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7월 20일, <데스티니 차일드> 정기 점검이 끝나고 평소처럼 접속하여 플레이를 하려했다. 어랏, 이상하다. 업데이트 내용은 보이지 않고 갑작스런 서비스 종료 공지가 먼저 눈에 띄었다. 지난 7년간 열심히 서비스를 해왔으나 서비스를 지속할 수 없다는 판단으로 서비스 종료를 알릴 수 밖에 없었다라는 흔하디 흔한 한국 게임회사의 서비스 종료 내용이었다. 어느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으나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내용이라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2.
분명 앞으로 2-3개월 분량의 업데이트가 남아 있을 뿐더러, 시프트업의 시작과 함께한 게임이었기에, 개인적으로도 많은 돈을 써가며 플레이한 게임이었기에 이런 방식의 서비스 종료는 전혀 생각치 않았다. 정기 점검을 시작하기 전에 여름 업데이트, 가을 업데이트 내용에 대해 공식카페에서도 이야기가 이루어지고 있었고 나를 포함한 유저들도 그렇게 연착륙을 할 것이라 생각하였기에 이것은 마치 등 뒤에서 칼에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3.
정기 점검이 거의 완료될 시점에, 블라인드에서 <데스티니 차일드> 개발팀의 권고사직 이야기가 올라왔다. 내용은 즉슨, 정기 점검 당일 오전에 팀장급 간부회의가 있었고 회의가 끝나자마자 개발팀 전원이 희망퇴직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 개별 면담을 진행하며 전환배치 또는 권고사직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물어보았고 그렇게나 중요한 것을 면담 자리에서 결정하라고 했다는 피플팀의 이야기가 있었다는 경악할만한 수준의 내용이었다.
4.
업계에 이제 10년 이상 몸을 담고 있다보니 권고사직, 희망퇴직이라는 용어가 이제는 낯설지 않은 단어가 되어버렸다. 하도 많이 갑작스럽게 팀이 폭파되거나 뿔뿔이 흩어지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보고 들어서 무뎌졌는지는 몰라도 무의식적으로 또 그랬구나라고 생각만하고 흘러보냈는 이번 사태는 그럴 수가 없을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독 분노가 치밀러 솟아오르는 이유는 헤어질때의 매너조차도 싸그리 무시하고 마치 아무일도 아닌 것처럼 이번 사태가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시프트업이라는 회사, 특히 업계 탑급으로 여겨졌던 '그' 사람에게 실망하였기 때문이다. 40명 정도 되는 개발팀 개개인에게는 가족이 있고 생계가 걸려있는 아주 중요한 사안인데 생각할 여지도 주지도 않고 2-3분 안에 결정을 내리라는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블라인드에서 시작한 여파는 루리웹을 비롯하여 여러 커뮤니티에 퍼졌고 주말이 지나고 나서는 그제서야 공지 과정에서 일부 오해가 있었다라는 말도 안되는 변명으로 일관한 것도 시프트업에 대한 분노를 잠재울 수 없었던 것이다. 전환 배치라는 것도 신규 입사 하는 것처럼 면접을 거치고 합격을 해야 가능하고, 권고사직도 3개월치의 위로금이 전부인 상황에서 과연 어떠한 선택을 할수 있을까.
5.
소문에 의하면 IPO를 앞두고 있는 시프트업은 좋은 기업 가치 평가를 받기 위해 <데스티니 차일드>를 급하게 종료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말은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시프트업의 시작과 함께한 지금의 시프트업을 만들어준 게임이었기에, 아무리 게임 운영에 있어 욕을 먹었어도, 종료를 알리고자 했을 때는 더욱 세심하게 다가가야 하지 않았을까? 2016년부터 애정을 가지고 꾸준하게 결제하면서 플레이를 해왔던 사람으로서 이러한 방식은 더더욱 이해가 가지않고 업계인으로서도 아니다는 생각밖에 안든다. 지금까지 플레이를 해왔던 모든 유저들을 기만하였으니까.
6.
마지막으로 한때 권고사직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시프트업의 치졸한 방식은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관리자 입장에서는 몇명 나가는거 쉽다고 생각하겠지만, 통보를 받는 입장에서는 당장 무엇으로 먹고 살아야하지라는 생각으로만 가득차니까 잔인할 수 밖에 없다. 헤어짐에도 예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단순히 사람 사이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회사와 계약관계에 있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너있게 마무리를 졌어야 하지 않았을까. 이번 방식이 시프트업의 <니케: 승리의 여신>, <스텔라 블레이드> 개발팀에게는 어떻게 느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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