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청춘/106회 고시엔

[대회 13일차] 제2시합 - 두 번 지는 것은 용납하지 못한다.

imymemyself 2024. 9. 16. 03:00

 

1. 경기 결과: 교토 국제 고교 승리 (결승 진출)

학교명 1 2 3 4 5 6 7 8 9 R H E
교토 국제 고교 (교토) 0 0 0 0 0 3 0 0 0 3 6 1
아오모리 야마다 고교 (아오모리현) 2 0 0 0 0 0 0 0 X 2 5 0

 

 

2. 경기 내용

교토 국제 고교 

- 야구부원: 61명

- 출신 유명 야구선수: 나카가와 하야토(한신 타이거스), 모리시타 류다이(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신성현, 황목치승 등


교토 국제 고교 (교토)




▽ 1회전: 7-3 vs. 삿포로 니치다이 고교 (남홋카이도) 

▽ 2회전: 4-0 vs. 니가타 산업 대한 부속 고교 (니가타현) 

▽ 3회전: 2-1 vs. 니시단 고교 (후쿠오카현)

▽ 8강전: 4-0 vs. 치벤 가쿠엔 고교 (나라현)

 

학교 창립일 야구부 창립 첫 출장 출전 횟수 준우승 횟수 우승 횟수 통산 전적
1947년 1999년 2021년 3회 0 0 7승 2패

 

- 에이스 나카자키 루이(中崎琉生, 3학년)는 준결승전을 앞둔 하루 전, 지난 3월의 일을 떠올렸다. 센바츠 1회전에서 9이닝 끝내기 패배를 아오모리 야마다 고교에게 당했는데 다시 승부처에서 만나게 되었다. 자신들에게 패배를 안긴 상대를 그것도 결승 티켓을 놓고 격돌하는 것이기에 더욱 신경이 쓰였다. 그러면서 "한 번 패한 상대에게 또 한번 지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센바츠까지는 주장을 맡고 있었지만 투구에만 집중하라는 노리츠구 코마키 감독이 감독의 지시로 캡틴이라는 자리를 후지모토 하루키(藤本陽毅, 3학년)에게 넘겼다. 그는 "주장으로서 부담은 내려 놓았다. 하지만 에이스로서 마운드에 있는 한 책임감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투지를 불태웠다.

 

1회말 아오모리 야마다 고교의 공격. 몸이 덜 풀린 것인지 나카자키 루이의 공은 강력하지 않았다. 아오모리 야마다 고교는 2개의 볼넷, 안타, 희생플라이를 몰아치는 집중력을 선보이며 2점을 내며 달아났다. 센바츠의 나이트메어가 재현되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카자키 루이는 다시 마음을 가담고 2회부터는 전력 투구를 펼치기 시작했다. 비록 2실점을 하였지만 4회까지 피안타 3개, 탈삼진 2개로 에이스로서 역할을 다했다. 그리고 어쩌면 자신보다 뛰어난 에이스라 할 수 있는 후배 니시무라 잇키(西村一毅, 2학년) 에게 마운드를 넘기고 벤치로 돌아왔다. 

 

2점차를 뒤진 6회초. 미타니 세이야(三谷誠弥, 3학년), 사와다 하루토(沢田遥斗, 3학년)의 연속 안타와 후지모토 하루키의 볼넷이 이어지며 1사 만루 기회를 만들었다. 타석에는 우익수 하세가와 하야테(長谷川 颯, 2학년). 가운데로 들어오는 상대 투수의 2번째 공을 힘껏쳤다. 배트에 맞은 공은 우익수 쪽을 향해 멀리 날아갔고, 그 사이 2루와 3루에 있던 주자가 전력질주하며 홈에 들어왔다. 그토록 바랬던 동점이었다. 흥분이 가시지 않는 상황에서 핫토리 후마(服部颯舞, 3학년)이 타석에 들어섰다. 망설임도 없이 초구를 쳤지만 내야 땅볼이 되었다. 하지만 3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오는 속도가 더 빨랐고 타자 주자는 아웃이 되었지만 득점에는 성공하며 3대2로 역전하는데 성공하였다. 이제 모든 것은 니시무라 잇키에게 맡겨졌다. 결승에 진출하겠다는 간절함이 아오모리 야마다 고교의 그것보다 컸을까. 6회부터 9회까지 4이닝 동안 볼넷으로 타자를 출루시킨 것 이외에는 단 한개의 안타도 내주지 않았다. 마지막 타자를 2루수 앞 땅볼로 잡아내며 3아웃을 만드는 순간, 교토 국제 고교 선수들은 모두 환호하며 벤치에서 뛰어나왔다. 3년전 선배들이 만들었던 4강이라는 기록을 뛰어넘어 사상 최초로 결승에 진출하는 의미스러운 성과를 만들었다. 

 

주장 후지모토 하루키는 자신들보다 체격에서 뛰어난 아오모리 야마다 고교 선수들을 의식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힘으로는 자신들이 뒤지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있었다. 교토 국제 고교 선수 중 체중이 75kg 이상인 선수가 1명 밖에 없는 반면, 아오모리 야마다 고교 선수 중 75kg를 넘는 선수는 3명 이상이 있었다. 교토 국제 고교 나인의 평균 신장은 172.7cm, 평균 체중은 71.9kg로 숫자상으로도 결코 몸집이 큰 팀이 아니었다. 신체적으로 불리함을 알고 있기에, 상대를 의식하면 아무것도 소용없다는 것은 당연하였다. 오히려 자신들만의 야구를 철저히 하자고 마음을 굳혔다. 그래서 장타로 위기를 타개하는 것이 아닌, 끈질기게 상대를 몰아붙이는 자신들만의 야구를 하였다. 그래서 이날 만든 6개의 안타 모두는 단타였다. 상대방이 예측하지 못한 곳으로 안타를 만든다거나 낮고 강한 타구를 날리는 연습을 중시해온 결과였다. 

 

경기가 끝난 후, 노리츠구 코마키 감독은 승리에 대해 "2점을 뒤지고 있어 역시 여기까지인가라는 분위기가 벤치에 감돌고 있었지만, 상대 투수 교체 시점에 턴어라운드가 되었다. 6회에 만들어진 찬스를 선수들이 노력해서 결과로 만들어서 대단하면서 감동하며 지켜보았다"고 표현하였다. 나아가 결승이라는 무대에 대해서는 "확실히 당당히 싸워 새로운 결과를 만들고 싶다"고 각오를 내비쳤다. 교토 국제 고교의 나인이 만든 결승이라는 무대가 이제 빛을 발할 시간이다. 

- 주요 선수 성적 (투수)

투수명 ERA 이닝 투구수 피안타 탈삼진 자책  WHIP
나카자키 루이 4.50 4 55 3 2 2 1.25
니시무라 잇키 0.00 5 66 2 3 0 0.80

 

 

 아오모리 야마다 고교

- 야구부원: 86명

- 출신 유명 야구선수: 카와라다 쥰페이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호리오카 하야토(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키나미 세이야(한신 타이거즈) 등


아오모리 야마다 고교 (아오모리현)





▽ 2회전: 9-1 vs. 나가노 니치다이 고교 (나가노) 

▽ 3회전: 5-0 vs. 이시바시 고교 (토치기현)

▽ 8강전: 1-0 vs. 시가 가쿠인 고교 (시가현)

 

학교 창립일 야구부 창립 첫 출장 출전 횟수 준우승 횟수 우승 횟수 통산 전적
1918년 1954년 1993년 12회 0 0 15승 12패

 

- '진홍의 대우승기'까지는 단 2번의 경기만 남았다. 지난 3월에 만난 교토 국제 고교와는 5개월만에 다시 결승 티켓을 놓고 또다시 격돌하게 되었다. 선발 투수는 세키 코이치로(関 浩一郎, 3학년)가 아닌 시모야마 다이고(下山大昂 , 2학년)였다. 3회전과 8강정에서 선발로 출전 9이닝 동안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아오모리 야마다 고교의 차세대 에이스로서의 모습을 전국에 각인시켰다. 그리고 4강에서 선발로 다시 출전, 아오모리현 역사 최초로 고시엔 결승 진출이라는 대기록의 주인공이 되는 기회를 얻었다. 5회까지 교토 국제 고교의 타선을 단 2안타로만 제한하며 팀의 승리를 확신할 수 있었다. 

 

타선에서도 1회부터 득점을 하며 시모야마 다이고의 부담을 덜어주고 결승 진출이라는 기대를 한껏 높였다. 1사 주자 1,2루에서 4번 타자 하라다 아츠키(原田純希, 3학년)의 우중간을 가르는 2루타가 터지며 2루 주자가 홈에 들어오며 선제 득점을 만들었다. 그리고 다음 타자 요시카와 유다이(吉川勇大, 3학년)의 중견수 희생 플라이로 3루 주자가 홈인하며 스코어는 2대0이 되었다. 

 

그리고 6회 에이스 세키 코이치로가 마운드에 올랐다. 시모야마 다이고가 계속 던질 가능성도 고려했지만 가부토모리 다카아키(兜森崇朗)은 시모야마 다이고는 내일을 위해 쉬어야한다고 생각해 과감히 내렸다. 세키 코이치로가 4이닝만 막아주면 승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2경기 15이닝 동안 단 1실점만 했던 우완 에이스가 공략당하고 말았다. 연속 안타 2개와 볼넷 1개로 주자 만루에서 상대 타자에게 우전 안타를 허용하며 동점을 만들어주었고 다음 타자에게는 희생 플라이로 1점을 내주며 3대2로 승부가 뒤집어지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1점을 따라잡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았지만 교토 국제 고교의 좌완 에이스 니시무라 잇키를 끝까지 무너뜨리지 못했다. 그렇게 맞이한 9회말 마지막 공격. 4번부터 이어지는 중심 타선의 공격. 4번 타자 에이스가 신중함 끝에 볼넷을 골라내어 오랜만에 1루에 발을 디딛었다. 다음 타자 요시카와 유다이가 초구를 노려 힘껏 배트를 휘둘렀지만 유격수 앞 땅볼로 더블 아웃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타석에는 6번 타자이자 주장인 하시바 코스케(橋場公祐, 3학년)가 들어섰다. 어쩌면 마지막 타석이 될 수 있어 더욱 신중함을 기했다. 스트라이크, 파울, 볼을 계속 만들어내며 기회를 만들려했다. 그리고 니시무라 잇키가 6구째를 힘껏 던졌을 때 하시바 코스케는 힘을 모아 배트를 휘둘렀다. 아뿔싸. 2루수 앞 정면으로 향하는 땅볼이 되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전력 질주를 하였고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까지하였지만 거기까지였다. 심판의 아웃 콜이 선언되며 쓰리 아웃. 아오모리 야마다 고교의 첫 4강. 일본 최고에 단 1경기만 남긴채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주장 하시바 코스케와 요시카와 유다이는 중학교 3학년 때 아오모리 야마다 리틀 시니어에서 일본 제일을 경험한 적이 있다. 그리하여 고등학교에서도 일본 제일을 경험하고 싶어 자연스레 아오모리 야마다 고교에 진학하였다. 초반에는 현내에서 유망한 선수들과 전국에서 모여든 우수 선수들 때문에 조그마한 '간격'이 있었다. 하지만 사투리 등을 서로 가르치며 자연스럽게 거리가 좁혀졌고, 아오모리현 지역 대회에서는 벤치 멤버들이 대기 멤버들에게 우승 메달을 걸어주면 유대를 돈독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결국 고시엔 4강에서 탈락이 확정되자, 하시바 코스케는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마지막까지 고시엔에 와서 아오모리 야마다의 역사를 바꿀 수 있어서 자랑스럽다"고 3년간을 돌아보며, 끝까지 눈물을 보이지 않고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경기 후 3학년보다 더 슬프게 울었던 2학년에 대해서는 여러 부분에서 부담이 있겠지만 내년에는 고시엔 4강 이상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응원의 메세지를 남기며 일본 제일의 꿈을 후배들에게 맡기고 봄 여름 총 7경기를 치른 고시엔 구장을 떠났다. 

- 주요 선수 성적 (투수)

투수명 ERA 이닝 투구수 피안타 탈삼진 자책  WHIP
시모야마 다이고 0.00 5 67 2 2 0 0.40
세키 코이치로 6.75 4 37 4 2 3 1.00

 

 

※ 경기 특별 호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