인당 평균 1300달러의 소비가 발생하였다고 알려졌다. 여기에 더해 LA 지역의 GDP가 3억 2천만 달러가 증가했다고 LA 타임즈가 추정하였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행차가 지나간 도시에서는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의 경제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코로나때 무너진 관광 산업이 살아나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그녀가 가져다 준 경제적 축복 덕분에 호황을 누린 미국의 각 도시들은 이에 보답을 화끈하게 하였다.

 

 

 

미네소타 주지사는 그녀의 공연이 열렸던 6월 23일과 24일 이틀간을 'Taylor Swift Days(테일러 스위프트의 날)'로 지정하였고, 피츠버그 시장은 주말 한정하여 도시 이름을 'Swiftsburg'라 변경하고, 캔자스 시티 시장은 실제로 있는 'Swift Street'를 'Swift Street (Taylor's Version)'으로 바꿔버렸다. 워싱턴주의 천연자원부는 그녀를 '명예 지질학자'로 임명하는 한편, 플로리다 템파에서는 시청과 다리 곳곳을 빨간색으로 점등하였다고 한다. (세금으로만 73만 달러 수익이 들어왔으니 당연히 이정도는 해야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에서는 그녀를 '명예 손님'이라 지칭하고, 뉴질랜드 항공에서는 호주 투어를 가는 사람들을 위해 비행기 안에 특별 좌석을 마련하고, 편명도 그녀의 앨범 1989에서 따온 'NZ1989'로 바꿀 예정이라고 한다. NASA 고다드 우주센터에서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그녀의 앨범이 출시된 해에 맞춰서 촬영한 역사적인 우주 사진 10장을 개재하였다고 발표하였다. 이정도면 그냥 슈퍼스타가 아니라 지구 대통령이라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마이클 잭슨 이후로 이렇게 사랑받는 슈퍼스타가 누가 있었을까. 앞으로는 전혀 없을거 같다는 생각이다. 

 

이번 투어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블록버스터 투어'라 할 수 있다. 단순히 투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 문화적 · 사회적인 파급력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Eras Tour 하나만으로 57개의 공연이 끝난 현재, 2억 2,5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였다고 한다. 그녀가 진행하였던 5개 투어에서 기록한 수익을 다 합치더라도 지금 투어 기록을 뛰어 넘을 수 없다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것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아직 89개의 공연이 남아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전무후무한 지구 역사상 투어 신기록이 세워지는 것이다. 티켓 판매와 각종 굿즈 판매를 더하고 영상화 권리까지 가져가고 (테일러 스스로 제작사를 만들어버렸다), 2차 상품 판매까지 감안한다면 어마무시한 수익이 창출되는 것이다. 그것 뿐이겠는가. 관광업, 여행업, 패션업 등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산업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니 그녀 혼자만으로 지구 경제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음악적 권리를 지키기 위해 애플과 스포티파이를 굴복시켰고, 티켓마스터는 그녀에게 공식적인 사과를 할 정도로 정치권도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각국의 내노라하는 정치인들이 자국에서 투어가 열리기를 희망하고 있다.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는 테일러 스위프트에게 트위터를 통해 센스있게(테일러의 노래 가사를 응용한) 캐나다에서 투어가 열리기를 희망하였고, 테일러는 이에 화답하듯 밴쿠어에서 3번, 토론토에서 6번의 공연을 추가시켰다. 호주에서는 시드니와 멜버른에서 공연이 열릴 예정인데 그녀의 행차에서 제외된(?) 퍼스, 브리즈번, 아들레이드 주지사를 비롯하여 주요 지역 정치인들은 그녀의 방문이 무산된 것을 아쉬워하며 추가적인 공연을 요청하였다. 그녀의 광팬이라 할 수 있는 가브리엘 보리크 칠레 대통령은 직접 그녀에게 서신을 편지를 보내고 유튜브를 통해서 브라질, 멕시코, 아르헨티나에서만 열리는 남미 투어에서 칠레를 포함해주기를 간곡히 부탁하였다. 

 


 

 

그녀의 월드 투어 마차 행렬은 아시아에서는 일본과 싱가폴만을 간택하였다. 나름대로 한국도 매력적인 곳이었겠지만, 아무래도 공연할 장소가 없을 뿐더라, 음반 시장 자체가 상대적으로 작다보니 매력을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2011년 Speak Now 투어때 한국에 와준 그녀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국내 정치인들은 해외 정치인들처럼 센스를 발휘할 생각도 전혀 못하고 있으니 더더욱 아쉬움만이 클 뿐이다. 아예 테일러 스위프트가 누군지도 모를 인간들이 수두룩 하겠지. 

 

그나마 다행인건 CGV 독점으로 'Taylor Swift: The Eras Tour' 공연을 상영한 것 정도? 단 3일간이었지만 그것마저도 납득할 수 있었고 이해하고 행복할 수 있었다. 국내에서 본 사람은 5천명 내외.  그녀의 기념비적인 10집 앨범 <Midnight>가 발매되고, 그녀는 각 앨범을 테마로 삼은 The Eras Tour를 기획하게 된다. 거기에 영상화하겠다는 아이디어까지.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주요 대형 배급사들(소니, 디즈니, 파라마운드, 유니버설, 워너 브라더스 등)과 미팅을 진행했지만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결국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공연을 봐주기를 희망했고, 스스로 회사를 설립하고 미국 유명 영화관 체인 회사인 AMC와 협업하여 직접 배급하는 결정을 내렸다. 몇가지 조건(주말 상영, IMAX 상영 등)이 충족되면서 그녀의 영화는 전 세계적인 흥행을 거두었다. 진행 중에 있는 투어의 대흥행과 함께. 

 

 

 

<Lover> 앨범으로 시작한 투어. 올드 테일러의 귀환이자, 당시 연인이었던 (지금은 과거가 되버린) 조 알윈과의 사랑에 빠진 그녀가 표현하고 싶었던 모든 감정들이 고스란히 콘서트에서 볼 수 있어서,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시간을 되돌려 지금의 그녀를 만들어 준 <Fearless> 앨범 시대로 돌아갔다. 겁이 없었던 당당함으로 무장한 그녀가 혜성처럼 등장했던 그 시절로. 지금의 우리가 10-20대 어린 나이였을 때, 기타를 치며 컨트리 음악을 부르며 무대 위로 등장한 10대의 그녀를 처음 알게 된 그 시절. 10대의 테일러가 부르는 10대의 사랑 이야기가 아닌, 30대의 테일러가 부르는 10대의 사랑 이야기를 듣게 되니 색다른 느낌이었다.

 

■ Lover  

 

 

■ Fearless

 

 

 

과거의 향수에서 벗어나 펜더믹의 한 가운데서 예고도 없이 공개한 <evermore> 앨범 시대로 돌아왔다. 사람들과의 거리가 여전히 간격을 유지하고 있을 때, 17편의 서로 다른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며 언젠간 이 시절이 지나갈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토닥해주는 느낌이다. 'Champagne Problems'를 부르기 전, 테일러는 이 곡을 만들며 꼭 공연에서 들려주고 싶다고 말하였는데, 팬더믹으로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소파이 스타디움에서 이 노래가 끝나고 8분간의 기립 박수가 있었다고 하는데, 왜 그랬는지 알거 같았다. 나라도 분명 그렇게 했었을 것이다.

 

고요함과 차분함이 이어질거 같았던 무대는 순간 <reputation> 앨범으로 전환이 된다. 테일러의 모든 시절을 통틀어 가장 많은 질타와 조롱, 그리고 공격적이고 피로감을 불러 일으켰던 흑화된 테일러의 시기였으니까. 판매량으로는 그해 최고의 성적을 기록하였지만 평가로는 안좋았으니까. 그리고 케이티 페리와 카니에 웨스트와 있었던 각종 이슈들에 대해서도 정면 돌파를 선택한 그녀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더 이상 밝기만한 소녀가 아니에요라고 음악적으로 과감한 변신을 추구한 당시의 선택은 결국, 테일러 스위프트만이 좋은 상황이 되어버렸다. 결국은 'Don't Blame Me', 'Look What You Made Me Do'라는 걸출한 콘서트용 노래가 추가가 되어버렸으니까. 이렇게 고조될 것만 같았던 공연은 <Speak Now> 앨범으로 넘어가며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Enchanted' 한곡만 불렀지만 연보라색 드레스 하나로 공연장을 압도해버렸다. 과감한 연출력이다. 

 

 

■ evermore

 

■ Reputation

 

■ Speak Now

 

 

다시 흥을 즐겨볼까요?라고 말하면서 소파이 스타디움이 강렬한 붉은색으로 뒤덮이며 <Red> 앨범으로 전환이 된다. 컨트리 음악과 작별을 고하고 본격적으로 팝으로 뛰어드는 시기이다. 혹시 'Red'가 나올까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이번 세트리스트에는 포함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We are never getting back together'는 하나의 뮤지컬을 보는 것처럼 댄서들과 코러스와의 호흡이 유쾌하고 멋졌다. 왜 댄서들과 코러스들도 섹시하고 멋있는지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대망의 ' All Too Well (10 minutes version)'이 나오는 순간, 소파이 스타디움이 침묵에 빠졌다. 테일러의 팬이라면 가장 사랑하고 좋아하고 듣고 싶어하고 느끼고 싶어하는 노래니까. 개인적으로 2014년도 그래미 공연(링크)이 가장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테일러 버전이 더 마음에 든다. 앞으로 10분 버전만 주구장창 들어야지 :)

 

그리고 테일러의 디스코그래피에서 가장 평가가 좋은 <folklore> 앨범으로 빠져든다. 세계적인 봉쇄령이 내려진 2020년, 테일러가 겪은 감정의 변화들을 Betty, James, Augustine의 각자의 이야기로 풀면서 이야기를 전해준다. 팬더믹이 없었다면 절대로 나오지 못했을, 아니 설마 나왔다 하더라도 분위기가 달랐을법한 따뜻한 앨범을 오두막 컨셉의 무대에서 동화책을 읽어주듯 불러주었다. 압도적인 높은 선호도였던 Cardigan이 세트리스트에는 없었지만 Betty와 august(리뷰는 여기로)를 들을 때는 눈물이 날 뻔했다. 다음에는 기회가 있다면 <folklore>의 노래들로만 구성된 투어가 있어 각각의 배경을 살린 무대를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 Red

 

■ folklore

 

 

이제 공연이 끝나가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아직도 중간이다. <Red> 앨범이 컨트리와의 안녕을 고한 순간이었다면, <1989> 앨범은 공식적인 팝 앨범이자, 그녀의 전성기가 시작되는 시작점이기도 했다. 예상되로 <1989> 앨범의 라인업은 텐션을 높이는 곡으로 가득하다. 'Blank Space' 뮤비에서 골프채로 차를 부시는데, 역시나 이 공연에서도 골프채로 차를 때려부수는 연출을 하신다. 역시나 연출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불가능했을텐데 그것을 해낸다. 'Shake it off'에서 <1989>를 마무리 할 줄 알았는데 'Bad Blood'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reputation>처럼 이제는 이 노래를 즐기는 거 같아 보인다. 

 

<1989>가 끝나면서 마지막 <Midnights> 앨범으로 넘어온다. 그녀의 기념비적인 10집 앨범이다. 라벤더색의 반짝이는 의상을 입고 등장한 그녀는 'Lavender Haze'를 부른다. 1950년대 미국에서 사랑에 빠졌다는 관용구로 Lavender Haze라는 표현이 자주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라벤더색과 정말 어울렸다. 테일러 스스로도 사랑에 빠졌을 때 빛나는 순간을 다룬 멋진 표현이라고 생각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 앨범의 리드 싱글이자, 테일러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인 Anti-Hero가 흘러나왔다. 누구나 자기에 대한 좋고 싫은 점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솔직하게 표현한 곡이라 하는데, 그 자체로도 좋았다. <Midnight> 앨범이 아직 귀에 쏙쏙 들어오지는 않지만, 계속 귀에 익숙해지고 좋아해야지. 

 

 

■ 1989

 

■ Midnights

 

 

다시 시간을 되돌려 2005년, 테네시 주 네슈빌. 블루버드 카페에서 금발의 10대 소녀가 기타를 치며 오디션을 보았다 (테일러의 오디션 영상). 이름은 테일러 스위프트, 장르는 컨트리. 오디션을 본 수많은 사람 중 한명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잊혀질 줄 알았다. 많은 사람들은 그녀가 성공하지 못하고 이름 없는 가수로만 남아있을 것이라 믿었다. 18년이 지난 2023년, 그녀는 혼자만의 힘으로 거대한 스타디움을 7만명의 사람들로 가득 채우고, 스타디움에 들어가지 못한 2만명의 사람들이 주차장에서 그녀의 음악을 들으며, 환호하고, 열광하고 있다. 그리고 전 세계가 그녀의 횡보에 집중하고 있다. 

 

1집 <Taylor Swift>에서 10집 <Midnights>까지, 각기 다른 감정과 분위기를 담아 만든 소중한 앨범과 노래들을 그녀는 Eras Tour를 통해 맘껏 선사하였다. 자신이 얼마나 모든 앨범을 사랑하는지, 음악 하나하나를 소중히 하는지, 그것을 증명하고자 노력한 모습이 투어에서 맘껏 보였다. 슈퍼스타로 거듭나면서, 불화를 해결해야 했고, 루머를 마주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며, 잠재력을 계속 선보이고 있다. 혼자서 빛난 것이 아닌, 같이 함께한 댄서들과 코러스 그리고 밴드까지.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는 모습에서 테일러와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현장에 있는 팬들의 모습에서 즐기고 있다는 것을 영상을 통해서 보면서 나도 저런 표정을 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면서 아시아 투어가 열리는 도쿄와 싱가폴의 티켓을 알아보게 되었다. 매진이긴 하지만, 어떻게든 가보고 싶다. 정말이다. 

 

엔딩 크레딧은 'Long Live (Speak Now 투어의 라이브)'. 테일러의 팬들이라면 '찬가'라 여기는 곡. 테일러가 팬들에게 사랑을 담아 전달하는 팬송. 눈물이 흘렸다. 가사 한줄 한줄을 쓸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가기 전까지는 정말 망설였는데, 3시간이라는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테일러가 전달하는 고마움. 정말로 뜻 깊은 시간이라 감동이었다. 행복으로 가득차서, 벅차서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Remember this moment"

이 순간을 기억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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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계 최고의 재즈 플레이어가 될거다 (オレは、世界一のジャズプレーヤーになる)"

 

 

솔직하게 말하자면, 영화라기 보다는 라이브 공연을 보는 느낌이었다. 음악으로 가득찬, 음악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영화관에서 보는게 아깝지 않았다. OTT나 핸드폰으로 보았다면 분명 후회했을 것이다. JAZZ는 조용하고 세련된 이미지지만, JASS가 연주하는 곡은 아마추어임에도 좋은 의미로 거칠고 뜨겁고 진심으로 멋지다고 생각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드러머 타마다 슌지의 성장. 다른 멤버들과 비교하여 스스로 열등하다고 생각하고 연주 후 관객에서 싸인을 받지 못해 우울해 하고 있을 때, 관객 중 한명이 조용히 다가와 '드럼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말을 건네 주었다. 결과 뿐만 아니라 과정도 지켜보고 있다는 사람이 있다는 희망을 느낄 수 있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그리고 타마다 슌지는 그러한 장벽을 극복하고 멋진 드럼 솔로로 관객들을 뜨겁게 매료시킬 수 있었다. JASS가 해체되는 장면도 아름답게 어우러졌다. 우린 친구지만, 언제까지나 밴드를 할 수는 없다고. 세계 최고의 재주 연주자가 되려면 멈출 수 없다라고, 옆에 서서 눈물을 멈추지 않는 타마다 슌지의 모습은 그가 밴드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증거다.

 

 

지난 도쿄 여행에서 타워 레코드에서 산 블루 자이언트 LP. 멋진 음악의 시간을 즐겨야지. 

그리고 SO BLUE의 모티브가 된 블루 노트 도쿄, 꼭 가야지. 도쿄에 갈 이유가 또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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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과일보의 마지막>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형태만 있으면 된다 (この国の民主主義は形だけでいい)"

 

 

첫번째 이야기, 홍콩에서. 

2021년 6월 24일, 홍콩의 마지막 자유로 상징되던 '빈과일보(蘋果日報)'가 폐간하였다. 마지막 신문이 나오던 그날 늦은 밤, 수많은 홍콩 사람들이 본사 앞에 모여 마지막 호 신문을 들고 무언의 지지와 응원을 보냈다. 마지막 호 신문은 총 100만부가 발생되었고 전량 소진이 되었다고 한다. 홍콩 전체 인구가 약 750만명인데 전체 인구의 13% 가까이가 구매한 셈이다. 2020년 홍콩 국가보안법이 시행된 이후, 사그라들던 홍콩의 자유와 민주화 운동에 마지막 타격을 날린 것이다. 그렇게 수백여년간 이어져왔던 홍콩의 자유는 빈과일보의 폐간과 함께 무너져버렸다.

 

두번째 이야기, 미국에서

미국 보수우파를 대변하는 폭스뉴스. 친공화당 성향으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민주당에 대한 맹비난을 퍼붓는 것으로 유명하다. 덤으로 가짜뉴스까지. 이러한 폭스뉴스의 행동에 대하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미국 민주당은 대변인을 통한 입장을 보여주는 것으로 마무리 할 뿐 어떠한 법적인 조치 등을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 4월 29일 백악관 출입기자 만찬에서 "언론의 자유는 자유 사회의 기둥이며 적이 아니다. (중략) 토마스 제퍼슨은 우리가 언론 없이 정부를 가져야 할 지, 아니면 정부 없이 언론을 가져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이 나에게 맡겨졌다면 나는 주저 없이..후자를 선택할 것이다"라는 인용으로 언론의 자유를 변함없이 수호하겠다는 말로 자신의 관점을 밝혔다. 물론 폭스뉴스에 대한 풍자는 여전하였지만. 

 

세번째 이야기, 한국에서

이동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9월 4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터넷 매체가 가까뉴스를 퍼뜨리면 소위 공영방송이라는 곳들이 받아서 증폭시키고 특정 진영에 편향된 매체들이 방송하고 환류가 된다. (중략) 이와 같은 일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해야 한다. (중략) 이런 부분에 대해 엄중하게 책임을 묻는 입법이 필요하다"라고 자신의 의견을 과감히 전달했다. 

 

 

 


 

 

이제서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본다. 영화는 크게 3개의 시선으로 주제를 전달한다. 국가주의를 앞세워 체제를 지켜야 하는 절대 권력을 보유한 집단, 그러한 권력의 어두운 면을 쫒으면서 자유주의를 수호하고 감시하는 권력을 가진 집단, 그리고 두개의 거대한 권력 사이에 놓인 개인을 통해 이들이 추구하는 정의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고민하게 만든다.

 

 

절대 권력을 지닌 집단은 자신들의 부조리를 숨기기 위해 언론을 통제하고 대중을 속이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동원한다. 신상 털기, 가짜 뉴스, 인신 공격, 댓글 공작, 언론 사주, 여론 호도 등 실행 가능한 모든 수단들을 동원하여 대중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정보의 신뢰성을 낮춰 핵심을 흐리도록 한다. 성폭행 당한 사실을 용감하게 꺼내어 미투 운동을 한 여성에게는 꽃뱀이라는 등의 인터넷 여론을 만들고 대중적인 사적재제를 가하고 인신공격을 한다. 비리를 폭로한 관료에게는 친정부 언론을 동원해 블랙리스트로 만들고 자살을 하게끔 만든다. 그리고 본질에서 벗어난 것에 여론을 집중하게 만든다. 정권을 유지하는 것이 곧 국가의 미래와 안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감시하는 권력을 지닌 집단은 정부가 숨기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밝히는 것을 최우선 정의로 삼고 있다. 그렇다고 진실을 추구한다고 해서 이들이 절대 선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특종이라는 미명하에, 알 권리라는 명목하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전직 관료의 장례식에 모여든 기자들은 슬픔에 가득찬 남겨진 유족들에게 모욕적인 질문을 한다. 또한 정치계의 성추행을 폭로한 피해자에게 가슴골이 이쁘다라는 말을 노골적으로 꺼내는가하면, 친정부 성향을 보이는 언론들은 메시지가 아닌 메신저를 공격하는 모습도 서슴없이 보여준다. 

 

 

절대악과 절대선이라는 경계가 모호해질 시점, 영화는 개인의 딜레마에 집중한다. 자신이 하는 행동이 정의를 위한 것인지, 정의에 반한 것인지 해당 선택에 따른 후폭풍을 견뎌낼 수 있을 것인가 대한 두려움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진실을 찾고 알리고자 하는 행동은 결국 신문기사를 통해 만천하에 폭로가 되고 정부의 눈치를 지켜보고 있던 다른 언론사들도 후속 취재를 진행하기 시작하는 열린 결말로 마무리를 짓는다.

 

신문기자는 정부에 비판적이지만 언론의 자가성찰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담은 영화이기도 하다. 거대한 부패권력과 싸울 경우, 이에 맞서 싸워야 하는 언론이 권력에 굴복하여 권력의 나팔수가 되는 것에 대한 자기 성찰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언론 자유도를 가지고 있던 일본의 언론 자유도는 아베 신조 내각이 출범한 2012년부터 하락하기 시작한다. 국경없는 기자회의 발표에 따르면 2011년 11위였던 일본의 언론자유지수는 2013년 53위, 2018년에는 67위를 기록하며 급격한 하락을 겪었다. 아베 신조 내각 기간 동안 언론자유지수 하락은 어쩌면 우연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정부와 사회에 대한 정당한 비판마저도 허용하지 않고 불법 수준으로 취급하는 아베 신조 내각의 모습은 20세기 초 폭주했던 군부와 비슷한 모습을 띄고 있다. 그리고 그 모습은 60-80년대 유신헌법과 보도지침이라는 모습으로 언론을 길들였던 한국의 그것과도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렇기에 신문기자라는 사회파 영화가 개봉한 것만으로도 의의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일본의 살아있는 양심들은 제43회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을 몰아주며 그동안 외면했던 진실에 대해 힘을 보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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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지면 시간은 상관없어요.(The time doesn’t matter when you’re in love)"

 

 

7월의 어느 일요일 밤, <콜드 워>를 보았다. 잠들기엔 어중간한 시간이라 그전부터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기로 했다.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 아마존 프라임에도 없었다. 혹시나 결제를 해야하나 생각했는데 역시 그랬다. 어차피 결제도 염두해두고 있어서 큰 고민은 없었지만 멋진 영화가 OTT에 없다는 것은 아쉬움이랄까. 

 

이데올로기가 전부였던 1949년의 폴란드. 두 남녀가 합창단에서 만났다. 여자는 지독한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남자는 오로지 생존만을 위해서 음악을 선택하였다. 비록 다른 목적으로 만났지만 여자와 남자는 첫 눈에 반하고 금새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이념으로 가득했던 사회는 그들의 사랑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1952년 독일 베를린에서 안타까운 이별을, 1954년 프랑스 파리에서 운명적인 짧은 만남과 긴 헤어짐, 그리고 돌고돌아 1959년 첫 눈에 반했던 폴란드에서 결국 다시 사랑을 완성한다. 

 

평이하다면 평이하다고 말할 수 있는 서사. 그러나 가장 차가웠던 시대에서 가장 뜨거운 사랑으로 빛났다. 이분법으로만 가득했던 사회적 분위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15년의 시간 흐름속에서 주인공 남녀가 겪었던 전쟁 같은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기에 평범하지만 예술적인 제목이 되지 않았을까. 그래서 흑백의 프레임 안에서 보여졌던 오로지 두 사람의 진짜 감정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거기에 흑백 영화의 고전적인 촬영법, 파블리코프스키 감독의 사랑스러운 시선이 <콜드 워>에 덧붙여져서 색다른 흡입력을 느낄 수 있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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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살때문에 누워있는 것을 빼고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던 지지난주 어느날, 언젠가 꼭 봐야겠다고 생각만했던 보이후드를 보았다. 한 소년이 청년이 되기까지 12년간의 일상을 무덤덤하게 기록한 성장 영화이다. 그런데 이 영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엄마의 치열했던 삶의 나날들을 보여주는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더욱 깊숙하게 들었다. 소년의 이야기인 <Boyhood>지만, 소년의 유년기를 담은 <Motherhood>라고. 

 

첫번째 이혼 후, 더 나은 환경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어 엄마는 큰 도시로 이사를 간다. 아무것도 몰랐던 철없던 시절에 낳은 아이들을 책임지기 위해 뒤늦게나마 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한다. 중간에 새로운 남자와 사랑에 빠져 재혼을 하고 차분한 삶을 살거라 믿었지만 그런 생활도 오래가지 못했다. 두번째 이혼 후, 엄마는 아이들을 보호하고자 작은 도시로 이사를 간다. 바쁘게 공부하고 아이들을 챙기면서 안정적인 강사 자리도 얻는다. 다시 새로운 남자를 사귀면서 행복한 삶이 있을거라 희망을 가졌지만 결국 그 남자와도 헤어지면서 세번째 이혼을 결심한다. 그래도 엄마는 끝까지 아이들을 놓지 않았다. 그렇게 성장한 아이들은 엄마의 바램대로 대학에 입학을 한다. 그리고 청년이 된 소년이 독립을 위해 짐을 하나씩 쌀 때, 엄마는 눈물을 터트리며 이렇게 말한다. "난 뭔가가 더 있을 줄 알았어".

 

이 순간, 눈물이 났다. 엄마의 삶이 뭔가 대단한 것들만 가득한 줄 알았는데 막상 지나와보니 딱히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아이들은 성장을 하고, 점차 친구와의 관계 깊어지고,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가면서 그러면서 불행히도 엄마의 존재는 점차 미약해진다는 것을. 별거 아니었던 일상의 조각들이 하나씩 모여서 소년의 인생과 엄마의 삶을 만들어왔다는 것을. 그래서일까. 지금까지의 내 삶이, 나의 행복이, 나의 취향이 모두 엄마의 존재로 가능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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