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8월 31일: 도쿄 도착 및 요코하마에서 우타다 히카루 'Science Fiction' 공연 보기2
2. 9월 1일: 오전에 간토다이 이치 고교 탐방, 그리고 교토로 이동해 교토 국제 고교 방문
3. 9월 2일: 한신 고시엔 구장 관람 후 100주년 인증 후 간사이 공항으로 이동해 귀국
2박 3일의 여행 일정은 원래 이랬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고시엔 우승 고교 방문하기. 그래서 고시엔 준결승에서 교토 국제 고교와 간토다이 이치 고교를 응원했다. 순전히 학교 탐방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혹시나 아오모리 야마다 고교 또는 카미무라 가쿠엔 고교가 결승에 진출했다면 학교 방문은 불가능했었을 것이다. 아오모리 야마다 고교는 도호쿠 신칸센을 타고 가볼 생각을 했었겠지만, 카미무라 가쿠엔 고교는 망설임도 없이 포기했었을 것이다. 여튼 교토 국제 고교와 간토다이 이치 고교가 결승전에 진출했고 고시엔 구장 개장 100주년이라는 기념을 위해 2박 3일 동안 도쿄, 교토, 오사카를 전부 볼 수 있다는 희망에 가득차 있었다.
이런 바램과는 달리, 출국 전부터 일본 주요 뉴스 헤드라인은 태풍 산산에 관한 내용으로 가득차 있었다. 태풍 산산이 오는 것은 이미 뉴스를 통해 알고 있었고, 내가 가는 시점에 상륙하는 것도 인지하고 있어 큰 동요는 하지 않았다. 올해 일본을 갔었을 때마다 비가 왔으니 이번에도 그정도 수준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일본 큐슈 지방에 상륙한 이후, 산산의 이동 속도는 느려졌고 엄청난 양의 비를 쏟아 부으면서 말 그대로 교통을 마비시켰다. 콘서트 3일전이였나? 이번 여행의 주된 목적이었던 우타다 히카루의 카나가와 콘서트도 태풍 상황에 따라 취소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공지도 있었으니 산산의 영향이 어떤지 감히 느낄 수 있었다. 혹시 교토를 못가는 건 아닌지라는 불안도 있었지만, 신칸센이라면 갈 수 있을거야라는 일말의 희망은 있었다.
걱정한 것과는 달리 도쿄의 비는 생각보다 많이 내리지 않았다.우타다 히카루 콘서트도 정상적으로 진행 되었다. 이정도 비라면 내일 교토를 갈 수 있겠다는 내심 들었다. 콘서트를 가기전 보았던 뉴스로는 도카이도 신칸센은 여전히 미시마역 사이와 신오사카역 사이는 전면 운행 중단 중. 계획이 뒤틀어질거 같은 불안감이 생겼지만 비가 그다지 심하게 느껴지지 않아 내일은 괜찮겠지라고 콘서트에 같이 간 신이치상에게 말했더니, 신이치상은 절대 그렇지 않을거야라고 웃으면서 답해주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JR 도카이 홈페이지에 접속을 해서 신칸센 상황을 보니 어제처럼 신칸센 운휴라는 안내가 메인 페이지에 떠있었다. 설마 오늘도?라는 생각이 가득해서 아키하바라를 가면서 도쿄역을 지나가보았다. 아니나다를까, 홈페이지와 동일하게 '도카이도 신칸센 전면 중지'라는 안내가 전광판을 통해 계속 나오고 있었다. 그나마 어제보다 나은 건, 미시마역까지는 코다마 등급으로만 제한적으로 운행하고, 이후부터 나고야역까지는 운휴, 그리고 신오사카역까지는 코다마 등급만 평상시보다 감소하여 운행한다고 것이었다. 어떻게든 신칸센을 타야겠다고 줄 서 있는 일부 관광객들을 제외하고 신칸센 출입구는 말 그대로 한산 그 자체였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아쉬움이 가득한 탄식이 나왔다. 호쿠리쿠 신칸센을 타고 이동하는 방법도 고려해보았지만, 일정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했기에 결국 교토 국제 고교와 한신 고시엔 구장 방문은 포기하였다.
숙소에 짐을 두고 아키하바라에 도착하니 잠시 그쳤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차라리 여름 장마처럼 확 쏟아지면 좋을텐데 그렇지 않으니 불쾌지수만 높아진다. 간토다이 이치 고교가 있는 신코이와역까지는 6정거장. 그리 멀지 않지만 더위와 습도 그리고 피로 때문에 움직이는게 귀찮아지고, 이런 날씨에 정말 가야하나라는 생각만 가득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교토 국제 고교를 못가니 간토다이 이치 고교는 꼭 가야지라는 마음으로 움직였다.
신코이와역에서 내려 개찰구를 통과하니 간토다이 이치 고교의 준우승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붙여져 있었다. 고시엔이 끝난지 2주 정도 지났지만, 아직도 축하하는 모습을 보니 좋아보였다. 학교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든 없든,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학교가 전국 대회에서 달성한 대단한 업적을 함께 기뻐한다는 것에 좋다고 느껴졌다. 매일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일상으로 느껴지겠지만 나에게는 흥미로우면서 관심있는 모습으로 비쳐졌다.
간토다이 이치 고교는 신코이와 역에서 도보로 약 10-15분 거리로 나온다. 남쪽 출구로 나오니 '신코이와 뤼미에르 상점 거리'가 정면에 보였다. 신주쿠구, 시부야구 등 상업 지구와는 다르게 전형적인 거주 지역이기 때문에 이곳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현지 주민들이었다.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여행의 묘미는 시장 구경인 듯 싶다. 내가 사는 문화권과 다른 배경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일상을 보낼까를 상상한다면 시장에서 그 정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작년 게이오 기주쿠 고교를 방문했었을 때도 히요시 상점 거리가 독특하게 보여졌고 올해는 이곳이 그렇게 감상이 되어진다. 관광객이 아닌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하기에 물건은 새롭거나 다채롭지 않지만 오래된 투박함이 좋게만 보였다. 9월이 막 시작했지만 벌써부터 할로윈 용품들을 판매하는 것을 보니 이제 곧 가을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더 걸어가니 저 멀리 커다한 현수막이 자랑스럽게 걸려져 있는게 눈에 보였다.
『제 106회 전국고등학교야구선수권대회
축 준우승 간토다이 이치 고교
주최 / 아사히신문사 · 일본고교야구연맹』
준우승이어도 이렇게 기뻐하고 좋아하는데, 만약 우승이었다면 얼마나 더 자랑스러워 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매일 이곳을 거쳐가는 간토다이 이치 고교 학생들을 비롯해서 학부모들, 학교 관계자들이 이렇게 상점회에서 현수막을 걸어준 것만으로도 엄청난 자부심이 생기지 않았을까 느껴졌다. 현수막뿐이 아니었다. 동도쿄 대표로 고시엔 본선 출장을 축하하는 포스터도 여전히 여러 가게에 붙어 있다보니 새삼 고시엔이라는
'신코이와 뤼미에르 상점 거리'를 벗어나 주택가로 들어섰다. 구글맵 기준으로 5분만 걸어가면 간토다이 이치 고교가 나온다. 일본 주택가를 거닐때마다 항상 느끼지만 정말 조용하다. 지난번 앨리샤가 살고 있는 초후를 갔었을 때도 느꼈던 것과 비슷한 분위기를 경험한다. 역 주변을 제외하고는 사람이 다니는 것을 보기가 힘드니, 조용함을 넘어 쓸쓸함이 들 정도이다. 내가 걷는 소리조차도 민폐가 될 것 같다는 생각도 스쳤다. 그럼에도 곳곳에 보이는 작은 가게 등에서는 아직까지도 간토다이 이치 고교의 고시엔 본선 출장을 축하하는 포스터 등이 붙여져 있어 쉽게 눈에 띄었다. 확실컨데 간토다이 이치 고교 재학생들이 자주 오거나, 재학생 부모 또는 졸업생이 운영하고 있거나, 순수하게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학교이니 응원하고 싶어 붙여 놓았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잠시 걸으니 간토다이 이치 고교의 모습이 나타났다. 1925년 설립된 간토다이 이치 고교의 시작은 실업 고교였다. 상업과 계열로 학생 모집을 하고 이후 전기과, 기계과, 건축과, 공업과 계열이 추가되며 규모를 점차 확장하였다. 하지만 1973년부터 일반 학교로의 전환을 모색하였고 동시에 실업 계열 학과의 모집을 차레로 중단하였다. 그리고 2012년에 공업과 계열 모집 중단을 끝으로 일반 고교로의 전환을 완료하였다. 올해는 남녀 공학이 된지 20주년이 된 해이며, 2025년 4월에는 학교 설립 100주년이 되기에 올해 고시엔에서는 다른 학교보다 남다른 목표가 있었을 것이다.
간토다이 이치 고교 야구부는 이곳 도쿄에 위치하고 있지 않다. 차를 타고 약 40분 거리에 있는 치바현 시로이시에 야구부 전용 기숙사와 인조잔디 구장 1개, 일반 구장 1개가 있다. 간토다이 이치 고교처럼 인구 밀도가 매우 높은 대도시권에 위치한 학교의 야구부는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학교와 멀리 떨어져 있다. 도심에 야구부 전용 훈련 부지를 구하고 시설을 투자하는 것에 막대한 비용이 투입될 뿐더러, 늦은 시간까지 훈련을 하는 야구부 특성상 환경적으로도 제한적이기에 이와 같은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간토다이 이치 고교가 설립된 1925년 사진을 보면 학교 주변은 이미 현재와 같이 일반 거주지로 가득채워져 있었다. 따라서 게이오 기주쿠 고교처럼 학교 내에 야구부 훈련 그라운드가 있는 것은 매우 특별하다고 볼 수 있다.
학교 정문은 현재 주차장 공사로 인해 접근 불가. 아무래도 후문으로 가면 학교를 더 자세히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5분 정도 걸었다. 작년 게이오 기주쿠 고교 탐방을 시작으로 이렇게 고시엔에서 우승 또는 준우승하는 학교를 탐방하는 것도 점차 재미가 생긴다. 더불어 관광객으로서 전혀 가볼 수 없는 지역을 구경하는 즐거움도 있으니 내년에는 8강 이상 진출 고교 방문이라는 컨텐츠도 심각하게 고려해봐야겠다.
후문에 도달하니 고시엔 준우승 기념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2015년에 4강에서 아쉽게 탈락했지만 9년이 지난 올해는 준우승을 했으니-그것도 1점차로 아쉽게-당연히 학교로서는 경사를 축하하지 아니할 수 없었을 것이다. 교내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사전 허가를 받지도 않은 전혀 관계없는 일반인이었기에 학교 밖에만 머물렀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후문 경비실의 나이 드신 경비원에게 "고시엔 준우승 축하한다. 준우승이라 아쉽다"라고 말했더니 "감사합니다"라고 웃으면서 대답을 해주셨다.
현수막을 자세히 보니 '준우승'라고 급히 붙힌 흔적이 보였다. 고시엔 우승을 예상하고 현수막을 만들었다가 준우승이 되다보니 급하게 '준'이라는 단어를 작게라도 붙여서 (크게는 못하고) 축하고 싶었던 마음이었나보다. 결승 경기가 한쪽의 우위가 아닌 연장까지 가며 1점차 승부로 끝났을 정도로 치열한 접전이었으니 학교측도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결과로 인해 급작스럽게 취한 조치로 보여서 그런지 더욱 준우승이 더욱 안타깝게만 느껴졌다.
먹구름으로 가득했던 하늘이 갑자기 비구름으로 확연하게 바뀌는게 보여 학교 구경은 여기서 마무리하였다. 계획대로였다면 오전에 이곳을 보고 교토로 갔었을텐데 그러지 못한게 많은 아쉬움이 들었다. 날씨만 괜찮았다면, 아니 태풍만 아니었다면 어떻게든 교토 국제 고교를 갔었을텐데. 통제 불가능한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서는 뛰어난 인간의 기술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진리를 다시 한번 느꼈다. 그래도 준우승한 간토다이 이치 고교를 방문한 것만으로도 좋았다. 올해 멋진 경기를 선보인 간토다이 이치 고교 야구부 선수들에게 마음속으로 고생했다라는 생각을 남기며 올해 고시엔 준우승 고교 방문을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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