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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8 

 

 

창문으로 스며드는 햇빛에 눈이 떠졌다. 아직도 공연 휴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분명 어제 다녀왔는데, 맘껏 즐겼는데도, 행복했는데도,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갑작스럽게 오늘 공연을 가는 사람들이 부러워진다. 공연 분위기에서 빠져나오기 싫어서 테일러의 음악을 들으면서 누워있었다. 오늘은 일정이 없어서 이런 여유를 부리는거다.

 

도쿄의 아침은, 항상 올 때마다 느끼지만, 청량함이라는 단어가 가장 어울리는 듯 싶다. 적절한 따뜻함과 쌀쌀함이 만들어낸 조화라고 해야하나. 발걸음이 가벼워져 어디든 달려갈 수 있을것만 같았다. 분명, 미세먼지가 없어서 그런거다. 아니면 도쿄를 너무나도 좋아해서 도쿄 바이브를 제대로 즐기고 있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날의 아침은 YOASOBI '群靑'을 꼭 들어야만 했다. 

 

 

 

가보고 싶은 카페가 있어, 오모테산도역에서 시부야역 방향으로 하염없이 걸었다. 걸어가는 도중 'United Nations University'가 눈에 들어왔다. 대학원 때 UN 인턴을 마치고 UN뽕으로 가득 차 있었을 땐 UN 건물, 표식만 봐도 좋아했었다. 그때는 지인 찬스를 사용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 구경도 하였는데, 지금은 현실을 살아가는, 다시는 찾을 수 없는 오래된 기억의 일부분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디선가 'Note Coffee' 글을 보고 인상이 깊었던 나머지 도쿄에 간다면 꼭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렇게 오전에 일찍 오게 되었다. 카페 간판이나 표시가 없어서 여기가 카페 맞아?라고 생각할 정도로 어리둥절했는데, 문을 열고 두근두근하면서 내려간 카페는 슈퍼 멋진 공간이었다. 토요일 오전 11시라 사람이 많을까 우려스러웠는데, 나보다 일찍 온 손님 1명을 제외하고는 사람이 없었다.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인 히말라야 커피와 초콜릿 케이크를 주문했다. 과하게 달지 않고 진해서 좋았다. 멀리 떨어지지 않은 활기찬 시부야와는 전혀 반대의 느낌, 그래서 더욱 마음이 들었다. 이곳에 있었던 1시간 동안 단 한명의 사람도 오지 않아서, 먼저 와 있던 분과 이곳을 렌트한 느낌이었다. 이곳에 데이트 상대와 오게 되면 참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고독만이 가득한 카페를 채우는 재즈 음악이 편안해서, 좋은 커피와 함께 음악을 즐기며 상대방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우아함이 여기를 더욱 매혹적으로 만들어주는 듯 싶었다. 다음에 도쿄에 온다면, 이곳은 다시 꼭 와야지. 

 

 

 

 

카페를 뒤로하고 시부야의 레코판으로 향했다. 꼭 사고 싶었던 LP가 있어, 다시 한번 보고 구매 결정을 내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1999년 발매 싱글  'ウラBTTB'를 이틀전 왔을 때 발견했을땐 너무 좋았다. 절판이 되었고 LP라는 것 때문에 중고 시장에서 높은 가격대로 형성된 상태인데, 사카모토 류이치의 사망으로 인해 가치가 더욱 올라가 이때 안사면 나중에는 정녕 못살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발매 당시에 1,500엔이었던 (세금 제외) 가격이 지금은 12,800엔까지 되었으니 어머! 이건 꼭 사야해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몇번이나 집었다가 놓았다가를 반복했다. 마음에서는 지금 안사면 후회할거야라고 사라고 말하는데, 머리속으로는 이번달 카드값 생각해라고 말리니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다음에 왔을 때 'ウラBTTB'가 있을 거라는 장담을 못하기 때문에 더욱 더 망설였다. 테일러 스위프트 에라스 투어 티켓은 프리미엄이 붙었어도 망설임이 없었는데, 심지어 더 비쌌는데도 불구하고, 결국 구매를 포기하였다. 다음에 도쿄에 왔을 때 있기를 바라며. 정 안되면 메루카리라도 뒤져야지. 흑흑. 현생을 사는 인생이라 다음 기회를 꼭 잡아야지. 

 

 

 

레코판에서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와세다 대학으로 움직였다. 대학 탐방이라는 묘미도 있지만, 2021년 오픈한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에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루키의 커다란 팬은 아니지만, 한번 쯤 하루키 세계관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가 있을거 같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모든 작품 이외에도 하루키가 즐겨 들었던 재즈 음악을 들을 수 있고, 하루키의 서재를 간접적으로나마 볼 수 있고, 하루키의 소설에서 즐겨마셨던 커피도 마실 수도 있는, 하루키의 세계관이 집대성되어 있는 공간이라하니 안가볼 수 없었다.

 

와세대 대학은 워낙 유명하니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일본 최초 사립 대학 중 하나이고 일본 뿐만 아니라 글로벌에서도 뛰어난 명성을 지녔으니 학교 분위기를 맘껏 느껴보고 싶었다. 평일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캠퍼스 주변은 조용하기만 했다. 게이오 대학을 갔었을 때는 전혀 이렇지 않았다. 심지어 그때는 주말이었는데도. 학교 행사라도 있나 싶어, 후문 근처에서 대학 관계자분께 물어보니, 이번 주는 와세다 대학 부속 고등학교 입학 시험 기간이라고 말씀을 해주셨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에는 사전 허가를 받은 사람들 이외에는 (학교 관계자) 외부인 출입이 전면 통제 된다고 덧붙여서 말해주셨다. 순간, 머리를 몇대 맞은 느낌이었다.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입학 시험 기간인줄 전혀 몰랐으니. 아쉬움이 매우 컸지만 다음에 오면 되자나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은 비롯 못갔지만, 후문 거리에서 5분 거리에 있는, 하루키가 자주 다녔다는 재즈 킷사 'Jazz Nutty'에 왔다. 전혀 킷사처럼 보이지 않던 곳. 간소한 판자를 대놓은 벤치 시트가 시선을 끈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니, 마스터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로 안내해주셨다. 맥주를 마실까하다 다른 재즈 공연때 맥주로 할테니 커피로 결정하였다. 주문을 하면 주전부리로 킷사 이름과 어울리는 아몬드와 비슷한 견과류를 주셨다. 맛있었다. 

 

대학가 근처임에도 대학생보다는 중장년의 재즈 매니아 분들이 분위기를 즐기고 계셨다. 양쪽에 놓인 대형 스피커로 인해 들리는 재즈의 밀도가 공간을 가득채우는 깊어지는 느낌이었다. 분명, 마스터가 스피커를 세팅할 때부터 위치나 각도에 대해 많이 고민하시지 않았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더욱 놀라웠던 건, 출입문을 닫으면 밖으로 절대 음악 소리가 새어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섬세함 덕분이랄까, 영화 위플래쉬에서 셰이퍼 음악 스클의 빅밴드 공연을 1열에서 관람하는 듯 했다. 

 

박찬욱 감독의 중후한 느낌을 뽐내는 마스터, 아오키 이치로(青木一郎)상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여쭤보았다. 다른 손님이 나오지 않으면 괜찮다고 하셔서 최대한 사진을 많이 담아 보려 했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Love For Sale, Milt Jackson Quartet 연주를 듣자니 시간이 멈춘 듯 했다. 마스터가 자신의 취향을 명확하게 안다는 것과 그 취향을 오랜 시간 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결과가 '나만의' 취향으로 가득찬 공간으로 된 것이 멋있고 부러웠다.

 

나오면서 마스터에게 "한국에서 꼭 와야한다고 들어 이렇게 찾아왔느데 기대 이상으로 만족했습니다. 멋진 공간과 음악에 반해 한동안 잊지 못할거 같습니다. 다음에 다시 꼭 오겠습니다"라고 말씀 드렸더니 정말로 감사합니다라고 화답해주셨다. 다음 도쿄에 온다면 이곳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지.

 

 

 

간단히 저녁을 먹고 도쿄에서의 마지막 일정인 'Jazz Spot Intro'로 향했다. 다카다노바바역 근처에 위치. 7시쯤 도착했는데 이미 만석. 마스터가 간신히 마련해준 자리에 착석해 즉흥 연주를 감상했다. 1975년에 문을 연 'Jazz Spot Intro'에 대해 설명을 하자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랜다. 매주 화, 수, 목, 일요일 저녁 6시 30분부터 자정까지 날 것의 라이브 재즈 공연을 보고 듣고 즐길 수가 있다. 이것만으로 부족하다 싶어,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도쿄에서 최악이라 여겨지는 출퇴근 시간대의 사이쿄선 혼잡도를 뛰어넘는 인구 밀도, 날것의 그 자체의 매력인 잼 세션, 그렇지만 재즈에 대한 뜨거운 만큼은 도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 연주자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즐기는 여러 나라에서 온 관람객들. 이것들이 조화를 이루니 'Jazz Spot Intro'의 매력이 더욱 돋보이게 된다. 

 

악기만 있다면 누구라도 연주가 가능한 마법사가 되는 장소라는 표현이 정말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적, 나이, 성별, 인종에 상관없이 악기 하나만으로 재즈를 좋아하는 이유만으로 멋진 공연이 진행되고, 새로운 세션들의 합주가 멋진 바이브를 만들어내는 순간, 이곳의 매혹에 빠졌다. 하모니카 하나만으로 라이브 세션을 하셨던 노년의 신사의 연주는 중간중간마다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를 이끌어 냈다. 이렇게 멋질 수가. 어떤 말로도 그 시원함을 표현할 수 없었다. 도쿄에서 아름다운 보석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수십번 도쿄를 다녀봤지만, 이렇게 가슴을 뛰게 만드는 곳은 없었던 거 같은데 이제서야 여길 오다니. 단순히 알고 있는 장소가 아니라 '알고 있으면 좋은 장소'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였다. 도쿄에 다시 온다면 무조건 하루는 이곳에서 보내야 하는 나의 필수 코스가 될 것 같다. 

 

 

 

 

2시간 정도 정처없이 시간을 보냈을까, 연주에 빠져 정신을 차리니 호텔로 돌아가서 짐을 챙겨야 할 때가 왔다. 다음에 또 올테니 조그마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바에서 나와 다시 호텔로 향했다. 스이카 카드를 충전하기 싫어 (거의 다 써서) 남은 동전을 긇어모으니 티켓을 살 수 있을 정도는 된다. 스이카만 쓰다가 이렇게 쓰니 낯설기는 하다. 3일 동안 어쩌다 보니 음악 투어라는 컨셉으로 다녔는데, 대만족이었다. 테일러 스위프트, 블루 노트 도쿄, Jazz Nutty, Jazz Spot Intro 등 음악과 관련된 곳만 다니니 도쿄 여행이 더욱 재미있고 즐거웠다. 벌써부터 다음에는 어디를 갈지 벌써부터 고민하고 있다. 

 

 

 

호텔에서 바라보는 밤의 도쿄가 정말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