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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2. 

 

자, 오늘은 꽃다발 같은 사랑을 찾으러 가야지. TV를 보면서 나갈 채비를 하는데, 몇일전에 한국에서 발생한 만취 차량 대상 경찰의 총기 발포 사건이 뉴스를 타고 있었다. 음주 차량 관련 뉴스는 놀랍지는 않은데 아무래도 총기를 사용하면서까지 체포를 한 것에 대해 놀라웠나보다. 뭐, 좋은 내용도 아니지만 이런 것으로 관심 있어하는 일본 정보 프로그램도 신선하기만 하다. 

 

 

오늘 일정은 정말 단순하다. 좋아하는 지인들을 만나고, 좋아하는 영화 성지 순례지를 찾는게 주된 일정. 후후후. 그전에 신주쿠 교엔을 가야지. 도쿄에 올 때마다 항상 들리는 이 곳. 대단한 무언가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신주쿠교엔에서 짧게나마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잠시 시간을 멈추고 온전하게 휴식을 취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좋다. 콘크리트의 색으로 가득찬 도심에서 자연의 색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잠시 와서 쉬어가라고 말하는 듯하다. 

 

9시 개장 시간에 맞춰 신주쿠 출입구에 도착. 이미 몇몇분들이 개장을 기다리고 있다. 사실, 오늘 이렇게 일찍 온 이유는 교엔 내에 위치한 스타벅스에 가고 싶어서였다. 교엔의 스타벅스는 핫플로 널리 알려져있다. 교엔의 중심에 위치해 있고, 도코모 타워 뷰와 나카노이케와 어울러진 멋진 뷰를 제공하고, 고상적인 분위기가 스타벅스를 더욱 묘미있게 만든다. 몇번 가보기 하였지만, 테이크아웃만 했지, 한번도 앉아서 여유를 부려본 적은 없어 이번에는 그런 여유를 누릴 생각이다.

 

 

신주쿠교엔의 문이 9시가 되자 열리고 얼마 안되었던 사람들이 천천히 입장을 한다. 누군가는 아침 산책하러, 누군가는 나처럼 커피를 마시러 열심히 발걸음을 내딛는다. 6개월 전에는 아직 덜 가신 추위였지만, 봄날의 바람에 분홍색 눈이 휘날리고, 그것을 눈에 담고 만끽하고자 하는 사람들로 가득했었는데. 

 

開いたばかりの花が散るのを
「今年も早いね」と残念そうに
見ていたあなたはとても
きれいだった もし今の私を
見れたなら どう思うでしょう

 

지금은 가을의 문턱을 앞두고, 전날 내린 강한 비로 아직 가시지 않은 초록색 빛이 더욱 선명하게 보이고 떨어진 단풍이 마치, 오랜만이야 하고 반겨주는 듯하다. 

 

 

그러고보니 예전 누군가 이런 질문을 한 기억이 떠오른다. 신주쿠 교엔의 스타벅스에서 창가 자리에 앉을 수 있는 팁이 있을까요라고. 그 당시 내 대답은 오픈하자마자 가서 앉는게 가장 빠른 방법이에요라고 답을 해주었는데, 사실 그게 가장 정확한 답이다. 9시에 교엔이 열리기에 빠른 걸음으로 - 중간에 구경하는 것은 생략하고 - 걸어가서 먼저 창가쪽 자리를 맡고 주문을 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스타벅스에 도착하니 9시 7분. 빠른 걸음으로 왔는데도 내 앞에는 이미 2분이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하고 있다. 분명 센다가야 출입구나 오키도 출입구에서 오지 않았을까 생각이 된다. 일단 창가쪽 자리에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한다. 긴자에서의 약속이 11시 30분이니, 한시간 정도 시간이 있으니 커피와 와플을 시키고 창가에 앉아 멋진 뷰를 즐긴다. 

 

 

창가 좌석에 가만히 앉아 멍하니 밖을 바라만 보고 있어도 기분이 홀가분해진다. 엊그제까지의 모든 피로가 녹아드는 그런 느낌이랄까. 아직은 사람들이 많지 않아 적막감만 감돈다.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살짝 고개를 둘러보니, 가장 일찍 도착한 것으로 보이는 노부부는 창가에 앉아 책을 읽으시고, 두번째로 온 젊은 사람은 음악을 듣고 있다. 저마다 각자만의 신주쿠 교엔을 즐기는 방법을 만끽하고 있나보다.

 

나도 이러한 분위기에 빠져들고 싶어, 가방에서 책을 꺼낸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대학교 3학년때, 아시아와 중동 오버랜드 배낭여행을 하면서 만났던 많은 여행자들은 거의 대부분 책을 옆에 두고 있었다. 기차를 기다릴때도, 숙소에서 쉴때도, 카페에서 시간을 보낼때도, 마치 오랜 시간 동안 거기에 머물러 있었던 것처럼 책과 함께였다. 첫 스마트폰이 나오기 3년전이었으니, 책과 보내는 시간은 잠시나마 긴 여행의 고독을 잊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교엔의 일본식 정자에 올 때마다 2013년 개봉했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언어의 정원(言の葉の庭)」에서 유키노와 타카오가 처음 만날 때 장면이 항상 오버랩이 된다. 그리고 유키노와 타카오가 서로에게 꺼냈던 만엽집의 시가가 너무나도 좋아 가끔씩 이렇게 떠오른다. 정자에서 유키노가 처음 타카오를 만났을때, 그녀는 그에게 너를 봤을지도 모르겠다며 만엽집의 단가를 읊으며 정자를 조용히 먼저 떠난다.

 

鳴る神の 少し響みて さし曇り 雨も降らぬか きみを留めむ
천둥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오고
구름이 끼고 비라도 내리지 않을까
그러면 그대를 붙잡을 수 있을텐데. 

<만엽집 11권 2513번> 

 

이후, 타카오는 그녀와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읊어주었던 만엽집의 단가에 대한 답가를 유키노에게 읊는다.

 

鳴る神の 少し響みて 降らずとも 吾は留まらん 妹し留めば
천둥소리가 저 멀리서 들리며
비가 내리지 않더라도
당신이 붙잡아 주신다면 난 머무를 것입니다. 

<만엽집 11권 2514번>

 

 

한참동안 멍하니 정자를 바라보며 애니메이션의 장면에 잠시 빠져있다가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흘러간걸 떠오르고 발걸음을 센다가야 출입구로 옮긴다. 도쿄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을 잊어버릴 정도로 여유롭고 편안한 휴식 시간이었다. 

 

센다가야역까지는 걸어서 약 10분 내외. 짧은 거리지만,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어하는 길이다. 마치 이곳에 살면서 아침에 "다녀오겠습니다" 말하고 역을 향해 걸어가는 느낌이려나. 이런 상상을 하는 것도 이번 도쿄 여행의 나만의 즐거움인 듯 싶다. 예전에는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것에만 집중해서 여유라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도쿄를 자주 오다보니 이제는 이러한 낭만도 여유도 즐길 수 있는 여백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센다가야역에서 츄오 소부 완행선을 타고 요츠야역에서 마루노우치선으로 갈아탄다. 그러고보니 센다가야역과 요츠야역은 2016년 개봉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대히트작  「너의 이름은。(君の名は。) 의 배경으로 나오는데, 이제서야 그걸 알아채다니. 센다가야역은 엔딩 부근에 미츠하가 급히 열차에서 내릴때, 요츠야역은 타키와 오쿠데라 선배와 첫 데이트를 할 때 만나는 장소이다. 「너의 이름은」이 개봉한지 7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도쿄에 무대 탐방을 하러 오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면 문화가 끼치는 파급력이 새삼 크다는걸 느낀다.

 

 

긴자에 도착, 성환이형을 만났다. 6개월 전에 만났는데도 이렇게 다시 보니 반가울 따름이다. 형이 바쁜 관계로 점심을 같이 먹기로 해서 형이 추천한 나고야식 미소카츠로 유명한 야바톤을 간다. 미소를 소스로 사용해서 먹는 카츠라. 오호! 과연 어떤 맛일까 궁금해진다. 소스만 본다면 매우 매울 것으로 보였는데, 실제로 먹어보니 전혀 맵지 않고 담백하고 부드럽기만 했다. 가격은 세트 기준으로 3,060엔으로 일반 가츠와 비교해서 비싸지만, 맛은 매우 뛰어난 가격에 대한 부담이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다. 

 

점심 후, 형과 커피를 마시며 6개월간 어떻게 지냈는지 등 여러 이야기를 쏟아낸다. 시간이 흘러가는 줄도 모르고. 형은 일본에 온지 거의 10년이 되었다. 올때는 혈혈단신이었는데 이제는 결혼을 하고, 이쁜 아이도 키우는 아빠가 되어 터전을 잡고 뿌리를 내렸다는게 자랑스러울 따름이다. 형도 학교 사람들 중에 꾸준하게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 매우 극소수라고. 삶이 이곳에 있으니, 한국에 들어올 기회가 거의 없다보니 자연스럽게 연락이 뜸해졌다고 하는데, 내가 연락을 계속 해주는 게 정말 고맙다고 말한다. 나야말로 이렇게 타지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서 정말 좋을 따름이다. 

 

형은 다시 일터로 복귀해야해서, 자리에서 일어나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한다. 2주뒤에 다시 도쿄에 온다고 했는데 그땐 형이 출장으로 도쿄에 없을거라고 미안하다고 하길래, 미안해하지 말라고. 형의 일이 중요하고, 나는 도쿄에 언제든지 또 올 수 있으니 그때 보자고 말한다. 형의 가는 뒷모습을 보고 나도 다음 일정으로 움직인다. 누군가를 만나서 반가울 수 있다는거, 그것도 낯선 공간에서. 그래서 도쿄는 설레임을 준다. 

 

 

다음 일정으로 가기 전, 긴자에 오면 항상 들리는 서점에 잠시 들린다. 일본에서 땅 값이 가장 비싸다는 긴자에는 '쿄분칸(教文館)'이라는 서점이 있다. 1885년에 창립되어 지금까지 긴자 중심 도로에서 영업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아마도 명동 중심 거리에 100여년의 서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한때는 사람들로 가득 찼었을 듯한 서점은 조용하기만 하다. 대낮인데도 서점에 있는 사람은 직원을 제외한 나를 포함해 2-3명 정도. 그것도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분들이 전부이다. 분명, 밖은 쇼핑하는 사람들로 북적이는데, 더 이상 사람들이 텍스트를 어려워하고 책을 멀리하면서 그리고 온라인로 구매하거나 전자책의 등장의 여파는 이러한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쿄분칸'에도 타격이 되었을 것이다.

 

어디서 읽었던 거 같은데, 한 나라의 지적 문화는 서점의 수로 보여진다고. 도쿄라는 거대 도시의 한 가운데, 그것도 가장 비싼 지역에 서점이 있다는 것은 놀라울 따름이고 멋있다는 느낌이 들면서도, ' 쿄분칸'이 쌓은 거대한 역사도 변하는 시대의 흐름을 견뎌내지 못할 거라고. 언젠가는 '쿄분칸'이 있는 이 자리에는 명품숍이 들어설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쿄분칸'이 앞으로도 계속 있어주길 바라며 도쿄에 올 때마다 항상 들릴 것이라는 마음가짐을 한다.

 

읽고 싶은 책 몇 권을 사고 이제 다음 일정을 향해 또 다시 움직인다. 안녕, 쿄분칸.

 

 

이제 초후로 넘어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