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24 

 

도쿄의 아침은 화창함 그 자체. 구름 한점 없는 파란색 하늘이다. 떠나는 날, 이렇게 날씨가 맑다니. 청량한 하늘을 보는 건 좋지만 오늘에서야 이런 날씨를 본다는 건 억울할 따름이다. 

 

 

 

 

나리타 공항까지는 공항버스 리무진을 탔다. 공항까지의 시간은 나리타 익스프레스와 엇비슷하지만, 마지막까지 도쿄 타워와 레인보우 브릿지 그리고 도쿄만을 거쳐서 지나는 멋진 경관을 볼 수 있어 리무진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혹시 리무진을 타게 되면 운전기사 기준 오른쪽에 앉으면 오다이바와 도쿄만을 보는 대신 도쿄 타워를 보기가 어렵고, 왼쪽에 앉으면 도쿄 타워와 신주쿠 교엔을 볼 수 있다. 리무진은 도쿄 도심을 순환하는 수도고속도로를 따라 움직인다. 수도고속도로 신주쿠선(4번 노선)을 타고 계속 가다보면 어느샌가 요요기 공원과 신주쿠 교엔을 지나쳐 어느샌가 수도고속도로 도심환상선(C1 노선)으로 진입한다. 여기서 도쿄 타워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도쿄 타워가 금새 눈에 보였다가 빠른 속도로 뒤로 사라지면서 이제 본격적으로 도쿄 도심과는 안녕이다. 

 

하지만, 여기서 아쉬워할 수는 없지. 수도고속도로 도심환상선에서 벗어나 수도고속도로 다이바선으로 노선을 변경한다. 레인보우 브릿지, 오다이바, 도쿄만을 마지막으로 감상할 시간이다. 날씨가 덕분인지, 아름다운 것들이 더더욱 아름답고 멋지게 보인다. 왜 하필 돌아가는 날에 청량한 하늘이 되는 것인지 하늘도 참 무심하다. 리무진이 천천히 가기를 바라지만, 아니 교통 체증이 있기를 잠시나마 바랬지만, 도로는 막힘이 하나도 없이 쭉쭉 뻗어간다. 그리고 수도고속도로 완간선으로 진입한다. 이제 공항까지 쭉 가면 된다. 정말로 도쿄와 작별의 인사를 할 시간이다. 

 

 

 

 

리무진은 나리타 공항 3터미널, 2터미널 순서로 사람들을 내려주고 1터미널에 도착했다. 남쪽 윙이 스타얼라이언스 본진이라면, 북쪽 윙은 스카이팀 본진. 북쪽 윙이라고 하니, 나카모리 아키나의 8번째 싱글 '북쪽 윙(北ウイング)이 떠오른다. "날 좋아해 준 사람들이 북쪽 윙에 갔을 때 웃을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다"며 아키나가 직접 붙인 제목이라는데 갑자기 흥겨워지는 느낌이다. 

 

映画のシーンのように
영화의 한 장면처럼
すべてを捨ててく Airplane
모든 것을 버리는 Airplane
北ウイング 彼のもとへ
키타윙 그의 곁으로
今夜ひとり
오늘 밤 혼자
旅立つ
여행을 떠나요

 

대한항공 카운터에서 티켓과 여권을 보여주고 잠시 기다리는데, 직원이 갑자기 티켓 변경이 되었다고 말을 해준다. 좌석이 바뀌었나라는 생각을 잠시 했는데 그것이 아니었고 돌아온 대답은 이와 같았다. 

 

"특별하게 오늘은 퍼스트 클래스로 업그레이드하여 모시겠습니다" 

 

응??응???? 뭐라고???? 퍼스트 클래스??? 다시 귀를 의심하였지만, 받아본 티켓에는 '01A'라는 번호가 선명하게 적혀있는 것을 보니 진짜 퍼스트 클래스이게 맞다. 도쿄에 올 때 퍼스트 클래스를 탔는데 (퍼스트 클래스 후기), 한국에 돌아갈 때 다시 퍼스트 클래스라니. 아니 우주의 기운이 이렇게 오는 것인가? 믿겨지지 않을 정도이다. 한번도 아닌 두번 연속 퍼스트 클래스라니. 돌아가면 로또를 꼭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필시 로또를 사라는 운명의 징조라고. 날아갈것만 같은 산뜻한 기분으로 스카이팀 Priority 고객 전용 패스트트랙을 통과해 보안 구역에서 출국 심사까지 마치니, 도쿄와 작별할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는게 느껴진다. 

 

 

 

나리타 공항의 대한항공 라운지는 스카이팀 공용 라운지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작다. 인천공항 라운지와 비교한다면 수수하고 아담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나리타 공항 자체가 오래되어 터미널의 확장 공간이 없다는 것도 원인이겠지만, 원월드의 일본항공과 스타얼라이언스의 전일본공수의 허브 공항이다보니 상대적으로 스카이팀에게 제공 가능한 공간이 제한 될수 밖에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배경이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이러한 이유로 라운지에서 제공되는 서비스도 한정적이다. 삼각 김밥 4종류, 가벼운 스낵, 커피를 비롯한 주류 등? 이정도가 전부이다. 예전에 이용했던 전일본공수 라운지에서는 쉐프가 직접 우동, 스시 등을 만들어주었을 뿐더러 개인 좌석도 매우 넓어서 매우 마음에 들었는데 대한항공 라운지는 그게 아니다보니 살짝 아쉬움 마음이다.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나리타 공항의 대한항공 라운지가 좋은 이유를 딱 하나만 말해보자면 활주로가 보인다는 것이다. 실시간으로 비행기 이착륙을 볼 수 있어 날씨가 좋다면 멋진 장면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다. 자리가 비록 협소하지만 (생각보다 의자가 편하지 않음) 창가에서 이착륙 장면을 보고 있으면 어떤 이유에서는 모르겠지만, 말로는 표현하기 어렵지만,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느낌이 든다. 여행을 마무리해서? 집에 돌아가서? 비행기를 보니 좋아서? 글쎄 잘 모르겠다. 

 

라운지에 들어오자마자 화이트 와인을 마셨는대도 비행 탑승 시간까지 아직도 1-2시간이 남아 생맥주를 2잔 마신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여행 내내 읽지 못했던 <the Nineties>를 읽다보니, 어느새 탑승 시간이 되어 라운지를 나선다. 

 

 

 

게이트 앞에서 짧은 대기를 마치고 가장 먼저 탑승권 확인을 한 후, 보딩 브릿지로 향한다. 일본에 올 때도 가장 먼저 탑승하는 경험을 했는데, 이번에도 똑같은 영광을 다시 체험하다니.  

 

한번 경험을 해봐서, 퍼스트 클래스를 탄다는 흥분된 기분이라기 보다는 차분한 감정이 커서 경험의 차이가 역시나 큰 차이를 주는구나라고 생각이 든다. 다만 다른 것은 몰라도 기내 좌석만큼은 편했으면 하는 소원이 있었다. 지난번에는 코스모 슬리퍼라 전체적으로 편하게 왔지만 기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을 거의 이용하지 못할 정도였으니 이번에는 그렇지 않기를 빈다. 

 

 

 

 

비행기에 탑승하자 승무원이 좌석으로 안내를 해준다. 다행히도 지난번과는 다르게 프레스티지 플러스 형태의 좌석이다. 보잉 777-200ER 기종으로 보이는데 기존에 있었던 코스모 슬리퍼를 제거하고 프레스티지 플러스로 대체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아무래도 도쿄와 인천 수요가 많다보니 이렇게 변형을 하게 되지 않았나 추정이 된다.

 

잠시 자리에 앉아 있으니 승무원께서 웰컴 드링크를 가져다 주신다. 지난번에는 오렌지 쥬스만 마셨지만 이번에는 웰컴 드링크 전부를 선택하였다. 언제 다시 퍼스트 클래스를 타보겠다. 이럴때 맘껏 호사를 누려야지. 도쿄행일때는 퍼스트 클래스가 만석이었는데 이번에는 만석은 되지 않았다. 다행히 내 옆자리는 아무도 앉지 않아 좀 더 편하게 마지막 여정을 즐길 수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퍼스트 클래스에 앉으니 몸이 이제 사르륵 녹는듯한 느낌이다. 지난 4일 동안 정말 열심히 이곳저곳을 다닌 것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다음에도 이렇게 열정적으로, 전투적으로 다닐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어느덧 비행기는 활주로를 향해 이동을 한다. 이제 정말 가는구나. 

 

 

 

이륙한 비행기는 어느새 도쿄 상공을 지나가고 있다. 그리고 저 멀리 후지산의 모습이 점차 보이기 시작한다. 다행이다 날씨가 맑아서. 후지산을 볼 수 있어서. 날씨가 맑다 하더라도 후지산 주변은 구름이 많아 보이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하는데, 오늘은 구름이 많지만 후지산이 선명하게 보이니 마음이 놓인다. 

 

나리타 공항에서 이륙한지 10-15분이 지났을려나. 후지산을 가장 가까이 지나는 타이밍이다. 멀리서도 저게 후지산이라는게 느껴진다. 지난 3월에 바라본 후지산은 아직도 추워서 정상 부군이 눈으로 뒤덮여 있었던 반면(생각 이상으로 구름으로 뒤덮여 있었다는), 이번에는 가을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름 기온을 유지하고 있어 정상 부근의 눈이 사라져 있다. 참고로 후지산을 보려면 인천에서 도쿄를 갈 때는 오른쪽 좌석, 도쿄에서 인천을 갈 때는 왼쪽 좌석에 앉아야 한다. 

 

 

 

후지산은 해발 고도 3,776m라고는 하지만 상당히 높은 등반 난이도가 있다고 한다. 게다가 한라산처럼 1년 내내 개방하는 것이 아닌 7,8월 단 2개월만 등반을 허락하기에 그때는 엄청난 인파로 붐빈다고 한다. 언젠가 누군가의 후지산 등반기를 읽어보았는데 (후기는 여기로) 힘든 과정이 너무나도 자세하게 묘사되어 힘들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후지산 정상에서 일출을 바라보고 싶은 욕망 아닌 욕망이 생겼다. 지금은 이렇게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보고 있지만 내년 여름에는 후지산 등반을 해봐야지. 그리고 그전에 체력도 키우고 그래야겠다.

 

 

 

서서히 멀리 멀어져가만 가는 후지산을 뒤로 한채 기내식이 준비가 되었다. 이번에는 특별하게 사전 주문을 하지 않아, 메뉴 중에 스테이크를 선택한다. 사실 공항에서 다과 등을 많이 먹어서 살짝 배가 부른 상태였는데도 마지막 기내식을 즐기기 위해 억지로라도 먹어야지. 아니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다 먹어야지. 와인은 마시지 않는 것으로. 여기서 더 마시면 취해서 그대로 쓰러져 버릴거 같아 와인은 과감하게 포기하고 콜라로 대신했다. 포만감도 몰려오고, 여행의 긴장감도 풀리고, 집에 돌아간다는 기쁜 마음이 겹쳐 눈이 조금씩 감긴다. 커피를 마실까하다, 1분이라도 더 잠을 자고 싶어 기내식을 후다닥 치우고 좌석을 180도로 조절한 뒤 시트를 덮고 잠을 잔다. 오래 잠은 못자겠지만 1시간정도면 꿀잠을 잘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얼마나 잤을까. 어느덧 비행기는 인천국제공항과 가까워지고 있다. 승무원들도 착륙 준비를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을 보니 나도 좌석을 다시 원위치로 하고 필요한 것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가방에 넣는다. 그리고 시간을 때우고 싶어 밖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저 아래에 매우 낯익은 건물들과 도로들이 눈에 보인다. 엇? 저기 내가 사는 동네자나! 자세히 보면 어디에 우리집에 있는지도 알 수 있을 정도다. 비현실적이고 절대로 발생하면 안되겠지만, 여기서 바로 뛰어내려 바로 집으로 가고 싶다는 마음이다. 언제 공항에 도착해서 다시 공항버스를 타고 집에 와야하는지를 더더욱 생각하면 말이다. 

 

 

 

공항까지는 착륙까지 이제 10분도 채 남지 않았다. 집에 돌아왔구나라는 안정감이 들면서도 내일부터 현실로 다시 돌아갈 것을 생각하면 살짝 머리가 아파온다. 하지만 도쿄에서 정말 좋은 기억들과 생각들을 만들고 와서 가끔씩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버틸 수 있는 비타민이 될 것이다. 도쿄 여행을 보내준 와이프에게 가장 크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고, 스스로에게도 이것저것 보러 다니느라 고생했다고 수고했다고 말해줘야지. 

 

 

 

이렇게 즐거웠던, 잊혀지지 않을 4박 5일 도쿄 여행이 끝났다. お疲れ様で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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