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22. 

 

자, 오늘은 꽃다발 같은 사랑을 찾으러 가야지. TV를 보면서 나갈 채비를 하는데, 몇일전에 한국에서 발생한 만취 차량 대상 경찰의 총기 발포 사건이 뉴스를 타고 있었다. 음주 차량 관련 뉴스는 놀랍지는 않은데 아무래도 총기를 사용하면서까지 체포를 한 것에 대해 놀라웠나보다. 뭐, 좋은 내용도 아니지만 이런 것으로 관심 있어하는 일본 정보 프로그램도 신선하기만 하다. 

 

 

오늘 일정은 정말 단순하다. 좋아하는 지인들을 만나고, 좋아하는 영화 성지 순례지를 찾는게 주된 일정. 후후후. 그전에 신주쿠 교엔을 가야지. 도쿄에 올 때마다 항상 들리는 이 곳. 대단한 무언가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신주쿠교엔에서 짧게나마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잠시 시간을 멈추고 온전하게 휴식을 취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좋다. 콘크리트의 색으로 가득찬 도심에서 자연의 색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잠시 와서 쉬어가라고 말하는 듯하다. 

 

9시 개장 시간에 맞춰 신주쿠 출입구에 도착. 이미 몇몇분들이 개장을 기다리고 있다. 사실, 오늘 이렇게 일찍 온 이유는 교엔 내에 위치한 스타벅스에 가고 싶어서였다. 교엔의 스타벅스는 핫플로 널리 알려져있다. 교엔의 중심에 위치해 있고, 도코모 타워 뷰와 나카노이케와 어울러진 멋진 뷰를 제공하고, 고상적인 분위기가 스타벅스를 더욱 묘미있게 만든다. 몇번 가보기 하였지만, 테이크아웃만 했지, 한번도 앉아서 여유를 부려본 적은 없어 이번에는 그런 여유를 누릴 생각이다.

 

 

신주쿠교엔의 문이 9시가 되자 열리고 얼마 안되었던 사람들이 천천히 입장을 한다. 누군가는 아침 산책하러, 누군가는 나처럼 커피를 마시러 열심히 발걸음을 내딛는다. 6개월 전에는 아직 덜 가신 추위였지만, 봄날의 바람에 분홍색 눈이 휘날리고, 그것을 눈에 담고 만끽하고자 하는 사람들로 가득했었는데. 

 

開いたばかりの花が散るのを
「今年も早いね」と残念そうに
見ていたあなたはとても
きれいだった もし今の私を
見れたなら どう思うでしょう

 

지금은 가을의 문턱을 앞두고, 전날 내린 강한 비로 아직 가시지 않은 초록색 빛이 더욱 선명하게 보이고 떨어진 단풍이 마치, 오랜만이야 하고 반겨주는 듯하다. 

 

 

그러고보니 예전 누군가 이런 질문을 한 기억이 떠오른다. 신주쿠 교엔의 스타벅스에서 창가 자리에 앉을 수 있는 팁이 있을까요라고. 그 당시 내 대답은 오픈하자마자 가서 앉는게 가장 빠른 방법이에요라고 답을 해주었는데, 사실 그게 가장 정확한 답이다. 9시에 교엔이 열리기에 빠른 걸음으로 - 중간에 구경하는 것은 생략하고 - 걸어가서 먼저 창가쪽 자리를 맡고 주문을 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스타벅스에 도착하니 9시 7분. 빠른 걸음으로 왔는데도 내 앞에는 이미 2분이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하고 있다. 분명 센다가야 출입구나 오키도 출입구에서 오지 않았을까 생각이 된다. 일단 창가쪽 자리에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한다. 긴자에서의 약속이 11시 30분이니, 한시간 정도 시간이 있으니 커피와 와플을 시키고 창가에 앉아 멋진 뷰를 즐긴다. 

 

 

창가 좌석에 가만히 앉아 멍하니 밖을 바라만 보고 있어도 기분이 홀가분해진다. 엊그제까지의 모든 피로가 녹아드는 그런 느낌이랄까. 아직은 사람들이 많지 않아 적막감만 감돈다.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살짝 고개를 둘러보니, 가장 일찍 도착한 것으로 보이는 노부부는 창가에 앉아 책을 읽으시고, 두번째로 온 젊은 사람은 음악을 듣고 있다. 저마다 각자만의 신주쿠 교엔을 즐기는 방법을 만끽하고 있나보다.

 

나도 이러한 분위기에 빠져들고 싶어, 가방에서 책을 꺼낸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대학교 3학년때, 아시아와 중동 오버랜드 배낭여행을 하면서 만났던 많은 여행자들은 거의 대부분 책을 옆에 두고 있었다. 기차를 기다릴때도, 숙소에서 쉴때도, 카페에서 시간을 보낼때도, 마치 오랜 시간 동안 거기에 머물러 있었던 것처럼 책과 함께였다. 첫 스마트폰이 나오기 3년전이었으니, 책과 보내는 시간은 잠시나마 긴 여행의 고독을 잊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교엔의 일본식 정자에 올 때마다 2013년 개봉했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언어의 정원(言の葉の庭)」에서 유키노와 타카오가 처음 만날 때 장면이 항상 오버랩이 된다. 그리고 유키노와 타카오가 서로에게 꺼냈던 만엽집의 시가가 너무나도 좋아 가끔씩 이렇게 떠오른다. 정자에서 유키노가 처음 타카오를 만났을때, 그녀는 그에게 너를 봤을지도 모르겠다며 만엽집의 단가를 읊으며 정자를 조용히 먼저 떠난다.

 

鳴る神の 少し響みて さし曇り 雨も降らぬか きみを留めむ
천둥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오고
구름이 끼고 비라도 내리지 않을까
그러면 그대를 붙잡을 수 있을텐데. 

<만엽집 11권 2513번> 

 

이후, 타카오는 그녀와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읊어주었던 만엽집의 단가에 대한 답가를 유키노에게 읊는다.

 

鳴る神の 少し響みて 降らずとも 吾は留まらん 妹し留めば
천둥소리가 저 멀리서 들리며
비가 내리지 않더라도
당신이 붙잡아 주신다면 난 머무를 것입니다. 

<만엽집 11권 2514번>

 

 

한참동안 멍하니 정자를 바라보며 애니메이션의 장면에 잠시 빠져있다가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흘러간걸 떠오르고 발걸음을 센다가야 출입구로 옮긴다. 도쿄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을 잊어버릴 정도로 여유롭고 편안한 휴식 시간이었다. 

 

센다가야역까지는 걸어서 약 10분 내외. 짧은 거리지만,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어하는 길이다. 마치 이곳에 살면서 아침에 "다녀오겠습니다" 말하고 역을 향해 걸어가는 느낌이려나. 이런 상상을 하는 것도 이번 도쿄 여행의 나만의 즐거움인 듯 싶다. 예전에는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것에만 집중해서 여유라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도쿄를 자주 오다보니 이제는 이러한 낭만도 여유도 즐길 수 있는 여백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센다가야역에서 츄오 소부 완행선을 타고 요츠야역에서 마루노우치선으로 갈아탄다. 그러고보니 센다가야역과 요츠야역은 2016년 개봉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대히트작  「너의 이름은。(君の名は。) 의 배경으로 나오는데, 이제서야 그걸 알아채다니. 센다가야역은 엔딩 부근에 미츠하가 급히 열차에서 내릴때, 요츠야역은 타키와 오쿠데라 선배와 첫 데이트를 할 때 만나는 장소이다. 「너의 이름은」이 개봉한지 7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도쿄에 무대 탐방을 하러 오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면 문화가 끼치는 파급력이 새삼 크다는걸 느낀다.

 

 

긴자에 도착, 성환이형을 만났다. 6개월 전에 만났는데도 이렇게 다시 보니 반가울 따름이다. 형이 바쁜 관계로 점심을 같이 먹기로 해서 형이 추천한 나고야식 미소카츠로 유명한 야바톤을 간다. 미소를 소스로 사용해서 먹는 카츠라. 오호! 과연 어떤 맛일까 궁금해진다. 소스만 본다면 매우 매울 것으로 보였는데, 실제로 먹어보니 전혀 맵지 않고 담백하고 부드럽기만 했다. 가격은 세트 기준으로 3,060엔으로 일반 가츠와 비교해서 비싸지만, 맛은 매우 뛰어난 가격에 대한 부담이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다. 

 

점심 후, 형과 커피를 마시며 6개월간 어떻게 지냈는지 등 여러 이야기를 쏟아낸다. 시간이 흘러가는 줄도 모르고. 형은 일본에 온지 거의 10년이 되었다. 올때는 혈혈단신이었는데 이제는 결혼을 하고, 이쁜 아이도 키우는 아빠가 되어 터전을 잡고 뿌리를 내렸다는게 자랑스러울 따름이다. 형도 학교 사람들 중에 꾸준하게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 매우 극소수라고. 삶이 이곳에 있으니, 한국에 들어올 기회가 거의 없다보니 자연스럽게 연락이 뜸해졌다고 하는데, 내가 연락을 계속 해주는 게 정말 고맙다고 말한다. 나야말로 이렇게 타지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서 정말 좋을 따름이다. 

 

형은 다시 일터로 복귀해야해서, 자리에서 일어나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한다. 2주뒤에 다시 도쿄에 온다고 했는데 그땐 형이 출장으로 도쿄에 없을거라고 미안하다고 하길래, 미안해하지 말라고. 형의 일이 중요하고, 나는 도쿄에 언제든지 또 올 수 있으니 그때 보자고 말한다. 형의 가는 뒷모습을 보고 나도 다음 일정으로 움직인다. 누군가를 만나서 반가울 수 있다는거, 그것도 낯선 공간에서. 그래서 도쿄는 설레임을 준다. 

 

 

다음 일정으로 가기 전, 긴자에 오면 항상 들리는 서점에 잠시 들린다. 일본에서 땅 값이 가장 비싸다는 긴자에는 '쿄분칸(教文館)'이라는 서점이 있다. 1885년에 창립되어 지금까지 긴자 중심 도로에서 영업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아마도 명동 중심 거리에 100여년의 서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한때는 사람들로 가득 찼었을 듯한 서점은 조용하기만 하다. 대낮인데도 서점에 있는 사람은 직원을 제외한 나를 포함해 2-3명 정도. 그것도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분들이 전부이다. 분명, 밖은 쇼핑하는 사람들로 북적이는데, 더 이상 사람들이 텍스트를 어려워하고 책을 멀리하면서 그리고 온라인로 구매하거나 전자책의 등장의 여파는 이러한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쿄분칸'에도 타격이 되었을 것이다.

 

어디서 읽었던 거 같은데, 한 나라의 지적 문화는 서점의 수로 보여진다고. 도쿄라는 거대 도시의 한 가운데, 그것도 가장 비싼 지역에 서점이 있다는 것은 놀라울 따름이고 멋있다는 느낌이 들면서도, ' 쿄분칸'이 쌓은 거대한 역사도 변하는 시대의 흐름을 견뎌내지 못할 거라고. 언젠가는 '쿄분칸'이 있는 이 자리에는 명품숍이 들어설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쿄분칸'이 앞으로도 계속 있어주길 바라며 도쿄에 올 때마다 항상 들릴 것이라는 마음가짐을 한다.

 

읽고 싶은 책 몇 권을 사고 이제 다음 일정을 향해 또 다시 움직인다. 안녕, 쿄분칸.

 

 

이제 초후로 넘어가야지. 

2023.09.21. 

 

아침부터 열심히 눈에 담았던 도쿄 게임쇼를 마무리하고 다시 신주쿠로 돌아간다. 예전 같았으면 다음 일정을 바로 진행했을텐데,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일단 숙소에서 쉬는 것을 선택했다. 날씨도 비가 쏟아질 것처럼 계속 우중충해서 이대로 돌아다니다간 제대로 즐기지도 못할거 같다는 생각이 앞선다.

 

일단 신주쿠역까지 어떻게 갈 것인가 고민을 한다. 아까 왔던 방법으로 다시 돌아가면 되겠지만,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관계로 조금이나마 편한 방법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특급등급 '와카시오'를 떠오르게 되었다. 도쿄역까지는 논스탑으로 가기에 최소한 열차에서 얼마정도 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다이어가 맞기를 바라며, 비싸더라도 편하게 가는 방법으로 결정했다. 몇분만 기다리면 와카시오가 도착하기에 마음이 놓인다. 와카시오가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남아 멍을 때리고 있다가 플랫폼 끝에 여중생인 듯한 학생이 핸드폰에 집중하며 열차를 기다리는 모습이 일본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인 장면 같아, 그 모습을 기억하고 싶어, 잠시 프레임안에 두었다. 좋은 모델이 되어줘서 고마움을 느낀다. 

 

 

아침에 일찍 일어난 여파인가, 도쿄 게임쇼에 집중한 결과인가. 와카시오에 탑승하고 자리에 앉자마자 눈이 감기고 말았다. 얼마나 잠들었을까. 도쿄역에 도착했다는 안내 방송에 눈이 떠졌다. 20~30분 걸린 듯 싶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 시간 동안 잠든 느낌이라 조금 개운해진 느낌이다. 하지만 여전히 몸은 무거워 간신히 야마노테선으로 갈아타서 신주쿠역에서 내려,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침대로 직행해버렸다.

 

눈이 떠졌다. 침대에 몸이 파묻혔다고 해야하나, 원없이 잠을 잔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을 보니 벌써 7시. 그러고보니 아까 점심 먹은 뒤로 먹은게 하나도 없다보니 배가 고파져 무엇을 먹어야 할지 고민이다. 그러다가 생각난게, 도쿄에 올 때마다 항상 빼놓지 않고 먹는 카레우동 전문점이 생각나 메구로로 가기로 했다. 그전에 잠시 시부야를 들러야지. 

 

 

최근 도쿄에서 가장 핫한 지역이라면 시부야 이곳이지 않을까. 관광지로는 예전부터 유명하였지만, 근래 도쿄 부동산 붐 영향으로 시부야역 주변으로 시부야 히카리에, 시부야 스크램블 스퀘어, 파르코 시부야 등 새로운 건물들이 올라가면서 대규모의 스카이라인이 형성되, 일명 '시부야역 재개발 프로젝트'가 코로나 시기를 겪으면서도 더욱 활발하게 진행되며 시부야는 전체적인 변화를 겪는게 한눈에 보였다. 

 

단순히 건물만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유수한 IT 기업들도 다시 시부야로 돌아오면서 시부야의 분위기가 우리나라로 치면 홍대와 판교가 공존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롯본기에 있던 구글 재팬이 다시 시부야로 돌아오고, 그밖에도 라인 재팬, 사이버 에이전트 등 IT 기업들이 입주하면서 뒷골목 분위기가 강했던 시부야가 미국의 실리콘 밸리, 한국의 판교테크노밸리와 비슷한 느낌으로 전환하는 모습이 크게 느껴졌다. 

 

시부야에 온 목적은 타워 레코드. 작년 생일에 셀프 선물로 턴테이블을 사고 LP를 조금씩 모으기 시작했는데, 기대보다 재미가 생기면서 제대로 즐기고 싶은 마음에 잠시나마 구경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기억으로는 신촌과 강남에도 타워 레코드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젠 옛 추억이 되어버렸다. 일본도 마찬가지로 수많은 음반 매장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시부야 타워 레코드는 여전히 건재하다. 아니, 이제는 랜드마크가 되어버려 시부야에 오면 꼭 가야하는 성지순례의 장소가 되었다. LP 레코드를 전문적으로 다루기 시작하였고, K-POP 전용 판매층이 있는 등, 스트리밍 시대에서도 로망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노력을 부단히 하면서 이젠 외국인에게도 시부야 타워 레코드는 필수로 들려야 할 곳으로 인지되고 있을 정도이다. 

 

타워 레코드 6층에는 LP 레코드만 전문적으로 취급하고 있다. 디스크 유니온가 보유한 양에 비교하여서는 아쉬울 따름이지만, 이렇게 수많은 LP 레코드를 한층 규모로 판매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제 막 LP 레코드의 매력에 빠진 나에게 있어서는 감사할 따름이다. 어떤 것을 살지 생각은 하지 않고 일단 구경만 하자는 목적으로 왔기에 편하게 둘러보면서 디깅을 한다. 야먀시타 타츠로, 타케우치 마리아, 우타다 히카루, 사카모토 류이치, 나카모리 아키나 등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멋진 아티스트들의 LP 레코드를 보는 것만으로도 오르가즘에 빠질 지경이다. 로망 그 자체다. 2주 뒤에 도쿄에 다시 올 예정이니 그전까지 위시리스트를 만들어서 꼭 사야지. 

 

타워 레코드 뿐만 아니라 디스크 유니온, 레코판 등 크고 작은 LP 레코드 전문점이 있는 도쿄는 로망으로 가득할 수 밖에 없다. 아키하라바 구경 가는 것보다 LP 레코드 구경하러 다니는게 이제는 더욱 즐거운 일이 되었다. 이래서 도쿄는 절대로 떨어질 수 없는 그런 곳이다. 나에게 있어서. 

 

 

한참 구경을 마치고 계단으로 내려가다 올해 3월에 타계한 사카모토 류이치의 타워 레코드 포스터가 눈에 띄였다. 타워 레코드의 이러한 포스터 구성은 정말 멋진 캠페인이라고 생각한다. 「NO MUSIC, NO LIFE」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기반으로 진행하는 캠페인데 디자인부터 시작해서 아티스트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함축해서 하지만 의미있게 표현하는 방식이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런 것이 타워 레코드를 표현하는 상징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2021년 3월 초, 큰 수술을 하고 오랜 입원 끝에 새로운 집으로 돌아왔다. 
몸이 조금 회복되던 3월 말의 어느 때, 문득 신디사이저에 손을 대보았다.
뭘 만들자는 의식은 없고 그냥 '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로 인해 몸과 마음의 상처가 조금 덜 받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때까지는 소리를 내기는커녕 음악을 들을 체력도 없었지만,
그날 이후로, 틈틈히, 아무렇지도 않게 신디사이저나 건반을 만지고, 
일기를 쓰듯 스케치를 녹음해갔다. 
거기서 마음에 드는 12개 스케치를 골라 앨범으로 만들어보았다.
아무것도 입히지 않고 감히 순수함 그대로 제시해본다. 
앞으로도 체력이 떨어질때까지 이런 일기를 계속할 것이다. 

 - 오리지널 앨범 「12」 메세지 인용

 

 

자, 이제 구경을 다했으니 저녁을 먹으로 가야지. 메구로역에 있는 '콘피라차야'. 우동으로 유명한데, 여기서는 꼭 카레 우동을 먹어야 한다. 2015년인가, 그때 도쿄에 왔을 때 성환이형과 함께 간 곳인데, 그 뒤로 도쿄에 올때마다 꼭 가야하는 나만의 맛집이다. 주인 사장님은 나를 기억 못하겠지만, 항상 갈때마다 반겨주시는 모습에 더욱 맛있게 먹을 수 밖에 없다. 오늘도 카레 우동과 생맥주로 하루를 마무리 해야지. 

 

 

내일은 꽃다발 같은 사랑을 찾으러 가자. 

파트 4가 궁금하다면 여기로.

 

4, 5, 6홀을 뒤로하고 마지막 7,8홀을 보러 간다. 상대적으로 볼 것이 없는 7,8홀은 한국 레벨5, 아크 시스템 웍스 제외하고는 상대적으로 라인업이 빈약하다. 후다닥 구경하고 인디게임 부스로 가야겠다는 생각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때는 거의 지친 상태였다. 다시 신주쿠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머리가 우지끈.  

 

 

레벨5

아무래도 4,5,6홀에 메인 게임들이 모여있다보니 레벨5 부스를 비롯한 7,8홀은 사람들이 없어서 더욱 한적한 느낌이다. <레이튼 교수 시리즈>, <니노쿠니 시리즈> 등으로 유명한 레벨5. 회사 설립 25주년이 되었하는데, 그렇게 오래된 회사였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둘러본 부스들과는 달리 메인 스테이지에서 진행하는 행사가 없었고 부스 뒤쪽으로 가야 게임 시연을 할 수 있는데 시연을 하는 사람보다 스탭들이 더 많이 있는거 같았다. 비즈니스 데이라 그럴거야라고 생각하면서도 이쪽 홀 자체가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부스나 행사 등이 없다보니 더욱 쓸쓸해 보이는 느낌이다. 

 

일반적으로는 부채 또는 간단한 전단지를 나눠주는 편인데, 레벨5는 책자를 나눠줘서 뭐지?라고 생각하며 살펴보았다. 설립 25주년 기념 책자인데 생각보다 읽을 거리가 많다. 자사 인기 시리즈에 대한 이야기인데 생각보다 퀄리티가 좋아서 소장 가치가 있을 듯 싶다는 생각이 든다. 

 

 

 삼성전자

도쿄게임쇼에 삼성전자가 빠지면 아쉽지. 게임과는 아주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삼성은 언젠가부터 GDC를 비롯해서 게임즈컴, 차이나조이, 도쿄게임쇼, 지스타 등 국내외 유수한 게임쇼에 부스를 차리며 적극적으로 자사를 홍보하는 모습을 보여왔다.구글 플레이 스토어, 앱스토어에 이어 3번째로 가장 큰 규모라고는 하나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다보니 이 분야에 적극적으로 알리고자 하는 노력을 계속 보여서 언젠가는 잘 되겠지라고 멀리서나마 응원한다. 

 

 

한국 부스 그리고 P의 거짓 

삼성전자 부스 옆에는 한국 공동관이 있다. 일본 시장을 노리는, 해외 시장에 진출하고 싶은 중소규모 게임사들이 함께 모인 이곳. 일본 게임 시장이 유독 난이도가 높다고는 하지만 그 어려운 시장을 뚫기 위해 노력하고 꿈꾸는 업계인들을 보며 자랑스러움과 더불어 존경스러운 마음이 생긴다. 님블 뉴런의 <이터널 리턴>이 한국 공동관에 자리잡고 있었다. 코스어를 담당하시는 분이 일본분인줄 알았는데, 한국분이셨더라. 한국말로 말해주시길래 반가워서 나도 모르게 수고하세요!라고 말을 꺼냈다.

 

한국 공동관 반대편에는 프로젝트 문의 <림버스 컴퍼니>가 엄청난 규모의 부스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림버스 컴퍼니>가 이정도 규모였단 말인가? 부스까지 낸 것을 보면 일본에 시장 진출에 매우 적극적이거나 혹은 이미 일본에 상당수 팬층이 있지 않을까 추측하게 된다. 나중에 들어보니 퍼블릭 데이때는 시연을 하기까지 최대 6시간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사람들이 몰렸다고 한다. 최근 인터넷 상에서 화제의 중심에 올랐지만, 그것은 별개로 생각하더라도 이렇게 일본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모습은 매우 멋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대망의 <P의 거짓>. 이미 국내외 여러 게임쇼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네오위즈의 신작 <P의 거짓>이 도쿄 게임쇼에도 출품이 되었다. 별도 부스를 만들거나 그러지는 않았으나 일본에서 유통을 맡고 있는 '해피넷'의 부스에서 다른 타이틀과 함께 선보이고 있었다.

 

모바일 게임이 어느샌가 대세가 되어버린 국내 게임 시장에서 콘솔 분야로 진출하는 회사가 많지 않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콘솔 타이틀을 만들었다는 거, 그리고 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게 자랑스럽다. 비록 내가 다니는 회사는 아니지만, 쉽지 않은 길을 가는 네오위즈에 대해 (회사의 평가는 별개로 하더라도) 잘한다고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트렌드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획일적인 모바일에서 벗어나 장르도 보다 다양하고 플랫폼도 확장하는 여러 모습을 보여주는 시작이 되지 않을까 조심히 생각한다.

 

이번 도쿄 게임쇼가 어찌보면 코로나로 숨죽였던 일본 게임 회사들의 신작 쇼케이스 무대였다고 볼 수 있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국내 게임 회사들의 기회와 가능성을 살펴본 자리가 되지 않았나 그렇게 개인적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이제 굿즈를 사러 움직여야지. 캡콤, 스퀘어 에닉스, 스퀘어 에닉스 뮤직, 코에이 테크모 등 회사 차원에서 직접 굿즈 판매 부스를 별도로 만들어 판매하는게 특징이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도쿄 게임쇼 한정 굿즈를 판매한다는 거. 그게 가장 매력적이다.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코지마 프로덕션. 도쿄 게임쇼에 게임 등은 선보이지 않았으나 친절하게도 굿즈 부스를 따로 만들어 코지마 프로덕션의 굿즈를 판매하고 있었다. 사고 싶은 굿즈들이 몇몇 눈에 보였으나 일단 참는 걸로. 스퀘어 에닉스는 일반 굿즈를 판매하는 스퀘어 에닉스 오피셜 굿즈 샵과 음반을 파는 스퀘어 에닉스 뮤직 샵 이렇게 2개의 부스를 차렸다. 개인적으로 뮤직샵이 맘에 들었는데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 킹덤 하츠 시리즈 등 스퀘어 에닉스에서 출시된 게임들 OST를 팔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더군다나 도쿄 게임쇼 한정 LP가 있다는 것에 눈이 돌아가기 갔다. 돈은 충분하니 제발 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으나 아쉽게도 빠르게 품절이 되었다고 한다. 슬프다. 그나마 코에이 테크모 샵에서 아틀리에 시리즈 굿즈 몇개 산걸로 만족한다. 

 

 

이제 다시 신주쿠로 돌아갈 시간이다. 올해 한신 타이거즈가 센트럴 리그 우승을 하면서 떠오른 건 2005년 재팬 시리즈의 33-4 사건이었다. 당시 맞붙었던 상대팀이 치바 롯데 마린즈였는데 4경기 동안 33점을 내는 동안 한신 타이거즈는 단 4점만 내면서 33-4 사건이라 불리는데 올해 한신 타이거즈가 우승하니 그때가 떠올라 나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진다. 과연 한신 타이거즈는 일본 시리즈 우승을 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올해 도쿄 게임쇼는 기대 이상이었다고 본다. 코로나 종식 이후 전면 확대된 시점이자 역대 최대 규모라고 사전 홍보를 하였는데 오바를 하고 있지 않나 그런 의문도 들었다. 하지만 직접 오고 나서 보니, 기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작들을 실컷 보여줄테니 마음껏 아쉬움 없이 체험하고 가라고하는 느낌이었다. 다만 온라인과 함께 병행되면서 전통적으로 부스를 내던 소니, 마이크로소프트가 올해는 부스를 내지 않았다는 점은 살짝 아쉬움이 들었다. 그래도 이해를 해야하는게 코로나로 인해 전통적인 형태의 게임쇼가 더 이상 유지하기 힘들다는거, 그리고 기업들의 비용 절감, 더 많은 유저 참여 등을 위해서는 온라인이라는 채널도 무시못하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본다. 게임쇼의 본좌라 할 수 있는 E3가 사라지면서 흔히 알고 있는 글로벌 레벨의 게임쇼는 이제 매년 3월에 열리는 GDC, 7월의 차이나 조이, 8월의 게임즈컴, 그리고 9월 중순에 열리는 도쿄 게임쇼만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도쿄 게임쇼는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앞으로 게임쇼가 가야할 길을 제시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전환점이 되지 않았나 싶다.

 

개인적으로도 수많은 신작 게임들을 보고, 특히 한국 게임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면서 업계인으로서 뿌듯하고 자랑스럽고 스스로도 우리 회사 게임도 좋은 게임을 가지고 출품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내가 게임 업계에 있다는 것에 자부심이 들었다. 내가 그래서 게임을 좋아하는 이유고, 앞으로도 게임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일 믿고 가야지. 

 

 

2024년 도쿄 게임쇼에서 다시 만나! 

파트 3가 궁금하다면 여기로.

 

점심을 먹었으니 다시 열심히 부스 구경을 해야지. 코에이 테크모, 캡콤, 반다이 남코, 코나미 순으로 둘러봐야겠다. 

 

 코에이 테크모

삼국지와 대항해시대로 널리 알려진 코에이 테크모. 하지만 언젠가부터 삼국지 시리즈와 대항해시대 시리즈가 예전의 명성을 잃어버리고 죽을 쓰기 시작하면서 코에이 테크모도 여기까지인가라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아틀리에 시리즈, 특히 라이자의 아틀리에 3가 흥행에 성공하며, 명가는 쉽게 망하지 않는다는 속설을 맞는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국지의 올드팬으로서 삼국지 시리즈는 좀! 잘해줬으면 한다, 진심이다.

 

이번 도쿄 게임쇼에서 코에이 테크모가 메인으로 선보인 타이틀은  FATE 시리즈의 신작, <FATE/Samurai Remnant>, 아틀리에 시리즈 신작 <레슬레리아나의 아틀리에>, 그리고 뜬금 없는 <삼국지 8 리메이크>다. 자부심과 자만심은 한끗 차이라고 하는데 <FATE/Samurai Remnant>을 부스 메인에 디스플레이한 것을 보면 그만큼 게임 퀄리티와 흥행에 자신이 있다는 표현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전에 공개된 내용에서도 FATE 시리즈에서 약한 부분이었던 서사 부분을 매우 강화했다고 하니, 개인적으로도 관심이 조금씩 가는 편이다. 

 

코에이 테크모 부스에서 받은 굿즈는 제갈량 부채였다. 뭔가 제갈량이 된 느낌이랄까. 이런 굿즈는 기념으로 보관해야 한다. (그런데 집에와서 정리하다보니 잃어버렸다ㅠㅠ 힝) 

 

 

캡콤

믿고 보는 캡콤. 비록 200주밖에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작년 이맘때쯤 들어가서 꾸준히 우상향을 해준 덕분에 죽쓰는 나의 주식에서 유일하게 수익을 내주고 있어 더더욱 사랑스러울 따름이다. 예전의 껍데기만 가지고 있는 암흑기의 캡콤이 아닌 반짝반짝 빛나고 있어서 매력덩어리일수 밖에 없다. 

 

<드래곤즈 도그마 2>, <몬스터 헌터 나우> <역전재판 456 오도로키 셀렉션>, <바이오하자드 시리즈>, <스트리트 파이터 6> 등 말 그대로 캡콤이 가져올 수 있는 모든 IP를 도쿄 게임쇼에 선보였다. 역시나 메인은 <드래곤즈 도그마 2>. 기억하기로는 거의 10년전에 첫 작품이 나오고 이후에는 전혀 소식이 없었는데 이번 도쿄 게임쇼에서 플레이 영상이 처음 보여졌다. 역시나 기대작이라서 데모 시연 대기줄은 1시간 가까이 된다. 그만큼 나말고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캠콤이 예전에는 특히 2010년 전후에는 거의 명맥만 유지하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몬스터 헌터: 월드>, <몬스터 헌터 월드: 아이스본>으로 다시 명성을 되찾고 이후에도 <바이오하자드 RE2>, <데블 메이 크라이>로 날개짓을 하면서 게임의 명가라는 것을 확실하게 가져온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내가 주주로서 더욱 애정을 가지는 이유도 있겠지만, 캠콤이야 잠시 부침에 빠졌을 뿐, 지금은 다시 정상궤도를 찾았으니 앞으로도 더 잘해주기를 주주로서, 아니 팬으로서 더더욱 잘해주기를 바란다. 

 

 

 

<드래곤즈 도그마 2> 시연을 포기하는 대신, 바이오하자드와 에어 소프트건 제조 회사인 도쿄 마루이가 콜라보하여 선보인 슈팅 레인지에서 실제 게임에 등장하는 총기를 가지고 슈팅 체험을 하였다. 대기열도 그렇게 길지 않고 게임에 등장한 총기를 실제로 쏴볼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게임에서 등장한 총기류도 전시되어 있는데, 디테일이 매우 뛰어나 이런 콜라보를 기획한 사람에게 보너스 무조건 줘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지스타나 플레이 엑스포에서 총기류가 등장한다? 반응은 상상도 하기 싫다. 온갖 비난이란 비난은 다 받지 않을까. 

 

 

반다이남코

반다이남코 부스에는 귀요미 팬더가 부스 입구에서 앙증맞은 포즈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철권 8>을 홍보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나, 너무 귀여워서 <철권 8>이 아니라도 관심이 자연스럽게 갈수 밖에 없다. 양 옆에 있는 모델 분들도 함께 포즈를 취해줘서 팬더가 더더욱 돋보이는 느낌이다. 

 

<철권 8>도 관심이 컸지만 개인적으로는 <블루 프로토콜>이 기대가 되었다. 지난 CBT 참여를 못해서 아쉬움이 있어 현재 서비스 중에 있는 일본에서 체험할 수 있을까 둘러 보았는데, 시연보다는 부스에서 코스어와 사진을 찍는게 다였다. 내가 시연대를 못찾아서 그런가? 블루 프로토콜 공간도 반다이남코 부스 구석에 있어서, 마치 숨어있는 듯한 그런 느낌? 그래서 아쉬움이 컸다. 

 

그래도 굿즈로 팬더 가면을 받아서 (결국은 부채이지만) 뭔가 유니크한 기념품을 받아서 살짝 기분이 좋아지긴 했다. 계속 돌아다니다보니 다리가 슬슬 아파온다. 윽윽 

 

 

 

코나미

코나미는 매우 화려한? 느낌인데 막상 가져온 게임은 <메탈 기어 솔리드: 마스터 콜렉션> 정도만 눈에 띌뿐, 다른 타이틀은 별 관심이 없어서 후다닥 둘러보고 패스했다. 코나미가 예전부터 게임에서 마음을 뜬지 오래되었기에, 위닝 시리즈도 망하고, 사일런트 힐 시리즈도 더 이상 없고. 뭔가 겉만 번지르르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엄청 돌아다녀서 그런지 나도 많이 지친 상황이라 더더욱 그런 듯 싶다. 

 

 

이제 7, 8홀에 있는 부스들을 보러 가야지. 몸이 점차 무거워진다. 그래도 도쿄 게임쇼는 서비스, 서비스! 

파트 2가 궁금하다면 여기로.

 

호요버스를 뒤로하고 이제 메인이라 불리는 4,5,6홀로 건너왔다. 도쿄 게임쇼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메인 부스들을 보자면 반다이남코, 코나미, 스퀘어 에닉스, 세가, 캡콤, 코에이 테크모, 부시로드가 핵심이라 할수 있겠다. 벌써부터 무엇을 볼 수 있을까 기대가 커진다. 

 

 

 스퀘어 에닉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스퀘어 에닉스는 역시 스퀘어 에닉스이다. 예상대로 <파이널 판타지 7: 리버스>가 메인으로 등장했다. 수십번 트레일러를 보았지만 현장에서 보는 트레일러는 색다르게 다가온다. 출시일은 2024년 2월 29일. 아직 5개월 정도 남았지만 기다려진다. 시연을 하고 싶었지만, 대기줄이 길어서 깔끔하게 포기. 이런 기회가 아니면 쉽지 않지만 아직 봐야할 부스가 많이 남아 있기에 트레일러를 본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스타오션>, <폼스타즈>, <인피니티 스트랏슈 드래곤 퀘스트 다이의 대모험>도 <파이널 판타지 7: 리버스>와 함께 홍보 대열에 올라와 있어서 많은 기대를 하게 되었다. 혹시나 싶어 스퀘어 에닉스에 다니는 지인께 도쿄 게임쇼에 와서 지금 스퀘어 에닉스 부스 구경하고 있는데 현장에 계신가요?라고 연락을 드렸더니 마침 부스 근처에 계신다고 만나자고 하신다. 지난 3월에 뵈었을 때는 스퀘어 에닉스 사무실 구경도 시켜주시고, 선물도 주시고, 항상 폐만 끼치는거 같은 느낌이다.

 

6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다시 뵈니 반가울 따름이다. 도쿄 게임쇼는 잘 구경하고 있는지, 부스는 어떤 느낌인지부터 시작해서 회사 생활은 어떤지, 가족은 잘 지내는지, 여러가지를 궁금해주셔서 감사하다. 나보다 나이가 많으심에도 이렇게 현역에서 오래 계시는 모습을 보면서 새삼 존경스러운 생각과 함께 닮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몇년전에 짧은 만남으로 알게된 인연이 이렇게 크게 다가오다니, 앞으로도 더욱 존경할 만한 분의 모습을 닮으면서 그 모습을 내 아이한테도 보여줘야지. 

 

 

세가 + ATLUS 

개인적으로 생각하면 이번 도쿄 게임쇼에서 가장 메인은 세가와 ATLUS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출품한 작품만 하더라도 16개로 아마도 도쿄 게임쇼 참가 업체 중 가장 클 것으로 보인다. 부스 규모도 가장 커서 4,5,6홀 어디서도 눈에 띄게 만들어서 사람들의 발길을 유혹한다.

 

언제적 소닉이라고 말하지만, 닌텐도에 마리오가 어울리듯이 세가에는 소닉이 가장 어울린다. 90년대 태어나서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특히 당시 <소닉 더 헤지혹>을 열심히 플레이한 꼬꼬마들이 지금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찾아주니까. 하지만 이렇게 되기까진 정말 오랜 시간 동안 암흑기를 겪어야만 했다.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소닉이 몰락하던 시점이 이 세가가 마지막 콘솔이었던 드림캐스트 생산을 중단 발표하던 시점과 엇비슷하여(링크: 눈물없이 볼 수 없는 세가의 역사) 그만큼 소닉에 대한 안타까움은 매우 컸다. 하지만 작년 <소닉 프론티어>로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며 부활하였고 이번에는 절치부심하여 <소닉 슈퍼스타즈>를 가지고 나왔기에 그만큼 잘될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점심 시간이 가까워져 배가 매우 고팠지만, 어찌 <소닉 슈퍼스타즈> 시연을 안하고 그냥 떠나겠는가. 대기열도 적당하다고 생각해서 일단 대기를 한다. 플레이까지는 30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데 기다리는 동안 소닉 응원팀?이 나와서 메인 스테이지에서 응원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흥이 났고, 다른 사람들의 게임 플레이를 보며 게임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배가 고픈것도 어느새 잊어버렸다. 드디어 시연을 하는 순간이 왔다. 배가 고파서인가 내가 못해서인가, 게임 플레이가 잘 되지 않았지만 게임 플레이를 시연할 수 있었다는 거 하나만으로 즐거웠다. 어린 시절의 그때의 나를 다시 체험하는 듯한 느낌. 게임 시연 기념으로 소닉에 등장하는 캐릭터 가면을 굿즈로 받았는데 너클즈 가면을 2개나 받았다. 소닉 가면 받고 싶어서 혹시 바꿀 수 있냐고 물어보았는데 안된다고 하네. 소닉 가면 받고 싶었는데. 힝. 

 

 

<소닉 슈퍼스타즈> 이외에도 세가는 <용과 같이 8>을 함께 선보였다. 게임보다는 부스걸이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와이프한테 부스걸만 나온 사진만 보여주니 어디 이상한데 간거 아니냐고 의심하며 물어본다. 그래서 배경까지 포함해서 다시 보내니 그제서야 믿는다. 게임 자체가 야쿠자가 메인이라 야쿠자가 메인으로 나올 줄 알았는데 이런 컨셉으로 부스를 꾸민 전시 기획자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게임에 대해서는 물론 제약이 있지만 이런 컨셉 기획에는 제약을 두지 않는 이런 분위기는 솔직히 말하자면 부럽다. 

만약 지스타에서 이런 컨셉으로 시도를 한다? 이런 시나리오가 그려지겠지.

 

1. 선정적인 의상, 여성의 성상품화에 대한 각종 민원 남발

2. 지스타 조직 위원회에서 부스걸 전원 퇴출 및 해당 회사에 대한 경고 

3. 여성가족부나 혹은 청소년 위원회 같은 곳에서 조사 시작

4. 언론에서 확대 생산해서 게임 업계에 대한 광범위한 비난 

5. 정치권에서 떡밥이다 싶어 논쟁화 시작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이런 시나리오가 자연스럽게 그려지니 그 누구도 이러한 컨셉을 시도하지 않겠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 본다. 하아. 그냥 답이 없다. 

 

 

<소닉 슈퍼스타즈>와 <용과 같이 8>을 보고 다른 게임을 보러 부스 다른 쪽으로 이동한다. 세가의 개발 자회사 ATLUS는 <페르소나3 리로리드>와 <페르소나 5 택틱카>를 선보인다. 역대 페르소나 시리즈 중 최고의 스토리를 선보인 <페르소나 3>의 리메이크작으로 이미 시연대는 사람들로 바글바글. 개인적으로 페르소나 시리즈를 좋아하기에 내년 2월에 발매를 기대하고 있고 어떤 평가를 받을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한정판 박스를 구매하고 싶었다. 굿즈도 맘에 들고, 피규어도 가지고 싶었고. 한정판에 무너지는 나란 남자. 하아. 일본 게임회사들을 비롯해서 해외 게임회사들이 자사 IP를 꾸준하게 발매하여 기존의 팬들을 만족시키고 (게임성과 퀄리티를 보장하는 조건), 리메이크 또는 리로디드 방식으로 새로이하여 신규 팬을 유입시키는 이러한 IP 활용은 짧은 시간 동안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본다. 회사에서의 의지, 상업적인 평가 및 결과, 강력한 팬층 등이 여러 요소들이 복합적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IP 구축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나가 결국은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가는 자체 IP 이외에도 세가 파트너들, 즉 퍼블리싱 타이틀도 함께 선보였다. 대표적으로 <스토커 2: 체르노빌의 유령>, <EA FC 24>, <페이데이 3>, <풋볼 매니저 2024>, <호그와트 레거시>, <귀멸의 칼날: 도전! 최고의 대원> 등 콘솔, PC, 모바일 모든 플랫폼을 아우르는 다양한 장르의 타이틀을 신규 공개 또는 라이브 서비스 중인 타이틀을 보여줬다. 

 

지스타에서는 보기 힘든 이러한 라인업들이 있는게 부러웠다. 지스타가 모바일 게임쇼, 유튜버쇼로 전락해서 아쉬운 점이 많이 있는데 도쿄 게임쇼에서는 그렇지 않다는게 한편으로는 부러우면서도 <P의 거짓>을 시작으로 우리나라 게임업계에서도 앞으로도  수많은 도전이 이뤄질 것이라는 한줄기의 희망을 보았다. 

 

 

세가 부스를 마지막으로 이제 점심을 먹으러 가야지. 점심은 간단하지만 푸짐하게 함바그 스테이크 및 새우 튀김을 주문한다. 콜라까지 포함 가격은 1820엔. 천천히 먹으면서 이제 무엇을 봐야지 생각을 해본다. 아직 코에이 테크모, 캡콤, 부시로드, 반다이 남코가 남았고 나머지 부스는 여유있게 봐야지. 

 

도쿄 게임쇼를 올때마다 느끼는 것은 (비즈니스 데이 한정) 식사 공간이 전시회장 내에 있다는 것은 지스타가 꼭 배워야 할 일이라 본다. 지스타를 매번 갈때마다 가장 아쉬운 것은 아니 개선해야 하는 것은 벡스코 내부에 편의점을 제외하고 그 어떤 식당도 없다는 것이다. 즉슨, 밥을 먹기 위해서는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이나 샌드위치를 사먹거나, 벡스코 건너편에 있는 식당으로 가야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식당이 많기는 하나(신세계 센텀까지 포함), 절대적으로 대규모 인원 수용이 어렵다는 것이다. 관람객들은 물론, 근처 일반 직장인들까지 겹치는 바람에 점심을 먹기가 거의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덜 붐빌만한 식당을 찾아서 다녀야하고 만에 하나 찾았다고 해도 음식 주문부터 음식이 나오기까지 기다리는 것을 따지면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다른 것은 둘째치고 비즈니스 하러 온 사람들이, 일분 일초가 아까운 상황에서 식당 찾으러 밖으로 돌아다닌다? 사람들이 많다? 게다가 주문이 오래 걸린다? 그런데 음식 퀄리티는 최악이다? 다시는 지스타에 오기 싫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B2C관 앞에 푸드 트럭이 있다고 하지만 거기도 이미 일반 관람객들로 사람들이 몰려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길거리에 앉아서 밥을 먹는다. 최악의 최악의 최악 그 자체이다. 

 

 

이렇게 오전 일정은 완료. 아직도 둘러볼 부스가 많이 있다. 어서어서, 도쿄 게임쇼는 계속된다. 

파트 1이 궁금하다면 여기로. 

 

본격적인 구경의 시작이다. 메인이라 할 수 있는 부스들은 4,5,6홀에 모여있고 나머지는 관심가는 부스들은 천천히 둘러보면 되니 일단 무엇을 볼 것인가 고민을 해아한다. 먼저 입구로 연결되어 있는 1,2,3홀에서 주목할만한 부스는 넷이즈, 호요버스, 빅게임 스튜디오 정도라 보면 되겠다. 학생들이 만든 게임들이 있는 게임전문학교 부스도 관심이 가지만 일단 핵심 게임회사 부스부터 보고 돌아오면 좋을거 같다. 

 

 

어메이징 시선

전시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보인 어메이징 시선. 지난 7월 29일 글로벌 출시한 <스노우 브레이크>를 메인으로 내세웠다. 게임 자체로만 본다면 좋은 퀄이기는 하지만 현재까지 유저 평가는 호불호가 갈리는 부분이 많아, 과연 일본 게이머들을 대상으로 얼마나 많은 매력을 어필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입구 근처에 부스가 위치하고 있어 관심을 받기 어렵고, 시연 가능한 PC가 단 3대밖에 없다는건 많은 아쉬움이 든다. 

 

 

빅게임 스튜디오

어메이징 시선 부스 바로 옆에 위치한 빅게임 스튜디오는 오리지널 IP 작품인 <브레이커스> 데모를 선보였다. 빅게임에 대해서는 여러모로 궁금한 점이 많아서 관계자가 있으면 물어볼까 하다가 (블크모 관련해서) 부정적으로 생각되어질까봐 그리고 민폐일거 같아서 굳이 하지 않았다. 

 

블랙클로버 모바일이 좋은 퀄리티임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평가를 받아서 오리지널 IP에 많은 사활을 걸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어떤 느낌일까 싶어 시연을 해보려고 한다. 다행히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바로 시연을 할 수 있었다. PC로 하고 싶었는데 PC 시연하는 사람들이 도저히 끝내지 않을거 같아 모바일로 했다는 것은 좀 안타까웠다. 개인적인 평가를 말하자면 아트 느낌은 매우 좋아서 역시 자신들이 잘하는 것을 최대의 퀄리티로 뽑아내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데모인것을 감안해도 초반 게임 플레이는 지루해서 (일단 스킵이 안된다는게) 이 부분에서 사람들이 많이 이탈하지 않을까라는 아쉬운점도 들었다. 출시일이 아직 미정이지만 데모 퀄리티를 이정도까지 만들 수 있다는게 개발력에 대해서는 전혀 의심할 여지가 하나도 없었다. 

 

 

넷이즈

도쿄 게임쇼 시작 이전부터 넷이즈가 주목 받은 이유는 신작 게임 <러스티 네일>의 공개 장소를 이곳 도쿄 게임쇼에서 결정했기 때문이다. <마법소녀 마도카>, <페이트 제로> 각본가인 우로부치 겐이 오리지널 컨셉 기획 및 각본을 담당하였다는 것 하나만으로 업계 관계자들의 시선을 끌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모바일이 아닌 PC와 콘솔 기반 출시라는 것도 관심을 끌만한 요소였다. 

 

일본서 현재 서비스 중에 있는 <제5인격>, <황야행동>을 비롯하여, 10월 중에 서비스 예정에 있는 여성향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인 <時空の絵旅人(한국명: 다시 그리는 시간)>의 체험관도 함께 마련하였다는 것도 눈에 띄였다. 한국에서는 서비스 시작 2년만에 종료를 하였지만(워낙 많은 사건 사고가 발생해서), 일본에서는 여잔히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은 퀄이 처참하지 않는 이상, 운영이 미친짓을 하지 않는 이상, 중박 정도의 성적을 낼 수 있어서 넷이즈에서 그만큼 공을 들이는 거 같아 보인다.

 

 

 호요버스

이번 도쿄 게임쇼에서 기대한 여러 부스 중 하나였던 호요버스 부스. 원신의 인기는 여기서도 뜨거움 자체였다. 입장이 얼마 진행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호요버스 부스는 이미 대기줄로 꽉 찼다. <붕괴: 스타레일>부터 시작해서 <원신>, <붕괴3> 그리고 서비스 예정인 <젠레스 존 제로>까지 총 4개의 타이틀을 대형 부스에서 선보이면서 부스 활용을 너무나도 효율적으로 하고 있다는게 대단할 따름이다. 

 

다른 것보다 <원신> 굿즈를 준다기에 당연히 대기열이 길던 말던 줄을 선다. 9월 27일 업데이트 예정인 신규지역 폰타인과 신규 캐릭터 '느비예트'를 중심으로 보여주며 사람들의 발걸음을 자연스럽게 이끈다. 15분 정도 기다렸을까, QR 코드 인증을 하고 굿즈를 받는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호요버스 캐릭터들이 있는 에코백과 구성품 (혹시 에코백 가져가실분, 무료 나눔합니다)이 굿즈 전부이지만 이렇게 받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젠레스 존 제로>는 호요버스가 출시 예정인 게임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대기열이 엄청 길다. 믿고 보는 호요버스라고 해야하나. 개장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40분 대기를 해야한다는 후미열 표시를 보고 포기했다. AGF에서 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발걸음을 옮겨야지. 

 

호요버스의 부스뿐만 아니라 다른 대형 회사들의 부스들도 보면 공간 활용을 정말 잘하고 있다는 것이 눈에 띄인다. 버려지는 공간 없이 부스 내의 부스를 잘 배치하여 사람들의 관심이 부스 전체로 이끌어질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예를 들어 호요버스 부스를 보면 메인이라 할 수 있는 부분에 <붕괴: 스타레일>과 <원신>을 배치하고 <붕괴3>, <제레스 존 제로>를 다른 사면에 배치하였다. 그래서 총 4면 전체에서 시연하는 게임을 볼 수 있게 하여 단 하나만 보더라도 호요버스 부스라는 것을 알게 하도록 한 점은 공간 활용 능력을 극대화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도쿄 게임쇼 전시홀과 지스타 전시홀은 차이가 있기에 공간 효율을 높이는데 차이가 있겠지만, 자칫하면 일반 통로와 대기열이 혼잡스러운 것을 사전에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지스타가 향후 배워야 할 모습이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했다. 

 

 

다음은 메인이라 할 수 있는 4, 5, 6홀로 건너가야지. 아직, 즐거운 게임 시간은 끝나지 않았다. 

 

 

To be continued.

2023.09.21 

 

아침 일찍부터 짐을 챙겨 신주쿠역으로 향한다. 도쿄게임쇼가 시작하는 날이라 회장인 마쿠하리멧세까지 멀리 가야한다. 그래도 개막 시간에 맞춰서 가야지. 치바현에 위치한 마쿠하리멧세까지는 신주쿠역 기준 약 1시간 30분 내외. 이전에 갔을 때는 잘못 알아서 2-3번 갈아탄 기억이 있어 이번에는 최대한 환승을 줄이면서 짧은 시간 내에 도착하는 방법을 고민한다. 

 

1안: 츄오쾌속선 → 도쿄역 → 케이요선 → 마쿠하리멧세 

2안: 사이쿄선 및 린카이선→ 신키바역 → 케이선 → 마쿠하리멧세 

3안: 츄오소부선 → 니시후나바시역 → 무사시노선 → 마쿠하리멧세 

 

도쿄역에서 특급등급인 와카시오를 타고 가는 방법도 고려했지만, 높은 가격과 시간대가 맞지 않는 관계로 인해 일단 고려 대상에서 제외. 1안의 경우 도쿄역에서 편히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출근시간대에 츄오쾌속선을 타야한다는 단점이 있고, 3안의 경우 니시후나바시역까지 각 역을 정차해야하는 부담을 생각한다면 2안이 가장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신주쿠역은 이미 출근하는 사람들로 대혼잡. 미나미구치에서 신호를 기다리기 전에 내가 탑승해야할 플랫폼을 다시 한번 상기한다. 익숙해졌다고 하지만, 출근시간대는 자신감이 소폭 하락한다. 하루 평균 승하차 인원 350만명, 출입구만 200여개 가까이 되는 말 그대로 도쿄 서부를 상징하는 그 자체이다. 만약 신주쿠역이 멈춘다면, 과연 도쿄는 어떻게 될까 상상하게 된다. 

 

 

일본 최악의 혼잡 노선이라 불리는 사이쿄선을 타야하는게 걱정이 되지만 혼잡 지역만 벗어나면 문제가 되지 않을테니 그정도 혼잡은 각오하고 있다. 가장 공포스러운 노선(最恐線: 최공선) 또는 가장 미친 노선(最狂線: 최광선)이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는 사이쿄선도 타봐야 도쿄를 제대로 경험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린카이선과 직결 노선이라서 신키바역까지 가는데 환승할 필요가 없는 것도 사이쿄선을 선택한 이유이기에 경험을 해봐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다행인것은 사이타마에서 싣고 온 많은 사람들이 이케부쿠로역과 신주쿠역에서 많이 내렸다는 것이 유일한 낙이지 않을까. 

 

 

오사키역에서 대부분의 직장인 무리가 하차를 한다. 여기서부터 사이쿄선은 린카이선으로 직결 운행되어 오다이바를 거쳐 신키바역까지 운행된다. 신키바까지 향하는 승객들은 대부분 오다이바를 가거나, 도쿄 디즈니랜드 또는 디즈니씨를 목적지로 가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오늘 같은 경우는 도쿄 게임쇼를 가는 사람들도 다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키바역에서 내려 케이요선으로 갈아탄다. 비가 언제 내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흐름 그 자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구글맵으로 쾌속등급 열차 다이어를 보는데 음...일단 시간 자체가 맞지 않아서 쾌속등급을 타는 것은 포기. 가히인마쿠하리역까지는 9정거장만 지나면 되니 다음 오는 열차를 기다려야지. 지난 3월에 왔을 때도 머무는 내내 날씨가 안좋아서 여행을 왔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는데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고 있다. 일본 일기 예보는 거의 틀리지 않으니까. 

 

 

마이하마역에서 가족 단위, 친구 단위의 많은 사람들이 내렸다. 도쿄 디즈니랜드와 디즈니씨가 있으니까. 이제 열차에 남은 사람들의 대부분의 목적지는 가히인마쿠하리역이다. 코로나 종식 이후, 본격적으로 게임쇼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하니 국내외 업계인들에게는 많은 관심이 될 수 밖에 없다.

 

세계 최대 게임쇼였던 E3가 코로나 이후 제대로 된 대응을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면서 오프라인 국제 레벨의 게임쇼라고는 페니 아케이드 엑스포, 게임즈컴, 그리고 도쿄 게임쇼밖에 남지 않게 된다. 한달 전에 열렸던 게임즈컴도 코로나 이후 성황리에 막을 내렸기에 그만큼 도쿄 게임쇼에 대한 관심은 커질 수 밖에 없다. 물론 세가, 코에이테크모, 캡콤, 코나미, 소니 등 자국 게임 회사 위주로의 참가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회사들이 보유한 강력한 IP는 글로벌 시장에서 많은 인기와 사랑을 받아왔기에 자연스럽게 해외 게임 업계인들의 관심을 끌 수 밖에 없다. 아울러 넓은 일본 유저풀을 기대한다면 엑스박스, 텐센트, 넷이즈 등 해외 게임 회사들도 일본 게임 시장에 공을 들일 수 밖에 없어서 그만큼 도쿄 게임쇼가 글로벌 게임쇼로서의 가지는 위상은 그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어느덧 가히인마쿠하리역에 도착. 가히인마쿠하리역에서 내리는 사람은 두 부류. 치바 롯데 마린즈의 팬이던가 (치바 롯데 마린즈의 홈구장이 이 곳에 있음) 아님 도쿄 게임쇼에 참석하기 위한 사람이던가. 하지만 치바 롯데 마린즈의 경기가 아침부터 있을리가 없으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쿄 게임쇼 참석이 목적인 것이다. 열차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내리자 플랫폼부터 사람들로 북적북적하다. 역으로 나가기 위한 길도 사람들도 바글바글. 비즈니스 데이 첫날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사람들이 많다는건 그만큼 도쿄 게임쇼에 대한 관심이 크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2015년도인가, 처음 도쿄 게임쇼에 왔었을땐 해외 게임쇼에 간다라는 흥분 그 자체로 떨렸는데 코로나 이후 처음이라서 그런지 그때 느낌이 새록 떠오른다. 이런 멋진 게임쇼에 올수 있어서 감격, 업계인으로서 감동이 넘친다.  

 

 

역에서 내려 10분 정도 걸어 드디어 마쿠하리멧세에 도착. 전시관에 입장하기 전에 야외에 삼성의 전시 포스터가 부착되어 있다. 비록 게임과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이렇게라도 삼성이 눈에 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삼성과 나의 관계는 뭐 특별한 것은 없지만 그래도 잘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코로나 이전에도 비슷했던거 같은데 이번에도 엑스박스의 거대한 게임 홍보 포스터가 한쪽에 보이고 있다. 엑스박스 오리지널 출시부터 일본 시장에 엄청난 공을 들여왔고 이번에도 필 스펜서를 비롯한 주요 MS 수장들이 도쿄 게임쇼에 왔다고 하니 부러울 따름이다. 물론 일본의 AAA급 개발사가 MS 진영에 합류한 것은 탱고 게임웍스 이외에는 없다고는 하지만, 수많은 IP 기반 게임들이 여전히 엑스박스로 출시되고 일부 개발사들도 MS 진영에 합류만 안했을 뿐이지 세가처럼 오래전부터 협력 관계를 맺고 있으니 엑스박스로서는 일본 시장이 그만큼 중요하게 느낄 것이고 따라서 도쿄 게임쇼에서 자사 게임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드디어 목적지인 마쿠하리멧세 전시관에 도착. 역에서 보았던 인원들의 2-3배 되는 인원들이 몰려 있다. 예전에도 이랬었나? 그런 생각이 든다. 본인 신분 확인 및 티켓 확인 후 입장을 하기 위해 다시 줄을 선다. 줄은 생각보다 빨리 줄어드는데 어랏? 입구와는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한다. 순간 잘못섰나?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알고보니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다른 구역으로 한바퀴 돈 후에 다시 입구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비즈니스 데이 첫날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퍼블릭 데이에는 가히인마쿠하리역까지 줄이 생긴다고 하니 비즈니스 데이에 온게 정말로 좋을 따름이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마침내 전시회장에 들어왔다. 자, 즐거운 게임 시간이다. 

 

 

To be continued. 

 

2023.09.20
 
도쿄 도착. 몇번째 도쿄인가. 2000년에 고등학교 때 아무것도 모른채 도쿄에 온 이후, 이번까지 거의 20번 가까이 되지 않았을까. 이제는 익숙함을 넘어 마치 집과 같은 느낌이다. 
 
입국 심사 구역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 생각 이상으로 많다. 6개월전에 왔을 때는 코로나 제한으로 인해 그렇게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으로 기억하는데 해외 관광객 입국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이번에는 입국 심사 구역에서만 거의 1시간 가까이를 대기를 해야만 했다. 도착하는 시간에 비행기가 몰려서일까 입국 심사대의 업무가 느려서인걸까. 여러 이유를 생각해도 1시간은 지나치다는 결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간신히 입국 심사 구역을 통과하고 나리타 익스프레스 플랫폼으로 향한다. 신주쿠로 갈 때는 무조건 나리타 익스프레스다. 버스를 선호하지 않는 이유는 애매한 타임 테이블, 그리고 운이 나쁘다면 수도고속도로 완간선(首都高速道路)의 정체(특히 날씨가 안좋을 경우)를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호텔 바로 앞까지 간다는 것과 레인보우 브릿지를 지나가고 오다이바를 볼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지만, 그렇다고 만에하나 있을 정체를 겪어야 한다는 것은 최악이라고 본다. 
 

 
다행히 날씨는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저녁에 비 예보가 있는데 아직까지는 구름이 많아 흐릴 뿐, 날씨는 적당한 느낌이다. 1시간 정도 지나니 오사키를 지나면서 언제나봐도 익숙한 소니 시티 오사키가 보인다. 머지 않아 신주쿠역에 다다를 시점이다. 다카시마야 백화점이 보이기 시작하면 이제 내릴 준비를 해야지. 
 
여전히 신주쿠역은 던전처럼 느껴지지만 처음 왔었을 때 나는 누구고 여긴 어디지라는 느낌은 더 이상 낯설다. 숙소는 항상 미나미구치쪽에 있으니 미나미구치 또는 신미나미구치만을 찾아가면 되니 어렵지가 않다. 그리고 야마노테선, 케이오선, 츄오 쾌속선, 츄오-소부 완행선을 이용하니 플랫폼 위치도 기억하고 있어 예전만큼의 혼란은 거의 없는 편이다. 오히려 이러한 복잡함을 현지 사람들처럼 즐기는게 익숙해졌다. 자연스럽게.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짐 정리를 한 후에 밖으로 다시 나온다. 28층 규모의 JR 히가시니혼(JR 東日本) 본사 건물이 눈앞에 보인다. JR 그룹 전체에서 가장 큰 규모로 자산이나 매출액에서도 2위인 JR 도카이를 아득하니 뛰어넘으니 28층 건물 규모가 작게 느껴질 따름이다.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오늘의 목적지인 나카노로 향한다. 첫날은 무리하지 않게 둘러볼 예정이라 나카노 브로드웨이 및 주변 구경하는 것이 오늘의 주된 일정. 츄오-소부 완행선을 타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나카노역에서 내려 나카노 브로드웨이로 향한다. 나카노역 기타구치에서 나와 직진하면 나카노 썬몰(中野サンモール) 상점가가 조성되어 있다. 신주쿠의 혼잡함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표현하자면 거대한 관광 거리 옆에 있는 동네 사람들만 가는 뒷길 같다고 해야하나. 그런데 볼 것은 더 많다. 나카노구 자체가 신주쿠구, 시부야구와는 달리 주택가가 형성되어 있어 현지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이 많다보니 아무래도 현지인들이 먹고 마시는 상권이 전형적이다. 그리고 이곳에는 덕질을 위한, 덕후들을 위한 나카노 브로드웨이가 있다. 
 

 
도쿄 3대 덕후 성지인 아키하바라, 이케부쿠로(오토메 로드) 그리고 나카노 브로드웨이. 아키하바라는 말 그대로 덕후 입문을 위한 대중적인 곳이라면 이케부쿠로는 일부 에반게리온 덕후들(에바스토어 한정)과 여성 오덕들의 취향을 저격하는 장소, 그리고 나카노 브로드웨이는 덕질을 어느정도 해봤다라고 말할 수 있는 과거향 오타쿠들을 위한 곳이라 하겠다. 말 그대로 최신 트렌드가 아닌 시간이 멈춘 것들에 대한 덕후들이 모인다고 해야하나.
 

추억은 기억으로부터 망각으로 옮기는 도중에 잔존한 것이다.

 
 
아키하바라의 느낌과는 확연하게 다른 분위기가 이곳 나카노 브로드웨이에서 느껴진다. 이런 물건도 있었어?라고 생각될 정도로 오래된 덕질템들이 대부분이다.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일본 경제의 정점기일 때 함께 발전하였던 엔터테인먼트 산업 일부가 아직까지도 이곳에서 남아서 향수를 자극하고 이러한 향수를 향유하는 소비층들이 일본 국내는 물론 해외까지 있다는 것은 부러울 따름이다. 울트라맨 시리즈, 고질라 시리즈를 비롯하여 세일러문, 각종 전대물, 애니메이션 시리즈 등 한번쯤 TV에서 보았던 혹은 들어보았던 것들이 전시되고 판매되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아니, 경외감까지 들 정도이다. 이래서 왜 나카노 브로드웨이에 꼭 가보라고 했는지 이제 이해가 될 듯 싶다. 
 
이러한 추억이라는 것이 내가 살았던 시대 혹은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 그렇지 않은 누군가에게는 나카노 브로드웨이에 경외감을 가지는 나를 보면 나이만 든 철 없는 아저씨의 유난이라고 볼 수 있을 거 같다. 그래도 80년대, 90년대 화려했던 일본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정점을 함께 어린시절에 경험했던 1인으로써, 그 당시 시절이 매우 즐거웠고 행복했다고 단언할 수 있을거 같다. 
 
12만엔 짜리 스타워즈 콜렉터 코인을 보며 저런 물건이 예전에 존재했었나 스스로에게도 물어보고, 2006년에 발행된 북한 지폐를 보면서 저런거 사가면 국가보안법에 걸릴까라는 생각도 해보고, 세일러문 애니메이션 카세트 콜렉션을 보며 사고싶다라는 생각도 들고. 미궁 같은 나카노 브로드웨이 건물을 1층부터 4층까지 돌아다니며 추억에 잠겨서 좋았다. 사고 싶은 매력적인 물건들도 있었지만, 조만간 다시 도쿄에 올 계획이 있으니 일단 오늘은 구경만으로도 충분한 시간이 된 듯 싶다. 
 

 
기내식을 먹은 이후 아무것도 먹지 않아 생각보다 빨리 배가 고파졌다. 나카노 브로드웨이를 나와 나카노 썬몰을 걸어본다.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여행은 비로 시작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것을 먹으면 오늘 저녁을 잘 먹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맛집에 꼭 가야한다라는 압박은 가지고 있지 않아, 내가 가서 맛있게 먹으면 그곳이 나에겐 맛집이기에, 일본식 스테이크와 카레 음식점으로 발을 향한다. 
 
사장님께 메뉴 추천을 받아 생맥주와 함께 주문하고 기다린다. 맥주가 나오는데, 피로가 쌓여서 그래서인지, 이렇게 맥주가 끌린적은 오랜만이다. 그리고 대망의 스테이크 카레가 나온다. 가격은 기억이 맞다면 1840엔. 맥주까지 포함된 이 가격이면 무척 가성비가 좋다고 생각한다. 맛도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고. 
 


 
식사를 하는 중에, 귀에 익숙한 노래가 나온다. 무슨 노래이지 계속 떠오르려고 하는데 떠오르지 않아 사장님께 물어본다. 
 
"すみません。もしかしてこの歌、誰が歌ったのか教えていただけますか?"
" マッキーです。"
" そうです、マッキー! やっと名前が浮かびました。"
 
역시, 마키하라 노리유키의 Hungry Spider. 이렇게 비 내리는 저녁 분위기와 어울리는 노래가 흘러 나오다니. 비록 시작은 비로 가득했지만 맥주를 곁들이는 도쿄에서의 첫 일정을 잘 마무리하는 느낌이다. 저녁을 마치고 나카노역까지 슬슬 걸어가본다. 비로 인하여 옷이 젖었지만 뭔가 이것도 낭만적이다. 멋진 곳에서, 멋진 음식과 맥주, 그리고 멋진 노래를 오랜만에 다시 듣게 되어 그것만으로 도시의 분위기에 빠져든다. 
 


 
일은 도쿄에 온 목적인 도쿄 게임쇼에 가는 날. 길었던 하루를 이렇게 마무리 해야지. 
 

2023.9.20. 

 

포인트 쌓는 것을 무척이나 귀찮아 하는 내가 유독 집착하는 포인트 적립이 있다면 항공사 마일리지다. 마일리지를 쌓는 궁극적인 목표는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인천과 뉴욕 구간 또는 인천과 마드리드 구간을 마일리지로 가는 것이다. 그래서 해외를 갈 때는 오로지 대한항공 또는 스카이팀을 주로 이용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저가 항공, 반값 할인, 특가 상품 등은 나의 선택 사항에서 제외가 된다. 또한 현재 보유하고 있는 신용카드도 항공사 마일리지 적립형으로 바꾸면서 최대한 많은 마일리지를 쌓고자 노력하고 있다.

 

도쿄 게임쇼가 목적이었던 이번 여행도 비스니스 클래스 티켓을 구매했다. 마일리지를 추가로 쌓을 수 있다는 장점 하나 때문에, 그리고 일본, 동남아 노선은 가격면에서도 부담스럽지 않아 이코노미 클래스 보다는 비즈니스 클래스로 왕복하는 것이 합리적인 생각이라고 생각한다. 2시간 30분 거리라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이렇게나마 편하게 갈 수 있다는 점인 큰 장점이다. 

 

 

9월 20일 새벽. 공항버스를 타고 도착한 2터미널. 이른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사람들이 공항에 있다. 늦은 휴가를 가기 위해 혹은 미리 추석 연휴를 즐기기 위한 사람들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 사람들 중에는 나처럼 도쿄 게임쇼에 가기 위한 사람들도 분명 있을테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프리미엄 체크인 카운터로 향했다.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돈을 쓰는 만큼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좋은 점인거 같다. 개인적 바램으로는 비즈니스 클래스 이상의 이용자들에게도 패스트 트랙 라인 혜택을 제공했으면 한다. 아직은 노약자, 가족 동반 등으로 제한되어 있는데, 패스트 트랙 라인 도입이 어려운 이유가 국민 위화감 조성이라는 것이 정말로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국민적 정서를 감안하여 특정 클래스 이상 이용자들의 패스트 트랙 라인 사용을 불가한다는거 자체가 인천 국제공항의 경쟁력을 스스로 까먹지 않을까 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법의 허용하는 범위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다는 것이 (그것도 공감하기 어려운 이유로) 아이러니하다. 

 

 

체크인 카운터에서 평소와 같이 여권과 모바일 티켓을 보여줬다. 잠시 조회를 하더니 담당 직원이 항공권을 발급해주며 설명을 곁들인다. 

 

"고객님, 오늘 나리타행 비즈니스 클래스가 만석이라 퍼스트 클래스로 업그레이드 해드렸습니다" 

 

뭐라고? 잠시 귀를 의심했지만 당황한 표정은 짓지 않고 확인차 다시 물어보니 퍼스트 클래스가 맞다고 하면서 밝은 웃음과 함께 좋은 여행 되시라고 이야기를 해준다.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옷! 퍼스트 클래스라니!!!!! 이런!!!!!! 비즈니스 클래스로 업그레이드 된적은 간혹 있었지만 퍼스트 클래스 업그레이드 혜택을 받다니. 드디어 인생 목표 달성인가라는 기쁨, 환희, 흥분, 성취감 등 여러 감정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여행 시작부터 뭔가 기분이 좋아진다. 

 

 

보안 구역에서 간단한 출국 심사를 마치고 바로 비즈니스 클래스 라운지로 이동했다. 원래부터 면세 구역을 돌아보는 것은 관심 사항이 아니고 또한 새벽부터 집에서 나왔기에 라운지에서 쉬면서 간단하게 허기라도 때우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도쿄 여행때는 라운지가 한산한 느낌이었는데, 오늘은 예상외로 사람들이 많아 빈자리를 찾기 어렵다. 간신히 빈자리 하나를 발견하여 가방을 놓고 맥주와 빵과 과일을 가져와 마시면서 긴장을 푼다. 그리고 다시 한번 좌석 넘버 '01'이라고 적힌 항공권을 바라본다. 정말 퍼스트 클래스가 맞는지. 진짜다. 

 

와이프한테 퍼스트 클래스라고 말하니 믿지를 못한다. 아니, 퍼스트 클래스가 있어라고 오히려 반문할 정도로 퍼스트 클래스가 되었다는 것을 의심을 한다. 하지만 항공권을 보여주니 그제서야 관심을 보이며 비행기 탑승 후에 좌석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알려달라고 말한다. 단톡방에도 퍼스트 클래스라고 말하니 많은 분들이 매우 흥미로운 관심을 보였다. 2시간 여행이라 아쉬울거 같다는 이야기도 많이 해주셨다. (그렇습니다. 매우 아쉽습니다ㅠㅠ) 

 

맥주 2잔과 와인 1잔을 마시니 살짝 알딸딸 취한 느낌이다. 이따 탑승하고 또 마실테니 라운지에서는 여기까지. 

 

 

보딩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라운지를 나와 와이프가 부탁한 가방을 사고 탑승 게이트로 향한다. 저기 오늘 내가 탑승할 항공기가 보인다. 그와중에 날씨는 이미 비가 많이 내리는 상황. 새벽 집에서 출발할 때는 내릴듯 말듯 했는데 어느새 이렇게 강한 비로 바뀌다니. 지난 3월의 도쿄 여행 악몽이 다시 떠오른다. 그때도 날씨가 안좋아서 여행 내내 고생했는데, 이번에도 설마? 계속 야후 재팬의 날씨와 아이폰 날씨를 동시에 확인하면서 설마 또 그러겠어라는 희망 회로를 돌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탑승을 시작한다. 가장 먼저 항공권 확인을 마치고 보딩 브릿지로 향한다. 이게 퍼스트 클래스의 느낌이려나. 이런말 하는 거 자체가 웃기긴 하지만 퍼스트 클래스 부심(?)이 살짝 드는 순간이다. 보딩 브릿지를 지나 비행기에 탑승하고 항공권을 보여주니 퍼스트 클래스로 안내해준다. 두근두근. 퍼스트 클래스가 다가오는 순간이다. 

 

 

비즈니스 클래스는 그래도 익숙한데 퍼스트 클래스는 과연 어떨까. 짐을 정리하고 안내 받은 좌석은 생각 이상으로 넓었다. 이게 퍼스트 클래스라는 것인가. 잠시 앉아 있으니 웰컴 드링크를 가져다 주신다. 맘 같아서는 다 마시고 싶지만, 아직 기내식도 있으니 오렌지 쥬스로 선택한다. 마시기 전에 인증샷은 잊지 말아야지.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면 좌석과 화면과의 거리가 생각보다 멀어서 기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 활용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거. 물론 기류 이상으로 인해 계속 아무것도 못하고 앉아있어야 했지만 구형 기종이다보니 여러모로 아쉬웠다는 것. 하지만 뭐 어떠랴, 퍼스트 클래스니 이 정도 호사를 누리는 것도 매우 기분이 좋은걸.

 

 

창밖은 여전히 강한 비가 몰아치지만 도쿄의 날씨는 다르겠지라고 스스로 생각해본다. 얼마만의 도쿄인지, 얼마만의 도쿄 게임쇼인가 등등 이륙전까지 대부분 기쁨의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찬다. 

 

승객들 탑승이 완료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나리타를 향해 이륙을 한다. 이륙은 문제가 없었는데 기류 문제인지 계속 비행기가 30분이 지나도 흔들린다. 슬슬 기내식 서빙 준비를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승무원들까지 좌석에 착석하라는 기장의 안내 방송 때문에 거의 1시간 가까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후, 드디어 기내식 서빙이 이루어진다. 사전에 주문해두었던 해산물 파스타가 정갈스럽게 준비되어 나온다. 이코노미 클래스와 큰 차이는 없지만 넓은 트레이 하나만으로 식사를 하는데 여유를 부릴 수 있다는 점, 정말 좋다. 맛은 평범? 장거리 구간이나 최고급 항공사, 예를 들어 싱가포르 항공이나 아랍에미레이트 항공사가 아닌 이상 비즈니스 클래스에서 뛰어난 맛의 기내식을 기대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다만, 퍼스트 클래스라는 후광 효과로 인해 평범한 맛의 파스타도 미쉐린 급의 파스타로 각인된다는 것은 어쩌면 세뇌된 뇌의 영향이었을 것이라 보인다.

 

 

식사를 마치고 화면을 보니 어느덧 일본 고마쓰 근처를 지나고 있다. 이말은 즉슨, 도쿄가 가까워졌다는 의미이다. 얼마 남지 않은 비행 시간이지만 퍼스트 클래스에서의 시간을 더욱 누리고 싶어 와인을 추가 주문한다. 기류 불안정만 아니었다면 기내식을 빨리 마무리하고 서비스를 더 많이 경험했을텐데 그게 많이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 최초로 퍼스트 클래스를 타는 경험을 누려서 이제는 여한이 없을거 같다는 느낌도 든다. 물론 여전히 마일리지 적립으로 퍼스트 클래스를 타겠다는 목표 의식(?)은 강하지만 이번 경험으로 퍼스트 클래스를 어떻게 경험해야 할지 뉴비에게는 많은 체험학습을 한 시간으로 여겨진다. 

 

 

비행기는 이제 착륙 준비를 한다. 지난번 왔을 때는 늦겨울의 잔향이 남아있는, 봄을 맞이하기 싫어하는 쌀쌀함으로 가득했는데 과연 9월말의 도쿄는 어떤 느낌일까 생각하게 된다. 더울것이라는 것도 어느정도 생각하면서 살짝 가을의 느낌을 기대하고 싶어진다. 도쿄 게임쇼 참석을 비롯해서 도쿄의 지인들을 만나고, 가고 싶은 곳을 가는 등 여러가지를 예상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어디를 꼭 가야겠다는 것은 아니고 익숙한 도쿄를 더더욱 익숙하게 경험하는 것이 목표인지라 정신 없이 돌아다니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도쿄 나리타 공항에 도착을 하였다. おかえり。

"오늘은 어디로든 괜찮아 데려가줘요
환하게 내려오는 햇살을 타고
묻어둔 서글픔이 돌아올 날 기다린대도
지금 난 이대로 행복해"

 

 

떠나기로 결심했으니 어디로 향할까. 시간이 남았지만 벌써부터 떠난다는 생각을 하면 설레는 마음으로 가득차서 미소가 저절로 지어진다. 이렇게 여행을 생각해본지가 대학원때 남미 여행 이후 처음이니까. 

 

북미, 남미,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그리고 호주까지. 총 5개 대륙을 관통하는 하이웨이 프로젝트를 여행의 메인 테마로 잡았다. 직접 차를 몰고 5개 대륙을 운전하면서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다닐 계획이다. 99%의 담대함과 거창함 하지만 1%의 무모함이라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살면서 이런 떨림은 정말 오랜만이다. 대학원때 유엔본부 인턴을 마치고 3개월간 남미를 여행한 이후 거의 처음이랄까. 

 

대충 가고자 하는 루트를 계산해보니 총 주행거리가 87,786km 정도 되는데 거쳐가는 국가만 약 60개에 가까울 정도로 엄청난 일생 일대의 여행이 될 거 같다는 느낌이다. 

 

일단 시작은 미국에서 시작해서 아르헨티나까지 간 뒤(팬아메리칸 하이웨이), 배를 타고 또는 비행기를 타고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가서 북상하여 이집트에 도착한 후(트랜스 아프리카 하이웨이 루트 4), 그곳에서 서쪽으로 지중해가 보이는 연안 도로를 타고 세네갈까지 이동하고(트랜스 아프리카 하이웨이 루트 1) 여기서 배를 타고 스페인에 이르러 포르투칼에서 불가리아까지 남유럽을 연결하는 도로를 주행하고(유러피언 루트 80) 이후 터키에서 일본까지 계속 동쪽으로 향하고(아시안 하이웨이 루트 1) 이후 호주로 건너가 대륙 한바퀴를 돌고(호주 하이웨이 루트 1) 다시 부산으로 와서 서울에서 여행의 마무리를 할 생각이다. 

 

<아시안 하이웨이 루트 1>

 

※ 아시안 하이웨이 루트 1: 터키 카피쿨레에서 일본 도쿄까지 총 길이 20,557km 종단 하이웨이 

 

도로가 연결되는 국가만 하더라도 일본,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미얀마, 방글라데시, 인도, 파키스탄, 이란, 터키까지 총 11개 국가이고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등 주변 국가까지 포함한다면 거의 14-15개 국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아쉽게도 북한과 아프가니스탄은 현 상황으로는 도저히 갈 수 없기에 (처음부터 포기) 한국과 중국 사이는 배편으로 이동하고 아프가니스탄은 포기하고 파키스탄 남쪽으로 돌아서 이란을 갈 계획이다. 

 

<트랜스 아프리카 하이웨이>

 

※ 트랜스 아프리카 하이웨이 루트 1: 이집트 카이로에서 세네갈 다카르까지 총 길이 8,636km 횡단 하이웨이. 

※ 트랜스 아프리카 하이웨이 루트 4: 이집트 카이로에서 남아공 케이프타운까지 총 길이 10,228km 종단 하이웨이.

 

가장 무서우면서 설레는 곳이 아프리카 루트가 되지 않을까. 특히 계획하고 있는 1번과 4번 루트를 중심으로 갈 생각인데 거리는 둘째치고 치안 상황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곳이기에, 특히 탄자니아 이후 남아공까지는 정말 안전을 생각하면서 가야하지 않을까 벌써부터 살짝 걱정이 앞선다. 대충 루트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시작해서 4번 루트를 따라 보츠나와, 짐바브웨, 잠비아, 탄자니아, 케냐, 에디오피아, 수단, 이집트까지 갔다가 루트 1번으로 갈아타서 리비아, 튀니지, 알제리, 모로코까지 이동할 예정이다. 

 

<유러피언 루트 80>

 

※ 유럽피언 루트 80: 포르투칼 리스본에서 불가리아 카피탄 안드리보까지 총 길이 3,865km 횡단 하이웨이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스페인에서 포르투칼로 이동해서 다시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크로아티아, 몬테네그로, 세르비아, 코소보, 불가리아까지 총 9개 국가를 거치는 남유럽 루트이다. 원래 유러피언 루트는 이란 국경까지 이어져 있는데 터키 부분은 아시안 하이웨이 구간으로 넣고 싶은 생각에 불가리아까지로 정했다. 

 

<팬 아메리칸 하이웨이>

 

※ 팬아메리칸 하이웨이: 미국 알래스카에서 아르헨티나 우슈아이아까지 총 길이 30,000km 종단 하이웨이. 

 

가장 편하게 여행이 가능한 곳인 팬 아메리칸 하이웨이는 미국, 캐나다, 멕시코,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니키라과, 코스타리카, 파나마,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칠레, 파라과이, 브라질, 우루과이, 아르헨티나까지 총 17개 국가를 거치는 단일 도로로는 가장 긴 코스가 될 것 같다. 북미와 남미는 익숙해서 걱정은 안되는데 중미에서 특히 다리안 갭을 통과하는 것에 대해 살짝 걱정이 앞선다. 그래도 큰 걱정은 아니니까. 

 

<호주 하이웨이 루트 1>

 

호주 하이웨이 루트 1: 호주 대륙을 돌아보는 시드니에서 시작에서 끝나는 총 길이 14,500km의 하이웨이 

 

호주를 마지막까지 넣을까 말까 고민을 했다. 해안 도로를 따라서만 다녀야 하는, 그리고 이미 많은 국가들을 거쳐왔기에 재미가 살짝 떨어지지 않을까라는 우려 아닌 우려가 들기도 했지만, 이왕 모든 대륙을 다니는 것에 대해 의의를 두고 있으니 호주를 과감히 마지막에 넣었다. 해안도로를 따라서 마음 편하게 여행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이렇게 5개 대륙을 여행하는 장대한 계획을 세웠다. 계획은 말 그대로 계획이라 과연 어떻게 될지는 아무것도 확신을 할 수는 없지만 분명 앞으로의 시간 동안 차분히 준비를 하고 일단 출발하면 잘 되지 않을까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한다. 분명 채울 수 없는 넘치는 재미와 즐거움 그리고 설렘이 가득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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