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振!!史上初、 決勝戦の延長タイブレークを制しました。甲子園 100年の夏、京都国際 初優勝!! 求心に残るダブルエースを擁し、高校野球の原点に立ち返る野球で栄冠を手にしました。
삼진!! 역사상 최초로, 결승전 연장 타이브레이크를 제압하였습니다. 고시엔 구장 100년의 여름에, 교토 국제 국제 고교가 첫 우승을 하였습니다. 가운데에 새긴 더블 에이스를 품고, 고교야구의 원점으로 다시 돌아온 야구로 우승을 손에 쥐었습니다.
- 니시무라 잇키가 헛스윙으로 마지막 타자의 삼진을 잡는 순간, 캐스터의 우승콜
"68년". 교토부 대표 고교가 천년수도 교토에 '진홍의 대우승기'를 다시 가져오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제 38회 대회였던 1956년, 류쿄헤이안 대학 부속 고교가 우승한 이래 반세기가 넘어서야 교토 국제 고교가 고시엔에서 최초로 우승하였다. 승리가 더욱 뜻깊었던 이유는 고시엔 역사를 통틀어 사상 최초로 한국계 학교가 정상에 등극하였기 때문이다. 야구부가 창립된 1999년, 제 81회 대회 교토부 지역 대회에 출전했던 1회전에 탈락한 미미한 실력의 학교가 2024년 제 106회 대회에서 3,715개 고교의 경쟁을 뚫고 일본 제일이 되었다.
1. 경기 결과: 교토 국제 고교 (우승)
학교명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R | H | E |
교토 국제 고교 (교토) | 0 | 0 | 0 | 0 | 0 | 0 | 0 | 0 | 0 | 2 | 2 | 9 | 2 |
간토다이 이치 고교 (동도쿄) | 0 | 0 | 0 | 0 | 0 | 0 | 0 | 0 | 0 | 1 | 1 | 4 | 0 |
2. 경기 내용
○ 교토 국제 고교
교토부의 여름 고시엔 결승 기록 | ||||
연도 (대회) | 학교명 | 스코어 | 상대교 | 결과 |
1915년 (제1회) | 교토부립 제2 중학교 | 2-1 | 아키타 중학교 | 우승 |
1921년 (제7회) | 교토부립 제1 상업중학교 | 4-16 | 와카야마 중학교 | 준우승 |
1928년 (제14회) | 헤이안 중학교 | 1-3 | 마츠쇼 중학교 | 준우승 |
1933년 (제19회) | 헤이안 중학교 | 1-2 | 추코 상업 학교 | 준우승 |
1936년 (제22회) | 헤이안 중학교 | 1-9 | 기후시립 상업 학교 | 준우승 |
1938년 (제24회) | 헤이안 중학교 | 2-1 | 기후 시립 상업 학교 | 우승 |
1946년 (제28회) | 교토부립 제2 중학교 | 0-2 | 나니카 상업 학교 | 준우승 |
1951년 (제33회) | 류코헤이안 대학 부속 고교 | 7-4 | 쿠마가야 고교 | 우승 |
1956년 (제38회) | 류코헤이안 대학 부속 고교 | 3-2 | 기후 시립 상업 고교 | 우승 |
1981년 (제63회) | 교토 상업 고교 | 0-2 | 호토쿠 가쿠엔 고교 | 준우승 |
1997년 (제 79회) | 류코헤이안 대학 부속 고교 | 3-6 | 치벤 가쿠엔 와카야마 고교 | 준우승 |
1998년 (제80회) | 교토 세이쇼 고교 | 0-3 | 요코하마 고교 | 준우승 |
2005년 (제87회) | 교토 외대 니시 고교 | 3-5 | 토마코마이 고교 | 준우승 |
2024년 (제106회) | 교토 국제 고교 | 2-1 | 간토다이 이치 고교 | 우승 |
- 결승전의 수훈 선수를 뽑자면 당연히 나의 원픽은 나카자키 루이(中崎琉生, 3학년). 9이닝 동안 104개의 공으로 간토다이 이치 고교 타선을 피안타 4개, 탈삼진 5개, 무실점으로 깔끔하게 막아내며 에이스로서 진면목을 여실히 보여줬다. 9회말 만루 상황 이전까지는 어떤 주자도 2루 이상 진루를 허용하지 않는 안정된 피칭으로 프로에서 주목하고 있는 투수라는 것을 각인시켰다. 허용한 4개 안타 중 단 하나만이 외야로 나갔을 뿐, 나머지는 내야 안타 등으로 높은 제구력을 보여주었다. 니시단 고교와의 3회전에 선발로 등판하여 활약을 펼칠 때, 이를 지켜본 현 닛폰햄 감독이자 니시단 고교 OB였던 '신조 츠요시'는 나카자키 루이를 극찬하였다. 좌타자를 변화구로 공략하는 방법이나, 극도의 긴장이 넘치고 있음에도 전혀 떨리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칭찬하였다. 그러한 모습을 다시 결승전에서 보여주었다.
나카자키 루이가 교토 국제 고교로 진학한 배경에는 2021년 교토 국제 고교를 4강으로 이끈, 당시 에이스였던 모리시타 류다이(현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투수)의 영향이 컸다. 당시 1학년이었던 나카자키 루이는 팔꿈치 부상으로 피칭 연습을 하지 못하지만 회복 훈련을 하며 묵묵히 팀을 이끄는 선배의 등을 바라보며 에이스로서의 자격이 무엇인지를 배웠다. 그리고 1년 뒤에 야구부에 입부한 니시무라 잇키(西村一機, 2학년)도 모리시타 류다이를 동경한 수많은 사람들 중 한명이었다. 입부 후에는 니시무라 잇키는 모리시타 류다이의 등이 아닌 나카자키 루이가 팀을 하나로 만드는 뒷 모습을 보며 스스로 성장했다고, 그의 존재에 감사를 항상 말하고 다녔다. 그렇게 두명의 에이스가 있는 팀은 서로 경쟁하며 함께 성장해왔다.
정규 이닝이 끝나고 2006년 이래 사상 두번째이자 2018년 연장 타이브레이크가 적용된 첫 결승 연장. 10회초 교토 국제 고교의 공격. 첫 타자 니시무라 잇키가 우전 안타를 치며 무사 주자 만루가 되었다. 다음 타석에는 리드오프 카네모토 유고(金本祐伍, 3학년)가 들어섰다. 유일한 한국계이자, 주전 멤버 중 교토부 출신 5명 중 한명이자, 이번 대회 0.360 타율을 기록 중에 있어 그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풀카운트 접전 끝에 6구째 공이 낮게 들어오며 볼로 판정되는 순간, 카네모토 유고는 힘껏 손을 쥐며 환호하며 1루로 출루하였고 3루 주자는 웃음을 지으며 홈으로 들어왔다. 전광판에 길게 늘어져 있던 0의 행진이 1로 바뀌며 경기는 교토 국제 고교의 분위기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공격에서 미타니 세이야(三谷誠弥, 3학년)가 타석에 올라왔다. 중학교 3학년때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며 야구를 놓을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너라면 할 수 있다'라고 항상 말해준 아버지의 말을 기억하며, 아들이 고시엔에 출장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아버지의 꿈을 이뤄주고 싶었다. 그리고 우익수 깊이 날아가는 희생 플라이로 승부를 결정 짓는 1점을 추가로 만들어냈다.
교토 국제 고교의 10회말 수비가 시작되었다. 9이닝을 책임졌던 나카자키 루이 대신 니시무라 잇키가 구원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수비 실책으로 무사 만루 상황이 되었고, 니시무라는 다음 타자를 땅볼로 유도해 아웃을 잡았지만, 3루 주자가 홈을 밟아 1점을 내주었다. 이로 인해 니시무라의 23이닝 연속 무실점 기록이 깨졌으나, 그는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1점 차로 쫓기는 상황에서, 여전히 1사 1, 3루였기 때문에 추가 실점 방지에 집중했다. 간토다이 이치 고교의 1번 타자에게 연속 4개의 볼을 허용해 다시 만루 상황이 되었고, 이어 2번 타자의 땅볼이 2루수 미타니 세이야 앞으로 향했다. 미타니는 공을 잡자마자 홈으로 송구했고, 포수 오쿠이 소다이(奥井颯大, 3학년) 는 홈으로 파고드는 3루 주자를 태그 아웃시키며 추가 실점을 막았다. 하지만 여전히 만루였고, 이제 우승까지 아웃 카운트 하나만 남은 상황. 니시무라는 간토다이 이치 고교의 3번 타자 사카모토 신타로(坂本慎太郎, 2학년)를 상대하게 되었다. 첫 번째 공은 스트라이크, 두 번째는 볼, 세 번째도 스트라이크. 그리고 마지막 4구째, 직구가 아닌 슬라이더를 바깥쪽 코스로 던졌다. 타자는 충분히 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배트를 휘둘렀지만, 공은 포수 미트에 빨려 들어갔다. 헛스윙 삼진, 쓰리아웃.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 니시무라 잇키는 양손을 번쩍 들었고, 모든 선수들이 마운드로 뛰어나와 사상 최초고시엔 우승이라는 기쁨과 즐거움을 만끽하였다.
1915년 교토부 제2중학교(현 토바 고등학교)가 고시엔 첫 우승(당시 명칭 전국중등학교선수권대회)을 기록하고, 1924년 히로시마 상업 고교가 고시엔 구장에서 첫 우승을 달성한 이래 총 63개 학교가 고시엔에서 첫 우승을 하였다. 그러한 역사의 순간에 교토 국제 고교가 사상 64번째로 고시엔의 첫 우승 학교가 되어 100주년을 맞이한 고시엔 구장에서 새로운 궤적을 만드는 페이지에 가장 처음으로 이름을 새겼다.
[교토 국제 고교 선수별 고시엔 성적]
● 투수
투수명 | ERA | 이닝 | 투구수 | 피안타 | 탈삼진 | 자책 | WHIP |
나카자키 루이 | 1.45 | 31 | 441 | 26 | 33 | 5 | 1.03 |
니시무라 잇키 | 0.00 | 24 | 339 | 11 | 14 | 0 | 0.92 |
● 타자
등번호 | 타자명 | 타율 | 타수 | 안타 | 타점 | 출루율 | 장타율 | OPS |
1 | 나카자키 루이 | 0.308 | 13 | 4 | 0 | 0.308 | 0.308 | 0.616 |
2 | 오쿠이 소다이 | 0.294 | 26 | 5 | 2 | 0.429 | 0.412 | 0.841 |
3 | 타카기시 에이타로 | 0.188 | 18 | 3 | 1 | 0.278 | 0.188 | 0.466 |
4 | 미쿠니 세이야 | 0.360 | 29 | 9 | 1 | 0.393 | 0.360 | 0.753 |
5 | 시미즈 우타 | 0.208 | 26 | 5 | 1 | 0.208 | 0.208 | 0.416 |
6 | 후지모토 하루키 | 0.391 | 27 | 9 | 4 | 0.440 | 0.565 | 1.005 |
7 | 카네모토 유고 | 0.360 | 29 | 9 | 4 | 0.429 | 0.440 | 0.869 |
8 | 사와다 하루토 | 0.375 | 27 | 9 | 1 | 0.423 | 0.375 | 0.789 |
9 | 하세가와 하야테 | 0.400 | 26 | 8 | 4 | 0.455 | 0.450 | 0.905 |
11 | 니시무라 잇키 | 0.571 | 10 | 4 | 2 | 0.571 | 0.714 | 1.285 |
13 | 핫토리 후우마 | 0.100 | 10 | 1 | 2 | 0.100 | 0.100 | 0.200 |
○ 간토다이 이치 고교
도쿄의 여름 고시엔 결승 기록 | ||||
연도 (대회) | 학교명 | 스코어 | 상대교 | 결과 |
1916년 (제2회) | 게이오 보통 중학교 | 6-2 | 오사카 이치오카 중학교 | 우승 |
1920년 (제6회) | 게이오 보통 중학교 | 0-17 | 칸세이 가쿠인 중학교 | 준우승 |
1925년 (제11회 | 와세다 실업 고교 | 3-5 | 타카마츠 상업 학교 | 준우승 |
1976년 (제58회) | 오르베린 고교 | 4-3 | PL 가쿠엔 고교 | 우승 |
1980년 (제62회) | 와세다 실업 고교 | 4-6 | 요코하마 고교 | 준우승 |
1989년 (제71회) | 테이쿄 고교 | 2-0 | 센다이 이쿠에이 고교 | 우승 |
1995년 (제77회) | 테이쿄 고교 | 3-1 | 세이료 고교 | 우승 |
2001년 (제83회) | 니치다이산 고교 | 5-2 | 오미 고교 | 우승 |
2006년 (제88회) | 와세다 실업 고교 | 4-3 | 토마코마이 고교 | 우승 |
2011년 (제93회) | 니치다이산 고교 | 11-0 | 세이코 가쿠인 고교 | 우승 |
2024년 (제106회) | 간토다이 이치 고교 | 1-2 | 교토 국제 고교 | 준우승 |
- '안타가 적더라도 수비로 지켜내 결승까지 올수 있었다'고 말하는 간토다이 이치 고교의 주장 타카하시 텟페이(高橋徹平, 3학년). 여름 지역 대회 이전까지는 수비에서 많은 실책을 범하면서 이길 수 있었던 시합을 패배한 적이 많았다. 그래서 선수들은 더욱 공격적인 모드로 수비 훈련을 하였다. 철저한 연습의 결과는 고시엔이라는 정상의 무대에서 결과로 나타났다. 고시엔에서 결승까지 포함한 5경기에서 기록한 실책은 단 3개밖에 되지 않았다. 자신들의 특기인 '공격의 수비'를 어김없이 발휘하며 마지막 이닝까지 단 하나의 실책도 없이 활약하였지만, 자신들의 고시엔 첫 우승이라는 목표는 후배들에게 맡기며 준우승에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간토다이 이치 고교는 하타카나 켄신(畠中鉄心, 3학년)을 선발로 출전시켰다. 하타카나 켄신은 초등학교 1학년부터 투수로만 활약했고 등번호는 항상 1번이었다. 에이스 번호를 과시하는 타입은 아니었으나 자신의 노력에 대한 증거였기에 언제나 자랑스러워했다. 빠른 구속의 소유자도 아니고 신장도 작았지만 제구력과 변화구가 매우 뛰어나 올해 센바츠까지는 등번호 1번을 달고 활약하였다. 하지만 같은 학년의 사카이 하루(坂井 遼, 3학년)가 빠른 직구로 두각을 보여주기 시작하며 경기에 등판하는 일이 잦아졌다. 요네자와 타카미츠 감독은 거칠지만 빠른 볼 스피드를 지닌 사카이 하루의 폭발력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에이스 넘버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 결국 등번호 1번은 그에게 부여되었다. 사카이 하루에게는 여전히 높은 신뢰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하타카나 켄신에게는 복잡한 감정이 생겼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우선 순위는 팀이 우승하는 것이고, 내 목표는 팀의 전국 선수권 우승"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결승이라는 큰 무대에서 선발로 등판하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거기에 신중한 투구로 교토 국제 고교의 타선을 6이닝 동안 74개의 공으로 피안타 6개 무실점으로 막으며 자신의 고교 마지막 여름을 빛나게 마무리하였다.
1점 뒤진 10회말 간토다이 이치 고교의 마지막 공격. 사카모토 신타로(坂本慎太郎, 2학년)가 들어섰다. 초등학교 4학년때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꼭 고시엔 우승이라는 선물을 해주고 싶다는 각오로 가득차있었다. 2아웃 주자 만루였기에 안타든 볼넷이든 출루에만 성공한다면 승부를 다시 원점으로 돌릴 수 있는 기회였다. 어쩌면 역전 사요나라 우승도 바라볼 수 있었다. 교토 국제 고교의 투수는 구원으로 등판한 니시무라 잇키. 이날 따라 니시무라 잇키는 자신이 가장 잘 던지는 체인지업의 제구가 쉽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따라서 직구보다는 변화구에 대응하는게 더욱 유리할 것이라 사카모토 신타로는 생각했다.
1구는 바깥쪽으로 빠지는 직구로 스트라이크, 2구는 체인지업으로 볼, 3구는 다시 바깥쪽으로 빠지는 스트라이크가 되며 볼카운트는 1볼2스트라이크로 사카모토 신타로가 코너에 몰리게 되었다. 어떻게든 배트에 공을 맞춰야겠다고 각오를 하였다. 그리고 4번째 공이 스트라이크 존을 향해 들어오다가 바깥으로 빠지는 궤적을 그렸고, 사카모토 신타로는 강한 스윙을 하였으나 공은 포수 미트에 잡히며 헛스윙 삼진이 되었다. 고시엔 구장이 환호로 뒤덮이는 순간, 교토 국제 고교 선수들이 마운드로 뛰쳐나오는 그때, 사카모토 신타로는 고개를 끝까지 들지 못하고 비통한 눈물만을 흘렸다.
간토다이 이치 고교는 사상 최초 고시엔 우승을 달성하는데 실패하였다. 1987년 센바츠에서 처음으로 결승에 진출하였지만 준우승에 그치며 '자감의 대우승기(紫紺の大優勝旗)'를 가져오지 못했다. 그리고 2011년 고시엔에서 니시다이산 고교가 도쿄도 대표로 우승한 이래 13년만에 다시 '동쪽의 수도'에 '진홍의 대우승기'를 손에 넣고자 하였지만 교토 국제 고교에 막혔다. 동도쿄 대표로만 한정하면 1995년 테이쿄 고교가 우승한 것이 마지막이었으니 아쉬움은 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시엔에서의 자신들의 최고 기록을 기존의 4강에서 준우승으로 새로 만들었으니 어쩌면 뜻깊었던 대회로 느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비롯 일본 제일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자신들의 바램을 다음의 야구 소년들이 이뤄주기를 바라며 간토다이 이치 고교는 뜨거운 추억만을 간직하며 100년의 성지에서 여름을 마무리하였다.
[간토다이 이치 고교 선수별 고시엔 성적]
● 투수
투수명 | ERA | 이닝 | 투구수 | 피안타 | 탈삼진 | 자책 | WHIP |
사카이 하루 | 0.00 | 18⅔ | 255 | 12 | 16 | 0 | 0.80 |
하타나카 켄신 | 1.40 | 19⅓ | 266 | 19 | 11 | 3 | 1.14 |
오고 타케루 | 1.50 | 6 | 88 | 5 | 0 | 1 | 1.00 |
사카모토 신타로 | 0.00 | 2 | 41 | 1 | 2 | 0 | 2.00 |
● 타자
등번호 | 타자명 | 타율 | 타수 | 안타 | 타점 | 출루율 | 장타율 | OPS |
1 | 사카이 하루 | 0.400 | 8 | 2 | 0 | 0.500 | 0.400 | 0.900 |
2 | 쿠마가이 슌스케 | 0.333 | 19 | 6 | 2 | 0.333 | 0.389 | 0.722 |
3 | 에치고 슌스케 | 0.533 | 20 | 8 | 1 | 0.611 | 0.600 | 1.211 |
4 | 코지마 소오 | 0.118 | 20 | 2 | 2 | 0.118 | 0.176 | 0.294 |
5 | 타카하시 텟페이 | 0.167 | 21 | 3 | 1 | 0.286 | 0.333 | 0.619 |
6 | 이치카와 아유 | 0.118 | 19 | 2 | 1 | 0.118 | 0.118 | 0.236 |
7 | 사카모토 신타로 | 0.176 | 22 | 3 | 1 | 0.250 | 0.235 | 0.485 |
8 | 히다 유고 | 0.200 | 23 | 4 | 1 | 0.273 | 0.200 | 0.473 |
9 | 나루이 사토시 | 0.250 | 21 | 4 | 2 | 0.316 | 0.250 | 0.566 |
10 | 하타나카 켄신 | 0.000 | 5 | 0 | 0 | 0.400 | 0.000 | 0.400 |
11 | 오고 타케루 | 0.000 | 1 | 0 | 0 | 0.000 | 0.000 | 0.000 |
12 | 호리에 타이키 | 0.000 | 2 | 0 | 1 | 0.000 | 0.000 | 0.000 |
13 | 타키카와 유이토 | 0.500 | 2 | 1 | 0 | 0.500 | 1.000 | 1.500 |
교토 국제 고교의 고시엔 첫 우승을 끝으로 14일간의 치열했던 제106회 고시엔이 마무리가 되었다. 고시엔을 보아온지 이제 어느덧 9년째인데, 이번만큼 경기 리뷰를 제시간에 하지 못하였다. 매경기를 시청하였지만, 회사에서 중요한 업무가 겹치면서 데드라인을 지키기 위해 집에서도 업무를 계속 하고, 작년과는 다르게 보다 작성하는 내용(예: 지역 대회 리뷰, 학교별 본선 프리뷰 등)이 많아지며 그만큼 할애하는 시간이 많아지다보니 이러한 사정이 생기게 되었다. 고시엔이 끝난지 한달만에 결승 리뷰를 한다는거 자체가 스스로에게 매우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게임 출시 준비를 본격적으로 하는 내년에는 경기 시청이 가능할까라는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과 비교하여 다양한 정보와 데이터를 찾고 정리하여 기록으로 남길 수 있어서 자랑스럽다는 생각도 함께 한다. 2015년에 처음 고시엔을 보면서 페이스북에 기록을 남겼지만, 블로그로 이전한 작년부터 경기 리뷰 등 내용이 풍부해졌다고 느낀다.
앞으로 남은 일을 간략히 정리해보면, 아직 경기 사진들을 올리지 못한 일부 포스팅을 수정하고, 간토다이 이치 고교 방문 후기를 작성하고, 제 106회 고시엔 뒷 이야기 (학교별 및 선수별)와 각종 기록들을 정리하고, 교토 국제 고교 우승 관련된 개인적인 내용을 포스팅하는 것으로 올해 고시엔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11월에 어쩌면 교토와 오사카를 가게 된다면 그때 교토 국제 고교와 고시엔 구장 방문 후기 어쩌면 작성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106회 고시엔에 작별을 고해야지.
'뜨거운청춘 > 106회 고시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시엔 후기] 고시엔 준우승팀, 간토다이 이치 고교 탐방기. (1) | 2024.10.24 |
---|---|
[대회 13일차] 제2시합 - 두 번 지는 것은 용납하지 못한다. (0) | 2024.09.16 |
[대회 13일차] 제1시합 - 간토다이 이치 고교의 세번째 투수 (0) | 2024.09.14 |
[대회 12일차] 제4시합 - 공립의 별을 기리는 무지개 (0) | 2024.09.10 |
[대회 12일차] 제3시합 - 여름의 고도(古都) 대결 (1) | 2024.09.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