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여행

[다시, 도쿄] 음악이 흘러나오는 도쿄 Epilogue

imymemyself 2024. 5. 13. 23:46

 

 

24.02.09

 

여행의 끝은 항상 아쉽다. 환상과 작별하고 현실을 마주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기에. 2월 9일 아침이 이런 마음이었다. 분명 아침의 공기는 상쾌해서 폐까지 시원함이 전달되는 느낌이었지만, 머리는 그렇지 않았다. 지난 3일이 너무 즐거웠기에, 환상속에서 벗어나기 싫어서 한숨만 여러번 내쉬었다. 와이프한테 전화를 해서 "돌아가기 싫어~"라고 투정 부렸더니 "다음에 우리끼리 같이 오면 되자나~"라고 타일러 주는데 그새 이런 말 한마디에 마음이 풀어졌다. 

 

한조몬역 근처에 있는 허름한 소바집에서 돈까스 카레와 소바로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70대 전후의 오너라고 생각되는 사장님과 비슷한 동년배 손님이 전부였다. 맛을 기대한 건 전혀 아니었지만 기본적인 응대나 그런 것들은 전혀 되어 있지 않아서, 오히려 눈치를 봐야하는 느낌이었다. 나중에 구글 평점이랑 리뷰를 보니 역시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기본적인 맛은 좋지만 접객 관점에서는 손님이 불편함을 많이 느끼는 곳이라는 평이 대부분. 

 

 

 

체크아웃을 한 뒤, 택시를 타고 도쿄역으로 이동했다. 원래 계획은 나리타 익스프레스를 타고 나리타 공항으로 가기. 그런데 1300엔으로 공항버스를 탈 수 있다고 해서 버스를 선택했다. 더 이상 현금을 쓰기 싫어 스이카 충전을 했는데, 뭔가에 홀린것처럼 스이카로 탑승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불쑥 들어 현금을 내고 티켓을 샀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버스를 기다리는데 아뿔싸, 스이카로 버스를 탑승할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버렸다.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돌아갈 때가 되어서 마음이 풀린걸까, 이런 실수를 안하는데 말이다. 스이카에 충전한 금액은 다음 여행 때 쓰는 것으로 하고 티켓을 내고 빈자리에 앉았다. 1300엔이라는 저렴함은 좋지만 버스가 매우 컴팩트해서 신주쿠에서 타던 공항버스와는 차이가 있었다. 운영하는 회사의 차이겠지만 옆사람과 거의 붙어서 가야한다는게 은근히 불편했다. 

 

1시간 정도 지나, 나리타 공항에 도착했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여정이라는 생각이 순간 스쳐 지나갔다. 이제는 익숙해질대로 낯설지 않은 이곳. 오랜만에 아시아나 항공을 타기에 이번에는 스카이팀 본진이 위치한 북쪽 윙이 아닌, 스타얼라이언스 본진이 모여있는 남쪽 윙을 이용했다. 확 트인 공간과 밝은 채광이 북쪽 윙과 비교될 정도이다. 아무래도 스타얼라이언스 회원 중 하나인 ANA 항공 영향이 큰 듯 싶다. 간단히 체크인을 마치고 (후지산이 보이는 좌석으로 이미 사전 배정을 해두었지), 지체할 것도 없이 패스트트랙을 통과했다. 항상 주장하는 것이지만 한국에도 노약자, 임신부 등 이외에도 특정 등급 이상 고객 또는 클래스 이상 탑승자에게도 패스트트랙을 제공해야 한다. 

 

 

 

CIQ를 마치고 ANA 항공 라운지로 향했다. 나리타 공항 1터미널에는 총 4개의 라운지가 있는데 북쪽 윙에 위치한 대한항공이 운영하는 스카이팀 라운지, 남쪽 윙에는 ANA 항공이 운영하는 ANA 항공 라운지, 그리고 이곳을 허브로 삼고 있는 유나이티드 항공이 운영하는 유나이티드 라운지가 있다. 유나이티드 라운지도 사용 가능하였지만, 몇몇 후기를 보니 ANA의 그것보다 별로라고. 오래전에 ANA 항공 라운지를 이용했을 때, 기대 이상으로 만족한 경험이 있어 오랜만에 ANA 항공 라운지를 이용하기로 했다.

 

스카이팀 라운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질적인, 양적인 면에서 마음에 들었다. 아무래도 스카이팀에 일본 국적 FSC가 없다보니 북쪽 윙의 일부 구역만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반면, ANA 항공 라운지는 우선 공간적인 명에서 매우 넓어서 좋았다. 게다가 제공하는 음식도 수준급으로 서비스 되다보니 자연스레 아시아나 항공의 존재감을 깨닫게 된다. 빠르면 1-2년 이내에 아시아나 항공이 사라질 예정인데, 이렇게 된다면 스타얼라이언스의 기타 항공사를 이용하지 않는 한 나리타 공항에서 이러한 수준급 서비스를 경험하는게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원래 많이 먹는 편은 아니지만 라운지를 즐기기 위해 생맥주를 비롯해서 각종 먹을 것을 바리바리 챙겼다. 창밖으로 보이는 비행기 이착륙을 바라보며 지난 3일간의 행복한 순간들을 추억하고 있는 순간, 옆에 앉아 있던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분들이 짐을 챙겨 일어나는게 시야에 들어왔다. 아버지와 아들 같은 느낌이었다. 같이 여행을 왔나보다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려 했는데 우연찮게 손목으로 시선이 향하는 순간, '우정 팔찌'를 차고 있는데 눈에 들어왔다. 분명 스위프티라는 확신이 생겨, 기쁜 나머지 나도 모르게 혹시 스위프티냐고 물어보았다. 그 사람들도 옆에 앉은 낯선 사람이 갑자기 질문을 하니 당황스러운 모습을 보이다가 그렇다고 답을 해주셨다.

 

나도 모르게 흥분이 되어 그들이 가야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것저것 이야기를 꺼냈다. 나도 스위프티다, 2월 7일에 콘서트에 갔었다, 우정 팔찌보고 스위프티라 생각되어 반가워 말을 걸었다, 나도 우정 팔찌 주고 싶다고 말하며 우정 팔찌를 건냈다. 갑작스럽게 우정 팔찌를 주는 상황이 되니 상대방은 급 놀라면서도 웃으면서 받아줬다. 그리고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길래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자기네들은 중국 베이징에서 왔다고 반갑다고 말을 해줬다. 5분도 채 안되는 순간이었지만, 여행의 마지막까지 스위프티로서 행복함을 느낄 수 있어 좋은 기분이었다. 

 

 

 

 

탑승 시간이 가까워져 라운지와 작별의 인사를 고하고 게이트로 이동했다. 게이트 번호는 분명 두자리수인데, 새틀라이트 건물에 있다고 하길래, 무작정 아래로 계속 이동했다. 가까운 줄 알았는데 지하까지 계속 내려가더니 이번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무빙워크를 타고 이동했다. 탑승 마감 시간은 가까워져 가는데 지하 터널은 끝이 보이지 않아 초조해지다보니 나도 모르게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5분 정도 더 갔을까, 이제 터널은 끝이 보이니 살짝 한숨이 놓였다. 그래도 아직 게이트는 보이지 않으니 스퍼트를 올린다. 터널의 끝은 에스컬레이터였다. 정신 없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저 먼곳에 내가 가야할 게이트가 보였다. 분명 시간에 맞춰서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보다. 보딩 패스 확인을 하고 비즈니스 클래스로 입장하니 따뜻한 미소를 지은 승무원이 자리로 안내해줬다. 이제서야 마음이 놓였다. 혹시나 비행기 못탈까봐 걱정했는데. 

 

 

 

 

 

활주로까지 이동한 비행기는 금새 이륙을 하였다. 후지산을 보고 싶어 (수없이 봤지만) 일부로 좌측 좌석을 선택하였건만, 구름이 가득껴서 이번 여행에서 후지산을 보는건 어렵다고 생각이 들었다. 분명 도쿄를 출발할 때는 구름 한점 없는 맑은 날이었건만, 나리타 도착하고 나서는 비와 구름으로 가득해져버린 회색빛 하늘에 야속함이 살짝 들기도 하였다. 그래도 나리타 공항만큼은 뚜렷하게 보여 좋았다. 그리고 도쿄 도심 상공을 지나면서 보이는 조그맣게 보여지는 건물들을 보며 3일간의 조각들이 마치 영화 필름처럼 스쳐 지나갔다. 작별 인사를 고해야지. 안녕 도쿄. 다음에 또 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