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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6. 여행 첫날. 

 

 

나리타에 도착. 짐을 찾고 입국 수속을 마치고 나리타 익스프레스를 타고 도쿄로 향했다. 마치 집에 오는 것처럼 모든 것이 익숙하게 느껴졌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처럼. 최종 목적지는 신주쿠역이 아닌 도쿄역이다. 신주쿠를 벗어나 새로운 곳에 머물고 싶었고 그러다보니 도쿄역 근처에 기대 이상으로 좋은 호텔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도쿄역에서 내려 마루노우치구치로 나왔다. 압도적인 풍경의 도쿄역 분위기는 항상 올때마다 새롭게 느껴진다. 일본 철도의 중심이자, 일본 근대 역사의 상징이기도 하니까. 도쿄역 구경은 이곳에서 신칸센을 탈 때 제대로 하기로 결심하고 택시를 타고 이동을 하였다. 도쿄역 주변 빌딩 숲을 지나 고쿄를 둘러싼 도로를 따라 20분 정도 갔을까. 앞으로 3일 동안 머물 호텔 그랜드 아크 한조몬에 도착했다.

 

비록 1개 노선이지만 도쿄 중심을 지나는 한조몬선이 5분 거리에 있고, 창밖으로 매력적인 도쿄의 스카이라인이 보이고, 테일러 스위프트 콘서트가 열릴 도쿄돔과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여기를 오게 되었다. 신주쿠나 시부야의 거대하고 신식 호텔과는 달리 오래됨고 투박스러움이 이곳저곳에서 느껴진다. 하지만 통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고쿄의 외곽과 일본 정부의 주요 건물들 그리고 도쿄 타워가 만들어내는 스카이라인은 그랜드 아크 한조몬만이 제공할 수 있는 비교 불가능한 멋짐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잠시 숙소에서 눈이 쌓인 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쉬다가 밖으로 나섰다. 목적지는 진보초역. 한조몬역에서 2정거만 가면 된다.  골목 곳곳에 조용히 숨어 있는 카페를 찾아다니고 커피를 마시는 나에게 진보초는 숨겨진 보물 같은 공간이다. 그리고 도쿄의 수많은 재즈 킷사 중 하나인 'Jazz Big Boy'는 이러한 나의 취향을 만족시켜주는 공간이다. 

 

카페에 들어갔을 때, 마스타와 바에 앉은 중년 신사밖에 없었다. 대화가 완전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말소리가 나는 때는 마스터와 간단한 이야기를 할 때 뿐이었다. 바 테이블, 2인석 테이블 3개밖에 없는 단촐한 구성이지만 뛰어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끊임없는 재즈의 흐름에 저절로 녹아드는 환경이 너무 좋았다. 도쿄가 참 좋은게 재즈 킷사가 수십 곳이 있고, 취향에 맞는 재즈 킷사에 가서 마스터에게 언제든지 가서 재즈에 대해 물어볼 수 있다는 점이다.  원 없이 틀어주는 재즈를 감상하며 마스터의 핸드 드립과 선곡 센스에 감탄하며 계속 머물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했다. 저녁 일정이 있어 카페를 나갈 때 마스터에게 도쿄의 멋진 라이브 재즈바를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몇군데를 추천해 주시며 어디가 좋고 어떤 특징이 있고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시는데 새삼 그 친절함에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다음에 꼭 오라는 말도 덧붙이며. 당연히, 다시 오겠습니다. 꼭! 

 

 

 

 

숙소로 돌아와 잠시 쉬었다. 실은 한국 출발 전부터 감기 기운이 있었고 이대로 돌아다니면 앞으로의 일정이 다 엎어질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전날 내렸던 눈 때문에 서울보다는 따뜻하지만, 살짝 한기가 느껴지는 저녁이라 몸을 최대한 따뜻하게 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살짝 쉬었더니 몸이 좋아진걸 느껴 다시 저녁 일정을 소화하러 밖으로 나섰다. 이번의 목적지는 미나미 아오야마. 테일러 스위프트 콘서트 다음으로 가장 기대한 일정이기 때문이다. 오모테산도역에서 내려서 오늘 밤을 화려하게 밝혀줄 장소로 향했다.

 

 

 

화려한 미나미 아오야마의 밤거리를 10분쯤 걸었을 무렵, 오늘 밤을 멋지게 마무리 할 수 있는 '블루 노트 도쿄'에 도착했다. 일본이 자랑하는, 어쩌면 본점인 뉴욕 블루 노트보다 더욱 고급스러움을 지닌 재즈바. 만화책 '블루 자이언트'를 보면서 언젠가 도쿄에 다시 가게 된다면 이곳에 꼭 와야겠다는 마음이 가득했는데, 결국 소망을 이루게 되었다.

 

 

 

블루 노트 도쿄에 오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도쿄 여행 중에 블루 노트 도쿄를 갈 수 있는 일정은 2월 6일 단 하루뿐이었다. 이날 공연자는 유명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뉴에이지 아티스트인 하카세 타로였기에 좌석은 이미 마감. 너무나도 아쉬워 혹시라도 빈자리가 있기를 빌며 틈틈히 홈페이지를 찾아 예약 여부를 확인하였다. 정말 절실했다. 블루 노트 도쿄가 아니라면, 코튼 클럽을 대신 갈 생각이었지만 그래도 하카세 타로와 블루 노트 도쿄를 포기하기는 싫었다. 간절한 소원은 이루어진다고 했나. 공연 4일전? 큰 기대 없이 홈페이지에서 예약 가능 여부를 훑어 보는데, 좌석 1개가 예약 가능하다고 보였다. 사이드쪽 자리였지만, 뭐가 중요하랴. 앞뒤 생각할 것도 없이 비싼 가격(16,500엔)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예약을 마무리지었다. 마침내 이 특별한 순간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블루 노트 도쿄에 입장하는 순간 역사적인 재즈 뮤지션들의 반가운 얼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넓은 홀은 이미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2부 공연은 8시 30분부터 시작인데도 일찍 와서 분위기를 즐기고 있는 여유가 표정에서 느껴졌다. 나도 오늘의 공연을 마음껏 즐겨야지. 코트를 맡기고 잠시 기다렸을까, 입장 번호를 부르니 사람들이 호출하는 번호에 따라 입장을 한다. 

 

 

 

다시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드디어 공연장이 눈에 들어왔다. 최근 도쿄의 많은 클럽과 공연장에서는 공연이 시작되고 나면 촬영을 금지하는 경향이 매우 높다고 한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공연을 추억할 수 있는 사진 한장을 가질 수 없다는게 아쉽기는 하지만 쾌적한 공연 환경을 아티스트와 관객 모두에게 제공하고자 하는 공연 주최측의 조치이니 잘 따르는게 좋을거 같다. 그리고 사진을 찍다보면 공연 자체를 즐기기 보다는 사진 찍느라 정신이 없어 공연에 신경쓰지 못하니 오히려 이런 노력이 훨씬 좋다고 보여진다. 그래서 공연 시작 전까지 공연장 이곳저곳을 기념으로 남기고 싶어 찍었다. 저녁을 이미 먹었기에 오늘에만 제공하는 하카세 타로 스페셜 칵테일 'LADS IN TOWN'를 주문하고 공연이 시작되기 전까지 여유롭게 분위기를 느꼈다. 

 

 

 

"하카세 타로 & The LADS" 데뷔 공연은 말 그대로 강렬함이 느껴져 눈물이 찔끔 났다. 중간 중간 MC를 하며 밴드를 만든 계끼, 코로나 시기때의 어려움, 영국에서 귀국하기까지 등 여러 이야기를 꺼내며 그간의 노력이 멋진 공간에서 보여지게 되어 감사하다는 말을 계속 표현하였다. 첫 곡부터 마지막 곡까지 온전히 빠져들고 환호하게 만드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의 밴드를 어디가서 볼 수 있겠는가!  하카세 타로를 비롯해서 기타의 아마노 케이, 드럼의 야시키 고타, 첼로의 카시와기 히로키 등 밴드 멤버들이 만들어 내는 음악적 팀워크는 화려했다. 블루 자이언트의 JASS의 공연이 이런 느낌이었을려나.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짜릿함이었다. 내심 앵콜을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앵콜 공연은 없었다. 같은 앉았던 자리의 분들에게 인사를 하고 (어느덧 친해져서 아쉬움) 블루 노트 도쿄 밖으로 나왔다. 어느덧 10시 무렵, 밖에는 공연을 마치고 집으로 가려는 사람들을 모시기 위한 택시들이 줄서 있었다. 

 

큰 기대를 하고 왔는데 기대 이상의 만족을 느꼈다. 서늘한 2월의 밤이었지만, 도쿄에서 푸른 밤을 느껴서 즐거웠다. 내일은 더더욱 즐거운 날이 될 예정이니 슬슬 호텔로 돌아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