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2025년의 시작이다. 봄을 만끽하고 있는 오키나와에서부터 아직 겨울의 가운데에 있는 홋카이도까지, 32개의 고교가 2025년 제97회 선발고등학교야구대회(이하 센바츠) 본선 진출을 달성했다. 입장곡은 TBS 인기 드라마 "Eye Love You" 주제곡을 부른 Omoinotake의 「幾億光年」이 선정되었다.
지난 1월 24일 21세기 전형으로 뽑힌 2개 학교를 포함하여 총 32개 학교가 센바츠의 출전을 알린 가운데, 각 지구의 강호라 불리는 학교들이 탈락하는 이변이 있었지만, 또다른 강호들은 자신들이 왜 강호인지를 증명하였다. 덧붙여 6개의 학교가 처음 전국 대회에 출전하 자신들의 실력을 뽐내는 기회가 만들어졌다.
■ 일반 선발
지구
도도부현
학교명
유형
출전횟수
홋카이도
홋카이도
도카이대학부속 삿포로 고교
사립
10년만에 7번째
도호쿠
아오모리현
아오모리 야마다 고교
사립
2년 연속 4번째
이와테현
하나마키 히가시 고교
사립
3년만에 5번째
후쿠시마현
세이코 가쿠인 고교
사립
3년만에 7번째
간토
군마현
겐다이 타카사키 고교
사립
3년 연속 8번째
사이타마현
우라와 실업 가쿠엔 고교
사립
첫출장
치바현
치바 레이메이 고교
사립
첫출장
카나가와현
요코하마 고교
사립
6년만에 17번째
야마나시현
야마나시 가쿠인 고교
사립
4년 연속 8번
도쿄
도쿄도
니쇼 가쿠샤 대학 부속 고교
사립
2년만에 8번째
도쿄도
와세다 실업 고교
사립
8년만에 22번째
호쿠신에츠
이시카와현
일본항공 이시카와 고교
사립
2년 연속 4번째
후쿠이현
츠루가게히 고교
사립
5년 연속 12번
도카이
시즈오카현
도코하 대학 부속 키쿠카와 고교
사립
2년만에 6번째
아이치현
시가쿠간 고교
사립
8년만에 2번째
기후현
오가키 니혼 대학 고교
사립
2년만에 6번째
킨키
시가현
시가 가쿠엔 고교
사립
8년만에 3번
시가현
시가 단기 대학 부속 고교
사립
첫출장
효고현
도요 대학 부속 히메지 고교
사립
3년만에 9번째
나라현
텐리 고교
사립
3년만에 27번째
와카야마현
와카야마 시립 와카야마 고교
공립
3년만에 9번째
와카야마현
치벤 가쿠엔 와카야마 고교
사립
2년만에 16번째
주고쿠
돗토리현
요나고쇼인 고교
사립
33년만에 2번째
히로시마현
히로시마 상업 고교
공립
3년만에 23번째
시코쿠
카가와현
타카마츠 상업 고교
공립
2년만에 29번째
고치현
메이토쿠 기주쿠 고교
사립
4년만에 21번째
큐슈
후쿠오카현
니시단 고교
사립
38년만에 2번째
오이타현
야나기가우라 고교
사립
20년만에 3번째
오키나와현
오키나와 쇼가쿠 고교
사립
2년만에 8번째
오키나와현
에너지 스포츠 고교
사립
첫출장
■21세기 전형
지구
도도부현
학교명
유형
출전횟수
간토
카나가와현
카나가와 현립 요코하마 세이료 고교
공립
첫출장
큐슈
나가사키현
나가사키 현립 이키 고교
공립
첫출장
2024년 센바츠 우승을 한 군마현의 센다이 타카사키 고교를 비롯해서 작년 고시엔 4강의 주인공인 야마다 아오모리 고교가 매우 높은 우승 확률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전통적인 강호인 요코하마 고교, 텐리 고교, 세이코 가쿠인 고교, 치벤 와카야마 고교, 와세다 실업 고교 등도 센바츠의 정상을 노리고 있다. 신흥 강호로는 창단 3년만에 전국 무대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에너지 스포츠 고교가 유력한 우승 후보로 점쳐지고 있다.
센바츠가 중요한 이유는 추계 대회에서 활약한 선수들이 본격적으로 전국 대회에서 검증이 되는 실전 무대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봄의 고시엔에서의 성적을 바탕으로 여름의 고시엔에서의 선발 멤버들을 추려낼 수 있는 장이다. 또한 프로야구 스카우트들도 지금부터 3학년들의 활약을 눈여겨본다. 그렇기에 기존의 선발 멤버들은 물론이고 신규 멤버들도 전력을 다해 플레이를 하게 된다.
제97회 센바츠는 3월 7일 추첨을 통해 경기 상대와 일정일 정해진다. 그리고 3월 18일부터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개막식을 포함, 총 31시합이 진행될 예정이다.
선발고등학교야구대회 (이하 센바츠)의 쉬운 이해를 위한 특집편을 정리해보았다. 특집 2탄에서는 9개 지구 및 47개 도도부현의 통산 성적(승리 및 패전 횟수, 승률, 우승 및 준우승 횟수)을 그림과 표로 분석하였다.
* 분석 시점: 2024년 9월 (교통사고로 인해 늦게 포스팅)
* 분석 대상: 9개 지구 및 47개 도도부현
* 분석 내용:
- 9개 지별 승리 횟수
- 47개 도도부현별 승리/패전 횟수, 승률, 우승 및 준우승 횟수
* 분석 시기: 1924년 제1회 대회부터 2024년 제96회 대회까지
1. 지역 및 지방별 통산 성적
① 홋카이도 지구(통산 46승 88패, 0회 우승)
○소속 도도부현: 홋카이도
○고시엔에서의 성적과 동일하게 전국 9개 지구에서 가장 낮은 승률과 최저 승리를 기록 중에 있다. 고시엔을 2년 연속 우승한 토마코마이 고교도 센바츠에서는 활약을 보이지 못하였다. 도카이대 부속 삿포로 고교와 홋카이 고교가 준우승을 기록한 것이 홋카이도 지방의 최고 성적이다.
② 도호쿠 지구(통산 100승 145패, 0회 우승)
○소속 도도부현: 미야기현, 아오모리현, 이와테현, 아키타현, 후쿠시마현, 야마가타현
○미야기현만이 유일하게 26위에 랭크되어 있을 뿐, 나머지 5개 도도부현은 40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도호쿠 지구에서 센바츠에 출전 가능한 학교 수는 단 2개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본선에서의 활약은 아쉬움에 그치고 있다. 아오모리현, 미야기현, 이와테현에서 결승까지 진출하였지만, 준우승에 머물며 '자감의 대우승기(紫紺の大優勝旗)'를 2024년 지금까지 가져오지 못하고 있다.
○치바현은 통산 4회 센바츠 결승에 진출하였지만 우승을 한번도 하지 못하며 콩라인에 머물고 있다. 반면에, 나머지 7개 도도부현은 최소 1회 이상의 우승을 경험을 기록하고 있다. 이 가운데 카나가와현은 통산 7회 우승이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어 오사카부, 아이치현 등과 함게 최다 우승 9위에 올라있다.
④ 호쿠신에츠 지구(통산 95승 140패, 2회 우승)
○소속 도도부현: 후쿠이현, 니가타현, 이시카와현, 나가노현, 도야마현
○주부 지방의 북쪽은 호쿠리쿠 지역과 고신에츠 지역으로, 호쿠신에츠 지구로 구분되어 있다. 홋카이도 지구를 제외하고는 전국 9개 지구에서 최저 승률을 기록 중에 있다. 후쿠이현과 나가노현에서 유일하게 우승을 하였을 뿐이다. 니가타현은 센바츠에 출전하여 (21세기 전형 포함) 하여 단 3승만 거두며 47개 도도부현 중 최하위에 머물고 있다. 이웃하고 있는 도야마현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 단 6승만 거두었을 뿐이다.
⑤ 도카이 지구(통산 327승 265패, 19회 우승)
○소속 도도부현: 아이치현, 시즈오카현, 미에현, 기후현
○주부 지방의 남쪽은 도카이 지역으로 호쿠리쿠 지역과 고신에츠 지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경제적인 발전이 이뤄진, 실질적인 주부 지방을 통틀어서 말하는 곳이다. 아이치현이 통산 승리 176승을 거두었고 우승도 11회를 기록하며 도카이 지구를 리드하고 있다. 이곳에 소속되어 있는 4개 현 모두 최소 1회 우승을 거두었으며, 특히 후쿠이현 경우에는 3회 우승 전부가 기후 상업 고교만이 달성한 유일한 성과이다.
지역
지구
승리
패전
승률
우승
준우승
동일본
홋카이도
46
88
0.343
0
2
도호쿠
100
145
0.408
0
3
간토
458
399
0.534
20
22
호쿠신에츠
95
140
0.404
2
3
도카이
327
265
0.552
19
12
합계/평균
1,026
1,037
0.448
41
41
⑥ 킨키 지구(통산 651승 562패, 27회 우승)
○소속 도도부현: 오사카부, 효고현, 와카야마현, 교토부, 나라현, 시가현
○센바츠 한정으로만 보았을 때, 가장 많은 우승과 준우승 횟수를 자랑하는, 단연코 센바츠의 빛나는 별들이 모여있는 지역이라 할 수 있다. 전통의 강호들과 신흥 강호들, 즉 S급 고교들이 모여있는 오사카부는 전국 최다 승리, 최다 우승 역사를 지니고 있는 가운데 효고현, 와카야마현 순으로 전국 우승 탑3 지역이 있는 지구이다. 이와는 반대로 통산 6승만을 거둔 시가현은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시가현의 고교 야구부 수는 53개 (2024년 기준)로 전국 기준으로 보았을땐 낮은 편이라 이와 같은 결과로 보여지는 것으로 판단된다.
⑥ 주고쿠 지구(통산 210승 252패, 7회 우승)
○소속 도도부현: 히로시마현, 오카야마현, 야마구치현, 돗토리현, 시마네현
○히로시마현이 주코쿠 지구에서 승리와 우승 횟수에서 독보적인 리드를 하는 가운데, 야마구치현과 오카야마현이 유일하게 1회씩 우승을 하였다. 하지만 인구 유출이 심한 시마네현, 돗토리현은 여전히 우승과는 거리가 먼 상태이다. 인구 유출과 고교 야구부 감소가 가장 큰 영향으로 보여진다.
⑦ 시코쿠 지구(통산 297승 229패, 15회 우승)
○소속 도도부현: 도쿠시마현, 에히메현, 카가와현, 고치현
○고시엔에서의 성적과는 다르게 시코쿠 지구에 있는 4개현의 통산 누적 승리 성적은 전국 9개 지구에서 3위에 속할정도로 놀라울 따름이다. 우승 횟수도 15회로 킨키 지구, 간토 지구, 도카이 지구에 이어 4위에 랭크되어 있다. 더욱 놀라울 것은 각 현의 순위도 15위 안에 머물러 있어 타 지구와 비교가 된다. 이는 센바츠 출전 티켓과 관련이 있다. 88년까지 시코쿠 지구에 주어지는 센바츠 출전 티켓은 3.5장으로 운이 좋다면 4개현 모두 센바츠에 출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이후 타 지구와의 형평성을 위해 현재는 2장으로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50% 찬스로 높은 진출 확률을 가지고 있다.
○총 8개의 도도부현이 4장의 센바츠 진출 티켓을 두고 경쟁을 펼치고 있다. 도쿄 · 간토 지구의 출전 티켓이 4.5장에서 6장으로 증가한 반면, 큐슈 지구는 같은 기간 0.5장밖에 증가하지 않아 그만큼 누적 승리 횟수가 낮은 것으로 보여진다. 의외로 승리 횟수가 가장 많은 후쿠오카현에서는 아직까지 우승이 한번도 없고, 승리 횟수가 적은 오이타현에서 우승을 한번 경험하여 큐슈 지구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3개월만에 글을 쓰게 되었다. 그날로부터 수십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2024년 11월 10일은 잊혀지지 않는다. 그날은 평범했던 우리 가족의 삶이 재앙으로 변한 날이었다. 여름에 갔었던 안성 '풍사니랑'이 인상에 깊게 남아 가을이 되면 아이랑 다시 오자고 약속했었다. 그렇게 그곳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해가 지기 전에 다시 집으로 차를 몰았다.
시골길이라 도로는 비교적 한적했지만 아이가 타고 있어 40-50km의 속도로 2차선 도로를 천천히 주행했다. 출발한지 30분쯤 지났을까, 저 멀리서 한 차량이 중앙선을 넘어오는게 눈에 보였다. 순간, 본능적으로 차량 속도를 줄였고 동시에 경적을 수번 울렸다. 이정도면 상대방이 속도를 줄이고 다시 자신의 차선으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상대차는 빠른 속도로 계속 달려왔고 그대로 우리 가족이 타고 있던 차량을 정면으로 들이박았다.
정면 충돌의 충격은 생각 이상으로 심각했다. 충돌을 당할 때 정신을 살짝 잃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눈을 떠보니 엔진에서는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고, 아이 울음 소리가 크게 들렸고, 와이프는 신음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이를 먼저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 안전벨트를 풀고 뒷자리로 가서 카시트에 앉혀있던 아이를 꺼내서 안고 근처 안전한 장소로 옮겼다. 그리고 다시 차로 돌아와 얼굴에 피로 흥건한 와이프를 부축하여 아이 옆에 앉혔다. 두 사람이 안전하다고 생각되지 그제서야 오른손과 가슴에서 뭔가 부러진듯한 고통이 몰려왔다. 마음 같아서는 그대로 들어눕고 싶었지만 차량 사진을 찍어두는게 나중에 도움이 될거 같아 아픈 몸을 이끌고 차량 근처까지 가서 사진을 찍었다. 그런 와중에 상대 차량 운전자가 놀라우면서도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나타났다.
"괜찮으신가요?" "지금 괜찮아 보이나요? 아이가 다쳤다구요. 아이가 저기서 피를 흘리자나요!! 운전을 어떤식으로 한거에요??" "제가 경황이 없어서요. 감기약을 먹고 졸음 운전을 했나봅니다"
이렇게 말하며 감기약을 꺼내서 보여주며 자신의 잘못을 어떻게든 피하고자 하는 느낌을 받았다. 나도 정신이 없어서 그 사람 말에 더 이상 대꾸하기가 싫었다. 통증도 점차 심해져 더 이상 서있을 수가 없어서 아이와 와이프 근처로 이동해 그대로 누워버렸다. 그와중에도 경찰에 연락해 사고 신고를 하였다. 얼마지나지 않아 119가 도착하였다. 상대 차량 운전자가 연락을 했나? 이런 생각을 했는데 알고보니 뒤에서 오던 차량 운전자분이 신고를 해주시고 2차 사고가 나지 않게 교통 정리도 해주신 것이었다. 차량 운전자분 동승자분은 와이프와 아이 옆에서 안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계셨다.
통증이 심해져서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을거 같다고 생각될 때 경찰이 도착했다. 경찰은 먼저 나에게 상태가 어떻냐고 물어보고 이후 신상, 사고 발생 경위 등을 물어보았다. 정신이 여전히 있었기에 또박또박 말하였다. 모든게 사고 내용이 되기에 최대한 구체적으로 내용을 전달하였다. 이후 음주 측정을 하였고, 상대방 운전자에게도 사고 경위 등을 물어보고 음주 측정을 하였다. 다시 나에게 돌아온 경찰은 사건 번호를 알려준 후, 사고 차량을 촬영 후 구급 대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자리를 떠났다. 구급 대원이 어디가 아픈지 물어보길래, 오른쪽 팔과 가슴쪽에서 통증이 느껴진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보다 아이와 와이프를 먼저 이송해 달라고 부탁했다. 구급 대원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상대방 차량에 탑승한 인원 중 한명도 다쳤다고 해서 이송 우선 순위를 두고 고민을 하는듯 싶었다. 몇 분 후, 구급 대원이 와서 이송 순서를 설명해주었다. 현장에 출동한 구급차가 2대밖에 안되어서 와이프와 아이, 그리고 상대방 차량의 부상자를 각각 먼저 이송하기로 결정하였다고. 추가 구급차가 5-10분 이내에 도착하니 나는 해당 구급차를 타고 이동해야할거 같다고 알려주셨다. 일단 아이와 와이프가 중요하니, 내가 어떻게 되든,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거기에다가 장인 어른이 계시는 오산 한국병원으로 이송을 부탁드렸다. 아무래도 장인 장모님이 가까이 계시는 곳이 향후 치료를 고려한다면 나을거 같다는 판단이었다. 와이프와 아이한테 괜찮을거야, 아무렇지도 않을거야라고 말하고 떠나는 구급차의 뒷모습을 계속 바라보았다. 제발 크게 다치지 않았기를 간절히 빌었다.
와이프와 아이가 떠난 뒤에야 전기 충격을 받는 듯한 상상도 못할 통증이 전신에 흘렀다. 그제서야 교통 사고의 피해자가 되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급차가 빨리 왔으면 하는 간절함만이 머리 속에 가득했다. 시간이 조금 지났을까, 드디어 구급차가 왔다. 탑승하기 전에 아까 교통 정리를 해주신 차량 운전자분께 감사하다는 말을 드렸다. 괜찮아지면 꼭 연락드리겠다고, 절대로 은혜 잊지 않겠다고. 그리고 구급차에 탑승했다. 이제야 병원에 가는구나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이송 중에 구급 대원이 여러 병원에 연락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고보니 의사 파업이라 병원 수용이 어렵다고 하는데, 그 상황을 내가 마주하게 되니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때마침 장인 어른에게 사고 소식을 들었는지 아버지에게 연락이 왔다. 전화를 받을 수가 없어 구급 대원에게 대신 전화를 받아 설명을 해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구급 대원은 현재 나의 상태를 비롯해서 이송할 병원이 어디인지 등을 말하였다. 그리고 환자 상태로 보아 위중한 상태는 아니기에 아주대병원, 동탄 한림대병원, 분당 서울대병원 등 대형 병원으로의 이송은 어렵다고 언급하였다. 아마 아버지가 대학 병원으로 이송을 강력하게 요청하셨나보다. 안성에서 가장 가까운 대학 병원이 동탄 한림대병원인데 거기까지도 편도 1시간 내외 소요되기에 구급차가 가기에는 내가 생각해도 불가능한 이동 거리였다. 구급 대원이 여러 곳에 전화를 한 끝에 안성 성모병원 응급실에서 수용이 가능하다고 하여 그쪽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3-40분 정도 지나 병원에 도착하였다. 병원 직원에게 인계된 나는 응급실로 이동되었고, 응급실 당직 의사와 간호사에게 상태를 체크 받았다. 외부 출혈 여부를 먼저 확인하고, 어디가 가장 아픈지, 어떻게 아픈지, 통증은 어느 정도인지 등을 하나씩 물어보았다. 그리고 엑스레이와 CT 촬영이 순서대로 이루어졌다. 응급실에 온지 1시간쯤 지났을까, 당직 의사 선생님께서 오시더니 나의 상태를 자세하게 설명해주셨다. 오른쪽 손목은 골절이 되어 수술이 필요하고, 갈비뼈 4개가 부러졌고, 폐에 출혈로 보이는 흔적이 보인다고 알려주시며 즉각 입원을 해야한다고 말씀을 주셨다. 오늘은 수술이 어려워 내일 중으로 손목 수술이 진행될 예정이라고 추가로 말씀을 해주셨다. 그리고 오른팔에 깁스를 하게 되었다.
6인실은 빈 곳이 없어 2인실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입원을 하게 되니 갑자기 슬픔과 분노가 몰려왔다. 내가 다친 것도 있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평범했던 즐거웠던 일요일 오후가 교통 사고로 망가져버려서였다. 그쪽 길로 가지 않았더라면, 조금이라도 일찍 출발했으면, 아니 풍사니랑을 아예 처음부터 가지 않았더라면 이렇지는 않았을텐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와이프와 아이는 괜찮을까, 어디 심하게 다치지 않았을까, 연락이 안되니 오만가지 불안감이 엄습하였다. 오른팔에 깁스를 하고 있으니 핸드폰을 사용하는 것도 움직이는 것도 불편했다. 정상적이었던 모든 것들이 불편해졌다. 나의 오른팔은 괜찮을까, 다시 제대로 움직일 수 있을까, 장애가 생기면 어떻게 하지 등 머리 속이 복잡했다.
입원하고 1-2시간쯤 지나 부모님이 분당에서 오셨다. 엄마는 내 상태를 보더니 눈물을 흘렸고 아버지는 한숨을 크게 쉬셨다. 그리고선 장인 어른과 통화를 하셨다고 말씀주시면서 와이프와 아이는 괜찮다고 하셨다. 와이프는 타박상을, 아이는 눈썹이 찢어졌다고 알려주셨다. 크게 다치지는 않아 다행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다친게 가장 마음이 아팠다. 아버지는 의사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고 나의 상태에 대해 듣고서는 대학 병원으로 입원이 가능한지를 주변 지인들에게 전화를 하시며 문의를 하셨다. 그때 아주대병원에서 근무하는 아는 동생이 떠올라 동생 연락처를 아버지에게 알려주며 연락을 해보라고 알려드렸다.
아는 동생과 연락을 하고 다시 입원실로 돌아온 아버지는 아주대병원으로 전원이 가능하다고 알려주셨다. 아는 동생이 정형외과에서 근무하는 지인에게 연락을 취해 수술 및 입원 가능 여부 등을 확인해주겠다고 하였다. 다만 의료 파업으로 인해 당장은 어렵고 화요일에 병실이 생긴다고 하여 그때까지만 이곳에 입원하는 것이 좋다고 의견을 주었다. 안성 성모병원도 나쁘지는 않지만 다른 병원에서 세컨 오피니언을 듣는 것도 이로울 것이라 판단하였다. 게다가 향후 통원 및 재활 치료까지 생각한다면 아주대병원이 더욱 다니기에도 가깝기에 그렇게 결정을 내렸다. 아버지는 당직 간호사에게 대학병원으로의 전원 및 수술 취소를 말씀하셨다. 당장 생명에 지장이 가는 것은 아니기에 이틀 정도 이곳에서 있으며 아주대병원으로 가는 날을 기다리기로 했다.
부모님은 가해자의 연락처를 받고, 나에게 걱정말고 편히 자라고 안심시켜준 뒤에 집으로 돌아가셨다. 진통제를 먹어서인가 사고후에 계속 지속된 통증은 어느 정도 가라 앉은게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그렇게 2024년 11월 10일, 악몽이었던 하루가 끝나고 있었다.
전국고등학교야구선수권대회 (이하 고시엔)의 쉬운 이해를 위한 특집편을 정리해보았다. 특집 1탄에서는 8개 지방 및 47개 도도부현의 통산 성적(승리 및 패전 횟수, 승률, 우승 및 준우승 횟수)을 그림과 표로 분석하였다.
* 분석 시점: 2024년 9월
* 분석 대상: 47개 도도부현 및 8개 지방
* 분석 내용:
- 8개 지방별 승리 횟수
- 47개 도도부현별 승리, 패전 횟수 / 승률, 우승 및 준우승 횟수
* 분석 시기: 1915년 제1회 대회부터 2024년 제106회 대회
1. 지역 및 지방별 통산 성적
① 홋카이도 (통산 75승 162패, 2회 우승)
○ 전국 8개 지방을 통틀어 가장 적은 승리 횟수와 낮은 승률을 보이고 있다. 우승 횟수는 단 2회뿐이며, 2003년과 2004년 다나카 마사히로를 앞세운 토마코마이 고교가 달성한 것이 전부이다. 7개 도도부현 중 가장 넓은 면적, 지나치게 긴 겨울, 급격한 인구 감소 등으로 선수 수급에 어려움을 겪으며 고교 야구 존폐에 가장 위협 받는 지방 중 하나이다.
② 도호쿠 (통산 299승 418패, 1회 우승)
○ '도호쿠의 비원'이라 불릴 정도로 전국 8개 지방 중 유일하게 고시엔 우승 경험이 한번도 없었다. 2022년 미야기현의 센다이 이쿠에이 고교가 첫 우승을 하며 도호쿠 지방에 진홍의 대우승기를 가져오며 무관의 설움을 떨쳐냈다. S급 사립 고교들이 위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야기현을 제외한 나머지 5개 현은 30위권 밖에 있을 정도로 승리 횟수가 적다. 특히 아키타현, 야마가타현, 이와테현, 후쿠시마현은 승률이 4할도 되지 않는다.
③ 간토 (통산 692승 577패, 25회 우승)
○간토 지방의 6개 도도부현은 최소 1회 고시엔 우승 경험을 가지고 있다. 우승 횟수는 총 25회로 도쿄도, 카나가와현에서 주로 우승이 이뤄졌다. 도쿄도, 카나가와현, 사이타마현, 토치기현, 군마현, 이바라키현에서는 2000년 이후 고시엔 우승 경험이 있는 반면, 치바현만 유일하게 2000년 이후 고시엔 우승이 없다. 1975년 제57회 대회에서 우승이 마지막이었다.
④ 주부 (통산 566승 682패, 11회 우승)
○ 도도부현간의 실력차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지방이다. 아이치현이 최다 승리, 최다 우승, 최다 승률을 기록하는 반면, 니가타현은 최저 승리, 최저 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세부 지역으로 구분하였을 때, 대도시권과 가까운 도카이 지방(아이치현, 시즈오카현, 기후현)의 성적이 고신에쓰 지방(니가타현, 야마나시현, 나가노현)과 호쿠리쿠 지방(도야마현, 이시카와현, 후쿠이현)과 비교하였을 때 높다.
지역
지방
승리
패전
승률
우승
준우승
동일본
홋카이도
75
162
0.316
2
2
도호쿠
299
418
0.417
1
10
간토
692
577
0.545
25
14
주부
566
682
0.454
11
17
합계/평균
1,632
1,839
0.433
39
43
⑤ 간사이 (통산 761승 544패, 37회 우승)
○ 오사카부, 효고현, 와카야마현, 교토부가 간사이 지방 우승의 92%를 차지하고 있으며, 전국을 통틀어도 최다 승리, 최다 우승, 최고 승률을 보이고 있다. 간사이 지방의 7개 도도부현 중, 시가현만이 유일하게 고시엔 우승 경험이 없다. 최고 성적은 2001년에 달성한 준우승으로 당시 상대는 도쿄의 닛다이산 고교였다.
⑥ 주고쿠(통산 345승 368패, 8회 우승)
○ 히로시마현이 압도적으로 좋은 성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반면, 나머지 4개 도도부현은 아쉬운 성적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인구 유출이 심한 시마네현과 돗토리현은 승률이 3할밖에 되지 않아 지방 대회 통합이라는 이야기도 나올 정도로 미래가 어두운 현황이다. 그렇다고 본선에서의 성적이 좋은 것도 아니라 지난 10년간 베스트8에 도달한 적이 단 2번밖에 없을 정도로 실력면에서도 안타까운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⑦ 시코쿠(통산 359승 270패, 11회 우승)
○ 일본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이지만, 고시엔에서는 통산 11회 우승이라는 뛰어난 성적을 보이고 있다. 에히메의 영광이라 불렸던 1950~60년대에 우수한 실력을 선보였던 에히메현에서 통산 6회 우승이라는 성과를 이뤄냈다. 고치현, 도쿠시마현, 카가와현도 최소 1회 이상 우승 기록을 보유 중에 있다.
⑧ 큐슈 및 오키나와 (통산 505승 553패, 8회 우승)
○ 후쿠오카현이 큐슈 지방에서 최다 승리, 최다 우승, 최고 승률 기록을 보유한 가운데, 2년 연속 가고시마현의 카미무라 가쿠엔 고교가 4강에 진출하며 고시엔에서 주목하는 도도부현이 되어가고 있다. 사가현은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음에도 2번의 우승 경험이 있고, 특히 2007년 '사가키타의 기적'을 만든 사가키타 고교가 맹활약하고 있다.
1. 8월 31일: 도쿄 도착 및 요코하마에서 우타다 히카루 'Science Fiction' 공연 보기2 2. 9월 1일: 오전에 간토다이 이치 고교 탐방, 그리고 교토로 이동해 교토 국제 고교 방문 3. 9월 2일: 한신 고시엔 구장 관람 후 100주년 인증 후 간사이 공항으로 이동해 귀국
2박 3일의 여행 일정은 원래 이랬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고시엔 우승 고교 방문하기. 그래서 고시엔 준결승에서 교토 국제 고교와 간토다이 이치 고교를 응원했다. 순전히 학교 탐방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혹시나 아오모리 야마다 고교 또는 카미무라 가쿠엔 고교가 결승에 진출했다면 학교 방문은 불가능했었을 것이다.아오모리 야마다 고교는 도호쿠 신칸센을 타고 가볼 생각을 했었겠지만, 카미무라 가쿠엔 고교는 망설임도 없이 포기했었을 것이다. 여튼 교토 국제 고교와 간토다이 이치 고교가 결승전에 진출했고 고시엔 구장 개장 100주년이라는 기념을 위해 2박 3일 동안도쿄, 교토, 오사카를 전부 볼 수 있다는 희망에 가득차 있었다.
이런 바램과는 달리, 출국 전부터 일본 주요 뉴스 헤드라인은 태풍 산산에 관한 내용으로 가득차 있었다. 태풍 산산이 오는 것은 이미 뉴스를 통해 알고 있었고, 내가 가는 시점에 상륙하는 것도 인지하고 있어 큰 동요는 하지 않았다. 올해 일본을 갔었을 때마다 비가 왔으니 이번에도 그정도 수준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일본 큐슈 지방에 상륙한 이후, 산산의 이동 속도는 느려졌고 엄청난 양의 비를 쏟아 부으면서 말 그대로 교통을 마비시켰다. 콘서트 3일전이였나? 이번 여행의 주된 목적이었던 우타다 히카루의 카나가와 콘서트도 태풍 상황에 따라 취소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공지도 있었으니 산산의 영향이 어떤지 감히 느낄 수 있었다. 혹시 교토를 못가는 건 아닌지라는 불안도 있었지만, 신칸센이라면 갈 수 있을거야라는 일말의 희망은 있었다.
걱정한 것과는 달리 도쿄의 비는 생각보다 많이 내리지 않았다.우타다 히카루 콘서트도 정상적으로 진행 되었다. 이정도 비라면 내일 교토를 갈 수 있겠다는 내심 들었다. 콘서트를 가기전 보았던 뉴스로는 도카이도 신칸센은 여전히 미시마역 사이와 신오사카역 사이는 전면 운행 중단 중. 계획이 뒤틀어질거 같은 불안감이 생겼지만 비가 그다지 심하게 느껴지지 않아 내일은 괜찮겠지라고 콘서트에 같이 간 신이치상에게 말했더니,신이치상은 절대 그렇지 않을거야라고 웃으면서 답해주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JR 도카이 홈페이지에 접속을 해서 신칸센 상황을 보니 어제처럼 신칸센 운휴라는 안내가 메인 페이지에 떠있었다. 설마 오늘도?라는 생각이 가득해서 아키하바라를 가면서 도쿄역을 지나가보았다. 아니나다를까, 홈페이지와 동일하게 '도카이도 신칸센 전면 중지'라는 안내가 전광판을 통해 계속 나오고 있었다. 그나마 어제보다 나은 건, 미시마역까지는 코다마 등급으로만 제한적으로 운행하고, 이후부터 나고야역까지는 운휴, 그리고 신오사카역까지는 코다마 등급만 평상시보다 감소하여 운행한다고 것이었다. 어떻게든 신칸센을 타야겠다고 줄 서 있는 일부 관광객들을 제외하고 신칸센 출입구는 말 그대로 한산 그 자체였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아쉬움이 가득한 탄식이 나왔다. 호쿠리쿠 신칸센을 타고 이동하는 방법도 고려해보았지만, 일정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했기에 결국 교토 국제 고교와 한신 고시엔 구장 방문은 포기하였다.
숙소에 짐을 두고 아키하바라에 도착하니 잠시 그쳤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차라리 여름 장마처럼 확 쏟아지면 좋을텐데 그렇지 않으니 불쾌지수만 높아진다. 간토다이 이치 고교가 있는 신코이와역까지는 6정거장. 그리 멀지 않지만 더위와 습도 그리고 피로 때문에 움직이는게 귀찮아지고, 이런 날씨에 정말 가야하나라는 생각만 가득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교토 국제 고교를 못가니 간토다이 이치 고교는 꼭 가야지라는 마음으로 움직였다.
신코이와역에서 내려 개찰구를 통과하니 간토다이 이치 고교의 준우승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붙여져 있었다. 고시엔이 끝난지 2주 정도 지났지만, 아직도 축하하는 모습을 보니 좋아보였다. 학교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든 없든,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학교가 전국 대회에서 달성한 대단한 업적을 함께 기뻐한다는 것에 좋다고 느껴졌다. 매일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일상으로 느껴지겠지만 나에게는 흥미로우면서 관심있는 모습으로 비쳐졌다.
간토다이 이치 고교는 신코이와 역에서 도보로 약 10-15분 거리로 나온다. 남쪽 출구로 나오니 '신코이와 뤼미에르 상점 거리'가 정면에 보였다. 신주쿠구, 시부야구 등 상업 지구와는 다르게 전형적인 거주 지역이기 때문에 이곳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현지 주민들이었다.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여행의 묘미는 시장 구경인 듯 싶다. 내가 사는 문화권과 다른 배경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일상을 보낼까를 상상한다면 시장에서 그 정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작년 게이오 기주쿠 고교를 방문했었을 때도 히요시 상점 거리가 독특하게 보여졌고 올해는 이곳이 그렇게 감상이 되어진다. 관광객이 아닌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하기에 물건은 새롭거나 다채롭지 않지만 오래된 투박함이 좋게만 보였다. 9월이 막 시작했지만 벌써부터 할로윈 용품들을 판매하는 것을 보니 이제 곧 가을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더 걸어가니 저 멀리 커다한 현수막이 자랑스럽게 걸려져 있는게 눈에 보였다.
『제 106회 전국고등학교야구선수권대회
축 준우승 간토다이 이치 고교
주최 / 아사히신문사 · 일본고교야구연맹』
준우승이어도 이렇게 기뻐하고 좋아하는데, 만약 우승이었다면 얼마나 더 자랑스러워 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매일 이곳을 거쳐가는 간토다이 이치 고교 학생들을 비롯해서 학부모들, 학교 관계자들이 이렇게 상점회에서 현수막을 걸어준 것만으로도 엄청난 자부심이 생기지 않았을까 느껴졌다. 현수막뿐이 아니었다. 동도쿄 대표로 고시엔 본선 출장을 축하하는 포스터도 여전히 여러 가게에 붙어 있다보니 새삼 고시엔이라는
'신코이와 뤼미에르 상점 거리'를 벗어나 주택가로 들어섰다. 구글맵 기준으로 5분만 걸어가면 간토다이 이치 고교가 나온다. 일본 주택가를 거닐때마다 항상 느끼지만 정말 조용하다. 지난번 앨리샤가 살고 있는 초후를 갔었을 때도 느꼈던 것과 비슷한 분위기를 경험한다. 역 주변을 제외하고는 사람이 다니는 것을 보기가 힘드니, 조용함을 넘어 쓸쓸함이 들 정도이다. 내가 걷는 소리조차도 민폐가 될 것 같다는 생각도 스쳤다. 그럼에도 곳곳에 보이는 작은 가게 등에서는 아직까지도 간토다이 이치 고교의 고시엔 본선 출장을 축하하는 포스터 등이 붙여져 있어 쉽게 눈에 띄었다. 확실컨데 간토다이 이치 고교 재학생들이 자주 오거나, 재학생 부모 또는 졸업생이 운영하고 있거나, 순수하게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학교이니 응원하고 싶어 붙여 놓았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잠시 걸으니 간토다이 이치 고교의 모습이 나타났다. 1925년 설립된 간토다이 이치 고교의 시작은 실업 고교였다. 상업과 계열로 학생 모집을 하고 이후 전기과, 기계과, 건축과, 공업과 계열이 추가되며 규모를 점차 확장하였다. 하지만 1973년부터 일반 학교로의 전환을 모색하였고 동시에 실업 계열 학과의 모집을 차레로 중단하였다. 그리고 2012년에 공업과 계열 모집 중단을 끝으로 일반 고교로의 전환을 완료하였다. 올해는 남녀 공학이 된지 20주년이 된 해이며, 2025년 4월에는 학교 설립 100주년이 되기에 올해 고시엔에서는 다른 학교보다 남다른 목표가 있었을 것이다.
간토다이 이치 고교 야구부는 이곳 도쿄에 위치하고 있지 않다. 차를 타고 약 40분 거리에 있는 치바현 시로이시에 야구부 전용 기숙사와 인조잔디 구장 1개, 일반 구장 1개가 있다. 간토다이 이치 고교처럼 인구 밀도가 매우 높은 대도시권에 위치한 학교의 야구부는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학교와 멀리 떨어져 있다. 도심에 야구부 전용 훈련 부지를 구하고 시설을 투자하는 것에 막대한 비용이 투입될 뿐더러, 늦은 시간까지 훈련을 하는 야구부 특성상 환경적으로도 제한적이기에 이와 같은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간토다이 이치 고교가 설립된 1925년 사진을 보면 학교 주변은 이미 현재와 같이 일반 거주지로 가득채워져 있었다. 따라서 게이오 기주쿠 고교처럼 학교 내에 야구부 훈련 그라운드가 있는 것은 매우 특별하다고 볼 수 있다.
학교 정문은 현재 주차장 공사로 인해 접근 불가. 아무래도 후문으로 가면 학교를 더 자세히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5분 정도 걸었다. 작년 게이오 기주쿠 고교 탐방을 시작으로 이렇게 고시엔에서 우승 또는 준우승하는 학교를 탐방하는 것도 점차 재미가 생긴다. 더불어 관광객으로서 전혀 가볼 수 없는 지역을 구경하는 즐거움도 있으니 내년에는 8강 이상 진출 고교 방문이라는 컨텐츠도 심각하게 고려해봐야겠다.
후문에 도달하니 고시엔 준우승 기념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2015년에 4강에서 아쉽게 탈락했지만 9년이 지난 올해는 준우승을 했으니-그것도 1점차로 아쉽게-당연히 학교로서는 경사를 축하하지 아니할 수 없었을 것이다. 교내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사전 허가를 받지도 않은 전혀 관계없는 일반인이었기에 학교 밖에만 머물렀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후문 경비실의 나이 드신 경비원에게 "고시엔 준우승 축하한다. 준우승이라 아쉽다"라고 말했더니 "감사합니다"라고 웃으면서 대답을 해주셨다.
현수막을 자세히 보니 '준우승'라고 급히 붙힌 흔적이 보였다. 고시엔 우승을 예상하고 현수막을 만들었다가 준우승이 되다보니 급하게 '준'이라는 단어를 작게라도 붙여서 (크게는 못하고) 축하고 싶었던 마음이었나보다. 결승 경기가 한쪽의 우위가 아닌 연장까지 가며 1점차 승부로 끝났을 정도로 치열한 접전이었으니 학교측도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결과로 인해 급작스럽게 취한 조치로 보여서 그런지 더욱 준우승이 더욱 안타깝게만 느껴졌다.
먹구름으로 가득했던 하늘이 갑자기 비구름으로 확연하게 바뀌는게 보여 학교 구경은 여기서 마무리하였다. 계획대로였다면 오전에 이곳을 보고 교토로 갔었을텐데 그러지 못한게 많은 아쉬움이 들었다. 날씨만 괜찮았다면, 아니 태풍만 아니었다면 어떻게든 교토 국제 고교를 갔었을텐데. 통제 불가능한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서는 뛰어난 인간의 기술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진리를 다시 한번 느꼈다. 그래도 준우승한 간토다이 이치 고교를 방문한 것만으로도 좋았다. 올해 멋진 경기를 선보인 간토다이 이치 고교 야구부 선수들에게 마음속으로 고생했다라는 생각을 남기며 올해 고시엔 준우승 고교 방문을 끝냈다.
제106회 전국 고교 야구 선수권 대회(이하 고시엔)가 교토 국제 고교의 우승으로 100주년을 맞이한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마무리 되었다. 교토 국제 고교의 우승은 일본 뿐만 아니라 한국 미디어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얻은 타이틀은 물론이고 한국계라는 특수성까지 더해지며 교토 국제 고교의 우승 스토리는 가히 한국이 월드컵 4강에 진출한 듯한 분위기였다. 여기에 약 4천여개에 가까운 고교 야구 인프라에 대한 부러움과 자조감이 섞인 내용을 많이 다루며 고시엔을 바라보는 모습은 질투에 가까워졌다. 한국의 고교 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양적인 규모로 인해 오타니 쇼헤이 같은 수준 높은 야구 인재들을 발굴하여 탄생한다거나, 전국의 대부분 고교가 참가하여 단 한 팀만이 전국제패를 하는 만화 같은 스토리 등이 수많은 매체와 커뮤니티에서 언급되며 고시엔에 로망을 가지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한국에서의 고시엔 열풍(?)과는 달리, 일본에서의 고시엔은 앞으로의 100년에 대한 장미빛 환상과 함께 우울한 미래를 맞이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최근 몇년간 지속적으로 언급 되고 있다. 이러한 우려스러움의 중심에는 공립 고교의 감소라는 거대한 이슈가 자리잡고 있다.
2003년 이후 20년 연속 감소 중
제1회 대회부터 제106회 대회까지 고시엔 참가 고교의 통계를 보면 공립 고교, 특히 실업 고교를 포함한 농업 고교, 상업 고교 등이 눈에 띄게 감소하였다. 거기에다가 제105회 대회에서 우승한 게이오 기주쿠 고교(카나가와현)에서 보듯이, 최근 몇년 사이 동안 남자 고교도 고시엔에서 찾아보기 힘든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공립 고교의 감소는 단순히 학교 하나의 이슈가 아닌, 고시엔 제도의 변화와 존폐, 나아가 일본 고교 야구의 미래에 위협이 될 수 있는 피할 수 없는 사회적인 현상이 되가고 있다.
일본 고교 야구 연맹(이하 고야렌)에 따르면 고시엔 지역 대회 참가 고교 수는 2003년에 4,163개로 정점을 찍은 후 20년 연속 하락 추세이다. 2024년의 고시엔 참가 고교 수는 3,441개로 2023년의 3,486개와 비교하여 45개 고교가 감소하였다. 2003년과 비교하여도 약 700여개의 고교 수가 줄어들었다. 고시엔 참가 고교 수가 감소하는 원인으로는 ▲야구부 또는 야구부원이 관련된 사건으로 인한 출전 정지 ▲학교 사정으로 인한 출전 포기 ▲야구부원 부족으로 인한 시합 불가 ▲재단 또는 학교의 야구부 해체 등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생 수 감소로 야구부를 운영하지 못하는 고교끼리 팀을 이뤄 고시엔에 참가하는「연합팀」이 증가하고 있다. 1997년에 처음 등장한 연합팀은 1개였지만 이후 꾸준히 증가하며 2024년에는 133개 연합팀 (403개 고교)가 만들어져 지역 대회에 참가하였다. 연합팀은 지방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도쿄, 오사카 등 대도시에도 연합팀이 만들어져 참가하는 수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이처럼 고시엔의 화려한 이면에는 학교 수 감소라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47개 도도부현을 지역별로 나누었을 때, 동일본 지역에서 감소한 고교 수는 약 300여개. 홋카이도와 도호쿠 지방을 중심으로 감소세가 크다. 특히 아오모리현, 이와테현, 후쿠시마현이 대표적이다. 2022년 기준으로 이들 지역은 전체 인구 감소율이 높은 상위 5개 지역에 포함되어 있고,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기점으로 그 비율은 크게 증가하였다. 도쿄, 오사카, 아이치현처럼 독자적인 거대 경제권이 형성되지 않았고, 1차 산업이 중심이 되다보니 센다이, 모리오카, 아오모리 등 일부 도시권을 제외하고는 낙후된 지역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인구 유출은 필연적이었고 자연스레 학생 수도 줄어들고 있다. 오타니 쇼헤이의 모교 하나마키 히가시 고교(미야기현), 2022년 고시엔 우승의 주인공 센다이 이쿠에이 고교(이와테현), 북쪽의 강호 하치노헤 고세이 고교(아오모리현), 고시엔 본선 최다 출장 기록의 당사자 홋카이 고교(홋카이도) 등 일부 사립 고교가 활약을 펼치고 있으나 학생이 줄어드는 것은 막을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 20년간 서일본 지역에서 줄어든 고교 수는 약 120여개. 동일본 지역과 비교하여 감소 숫자는 적지만 대도시권을 포함하여 야구부 감소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 차이가 크다. 대표적인 사례가 오사카의 PL 가쿠엔 고교다. 고시엔 통산 출장 17회 및 우승 4회의 기록, 일본이 자랑하는 슈퍼 스타 KK 콤비라 불린 기요하라 카즈히로와 쿠와타 마스미의 모교인 PL 가쿠엔 고교는 학교 재단의 이슈 등으로 2015년에 신입생 모집을 중단하였고, 2016년을 마지막으로 야구부 운영을 종료하였다. 오사카와 가까운 효고현도 비슷한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효고현 남부는 고베를 중심으로 경제권이 형성되었으나, 효고현 북부는 그렇지 못하다보니 인구 유출이 커지며 학교 통폐합이 가속화되고 있다. 단순히 대도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이라 불리는 산인 지역의 돗토리현, 시코쿠 지역의 고치현에서 2024년 지역 대회에 참가한 고교 수는 각각 22개, 24개로 가장 적은 규모였다. 등록된 야구부원 수도 736명, 862명으로 47개 도도부현 중에 뒤에서 1,2등을 다투고 있을 정도로 학생 수 감소도 심각한 상태이다.
이처럼 고교 수 감소의 가장 궁극적인 원인에는 저출산으로 인한 학령 인구 감소에 있다. 1982년 11만명이었던 고교 야구 등록 선수는 꾸준히 증가하며 2014년에는 17만명까지 도달하며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이후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하였으며, 2024년 올해 등록 선수는 12만명으로 40여년전과 비슷해졌다. 등록 선수 감소는 일부 지역의 문제가 아닌 전국적인 문제이다. 47개 도도부현 전체로 보았을 땐 2003년과 비교하여 약 17% 감소하였다. 이 중에서 나라현의 감소율은 전국에서 가장 높은 35%에 달한다. 후쿠시마현도 3천명이 넘었던 등록 선수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기점으로 등록 선수가 급감하였으며 이는 현재 진형형이다. 등록 선수 감소율이 높은 상위 10개 도도부현 중, 6개 도도부현이 홋카이도 및 도호쿠 지역에 몰려 있다. 도쿄, 오사카, 사이타마현, 카나가와현 등 대도시 및 수도권도 이러한 영향을 피해가지 못했다. 지난 10년간 해당 지역에서 평균 1,300여명의 학생 수가 감소하였고, 특히 오사카는 2003년 7,947명에서 2024년 5,948명으로 약 25%가 감소하였다.
도도부현
야구부원 수
감소율
2003년
2024년
나라현
1,965
1,271
▼35.3%
후쿠시마현
3,235
2,106
▼34.9%
가고시마현
3,168
2,101
▼33.7%
니가타현
3,539
2,355
▼33.5%
야마가타현
2,101
1,404
▼33.2%
아오모리현
2,315
1,557
▼32.7%
이와테현
2,765
1,907
▼31.0%
아키타현
2,039
1,426
▼30.1%
와카야마현
1,598
1,153
▼27.8%
홋카이도
7,315
5,306
▼27.5%
학생 수 감소는 지역 대회에 먼저 영향을 주고 있다. 2024년 돗토리현 지역 대회에 참가한 고교 수는 총 22개. 시드를 배정 받은 돗토리 조호쿠 고교는 단 4개의 경기만 진행하며 고시엔 본선 출장 티켓을 확보했다. 최소 6경기를 치뤄야 하는 격전지와 비교하면 쉽게 고시엔 본선에 출장할 수 있어 좋게 생각할 수 있지만, 마냥 그렇지는 않다. 고시엔 본선에서 돗토리현 대표 고교의 성적은 가히 처참하다. 1995년 이후 29번의 고시엔 본선 출장 기록에서 단 3번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26번은 1회전에서 패배하는 결과를 기록하고 있다. 1956년 제38회 대회에서 4강에 진출한 이외에는 3회전까지 진출한 것이 최고 기록이다. 고시엔 본선에서의 성적이 좋지 않으니 유망주들을 전국에서 스카우트 하는 것은 이곳의 사립 학교에도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3학년 졸업생들은돗토리현에서 야구를 계속하고 싶어도 독립 리그 또는 프로 야구 같은 상위 리그가 부족하기에 결국 인근 도도부현이나 대도시권으로 유출이 되다보니 결국 신입생에게도 야구를 하고자 하는 동기가 부여되지 않게 된다. 야구 선수의 감소는 학교의 실력 격차로 이어진다. 후쿠시마현에서는 세이코 가쿠인 고교가 2007년부터 단 한번을 제외하고 16번 연속 고시엔 본선 출장이라는 기록을 세웠고, 고치현에서는 메이토쿠 기주쿠 고교가 지난 14년간 고치현 대회에서 12번 우승하는 기록을 만들었다. 일부 격전지를 제외하고 지방에서 이러한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으며 이제는 '1승의 격차'가 확대되고 있고 지방 대회 규모가 작아지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제는 멈출 수 없는 사회적인 현상으로 대두되고 있어 1978년 이래 유지되고 있던 「1도도부현 1개 고교」 시스템을 재검토해야 할 때가 도래할지도 모른다.
등록 학생 수가 감소하지만 고교 야구 수 변화는 크지 않기에 우려할 사항이 아니라고 말하는 일부 의견도 있다. 하지만 고교 야구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유소년 야구를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할 수 있다. 일본 유소년 야구팀의 90%가 가입되어 있는 전일본연식야구연맹(全日本軟式野球連盟)의 조사가 이를 뒷받침한다. 2022년 등록된 유소년 (우리나라의 초등학교) 야구부 수는 9,842개로 통계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하였다. 2005년 이후 감소세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락폭이 크지 않았지만, 이번의 경우에는 1만개라는 심리적 저항선이 무너졌다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
단순히 야구부 숫자만 줄어든 것이 아니다. 2009년 30.7만명이었던 등록 선수는 2020년에 18.7만명으로 약 64% 감소하였다. 만약 하락세가 지속된다면 2028년에는 등록 선수는 약 2.5만명 정도 될 것이라는 충격적인 결과도 있다. 중학교 야구도 비슷한 상황이다. 일본중학교체육연맹(이하 츄타이렌)에 따르면 2001년 30만명이었던 학생 수는 2023년 14만명으로 약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이외에도 5개의 경식 야구 리그에 속해 있는 학생 수도 서서히 감소하고 있으며, 이는 유소년 학생 수가 줄어든 것이 가장 큰 영향이라는 의견이 다수이다. 유소년과 중학교 야구 선수 감소는 몇 년간의 시차를 두고 고교 야구 선수들의 감소로 파급되었다. 더욱이 고교 야구에서 여전히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공립 고교, 특히 농업 고교, 공업 고교 등 실업 고교에 직격탄이 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전망되고 있다.
2007년이 마지막이었던 공립 고교의 우승
1915년 제1회 고시엔 대회에 출전한 지구 대표 10개 고교 (1도도부현 1개 고교 시스템이 정착되기 이전) 중에 9개 고교가 공립 고교였다. 와세다 실업 고교만이 유일한 사립 고교였을 정도로 공립 고교의 위상은 높았다. 하지만 고시엔 본선에 출장하는 사립 고교 수는 꾸준히 증가하였고, 1964년 제46회 대회는 2,270개 참가 고교 중 사상 처음으로 사립 고교의 비중이 절반에 달했다. 공립 고교와 사립 고교의 비율은 비슷하게 유지되다가 1995년 제77회 대회부터 사립 고교의 비중이 대폭 증가하였고 지금은 80% 가까이 차지하고 있다.
고시엔 대회에서 사립 고교의 비율이 높아질수록 공립 고교가 우승할 수 있는 확률은 점차 낮아졌다.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공립 고교와 사립 고교가 우승을 서로 나눠가질 정도로 실력이 비등하였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 사립 고교의 우승 횟수가 많아지기 시작하더니 2010년대 이후에는 공립 고교가 우승하는 모습을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2000년대 이후까지 넓혀보아도 '사가키타의 기적'의 주인공인 사가키타 고교(사가현)가 2007년 제89회 대회에서 우승한 것이 공립 고교가 고시엔의 정상에 오른 마지막이었다. 2018년 제100회 대회에서 요시다 고세이가 활약한 '카나아시 선풍'을 일으켰던 카나아시 농업 고교(아키타현)가 결승까지 올랐지만, 네오 아키라 등 당시 최강의 멤버들로 구성된 오사카 토인 고교에게 패배하며 준우승을 기록한 것이 공립 고교가 달성한 2010년 이후의 최고 성적이다.
고시엔 본선에서 8강에 진출하는 것은 출장 학교에 있어 매우 영광스러운 성과이다. 자연스럽게 여러 매체에 노출이 되다보니 유무형의 이익을 누리게 된다. 감독의 철학, 야구부 운영 방식, 야구부의 특징 등이 소개되어 전국의 유망주들을 스카우트 하는데 유리한 입장에 놓이게 된다. 게다가 야구부 가입을 희망하는 신입생 또는 전학생이 증가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나아가서는 재단과 동문의 재정적 지원이 증가해 안정적인 야구부 운영이 가능해진다. 2007년 제89회 대회에서 우승한 사가키타 고교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고시엔 우승 후에는 야구부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동문회를 비롯하여 졸업생들의 모교 지원이 늘어났고, 고시엔 우승 후광 덕분에 야구부원 수도 한때는 60명까지 증가하는 성장을 이뤄냈다. 우승 이전에는 단 한번 뿐이었던 고시엔 본선 출장 횟수가 우승 이후에는 2012년, 2014년, 2019년 3번이나 될 정도로 사가키타 고교는 이후 사가현에서 지역 강호로 거듭날 수 있었다. 이처럼 저출산에 따른 학생 수가 빠르게 줄어드는 상황에서 고시엔 본선에서 8강에 진출하였다는 타이틀은 매력적인 홍보 요소가 될 수 밖에 없다. 학생들도 고시엔에서의 목표가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일본 제일이 되고 싶다'와 더불어 '8강에 진출하고 싶다'고 답변하는 경우가 많을 정도이다.
많은 수의 사립 고교가 8강 이상을 목표하는 반면, 공립 고교는 고시엔 본선 출장이라는 쉽지 않은 목표를 가진다. 고시엔 본선에 출장하는 것만으로도 홍보가 되어 선수 수급이 된다. 그러나 현실은 공립 고교에게 녹록하지 않다. 고시엔 본선에 출장하는 공립 고교의 수는 1%도 채 되지 않을 정도로 매우 적다. 2006년 이후 본선에 출장하는 공립 고교는 대회당 평균 10개 내외로 전체 참가 고교의 약 0.3%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낮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2023년 제105회 대회는 공립 고교의 전멸이라 불렸을 정도로 본선에 출장한 고교가 10개도 되지 않았다. 본선 출장 기회가 적다보니 공립 고교에게 있어 8강 진출은 도달할 수 없는 벽 같은 존재다. 2009년 제91회 대회까지는 4강에 진출하는 고교도 있었지만, 2010년 이후에는 카나아시 농업 고교와 아카시 상업 고교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공립 고교도 8강 이상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공립 고교의 고시엔 본선 출장 비율 (2006년~2014년)
연도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참가 고교
4,112
4,081
4,059
4,041
4,028
4,014
3,985
3,957
3,917
사립 고교
30
36
38
38
33
34
33
35
36
공립 고교
19
13
17
11
16
15
16
14
13
공립 비율
0.5%
0.3%
0.4%
0.3%
0.4%
0.4%
0.4%
0.4%
0.3%
베스트 8
1
2
1
2
0
1
1
1
0
베스트 4
0
1
1
1
0
0
0
0
0
준우승
0
0
0
0
0
0
0
0
0
우승
0
1
0
0
0
0
0
0
0
공립 고교의 고시엔 본선 출장 비율 (2015년~2024년)
연도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2021년
2022년
2023년
2024년
참가 고교
3,906
3,874
3,839
3,781
3,730
3,603
3,547
3,486
3,715
사립 고교
39
39
36
44
35
37
37
40
37
공립 고교
10
10
13
12
14
12
12
9
12
공립 비율
0.3%
0.3%
0.3%
0.3%
0.4%
0.3%
0.3%
0.3%
0.3%
베스트 8
1
1
1
1
1
0
1
1
1
베스트 4
0
0
0
1
0
0
0
0
0
준우승
0
0
0
1
0
0
0
0
0
우승
0
0
0
0
0
0
0
0
0
그래서일까, 공립 고교의 8강 진출이 확정되면 해당 학교는 화제의 중심에 오른다. 2017년 제99회 대회에서 산본마츠 고교(카카와현)가 공립 고교로서는 유일하게 8강에 올랐을 때, 학교가 위치한 히가시 카가와시 주민들은 버스를 대절하여 고시엔 구장의 알프스 스탠드를 가득 채웠다. 인구 3만명밖에 되지 않는 소도시의 유일한 고등학교가 24년만의 고시엔 본선 출장을 하고 사상 첫 8강 진출이라는 스토리가 더해지면서 일본 전역에서 산본마츠 고교를 응원하는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2024년 제106회 대회에서 공립 고교로서는 유일하게 베스트 8이 되었던 타이샤 고교(시마네현)에게 쏟아진 관심과 응원은 고시엔에서 첫 우승을 한 교토 국제 고교를 뛰어넘을 정도로 높았다.
공립 고교와 사립 고교의 왕국: 도쿠시마현과 도쿄
일본 시코쿠에 위치한 도쿠시마현. 총 인구 수는 69만명으로 야구부가 있는 고교 수는 공립 고교 29개, 사립 고교 1개가 있다. 47개 도보부현 중에서 뒤에서 2번째로 고교 수가 적으며, 학생 수로는 뒤에서 3번째이다. 사립 고교의 존재로 사립 고교의 독무대일 것으로 생각되지만 이와는 정반대로 고시엔 역사를 통틀어 유일하게 공립 고교가 100% 본선 출장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공립 고교의 왕국이다. 공립 고교가 고시엔 본선 출장을 하니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고 여겨지겠지만, 자세히 들어다보면 일본 고교 야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의 축소판이다.
도쿠시마현에 등록된 고교 야구부원 수는 2000년부터 증가하였으나 2008년을 정점으로 감소하고 있다. 2014년부터 2018년 사이에 잠시 반등하였으나 오래가지 못하였고 이후 계속 하락하며 2024년 6월 기준으로 926명의 고교 야구부원 수가 등록되어 있다. 가장 높았을 때였던 2018년과 비교하여 약 24% 정도 감소하였다. 등록 야구부원 수의 변동이 높은 배경으로는 고시엔 본선에서의 성적과 관련이 있다고 보여지고 있다. 2013년 제95회 대회에서 도쿠시마현 대표였던 나루토 고교는 8강에 진출하는 성과 덕분인지 다음해인 2014년부터는 야구부에 지원하는 학생 수가 증가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2016년 제98회 대회에서도 3년만에 다시 8강에 진출하는 결과를 만들며, 다음해인 2017년에 지원자 수가 증가하는 결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17년 제99회 대회부터 지금까지 1·2회전에 탈락하는 등 본선에서의 성과가 좋지 않게 되자 야구부원 수도 함께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학생 수 감소는 결국 학교의 존폐마저도 결정하는 수준까지 되었다. 2005년 37개로 정점을 찍었던 도쿠시마현의 고교 수는 2000년 이후 12개 고교가 통합 또는 폐교가 되며 2024년 6월 현재 30개로 간신히 명목만 유지하고 있다.
도쿠시마현에서 공립 고교의 야구부원 충원이 쉽지 않는 반면, 도쿄에서는 사립 고교의 강력한 경쟁력에 밀려 공립 고교가 고시엔 본선 출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고야렌의 조사에 의하면 2024년 6월 기준으로 도쿄에는 총 274개 고교가 등록되어 있고, 이 중 공립 고교는 144개이다. 야구부원 수는 9,311명으로 이는 도쿠시마현의 등록 야구부원 수의 약 10배에 달하는 규모이다. 사립 고교의 왕국이라 불리는 도쿄는 1915년 제1회 대회부터 지금까지 단 두 번만(1918년 쌀 소동과 2020년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인한 대회 취소) 제외하고 총 104번의 고시엔 대회에 전부 출전하는 기록을 세웠다. 1978년 제60회 대회부터 동도쿄와 서도쿄로 지역 대회가 나뉘었고 고시엔 본선 출장을 고교 수는 총 154개에 달하고 있다. 긴 역사를 지닌 도쿄 대회에서 단 5개 공립 고교만이 고시엔 본선 출장의 영광을 누렸다. 이는 전체 비중의 3%밖에 되지 않는다. 2003년 유카가야 고교가 공립 고교로서는 마지막으로 지난 21년간 공립 고교가 동도쿄 또는 서도쿄 대표가 된적은 단 한번도 없다. 2013년 서도쿄의 히노 고교, 2019년 동도쿄의 고야마다이 고교가 결승까지 갔었지만 아쉽게 패배하며 여전히 도쿄에서 공립 고교의 고시엔 본선 출장은 꿈과 같은 일이다.
도쿄 소재 공립 고교의 고시엔 본선 출장 역사
학교명
출전연도
고시엔 성적
비고
도쿄 고등 사범 학교
1946년
4강 진출
현 쓰쿠바대학 부속 고교
쿠니타치 고교
1980년
1회전 탈락
-
죠토 고교
1999년
1회전 탈락
-
죠토 고교
2001년
1회전 탈락
-
유키가야 고교
2003년
1회전 탈락
-
47개 도도부현 중, 고시엔 최다 우승 횟수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오사카도 도쿄와 비슷한 상황이다. 오사카는 1916년 제2회 대회부터 고시엔 대회에 참가하기 시작했으며, 총 103번의 대회에 출전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도쿄보다는 낫지만 공립 고교가 고시엔 본선 출장한 횟수는 25번밖에 되지 않으며, 대부분 1950년대 이전에 주로 집중되어 있다. 특히 1990년 제72회 대회에서 시부타니 고교가 공립 고교로서는 마지막으로 고시엔 본선에 출장한 이후로는 지금까지 오사카 토인 고교, 리세이샤 고교, PL 가쿠엔 고교, 킨키대학 부속 고교 등 사립 고교가 서로 번갈아가며 오사카 대표가 되어 고시엔 본선에 출장하고 있다. 2017년 오사카 지역 대회 결승에서 공립 고교인 오칸무리 고교가 오사카 토인 고교를 상대로 한때 3점을 앞서며 27년만의 공립 고교의 고시엔 본선 출장이 이뤄지나 싶었지만, 뒷심 부족으로 역전패를 당하며 아쉽게 본선 출장에 실패하였다.
47개 도도부현별 공립 고교의 고시엔 본선 출장 비율을 보면 도쿠시마현, 도야마현, 에히메현, 아키타현, 사가현 순으로 높았다. 반대로 도쿄, 카나가와현, 나라현, 교토, 미야기현 순으로 공립 고교의 고시엔 본선 출장 비율이 낮았다. 공립 고교의 출장 비율이 높은 곳은 일본에서도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인구 수도 100만명이 안되는 곳이 다수다. 도야마현을 제외하고 공립 고교 출장 비율이 높은 4개 지역은 야구부원의 출신 중학교가 같은 현 출신 비율이 100%에 이르는 곳이다 따라서 실력 차이가 거의 없으며, 실력이 출중한 선수 1-2명의 활약 여부에 따라 그 해 여름의 고시엔 본선 출장이 결정된다. 반대로 공립 고교의 출장 비율이 낮은 곳의 공통점은 대도시권을 중심으로 높은 단일 경제권을 지닌 곳이다. 그리고 안정적인 재단의 지원, 학생들의 높은 지원율로 우수 선수 확보에 그나마 어려움을 가지지 않는다. 미야기현 경우에는 도호쿠 지방이지만 센다이시를 중심으로 경제권이 만들어져 있고, 센다이 이쿠에이 고교가 강력한 재단의 후원을 받고 있어 지방에 위치하고 있어서 꾸준히 고시엔 본선 출장을 하였고, 2022년에서야 첫 우승을 이뤘다. 이처럼 도시와 지방의 격차는 나날이 벌어지고 있어 공립 고교에겐 크나큰 장벽이 되어가고 있다.
실업 고교의 몰락
고시엔 역사에서 상업 · 공업· 농업 · 농립 · 수산 등의 이름을 지닌 실업 고교가 뜨겁게 활약을 펼치던 시절이 있었다. 6회 우승에 빛나는 히로시마 상업 고교를 비롯하여 카나아시 농업 고교, 구마모토 공업 고교, 오키나와 수산 고교 등은 우승은 하지 못했더라도 고시엔 역사에서 멋진 플레이를 보여주며 실업 고교의 자부심을 전국에 드러냈다. 태평양 전쟁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이전이었던 1940년 제26회 대회는 본선 출장교 22개 중에 절반이 넘는 13개 고교가 상업 고교였다. 1973년 제55회 대회에서는 마에바시 공업 고교(군마현), 카와고에 공업 고교(사이타마현), 이토이가와 상공업 고교(현 이토이가와 하쿠레이 고교, 니가타현), 카나자와 시립 공고(이시카와현), 나루토 공업 고교(현 나루토 우즈시오 고교, 도쿠시마현), 히타 임업 공고(오이타현), 고후 공업 고교(야마나시현) 등 7개 공업 고교가 고시엔 본선에 출장하는 기록도 세웠을 정도로 실업 고교의 위상은 높았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1975년 이후부터는 실업 고교의 고시엔 본선 출장은 감소하기 시작하였다.
1996년 제78회 대회는 공립 고교, 특히 실업 고교에 있어 매우 특별한 대회였다. 4강에 진출한 모든 팀이 공립 고교이자 실업 고교였기 때문이었다. 특히 2년전인 1994년 제76회 대회에서 시가 상업 고교가 우승 이후에 다시 한번 실업 고교에 우승 기회가 돌아왔기에 기대감은 더욱 컸다. 그리고 결승전에서 맞붙은 마츠야마 상업 고교(에히메현)와 구마모토 공업 고교(구마모토현) 경기는 '기적의 백홈'이라는 고시엔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를 만들었고, 마츠야마 상업 고교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이 대회를 끝으로 실업 고교는 22년이 지난 2018년 제 100회 대회가 되어서야 카나아시 농업 고교가 결승전에 올랐으나 우승을 하는데는 실패하였다.
1996년 제78회 대회 4강 진출 고교 및 성적
경기
승리
스코어
패배
4강전 제1시합
구마모토 공업 고교
3-2
마에바시 공업 고교
4강전 제2시합
마츠야마 상업 고교
5-2
후쿠이 상업 고교
2000년 이후 대회 당 출장하는 실업 고교 수는 평균 7개로 10개에도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2017년 제99회 대회에서는 도야마 상업 고교 단 1개만이 고시엔 본선에 출장하는 실업 고교에 있어서 충격적인 현상도 나타났다. 저출산이 주된 원인이지만, 사회 환경적인 변화 실업 고교의 감소에 영향을 끼쳤다. 대졸자를 우대하는 기업의 취업 환경, 일반 고교에서도 제공하는 커리큘럼, 실업 고교 졸업 후 진로의 어려움 등이 지원자의 감소, 일반 고교로의 전환, 학교의 통폐합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과정에서 야구부의 해체 또는 신입생 중단 모집 등으로 실업 고교 야구는 간신히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다. 도쿄, 오사카, 카나가와현, 아이치현 등 주로 격전지라 불리는 대도시권에서는 실업 고교가 고시엔 본선에 출장한 마지막이 30~40년 전의 일이고, 야마구치현, 도쿠시마현, 미야자키현, 아키타현 등 인구 감소가 심한 지역에서만 실업 고교가 고시엔 본선에 종종 등장하는 일이 이제는 자연스러워졌다. 그래서 실업 고교가 고시엔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하면 관심을 받는다. 2019년 제101회 대회에서 공립 고교로서 유일하게 4강에 진출한 아카시 상업 고교의 활약이 이를 대변한다. 에이스 나카모리 슌스케가 151km의 강속구로 혼자서 팀을 4강까지 이끌면서 단번에 전국의 관심을 받으며 드래프트 대어로 성장하였으며 아카시 상업 고교도 전국적으로 이름을 떨칠 수 있었다.
풍전등화에 놓인 남자 고교
한때 '야구=남고'라는 불렸을 정도로 남자 고교가 고시엔 본선에 출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만큼 고시엔에서 남자 고교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다. 그러나 남자 고교도 저출산의 여파를 피하지 못했다. 문부과학성의 최신 통계에 의하면 사상 최초로 2023년 고교 입학자 수가 100만명 아래로 떨어졌으며, 전체 고교생 수도 300만명이 채 되지 않는 291만명으로 집계 되었다고 발표하였다. 고교생 수의 감소와 동시에 남자 고교의 수도 가파르게 줄어들었다. 일본 문부과학성의 통계에 따르면 2023년 기준으로 일본 고등학교 수는 4,791개이며 남자 고교는 105개로 전체의 2.2%밖에 되지 않는다.
다른 남자 고교와는 다르게 '탈 삭발'로 유명해진 게이오 기주쿠 고교가 2023년 제105회 대회에서 우승하며 남자 고교의 자존심을 지켰지만 잠시 뿐이었다. 카나가와현의 강호이자 게이오 기주쿠 고교의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요코하마 고교도 2020년 남자 고교에서 남녀 공학으로 전환하였을 정도로 남자 고교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2024년 제106회 대회에서는 호토쿠 가쿠엔 고교(효고현)만이 남자 고교였을 뿐, 나머지 출장교는 전부 남녀 공학이었다. 앞서 말한 105개의 남자 고교 중 12개 고교가 2025년 또는 2026년부터 남녀 공학으로 전환 또는 통합으로 결정할 정도로 저출산은 남자 고교에 위협이 되고 있다. 2000년 이후 고시엔 본선에 출장한 남자 고교 중에 이미 11개 고교가 남녀 공학으로 전환하였거나 전환을 앞두고 있으며 나머지 7개 고교만이 남자 고교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고시엔 최다 우승 횟수 7회를 자랑하는 츄코다이츄코 고교(아이치현), 고시엔 본선 최다 출장 횟수 40회를 기록 중인 홋카이 고교(남홋카이도)도 1998년과 1999년에 각각 남녀 공학이 되었다. 센바츠 대회와 고시엔 대회에 여러번 출장하였고, 축구와 럭비 강호로도 유명한 히가시 후쿠오카 고교(후쿠오카현)도 2025년부터 여학생을 받아들일 예정이다. 반대로 여자 고교의 남녀 공학으로의 전환도 확산 추세이다. 세이와 가쿠엔 고교(미야기현)은 2003년에, 성카타리나 가쿠엔 고교(에히메현)은 2016년에 여자 고교에서 남녀공학이 되었고, 2024년 제 106회 대회에 첫 출장하는 영광을 얻었다. 2004년 96회 대회에서 정상에 올라선 사이비 고교(에히메현)도 2001년까지는 여자 고교였다. 저출산이라는 거대한 사회적인 배경 앞에서 남자 학교는 물론 여자 학교가 남녀 공학으로 전환하는 흐름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으로 전망된다.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일본 고교 야구의 미래 100년
「僕たちには夢があります。この先の100年も、ここ甲子園が聖地であり続けること、そして僕たち球児の憧れの地であり続けることです。この聖地で思う存分プレーできることに感謝を忘れず、僕たちのプレーが多くの人々に希望と勇気と感動を与えられることを願って全力でプレーすることを誓います」 우리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앞으로의 100년에도, 여기 고시엔이 성지로 계속 있고, 우리 야구 소년들이 동경하는 장소로 계속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 성지에서 마음껏 플레이 할 수 있는 것에 고마움을 잊지 않고, 우리들의 플레이가 많은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와 감동을 줄 수 있는 마음으로 전력으로 뛸 것을 다짐합니다.
- 2024년 제106회 고시엔 개막식에서 치벤 가쿠엔 와카야마 고교 주장 '츠지 아사히'의 선수 선서 내용 중
2023년 WBC 우승, 2024년 오타니 쇼헤이의 야구 역사 최초의 50-50 클럽 달성, 고시엔 구장 개장 100주년이라는 훈풍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성지에서의 고시엔을 뜻깊게 맞이하였다. 야구 소년들은 자신들의 꿈을 이곳에서 멋진 모습으로 보여주고, 관람객들은 열정적으로 응원하겠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저출산 여파로 학령 인구가 줄어들고, 야구 이외의 즐길거리가 다채로워지고, 경제적인 부담으로 야구를 하는 소년들은 매년 큰폭으로 감소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축구 등록 인원보다 학생 수가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대책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고야렌은 학생 수 감소에 대비하여 여러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2012년에는 연합팀 구성 조건을 대폭 완화하였고, 2018년에는 사상 최초로 타이 브레이크 제도를 도입하였고, 18명이었던 벤치 멤버 수를 20명으로 확장하였고, 쿨링 타임을 조절해 기후 변화에도 대응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제106회 대회에서는 그간 전혀 고려되지 않았던 2부제를 시범적으로 적용, 어떠한 결과가 있는지 반응을 살펴보고 전면 도입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전통을 중시하는 명문 고교도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가장 큰 특징이 두발 자유화다. 빡빡머리로 유명했던 고시엔에서 많은 수의 학교가 빡빡머리를 탈피했다. 올해의 본선 출장 고교 선수단을 보면 빡빡머리의 비율은 채 25%도 되지 않는다고 고야렌 관계자는 전했다. 작년 고시엔 우승팀 게이오 기주쿠 고교의 모토였던 'ENJOY BASEBALL'이란 영향이 커진 것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어른들이 만든 규율에 청춘 스토리를 강제로 만들면 안된다는 모리바야시 다카히코 게이오 기주쿠 고교 감독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을 마음을 울렸다. 고시엔의 이단아라 불리는 고치현의 메이토쿠 기주쿠 고교도 작년부터 야구부원의 모바일 기기 도입을 허용하였다. 물론 와이파이 설치는 덤. 주간 훈련 중에는 디바이스 휴대는 불가하지만 하루 일과가 끝난 이후 기숙사에서는 허용하고 타 고교의 연습 영상을 시청한다거나 프로 야구 선수들의 활약을 보는 것으로 선수들의 자율성을 높였다. 아오모리현의 하치노헤 가쿠인 고세이 고교도 기숙사를 신축하면서 1인 1실 또는 2인 1실이라는 혜택을 파격적으로 제공하였다. 시대가 변한 만큼 좁은 공간에서 상급 학생의 규율에 따르지 않으면서도 선수들의 자율성을 최대한 제공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감소세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열성적인 팬들이 단골팬이 되며 표면상으로는 번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야구를 하는 인원 수는 줄어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부 지도자들 사이에서는 7이닝 제도 도입, 돔구장으로의 이동, 고시엔 일정 증대라는 전면적인 변화를 주장한다. 매년 뜨거워지는 날씨에서 결승에 진출한다는 가정하에 2주안에 6번의 경기를 치뤄야 하는 것은 선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현 제도의 한계라고 말한다. 하지만 7이닝 제도 도입에 대해서는 고야렌은 최근에서야 TF 조직을 만들어 연구에 착수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다수의 현장 지도자들은 해당 사항에 공감을 하면서도 어렵다고 의견을 표한다. 7이닝으로 변경하였을 경우 야구 룰 변경이 필수적이고, 추후 프로 또는 독립 리그 등 상위 리그에 진출한 선수들이 적응하지 못해 실력이 떨어져 일본 야구의 질적 하락으로 이어질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더욱이 시합이 경기 초반에 결정될 경우, 선수들의 의욕이 하락해 야구의 재미가 하락할 것이라는 걱정도 일부 제기되고 있다. 기간을 늘리는 것에 대해서도 많은 문제점을 제기한다. 고야렌에서 비용을 일부 지원한다고는 하지만 선수들의 고시엔 기간 동안의 체류비 등은 학교 또는 재단에 큰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리고 한신 고시엔 구장의 소유주인 한신 타이거즈의 일정에도 차질이 생기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게이오 기주쿠 고교를 비롯한 일부 고교를 중심으로 "Liga Agresiva"라는 고교 리그가 창설되어 적지 않은 수의 고교가 참가하고 있다. 다음 기회에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고시엔, 센바츠라는 특정 기간에 일어나는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기 위해 일부 선수들에게만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닌 최대한 많은 야구 선수들에게 야구를 한다는 즐거움을 주기 위한 목적이 크다. 그렇다고 성적을 포기한 것은 절대 아니다. 리그에서 플레이를 통해 모든 선수들의 실력을 높이는 것이 고교 리그의 핵심이다. 그러나 아직은 적은 수의 고교만이 참여 중이며, 여전히 많은 고교가 봄의 센바츠, 여름의 고시엔 등 대회 참가에 중요성을 높이 두고 있어 큰 변화가 당장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멀지 않은 미래에는 참가하는 고교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고시엔이 내일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많은 야구 소년들이 여전히 고시엔에서 플레이하는 것을 동경하며 자라왔고 그 꿈가지고 그라운드를 밟고 하얀색 유니폼이 검게 될 때까지 뛰고 있다. 그리고 가족, 친구 나아가 지역 주민들까지 야구 소년들을 응원하고 있다. 그렇기에 고시엔이 낭만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하지만 저출산의 파도는 이제 현실이고 마주해야할 도전이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에 과연 야구계가 지켜야할 것이 고시엔인지, 고등학교 야구의 전통인지, 아니면 야구의 미래일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은 사실이고 모두가 함께 풀어야할 과제다.
三振!!史上初、 決勝戦の延長タイブレークを制しました。甲子園 100年の夏、京都国際 初優勝!! 求心に残るダブルエースを擁し、高校野球の原点に立ち返る野球で栄冠を手にしました。 삼진!! 역사상 최초로, 결승전 연장 타이브레이크를 제압하였습니다. 고시엔 구장 100년의 여름에, 교토 국제 국제 고교가 첫 우승을 하였습니다. 가운데에 새긴 더블 에이스를 품고, 고교야구의 원점으로 다시 돌아온 야구로 우승을 손에 쥐었습니다.
- 니시무라 잇키가 헛스윙으로 마지막 타자의 삼진을 잡는 순간, 캐스터의 우승콜
"68년". 교토부 대표 고교가 천년수도 교토에 '진홍의 대우승기'를 다시 가져오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제 38회 대회였던 1956년, 류쿄헤이안 대학 부속 고교가 우승한 이래 반세기가 넘어서야 교토 국제 고교가 고시엔에서 최초로 우승하였다. 승리가 더욱 뜻깊었던 이유는 고시엔 역사를 통틀어 사상 최초로 한국계 학교가 정상에 등극하였기 때문이다. 야구부가 창립된 1999년, 제 81회 대회 교토부 지역 대회에 출전했던 1회전에 탈락한 미미한 실력의 학교가 2024년 제 106회 대회에서 3,715개 고교의 경쟁을 뚫고 일본 제일이 되었다.
[1999년 야구부 창립 후, 처음 출전한 고시엔 교토부 대회 예선][2024년 사상 최초로 고시엔 우승]
1. 경기 결과: 교토 국제 고교 (우승)
학교명
1
2
3
4
5
6
7
8
9
10
R
H
E
교토 국제 고교 (교토)
0
0
0
0
0
0
0
0
0
2
2
9
2
간토다이 이치 고교 (동도쿄)
0
0
0
0
0
0
0
0
0
1
1
4
0
2. 경기 내용 ○ 교토 국제 고교
교토부의 여름 고시엔 결승 기록
연도 (대회)
학교명
스코어
상대교
결과
1915년 (제1회)
교토부립 제2 중학교
2-1
아키타 중학교
우승
1921년 (제7회)
교토부립 제1 상업중학교
4-16
와카야마 중학교
준우승
1928년 (제14회)
헤이안 중학교
1-3
마츠쇼 중학교
준우승
1933년 (제19회)
헤이안 중학교
1-2
추코 상업 학교
준우승
1936년 (제22회)
헤이안 중학교
1-9
기후시립 상업 학교
준우승
1938년 (제24회)
헤이안 중학교
2-1
기후 시립 상업 학교
우승
1946년 (제28회)
교토부립 제2 중학교
0-2
나니카 상업 학교
준우승
1951년 (제33회)
류코헤이안 대학 부속 고교
7-4
쿠마가야 고교
우승
1956년 (제38회)
류코헤이안 대학 부속 고교
3-2
기후 시립 상업 고교
우승
1981년 (제63회)
교토 상업 고교
0-2
호토쿠 가쿠엔 고교
준우승
1997년 (제 79회)
류코헤이안 대학 부속 고교
3-6
치벤 가쿠엔 와카야마 고교
준우승
1998년 (제80회)
교토 세이쇼 고교
0-3
요코하마 고교
준우승
2005년 (제87회)
교토 외대 니시 고교
3-5
토마코마이 고교
준우승
2024년 (제106회)
교토 국제 고교
2-1
간토다이 이치 고교
우승
- 결승전의 수훈 선수를 뽑자면 당연히 나의 원픽은 나카자키 루이(中崎琉生, 3학년). 9이닝 동안 104개의 공으로 간토다이 이치 고교 타선을 피안타 4개, 탈삼진 5개, 무실점으로 깔끔하게 막아내며 에이스로서 진면목을 여실히 보여줬다. 9회말 만루 상황 이전까지는 어떤 주자도 2루 이상 진루를 허용하지 않는 안정된 피칭으로 프로에서 주목하고 있는 투수라는 것을 각인시켰다. 허용한 4개 안타 중 단 하나만이 외야로 나갔을 뿐, 나머지는 내야 안타 등으로 높은 제구력을 보여주었다. 니시단 고교와의 3회전에 선발로 등판하여 활약을 펼칠 때, 이를 지켜본 현 닛폰햄 감독이자 니시단 고교 OB였던 '신조 츠요시'는 나카자키 루이를 극찬하였다. 좌타자를 변화구로 공략하는 방법이나, 극도의 긴장이 넘치고 있음에도 전혀 떨리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칭찬하였다. 그러한 모습을 다시 결승전에서 보여주었다.
나카자키 루이가 교토 국제 고교로 진학한 배경에는 2021년 교토 국제 고교를 4강으로 이끈, 당시 에이스였던 모리시타 류다이(현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투수)의 영향이 컸다. 당시 1학년이었던 나카자키 루이는 팔꿈치 부상으로 피칭 연습을 하지 못하지만 회복 훈련을 하며 묵묵히 팀을 이끄는 선배의 등을 바라보며 에이스로서의 자격이 무엇인지를 배웠다. 그리고 1년 뒤에 야구부에 입부한 니시무라 잇키(西村一機, 2학년)도 모리시타 류다이를 동경한 수많은 사람들 중 한명이었다. 입부 후에는 니시무라 잇키는 모리시타 류다이의 등이 아닌 나카자키 루이가 팀을 하나로 만드는 뒷 모습을 보며 스스로 성장했다고, 그의 존재에 감사를 항상 말하고 다녔다. 그렇게 두명의 에이스가 있는 팀은 서로 경쟁하며 함께 성장해왔다.
정규 이닝이 끝나고 2006년 이래 사상 두번째이자 2018년 연장 타이브레이크가 적용된 첫 결승 연장. 10회초 교토 국제 고교의 공격. 첫 타자 니시무라 잇키가 우전 안타를 치며 무사 주자 만루가 되었다. 다음 타석에는 리드오프 카네모토 유고(金本祐伍, 3학년)가 들어섰다. 유일한 한국계이자, 주전 멤버 중 교토부 출신 5명 중 한명이자, 이번 대회 0.360 타율을 기록 중에 있어 그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풀카운트 접전 끝에 6구째 공이 낮게 들어오며 볼로 판정되는 순간, 카네모토 유고는 힘껏 손을 쥐며 환호하며 1루로 출루하였고 3루 주자는 웃음을 지으며 홈으로 들어왔다. 전광판에 길게 늘어져 있던 0의 행진이 1로 바뀌며 경기는 교토 국제 고교의 분위기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공격에서 미타니 세이야(三谷誠弥, 3학년)가 타석에 올라왔다. 중학교 3학년때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며 야구를 놓을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너라면 할 수 있다'라고 항상 말해준 아버지의 말을 기억하며, 아들이 고시엔에 출장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아버지의 꿈을 이뤄주고 싶었다. 그리고 우익수 깊이 날아가는 희생 플라이로 승부를 결정 짓는 1점을 추가로 만들어냈다.
교토 국제 고교의 10회말 수비가 시작되었다. 9이닝을 책임졌던 나카자키 루이 대신 니시무라 잇키가 구원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수비 실책으로 무사 만루 상황이 되었고, 니시무라는 다음 타자를 땅볼로 유도해 아웃을 잡았지만, 3루 주자가 홈을 밟아 1점을 내주었다. 이로 인해 니시무라의 23이닝 연속 무실점 기록이 깨졌으나, 그는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1점 차로 쫓기는 상황에서, 여전히 1사 1, 3루였기 때문에 추가 실점 방지에 집중했다. 간토다이 이치 고교의 1번 타자에게 연속 4개의 볼을 허용해 다시 만루 상황이 되었고, 이어 2번 타자의 땅볼이 2루수 미타니 세이야 앞으로 향했다. 미타니는 공을 잡자마자 홈으로 송구했고, 포수 오쿠이 소다이(奥井颯大, 3학년) 는 홈으로 파고드는 3루 주자를 태그 아웃시키며 추가 실점을 막았다. 하지만 여전히 만루였고, 이제 우승까지 아웃 카운트 하나만 남은 상황. 니시무라는 간토다이 이치 고교의 3번 타자 사카모토 신타로(坂本慎太郎, 2학년)를 상대하게 되었다. 첫 번째 공은 스트라이크, 두 번째는 볼, 세 번째도 스트라이크. 그리고 마지막 4구째, 직구가 아닌 슬라이더를 바깥쪽 코스로 던졌다. 타자는 충분히 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배트를 휘둘렀지만, 공은 포수 미트에 빨려 들어갔다. 헛스윙 삼진, 쓰리아웃.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 니시무라 잇키는 양손을 번쩍 들었고, 모든 선수들이 마운드로 뛰어나와 사상 최초고시엔 우승이라는 기쁨과 즐거움을 만끽하였다.
1915년 교토부 제2중학교(현 토바 고등학교)가 고시엔 첫 우승(당시 명칭 전국중등학교선수권대회)을 기록하고, 1924년 히로시마 상업 고교가 고시엔 구장에서 첫 우승을 달성한 이래 총 63개 학교가 고시엔에서 첫 우승을 하였다. 그러한 역사의 순간에 교토 국제 고교가 사상 64번째로 고시엔의 첫 우승 학교가 되어 100주년을 맞이한 고시엔 구장에서 새로운 궤적을 만드는 페이지에 가장 처음으로 이름을 새겼다.
[교토 국제 고교 선수별 고시엔 성적]
● 투수
투수명
ERA
이닝
투구수
피안타
탈삼진
자책
WHIP
나카자키 루이
1.45
31
441
26
33
5
1.03
니시무라 잇키
0.00
24
339
11
14
0
0.92
● 타자
등번호
타자명
타율
타수
안타
타점
출루율
장타율
OPS
1
나카자키 루이
0.308
13
4
0
0.308
0.308
0.616
2
오쿠이 소다이
0.294
26
5
2
0.429
0.412
0.841
3
타카기시 에이타로
0.188
18
3
1
0.278
0.188
0.466
4
미쿠니 세이야
0.360
29
9
1
0.393
0.360
0.753
5
시미즈 우타
0.208
26
5
1
0.208
0.208
0.416
6
후지모토 하루키
0.391
27
9
4
0.440
0.565
1.005
7
카네모토 유고
0.360
29
9
4
0.429
0.440
0.869
8
사와다 하루토
0.375
27
9
1
0.423
0.375
0.789
9
하세가와 하야테
0.400
26
8
4
0.455
0.450
0.905
11
니시무라 잇키
0.571
10
4
2
0.571
0.714
1.285
13
핫토리 후우마
0.100
10
1
2
0.100
0.100
0.200
○ 간토다이 이치 고교
도쿄의 여름 고시엔 결승 기록
연도 (대회)
학교명
스코어
상대교
결과
1916년 (제2회)
게이오 보통 중학교
6-2
오사카 이치오카 중학교
우승
1920년 (제6회)
게이오 보통 중학교
0-17
칸세이 가쿠인 중학교
준우승
1925년 (제11회
와세다 실업 고교
3-5
타카마츠 상업 학교
준우승
1976년 (제58회)
오르베린 고교
4-3
PL 가쿠엔 고교
우승
1980년 (제62회)
와세다 실업 고교
4-6
요코하마 고교
준우승
1989년 (제71회)
테이쿄 고교
2-0
센다이 이쿠에이 고교
우승
1995년 (제77회)
테이쿄 고교
3-1
세이료 고교
우승
2001년 (제83회)
니치다이산 고교
5-2
오미 고교
우승
2006년 (제88회)
와세다 실업 고교
4-3
토마코마이 고교
우승
2011년 (제93회)
니치다이산 고교
11-0
세이코 가쿠인 고교
우승
2024년 (제106회)
간토다이 이치 고교
1-2
교토 국제 고교
준우승
- '안타가 적더라도 수비로 지켜내 결승까지 올수 있었다'고 말하는 간토다이 이치 고교의 주장 타카하시 텟페이(高橋徹平, 3학년). 여름 지역 대회 이전까지는 수비에서 많은 실책을 범하면서 이길 수 있었던 시합을 패배한 적이 많았다. 그래서 선수들은 더욱 공격적인 모드로 수비 훈련을 하였다. 철저한 연습의 결과는 고시엔이라는 정상의 무대에서 결과로 나타났다. 고시엔에서 결승까지 포함한 5경기에서 기록한 실책은 단 3개밖에 되지 않았다. 자신들의 특기인 '공격의 수비'를 어김없이 발휘하며 마지막 이닝까지 단 하나의 실책도 없이 활약하였지만, 자신들의 고시엔 첫 우승이라는 목표는 후배들에게 맡기며 준우승에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간토다이 이치 고교는하타카나 켄신(畠中鉄心, 3학년)을 선발로 출전시켰다.하타카나 켄신은 초등학교 1학년부터 투수로만 활약했고 등번호는 항상 1번이었다. 에이스 번호를 과시하는 타입은 아니었으나 자신의 노력에 대한 증거였기에 언제나 자랑스러워했다. 빠른 구속의 소유자도 아니고 신장도 작았지만 제구력과 변화구가 매우 뛰어나 올해 센바츠까지는 등번호 1번을 달고 활약하였다. 하지만 같은 학년의사카이 하루(坂井 遼, 3학년)가 빠른 직구로 두각을 보여주기 시작하며 경기에 등판하는 일이 잦아졌다. 요네자와 타카미츠 감독은 거칠지만 빠른 볼 스피드를 지닌 사카이 하루의 폭발력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에이스 넘버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 결국 등번호 1번은 그에게 부여되었다. 사카이 하루에게는 여전히 높은 신뢰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하타카나 켄신에게는 복잡한 감정이 생겼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우선 순위는 팀이 우승하는 것이고, 내 목표는 팀의 전국 선수권 우승"이라고 말했다.그리고 결승이라는 큰 무대에서 선발로 등판하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거기에 신중한 투구로 교토 국제 고교의 타선을 6이닝 동안 74개의 공으로 피안타 6개 무실점으로 막으며 자신의 고교 마지막 여름을 빛나게 마무리하였다.
1점 뒤진 10회말 간토다이 이치 고교의 마지막 공격. 사카모토 신타로(坂本慎太郎, 2학년)가 들어섰다. 초등학교 4학년때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꼭 고시엔 우승이라는 선물을 해주고 싶다는 각오로 가득차있었다. 2아웃 주자 만루였기에 안타든 볼넷이든 출루에만 성공한다면 승부를 다시 원점으로 돌릴 수 있는 기회였다. 어쩌면 역전 사요나라 우승도 바라볼 수 있었다. 교토 국제 고교의 투수는 구원으로 등판한 니시무라 잇키. 이날 따라 니시무라 잇키는 자신이 가장 잘 던지는 체인지업의 제구가 쉽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따라서 직구보다는 변화구에 대응하는게 더욱 유리할 것이라 사카모토 신타로는 생각했다. 1구는 바깥쪽으로 빠지는 직구로 스트라이크, 2구는 체인지업으로 볼, 3구는 다시 바깥쪽으로 빠지는 스트라이크가 되며 볼카운트는 1볼2스트라이크로 사카모토 신타로가 코너에 몰리게 되었다. 어떻게든 배트에 공을 맞춰야겠다고 각오를 하였다. 그리고 4번째 공이 스트라이크 존을 향해 들어오다가 바깥으로 빠지는 궤적을 그렸고, 사카모토 신타로는 강한 스윙을 하였으나 공은 포수 미트에 잡히며 헛스윙 삼진이 되었다. 고시엔 구장이 환호로 뒤덮이는 순간, 교토 국제 고교 선수들이 마운드로 뛰쳐나오는 그때, 사카모토 신타로는 고개를 끝까지 들지 못하고 비통한 눈물만을 흘렸다.
간토다이 이치 고교는 사상 최초 고시엔 우승을 달성하는데 실패하였다. 1987년 센바츠에서 처음으로 결승에 진출하였지만 준우승에 그치며 '자감의 대우승기(紫紺の大優勝旗)'를 가져오지 못했다. 그리고 2011년 고시엔에서 니시다이산 고교가 도쿄도 대표로 우승한 이래 13년만에 다시 '동쪽의 수도'에 '진홍의 대우승기'를 손에 넣고자 하였지만 교토 국제 고교에 막혔다. 동도쿄 대표로만 한정하면 1995년 테이쿄 고교가 우승한 것이 마지막이었으니 아쉬움은 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시엔에서의 자신들의 최고 기록을 기존의 4강에서 준우승으로 새로 만들었으니 어쩌면 뜻깊었던 대회로 느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비롯 일본 제일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자신들의 바램을 다음의 야구 소년들이 이뤄주기를 바라며 간토다이 이치 고교는 뜨거운 추억만을 간직하며 100년의 성지에서 여름을 마무리하였다.
[간토다이 이치 고교 선수별 고시엔 성적]
● 투수
투수명
ERA
이닝
투구수
피안타
탈삼진
자책
WHIP
사카이 하루
0.00
18⅔
255
12
16
0
0.80
하타나카 켄신
1.40
19⅓
266
19
11
3
1.14
오고 타케루
1.50
6
88
5
0
1
1.00
사카모토 신타로
0.00
2
41
1
2
0
2.00
●타자
등번호
타자명
타율
타수
안타
타점
출루율
장타율
OPS
1
사카이 하루
0.400
8
2
0
0.500
0.400
0.900
2
쿠마가이 슌스케
0.333
19
6
2
0.333
0.389
0.722
3
에치고 슌스케
0.533
20
8
1
0.611
0.600
1.211
4
코지마 소오
0.118
20
2
2
0.118
0.176
0.294
5
타카하시 텟페이
0.167
21
3
1
0.286
0.333
0.619
6
이치카와 아유
0.118
19
2
1
0.118
0.118
0.236
7
사카모토 신타로
0.176
22
3
1
0.250
0.235
0.485
8
히다 유고
0.200
23
4
1
0.273
0.200
0.473
9
나루이 사토시
0.250
21
4
2
0.316
0.250
0.566
10
하타나카 켄신
0.000
5
0
0
0.400
0.000
0.400
11
오고 타케루
0.000
1
0
0
0.000
0.000
0.000
12
호리에 타이키
0.000
2
0
1
0.000
0.000
0.000
13
타키카와 유이토
0.500
2
1
0
0.500
1.000
1.500
교토 국제 고교의 고시엔 첫 우승을 끝으로 14일간의 치열했던 제106회 고시엔이 마무리가 되었다. 고시엔을 보아온지 이제 어느덧 9년째인데, 이번만큼 경기 리뷰를 제시간에 하지 못하였다. 매경기를 시청하였지만, 회사에서 중요한 업무가 겹치면서 데드라인을 지키기 위해 집에서도 업무를 계속 하고, 작년과는 다르게 보다 작성하는 내용(예: 지역 대회 리뷰, 학교별 본선 프리뷰 등)이 많아지며 그만큼 할애하는 시간이 많아지다보니 이러한 사정이 생기게 되었다. 고시엔이 끝난지 한달만에 결승 리뷰를 한다는거 자체가 스스로에게 매우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게임 출시 준비를 본격적으로 하는 내년에는 경기 시청이 가능할까라는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과 비교하여 다양한 정보와 데이터를 찾고 정리하여 기록으로 남길 수 있어서 자랑스럽다는 생각도 함께 한다. 2015년에 처음 고시엔을 보면서 페이스북에 기록을 남겼지만, 블로그로 이전한 작년부터 경기 리뷰 등 내용이 풍부해졌다고 느낀다.
[넷토고시엔 106회 고시엔 엔딩 테마 'ずっと好きだから’]
앞으로 남은 일을 간략히 정리해보면, 아직 경기 사진들을 올리지 못한 일부 포스팅을 수정하고, 간토다이 이치 고교 방문 후기를 작성하고, 제 106회 고시엔 뒷 이야기 (학교별 및 선수별)와 각종 기록들을 정리하고, 교토 국제 고교 우승 관련된 개인적인 내용을 포스팅하는 것으로 올해 고시엔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11월에 어쩌면 교토와 오사카를 가게 된다면 그때 교토 국제 고교와 고시엔 구장 방문 후기 어쩌면 작성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106회 고시엔에 작별을 고해야지.
- 출신 유명 야구선수: 나카가와 하야토(한신 타이거스), 모리시타 류다이(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신성현, 황목치승 등
교토 국제 고교 (교토)
▽ 1회전: 7-3 vs. 삿포로 니치다이 고교 (남홋카이도)
▽ 2회전: 4-0 vs. 니가타 산업 대한 부속 고교 (니가타현) ▽ 3회전: 2-1 vs. 니시단 고교 (후쿠오카현)
▽ 8강전: 4-0 vs. 치벤 가쿠엔 고교 (나라현)
학교 창립일
야구부 창립
첫 출장
출전 횟수
준우승 횟수
우승 횟수
통산 전적
1947년
1999년
2021년
3회
0
0
7승 2패
- 에이스 나카자키 루이(中崎琉生, 3학년)는 준결승전을 앞둔 하루 전, 지난 3월의 일을 떠올렸다. 센바츠 1회전에서 9이닝 끝내기 패배를 아오모리 야마다 고교에게 당했는데 다시 승부처에서 만나게 되었다. 자신들에게 패배를 안긴 상대를 그것도 결승 티켓을 놓고 격돌하는 것이기에 더욱 신경이 쓰였다. 그러면서 "한 번 패한 상대에게 또 한번 지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센바츠까지는 주장을 맡고 있었지만 투구에만 집중하라는 노리츠구 코마키 감독이 감독의 지시로 캡틴이라는 자리를 후지모토 하루키(藤本陽毅, 3학년)에게 넘겼다. 그는 "주장으로서 부담은 내려 놓았다. 하지만 에이스로서 마운드에 있는 한 책임감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투지를 불태웠다.
1회말 아오모리 야마다 고교의 공격. 몸이 덜 풀린 것인지 나카자키 루이의 공은 강력하지 않았다. 아오모리 야마다 고교는 2개의 볼넷, 안타, 희생플라이를 몰아치는 집중력을 선보이며 2점을 내며 달아났다. 센바츠의 나이트메어가 재현되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카자키 루이는 다시 마음을 가담고 2회부터는 전력 투구를 펼치기 시작했다. 비록 2실점을 하였지만 4회까지 피안타 3개, 탈삼진 2개로 에이스로서 역할을 다했다. 그리고 어쩌면 자신보다 뛰어난 에이스라 할 수 있는 후배 니시무라 잇키(西村一毅, 2학년) 에게 마운드를 넘기고 벤치로 돌아왔다.
2점차를 뒤진 6회초. 미타니 세이야(三谷誠弥, 3학년), 사와다 하루토(沢田遥斗, 3학년)의 연속 안타와 후지모토 하루키의 볼넷이 이어지며 1사 만루 기회를 만들었다. 타석에는 우익수 하세가와 하야테(長谷川 颯, 2학년). 가운데로 들어오는 상대 투수의 2번째 공을 힘껏쳤다. 배트에 맞은 공은 우익수 쪽을 향해 멀리 날아갔고, 그 사이 2루와 3루에 있던 주자가 전력질주하며 홈에 들어왔다. 그토록 바랬던 동점이었다. 흥분이 가시지 않는 상황에서 핫토리 후마(服部颯舞, 3학년)이 타석에 들어섰다. 망설임도 없이 초구를 쳤지만 내야 땅볼이 되었다. 하지만 3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오는 속도가 더 빨랐고 타자 주자는 아웃이 되었지만 득점에는 성공하며 3대2로 역전하는데 성공하였다. 이제 모든 것은 니시무라 잇키에게 맡겨졌다. 결승에 진출하겠다는 간절함이 아오모리 야마다 고교의 그것보다 컸을까. 6회부터 9회까지 4이닝 동안 볼넷으로 타자를 출루시킨 것 이외에는 단 한개의 안타도 내주지 않았다. 마지막 타자를 2루수 앞 땅볼로 잡아내며 3아웃을 만드는 순간, 교토 국제 고교 선수들은 모두 환호하며 벤치에서 뛰어나왔다. 3년전 선배들이 만들었던 4강이라는 기록을 뛰어넘어 사상 최초로 결승에 진출하는 의미스러운 성과를 만들었다.
주장 후지모토 하루키는 자신들보다 체격에서 뛰어난 아오모리 야마다 고교 선수들을 의식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힘으로는 자신들이 뒤지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있었다. 교토 국제 고교 선수 중 체중이 75kg 이상인 선수가 1명 밖에 없는 반면, 아오모리 야마다 고교 선수 중 75kg를 넘는 선수는 3명 이상이 있었다. 교토 국제 고교 나인의 평균 신장은 172.7cm, 평균 체중은 71.9kg로 숫자상으로도 결코 몸집이 큰 팀이 아니었다. 신체적으로 불리함을 알고 있기에, 상대를 의식하면 아무것도 소용없다는 것은 당연하였다. 오히려 자신들만의 야구를 철저히 하자고 마음을 굳혔다. 그래서 장타로 위기를 타개하는 것이 아닌, 끈질기게 상대를 몰아붙이는 자신들만의 야구를 하였다. 그래서 이날 만든 6개의 안타 모두는 단타였다. 상대방이 예측하지 못한 곳으로 안타를 만든다거나 낮고 강한 타구를 날리는 연습을 중시해온 결과였다.
경기가 끝난 후, 노리츠구 코마키 감독은 승리에 대해 "2점을 뒤지고 있어 역시 여기까지인가라는 분위기가 벤치에 감돌고 있었지만, 상대 투수 교체 시점에 턴어라운드가 되었다. 6회에 만들어진 찬스를 선수들이 노력해서 결과로 만들어서 대단하면서 감동하며 지켜보았다"고 표현하였다. 나아가 결승이라는 무대에 대해서는 "확실히 당당히 싸워 새로운 결과를 만들고 싶다"고 각오를 내비쳤다. 교토 국제 고교의 나인이 만든 결승이라는 무대가 이제 빛을 발할 시간이다.
- 주요 선수 성적 (투수)
투수명
ERA
이닝
투구수
피안타
탈삼진
자책
WHIP
나카자키 루이
4.50
4
55
3
2
2
1.25
니시무라 잇키
0.00
5
66
2
3
0
0.80
○아오모리 야마다 고교
- 야구부원: 86명
- 출신 유명 야구선수: 카와라다 쥰페이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호리오카 하야토(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키나미 세이야(한신 타이거즈) 등
아오모리 야마다 고교 (아오모리현)
▽ 2회전: 9-1 vs. 나가노 니치다이 고교 (나가노) ▽ 3회전: 5-0 vs. 이시바시 고교 (토치기현)
▽ 8강전: 1-0 vs. 시가 가쿠인 고교 (시가현)
학교 창립일
야구부 창립
첫 출장
출전 횟수
준우승 횟수
우승 횟수
통산 전적
1918년
1954년
1993년
12회
0
0
15승 12패
- '진홍의 대우승기'까지는 단 2번의 경기만 남았다. 지난 3월에 만난 교토 국제 고교와는 5개월만에 다시 결승 티켓을 놓고 또다시 격돌하게 되었다. 선발 투수는 세키 코이치로(関 浩一郎, 3학년)가 아닌 시모야마 타이고(下山大昂 , 2학년)였다. 3회전과 8강정에서 선발로 출전 9이닝 동안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아오모리 야마다 고교의 차세대 에이스로서의 모습을 전국에 각인시켰다. 그리고 4강에서 선발로 다시 출전, 아오모리현 역사 최초로 고시엔 결승 진출이라는 대기록의 주인공이 되는 기회를 얻었다. 5회까지 교토 국제 고교의 타선을 단 2안타로만 제한하며 팀의 승리를 확신할 수 있었다.
타선에서도 1회부터 득점을 하며 시모야마 타이고의 부담을 덜어주고 결승 진출이라는 기대를 한껏 높였다. 1사 주자 1,2루에서 4번 타자 하라다 아츠키(原田純希, 3학년)의 우중간을 가르는 2루타가 터지며 2루 주자가 홈에 들어오며 선제 득점을 만들었다. 그리고 다음 타자 요시카와 유다이(吉川勇大, 3학년)의 중견수 희생 플라이로 3루 주자가 홈인하며 스코어는 2대0이 되었다.
그리고 6회 에이스 세키 코이치로가 마운드에 올랐다. 시모야마 타이고가 계속 던질 가능성도 고려했지만 가부토모리 다카아키(兜森崇朗)은 시모야마 타이고는 내일을 위해 쉬어야한다고 생각해 과감히 내렸다. 세키 코이치로가 4이닝만 막아주면 승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2경기 15이닝 동안 단 1실점만 했던 우완 에이스가 공략당하고 말았다. 연속 안타 2개와 볼넷 1개로 주자 만루에서 상대 타자에게 우전 안타를 허용하며 동점을 만들어주었고 다음 타자에게는 희생 플라이로 1점을 내주며 3대2로 승부가 뒤집어지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1점을 따라잡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았지만 교토 국제 고교의 좌완 에이스 니시무라 잇키를 끝까지 무너뜨리지 못했다. 그렇게 맞이한 9회말 마지막 공격. 4번부터 이어지는 중심 타선의 공격. 4번 타자 에이스가 신중함 끝에 볼넷을 골라내어 오랜만에 1루에 발을 디딛었다. 다음 타자 요시카와 유다이가 초구를 노려 힘껏 배트를 휘둘렀지만 유격수 앞 땅볼로 더블 아웃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타석에는 6번 타자이자 주장인 하시바 코스케(橋場公祐, 3학년)가 들어섰다. 어쩌면 마지막 타석이 될 수 있어 더욱 신중함을 기했다. 스트라이크, 파울, 볼을 계속 만들어내며 기회를 만들려했다. 그리고 니시무라 잇키가 6구째를 힘껏 던졌을 때 하시바 코스케는 힘을 모아 배트를 휘둘렀다. 아뿔싸. 2루수 앞 정면으로 향하는 땅볼이 되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전력 질주를 하였고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까지하였지만 거기까지였다. 심판의 아웃 콜이 선언되며 쓰리 아웃. 아오모리 야마다 고교의 첫 4강. 일본 최고에 단 1경기만 남긴채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주장 하시바 코스케와 요시카와 유다이는 중학교 3학년 때 아오모리 야마다 리틀 시니어에서 일본 제일을 경험한 적이 있다. 그리하여 고등학교에서도 일본 제일을 경험하고 싶어 자연스레 아오모리 야마다 고교에 진학하였다. 초반에는 현내에서 유망한 선수들과 전국에서 모여든 우수 선수들 때문에 조그마한 '간격'이 있었다. 하지만 사투리 등을 서로 가르치며 자연스럽게 거리가 좁혀졌고, 아오모리현 지역 대회에서는 벤치 멤버들이 대기 멤버들에게 우승 메달을 걸어주면 유대를 돈독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결국 고시엔 4강에서 탈락이 확정되자, 하시바 코스케는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마지막까지 고시엔에 와서 아오모리 야마다의 역사를 바꿀 수 있어서 자랑스럽다"고 3년간을 돌아보며, 끝까지 눈물을 보이지 않고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경기 후 3학년보다 더 슬프게 울었던 2학년에 대해서는 여러 부분에서 부담이 있겠지만 내년에는 고시엔 4강 이상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응원의 메세지를 남기며 일본 제일의 꿈을 후배들에게 맡기고 봄 여름 총 7경기를 치른 고시엔 구장을 떠났다.
- 출신 유명 야구선수: 사토 쇼마(치바 롯데 마린즈), 오코에 루이(요미우리 자이언츠), 이시바시 코타(주니치 드래곤즈), 나카무라 유타(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등
간토다이 이치 고교 (동도쿄)
▽ 2회전: 7-1 vs. 호쿠리쿠 고교 (후쿠이현)
▽ 3회전: 3-2 vs. 메이토쿠 기주쿠 고교 (고현) ▽ 8강전: 2-1 vs. 도카이다이 사가미 고교 (카나가와현)
학교 창립일
야구부 창립
첫 출장
출전 횟수
준우승 횟수
우승 횟수
통산전적
1925년
1927년
2007
7회
0
0
18승 8패
- 오고 타케루(大後武尊, 3학년). 동도쿄 대회에서는 1회전과 5회전에 등판하였지만 이후부터는 등판을 하지 못했다. 고시엔 멤버로는 선발 되었지만, 막상 경기에 와서는 단 한번도 출전하지 못했다. 전령으로서 감독의 메세지를 전달한 것이 전부였다. 팀의 승리에 기여를 할 수 있다면 전령이어도 좋았지만 마음 한켠에는 자신도 경기에 뛰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등번호 1번의 사카이 하루(坂井 遼, 3학년)와 등번호 10번의 하타카나 켄신(畠中鉄心, 3학년)의 두명으로 구성된 강력 투수진 사이에 그가 들어갈 자리는 보이지 않는 듯 했다. 그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언제든지 출전할 수 있도록 연습은 빼먹지 않았고, 기회가 될 때마다 숙소에서 요네자와 타카미츠 감독이나 동료들에게 '강력 어필'을 하였다. 자신의 3학년 마지막 여름이기 '던지고 싶어, 또 던지고 싶어'라는 마음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기회는 폭풍우처럼 갑자기 찾아왔다.
준결승, 팀 역사상 최초로 결승 무대가 걸려 있는 중요한 경기. 고시엔 구장내의 실내 연습장에서 워밍업을 하는 도중 요네자와 감독으로부터 선발로 출전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요네자와 감독은 오고 다케루를 선발로 결정한 배경에 대해 "어제 늦게까지 카미무라 가쿠엔 고교의 영상을 보았는데 배트를 신중하게 휘두르고 제대로 맞추려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하타카나 켄신은 완급 능력은 뛰어나지만, 파워가 뛰어난 오고 타케루가 맡는게 좋다고 생각했다"고 기용 의도를 밝혔다.
동경하던 성지에서의 첫 등판. 바라던 일이었지만, 오고 타케루는 놀라워하면서도 자신감을 보였다. 하타나카 켄신은 "첫 이닝을 잘 던지면 다음 이닝은 편안해져서 잘 던질 수 있을 것이다"고 격려를 불어넣어줬다. 요네자와 감독도 "지금까지 해왔던 일을 믿고 던져라"고 힘을 불어넣어줬다.
마운드에 오른 오고 타케루는 기대에 부응했다. '간토다이 이치 고교의 투수는 2명만이 아님을 보여주겠다(関東第一のピッチャーは2人だけじゃないことを見せる)'고 마음속으로 맹세했다. 첫 고시엔 경기에 출전하여 긴장이 컸는지 선두 타자에게 볼넷을 내주는 등 2아웃 2루의 위기를 맞이했다. 그리고 맞이한 카미무라 가쿠엔 고교의 부동의 4번 타자 쇼바야시 코다이(正林輝大, 3학년)와의 승부. 2S1B에서 4구째, 날카롭게 떨어지는 스플릿으로 유격수 땅볼을 유도해 위기를 넘겼다. 4회초에 비록 1실점을 했지만 140km 전후의 직구에 체인지업, 스플릿 등 다양한 구종을 선보이며 강타의 카미무라 가쿠엔 고교 타선을 막았다. 5회까지 단 1실점만 내주며 호투한 오고 타케루는 6회에 에이스 사카이 하루에게 공을 건내주며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큰 무대에서 제대로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벤치로 돌아오면서 문득 겁이 났다. '내가 1점을 내주는 바람에 지는 것이 아닌가'라는 걱정이 컸지만 동료들은 그를 보며 '수고했어!", "고생했어"라는 말로 반갑게 맞아주었다.
반면 타선은 카미무라 가쿠엔 고교의 에이스 이마무라 타쿠미에게 6회까지 단 하나의 안타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노히트로 꽁꽁 묶였다. 이대로 경기가 마무리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때쯤, 7회초가 되었다. 선두타자 에치고 슌스케(越後駿祐, 2학년)가 이마무라 타쿠미의 두번째 공이 배트에 맞으며 중전 안타로 첫 히트를 내며 1루로 출루하였다. 다음 타자가 땅볼로 아웃되었지만 7번 타자 쿠마가이 슌노스케(熊谷 俊乃介, 3학년)의 우전 안타와 우익수 실책으로 기어이 바라던 1점을 냈다. 그리고 다음 타자 이치카와 아유무(市川 歩, 3학년)의 평범한 땅볼이 2루수 실책으로 안타가 되었고 그 사이 3루에 있던 쿠마가이 슌노스케가 홈으로 들어오며 2대1로 역전에 성공하였다. 벤치에서 바라보던 오고 타케루의 얼굴에는 눈물이 흘렸다. 그렇게 맞이한 9회 1 1,2루 위기에서 전령으로 사카이 하루를 비롯한 내야진에게 감독의 메세지를 전했다. '웃는 얼굴로 즐겁게 하자'가 작전의 전부였다. 카미무라 가쿠엔 고교의 등번호 13번 타마키 코타(玉城功大, 3학년)가 사카이 하루의 5구째를 받아쳤고 중견수 앞으로 공이 떨어졌다. 2루 주자는 홈으로 전력 질주. 중견수 히다 유고(飛田優悟, 3학년)는 공을 잡고 즉시 홈으로 공을 던졌다. 노바운드로 홈으로 향한 공은 정확히 포수 미트에 잡혔고 아슬아슬하게 홈플레이트에서 주자를 태그. 모든 시선이 심판의 콜에 집중되었다. 심판은 손을 위로 들며 아웃을 소리쳤고 18,000명의 관객으로 가득찬 구장은 큰 환호성으로 뒤덮였다. 28년전 마츠야마 상업 고교가 결승전에서 이룬 기적의 백홈이, 다시 재현이 되는 순간이었다. 간토다이 이치 고교가 역사상 최초로 고시엔 결승 무대에 진출하게 되었다.
준결승에서 선발로 등판한 오고 타카루는 "불안도 긴장도 있었지만 사카이 하루와하타카나 켄신 못지 않게 연습해왔기 때문에 나를 믿고 던졌다"고 회고했다. 결승 진출에 대해서도 "경기에서 이겨서 결승에 진출해서 이렇게 기쁜 적은 처음이다. 역전했을 때부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결승에서 첫 우승을 걸고 투수 3명이서 열심히 하고 싶다"고 눈물을 글썽이며 기쁨을 가득한채로 인터뷰를 마쳤다.
- 주요 선수 성적 (투수)
투수명
ERA
이닝
투구수
피안타
탈삼진
자책
WHIP
오고 타케루
1.80
5
77
4
0
1
1.00
사카이 하루
0.00
3
66
4
6
1
1.25
○ 카미무라 가쿠엔 고교
- 야구부원: 56명
- 출신 유명 야구선수: 하츠키 류타로 (히로시마 도요 카프), 와타나베 리쿠(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타이 카츠토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등
카미무라 가쿠엔 고교 (가고시마현)
▽ 1회전: 8-5 vs. 키사라즈 종합 고교 (치바현)
▽ 2회전: 4-3 vs. 추쿄다이추쿄 고교 (아이치현)
▽ 3회전: 7-1 vs. 오카야마 가쿠게이칸 고교 (오카야마현)
▽ 8강전: 8-2 vs. 타이샤 고교 (시마네현)
학교 창립일
야구부 창립
첫 출장
출전 횟수
준우승 횟수
우승 횟수
통산전적
1965년
2003년
2007
7회
0
0
12승 6패
- 카미무라 가쿠엔 고교 응원단이 위치한 1루 알프스 스탠드에는 작년의 캡틴, 이마오카 아유무(今岡歩夢)가 자리잡고 뜨거운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작년에는 고시엔 그라운드에서 결승 티켓을 놓고 접전을 펼쳤지만, 아쉽게 패배하며 가고시마현 최초의 결승 진출을 이뤄내지 못했다. 이번 대회에 다시 그가 나타난 이유는 OB로서 후배들을 응원하겠다는 바램과 함께 자신과 함께 고시엔 그라운드를 밟았던 동생 이마오카 타쿠마(今岡拓夢, 2학년)를 위해서였다. 제 105회 고시엔에서 이마오카 형제는 나란히 주전으로 뽑히며 꿈의 무대에서 사상 최초로 팀을 4강까지 이끌었다. 그러나 준결승에서 센다이 이쿠에이 고교를 넘지 못하고 6대2로 결과를 받아들이며 결승 무대에서는 오르지 못했다. 형제가 함께 일본 최고가 돠는데는 실패하였지만, 동생 이마오카 타쿠마에게 자신의 꿈을 건내며 "다시, 여기로 꼭 돌아와!"라고 응원했다. 그리고 동생이 다시 형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팀을 이끌고 다시 4강의 무대를 밟았다.
지난 경기에는 난조를 보이며 초기 강판을 당했던 에이스 이마무라 타쿠미가 선발로 등판했다. 아무리 난조가 있었다 하더라도 이마무라 타쿠미에 대한 팀의 신뢰는 높았다. 이마무라 타쿠미가 아니었다면 분명 자신들은 이곳에 없었을 것이라는걸 알고 있었으니까. 거기에 부응하듯 6회까지 무실점 무안타로 팀의 1점차 리드를 지키고 있었다. 어쩌면 1998년 마스자카 다이스케가 고시엔에서 기록한 노히트를 26년만에 다시 달성할 수 있는 조짐도 보였다. 타선도 4회초 쇼바야시 코다이(正林輝大, 3학년)와 카미카와토코 유키(上川床 勇希, 3학년)가 안타를 합작하며 귀중한 1점을 만들었다. 하지만 거기서 만족하면 안되었다. 이마무라 타쿠미의 어깨를 가볍게 해주기 위해 타선도 신중하게 공을 고르며 1루로 나가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다. 하지만 운명의 7회 갑자기 난조를 보이며 안타 2개를 내주었고 우익수 실책이 겹치며 순식간에 2점을 헌납하며 쫒는 입장이 되었다. 그럼에도 공격 기회가 아직 2번이나 남았고 1점차였기에 충분히 뒤집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9회초, 이와시타 리쿠(岩下吏玖, 3학년)의 좌전 안타와 카미카와토코 유키(上川床 勇希, 3학년)의 우전 안타로 2사 주자 1,2루를 만들었다. 발이 빠른 이와시타 리쿠가 있었기에 단 하나의 안타라면 충분히 동점을 만들어 볼 수 있었다. 타석에는 등번호 13번의 대타 타마키 코타(玉城功大, 3학년)가 들어섰다. 이번 고시엔의 첫 등판. 여름 대회까지는 등번호 7번을 달고 있었지만 고시엔 본선에서는 등번호 13번을 받았다. 선발로 출전이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화려한 스타나 레귤러가 될수는 없지만, 언제든지 모두의 기대에 응해주도록 노력할 것이다"라고 스스로 말하며 기분에 변화를 주었다. 그리고 맞이한 중요한 타석. 낮게 들어오는 직구를 받아쳤고 공은 투수를 지나 중견수 앞으로 떨어지는 안타가 되었다. 공이 배트에 맞는 순간, 이와시타 리쿠는 전력 질주를 하였다. 그리고 홈을 향해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하였다. 그러나 그의 손이 베이스에 닿기 전에 간토다이 이치 고교의 포수 쿠마가이 슌노스케가 그를 먼저 태그를 하였다. 순간의 찰나였지만 심판은 아웃을 선언했다. 그 순간 카미무라 가쿠엔 고교 나인은 무릎을 꿇고 고시엔 땅에 엎드렸다.
작년 4강을 경험한 쇼바야시 코다이, 이와시타 리쿠, 카미카와토코 유키, 마스다 유키(増田有紀, 3학년)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이번 여름은 작년 여름과는 다를 것이라 굳게 믿었지만 자신들의 여름이 이제 없다는 것에 비통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에도 자신들의 여름을 함께 해준 모든 동료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였다. 끝까지 마운드를 책임진 이마무라 타쿠미는 "정말 이 팀에서 어느 곳보다 더 길게 여름을 함께 하고 싶었는데 속상하다"고 울먹였다. "나를 믿어준 동료들에게 감사하다는 마음이 전부다. 그리고 우리가 이루지 못한 일본 제일을 목표로 후배들이 열심히 해주면 좋겠다"고 말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올해는 형과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이마무라 타쿠마는 형과 한 약속, 결승에서 고시엔 그라운드 흙을 가져다 주는 것을 지켜주고 싶었다. 하지만 다시 한번 4강에서 멈추며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패전이 결정되자 분한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형이 그랬듯 고시엔 그라운드 흙은 가져가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내년에는 주장이 되어 하야세 사쿠, 이리키타 카즈키와 함께 팀을 고시엔으로 이끌겠다는 맹세도 하였다. 내년이야 말로 일본 제일의 흙을 가지고 돌아가겠다고 굳센 마음을 먹으며 자신의 2학년 여름을 마무리하였다.
- 주요 선수 성적 (투수)
투수명
ERA
이닝
투구수
피안타
탈삼진
자책
WHIP
이마무라 타쿠미
1.13
8
96
3
5
1
1.00
3. 제 1시합 수훈 선수
○ 쿠마가이 슌노스케: 9회초 2아웃에서 기적의 백홈을 만들어내며 사상 최초로 결승 티켓을 얻게 만든 주인공이었다. 그리고 7회말 공격에서 기어코 홈으로 들어와 귀중한 역전 득점을 얻어냈기에 수훈 선수로서 자격이 있었다.
- 예상대로 에이스 이마무라 타쿠미(今村拓未, 3학년)가 선발로 등판했다. 2년 연속 4강 진출을 해야한다는 부담과 타이샤 고교의 돌풍때문이었을까, 3이닝 동안 2점을 내주며 4회에 강판을 당했다. 카미무라 가쿠엔 고교에게 있어서는 가장 큰 위기였다. 구원으로 올라온 하야세 사쿠(早瀬 朔, 2학년)는 공을 건네는 에이스에게 "나에게 맡겨주세요"라고 가볍게 말을 건낸 뒤 마운드에 올랐다. 선배들을 이기게 하자라는 마음으로 남은 이닝을 책임져 꼭 4강으로 팀을 이끌겠다고 다짐했다.
올해 3월, 센바츠에서 오사카 토인을 상대로 투구를 하였지만 3명의 타자와 맞붙어 1실점을 내주었고 결국 팀은 2회전에서 패배하였다. 그 당시 "이마무라 타쿠미 선배에게만 의존하며 일본 최고가 될 수 없다"고 마음을 잡으며 "더 날카로운 체인지업과 더 많은 제구력을 높이겠다"고 맹세했다. 패배 이후 일주일에 두번씩 하던 허들을 두 발로 뛰어넘는 점프 훈련을 늘렸고, 구속은 최고 속도 145km까지 올라갔으며 변화구도 날카로워졌다. 그리고 에이스가 내려간 빈자리를 제대로 제대로 메꾸었다. 타이샤 고교가 5회를 제외한 나머지 이닝에 매번 주자를 출루시켰지만 후속 타자 7명을 변화구로 삼진을 잡아내며 2년 연속 4강에 진출하는 값진 성과를 만들었다.
타선에서도 이마무라 타쿠미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는 하야세 사쿠를 서포트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고 7회초에서 승부가 갈렸다. 선두 타자 마스다 유키(増田有紀, 3학년)가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으나 다음 타자 이리키타 카츠키(入耒田 華月, 2학년)가 볼넷, 그리고 이마오카 타쿠마(今岡拓夢, 2학년), 쇼바야시 코다이(正林輝大, 3학년), 이와시타 리쿠(岩下吏玖, 3학년), 카미카와토코 유키(上川床 勇希, 3학년)의 4타자 연속 안타로 4점을 득점하며 1점차의 아슬아슬한 리드를 5점으로 벌리며 하야세 사쿠의 어깨를 가볍게 해주었다. 경기가 끝난 후 하야세 사쿠는 인터뷰에서 "우선 이길 수 있어서 기쁘다"고 웃는 얼굴로 말하며 "상대의 응원을 마치 나를 위한 응원이라 생각하고 신나게 던졌다"고 밝혔다. 작년 여름에 이어 2년 연속 준결승에 오른 것에 대해서는 "목표하는 것은 일본 제일, 높은 레벨을 지닌 상대와의 경기가 계속 되지만 계속 이기는 마음으로 대회를 이끌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 주요 선수 성적 (투수)
투수명
ERA
이닝
투구수
피안타
탈삼진
자책
WHIP
이마무라 타쿠미
3.86
3
79
4
3
1
2.33
하야세 사쿠
0.60
6
82
5
7
0
1.00
○ 타이샤 고교
-32년만의 출장, 63년만의 승리, 107년만의 3승, 그리고 93년만의 8강 진출. 이번 여름, 타이샤 고교가 승승장구할 때마다 보고되는 숫자들은 모두 임팩트로 가득차 있었다. 이날도 역시 그랬다.
1루 알프스 스탠드는 시마네현 이즈모시에서 이른 아침 버스 7대에 나눠 250여명의 시민들을 비롯하여 총 19대의 버스를 타고 온 약 2,800여명의 응원단으로 가득 찼다. 강호 고교들을 차례차례로 격파하고 유일하게 8강에 진출한 타이샤 고교의 쾌진격에 전에 없을 정도로 흥분해 있어 버스에 올라탄 시민들은 '고시엔에서 전력으로 응원하고 싶다"고 힘을 실었다. 버스 응원 투어는 현지 여행사가 3회전이 끝난 17일 밤에 기획하였고 바로 매진되었다고 한다. 학교에서 판매한 응원단 티켓은 18일 오전 9시부터 판매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판매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어서 한시간 앞당겨서 판매를 시작하였다. 17일 밤 9시부터 줄을 선 사람도 있었다고 하니 타이샤 고교의 흥행은 단지 학교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현상으로 퍼졌다. 이날 응원에 참가한 나카스지 카즈미상은 1960년에 고시엔에 출장했을 때 당시 타이샤 고교의 주장이었다. 그는 타이샤 고교의 활약에 "학생들이 시합을 거듭할 때마다 능숙해져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평소 연습 시합이나 대회를 관전하러 가는데, 고시엔에서의 경기는 대단하였다. 후회없이 싸우고 고시엔을 즐겼으면 좋겠다"고 응원했다.
이날 선발은 계속되는 연투로 피로가 누적된 에이스 마니와 유타(馬庭優太, 3학년)를 대신하여 키시 코스케(岸恒介, 3학년)가 등판하였다. 고시엔 무대에서는 아직 등판한 적이 없지만 시마네현 지역 대회에서는 2경기 출전 10이닝 무실점 호투를 펼친적이 있었다. 타이샤 고교의 전략은 단순했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먼저 카미무라 가쿠엔 고교의 에이스 이마무라 타쿠미를 빠르게 강판시킨다. 그리고 키시 코스케가 호투를 펼치고 타선에서 점수를 내면 마니와 유타를 구원으로 올려 더 이상 점수를 내주지 않는다라는 전략이었다. 그렇게 타이샤 고교 타선은 초반부터 이마무라 타쿠미를 계속 괴롭혔다. 쉽게 배트를 휘두르지 않았고 컨택을 계속하며 이마무라 타쿠미의 이닝당 투구수를 계속 늘리게 만들었다. 결국 선제점을 내준 이마무라 타쿠미는 3회가 끝나고 다시 마운드에 오르지 못하였다. 스코어는 3대2로 1점을 뒤지고 있었지만 충분히 해볼 수 있는 점수차였다. 선발 키시 코스케도 3실점 하였으나 안타를 단 3개만 허용할 정도로 전력으로 피칭을 하고 있었다.
5회초, 에이스 마니와 유타가 마운드에 올라왔다. 마운드에 그가 들어설 때, 1루 알프스 스탠드의 2,800여명의 타이샤 고교 응원단은 환호했다. 에이스가 있으니 에이스를 믿으니 이 경기를 승리하고 107년만에 4강에 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런 바램과는 다르게 에이스의 어깨는 무거워보였다. 1회전부터부터 3회전까지 3경기 연속 선발로 출전, 풀이닝을 소화했고 특히 3회전은 11회 연장 타이브레이크까지 책임을 지며 총 492개의 공을 던졌기에 체력이 쉽게 올라오지 않았다. 결국 7회초 대거 4점을 내주고 말았다. 점수차는 크게 벌어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경기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 어떻게든 카미무라 가쿠엔 고교에게 추가 실점을 하지 않기 위해 분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경기는 8대2로 타이샤 고교가 패배하였다. 107년만의 4강 진출을 희망했던 이즈모시에서 날라온 타이샤 고교의 회오리 바람이 여기서 멈추었다.
카미무라 가쿠엔 고교의 교가 제창이 끝나고 타이샤 고교 선수들은 멀리서 자신들을 위해 4시간이나 걸려서 온 알프스 스탠드의 응원단에게 눈물의 인사를 보냈다. 응원단은 크게 졌다는 것에 개의치 않고 멋지게 활약해준, 93년만에 8강이라는 위대한 업적을 만들어준 학생들에게 따뜻한 박수와 격려의 환호를 보냈다. 알프스 스탠드에 있던 타이샤 고교의 전 야구부 매니저이자 마니와 유타 선수의 누나 마니와 아유미는 동생의 호투에 눈물을 글썽였다. 고시엔 출전은 남매의 비원이었는데, 동생이 드디어 그 꿈을 이뤄주었다. 고시엔에 데려와 준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3승이나 해주어서 잘했다고 전하고 싶다고 마음을 밝혔다.
돌풍의 중심에 있었던 에이스 마니와 유타의 뺨을 타고 내리는 비에 굵은 눈물이 뒤섞였다. 4경기에서 도합 492구를 던졌지만 힘의 차이를 실감했다, 스스로의 준비가 부족해서 팀이 패하였다고 스스로를 자책했다. 이시토비 분타 감독은 마니와 유타에게 수고했다라는 말을 전했다. 고시엔에서의 많은 것이 되살아나고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는 감독에게 이렇게 끝내버려서 너무 미안하다고 말을 하였다.
42세의 젊은 나이로 타이샤 고교의 역사를 만든 이시토비 분타 감독은 결과는 자신의 탓이며, 선수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동료를 믿고 경기를 해주었다며 칭찬을 하였다. 에이스 마니와 유타의 출전에 대해서는 선수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과 끝까지 던지게 하고 싶은 마음에 갈등이 컸다고 털어놓았다. 3학년 투수진에게 이에 대해 물어보니 '끝까지 마니와 유타가 던졌으면 좋겠다'고 하여 5회 등판을 허용하였으면서도 그의 미래를 걱정하는 복잡한 심경이 없지는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타이샤 고교의 역사의 문을 새로이 열고 나간 중심에는 분명 마니와 유타가 있었다고 말하며, 그가 없었다면 93년만의 8강은 어려웠을 것이라며 그를 치하하였다. 마지막으로 "타이샤 고교의 역사가 움직인 것은 틀림없고, 올해 대회는 앞으로의 100년을 향한 시작이며 그 야망은 무한대"라고 앞으로의 활약을 맹세했다.
이번 대회 No.1이라 할 수 있는 열렬한 성원을 받은 마니와 유타는 "굉장히 사랑받고 있다고 생각해 기뻤고, 행복한 장소였다"고 인터뷰서 말하며 고시엔의 흙을 가지고 돌아가지 않을것이라 하였다. 내년에 후배들이 8강 이상의 경치를 보여줄 것이라 굳게 믿고 있어서 그 때 나눠달라고 생각한다고 인터뷰를 마쳤다. 시합이 끝난 직후 타이샤 고교가 있는 시마네현 이즈모시에는 마치 타이샤 나인의 건투를 기리듯, 큰 무지개가 하늘에 걸렸다. 8강 유일한 공립의 별이 전국에 용기와 감동을 선사하며 100년의 고시엔 구장에 작별을 고했다.
- 주요 선수 성적 (투수)
투수명
ERA
이닝
투구수
피안타
탈삼진
자책
WHIP
키시 코스케
4.91
3⅔
64
3
1
2
2.18
야마모토 케이타
0.00
0⅓
13
1
0
0
6.00
마니와 유타
7.20
5
91
8
3
4
1.80
3. 제 4시합 수훈 선수 ○하야세 사쿠: 에이스 이마무라 타쿠미가 강판당하며 갑작스럽게 마운드에 올라왔지만 7명의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내며 팀의 2년 연속 4강 진출이라는 위대한 업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올해보다 더욱 내년이 기대되는 하야세 사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