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하다

[세가] 콘솔 역사상 가장 치열한 도전의 시작

imymemyself 2023. 6. 20. 08:22

 

2001년 1월 31일 오후 6시 30분, 도쿄 치요다구 마루노우치에 위치한 팰리스 호텔(현: 팰리스 호텔 도쿄)은 사뭇 무거운 분위기였다. 새해가 시작된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에 시내 곳곳은 신년을 환영하는 들뜬 분위기와 기대감으로 가득차 있었으나 유독 이곳만큼은 마치 한해를 마무리하는 듯한 무거움만이 느껴졌다. 약 8일전이었던 1월 23일에 니혼게이자이신문을 통해 보도된 내용의 사실 확인을 위해 수많은 취재진이 몰렸고 기자회견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보도자료가 배포가 되어 보도 내용은 기정사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임원들의 입을 통해 보다 정확하게 확인을 하고 싶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문의 중심에 서있는 회사의 임원들이 입장을 하고 차례대로 단상에 자리를 잡았다. 사토 히데키 대표이사 겸 부사장, 카야마 사토시 특별 고문, 나가이 아키라 전무이사, 오야마 토시미치 상무이사, 나카무라 슌이치 상무이사, 야마자키 쇼이치 상임이사 순이었다. 동시에 웅성웅성했던 기자회견장은 카메라 플래시 소리로만 가득찼고 사토 히데키 대표이사는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세가의 대표이사 사토 이데키입니다. 방금 논의한 바와 같이 오늘 저는 가정용 비디오 게임 콘솔 생산을 중단함을 알려드립니다. 당사는 2001년 1월 31일 오전에 개최된 이사회에서 2001년 3월 31일에 끝나는 회계연도 말에 드림캐스트 가정용 비디오 게임 콘솔의 생산을 중단하기로 결의하였습니다"

 

닌텐도라는 라이벌을 넘는가 싶던니만 소니라는 신흥 강자에 밀려 영원한 2등에 머룰러야 했던, 하지만 어찌보면 콘솔 역사상 가장 치열한 도전자라 할 수 있었던 세가가 콘솔 시장에서의 패배를 인정하고 철수하겠다는 공식적인 선언이었다. 그렇게 세가는 짧았던 영광과 길었던 치욕만을 남긴채 콘솔 시장에서의 도전을 마무리하였다.

 


 

 

미국인에 의해, 미국인을 위한

다시 시간을 되돌려 1940년 5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참일 때, 미국인 사업가 어빙 브롬버그는 미군을 대상으로 사업 기회를 발견하였다. 미국이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면 결과적으로 미군 병력이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고 기지에 주둔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여가 시간을 어떻게든 즐기고 싶어하는 수요가 발생할 것이라 보았다. 그는 자신의 아들 마틴 브롬버그(후에 마틴 브롬리로 개명)와 아들의 친구 제임스 험퍼트를 사업에 끌어들여 미군에게 슬롯머신을 비롯하여 동전으로 작동하는 오락 기기를 제공하고자 하와이에 스탠다드 게임즈(Standard Games)를 설립하였다. 그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고 전쟁이 치열해질수록 사업은 나날이 번창하였다.

 

1945년 5월, 전쟁이 막바지에 이를 시점에 어빙 브롬버그는 스탠다드 게임즈를 청산하고 사업을 정리하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46년 1월, 동일한 사업을 하는 새로운 회사인 「하와이 서비스 게임즈(Service Games)」를 설립하였다. 비록 전쟁은 끝났으나 여전히 군대에서 엔터테인먼트 요소로 수요가 꾸준히 발생하였고 사업은 순탄하게 흘러갔다. 하지만 1940년대 후반부터 미국 전역으로 불법 도박이 기승을 부리고 빠른 속도로 확산되며 많은 사회적 문제가 야기되었다. 특히 불법 도박을 통해 흘러나온 자금이 범죄 조직의 운영 자금 또는 불법적인 사업에 사용되며 조직간의 이권 다툼으로 이어지는 등 여러 부정적인 문제가 초래되었다. 정치권에서도 불법 도박으로 야기된 각종 문제에 심각성을 인지하였으며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였고 1951년 '존슨 법(Johnson Act)라 불리는 '도박 기기의 운송 및 이동에 관한 법(The Transportation of Gambling Act of 1951)' 제정으로 이어졌다. 사전에 승인 받지 않거나 허가 없이는 슬롯 머신을 비롯하여 각종 도박 기기들의 미국 각 주간(interstate) 운송을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연방법으로 불법 사업자들의 도박 기기 획득을 전면 차단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어빙 브롬버그)

 

어빙 브롬버그와 그의 아들 마틴 브롬버그는 이러한 강력한 제제로 인하여 미국에서 사업을 지속하기에는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대신 일본으로 눈을 돌렸다. 당시 일본은 태평양 전쟁이 끝난지 얼마되지 않았기에 연합군의 점령 및 관리하에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할 때, 일본에 주둔 중에 있는 수많은 주일 미군과 이들을 대상으로 관련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미국인들의 엔터테인먼트 수요가 클 것이라 생각하였기에 이곳에서 기회를 발견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1953년 서비스 게임즈는 일본에 자회사를 설립하였고 사명도 일본 서비스 게임즈(Service Games of Japan)」으로 정하였다. 일본에서의 사업은 기대 이상이었다. 한국 전쟁의 영향으로 일본이 전쟁물자 및 보급을 위한 후방 지역이 되고 연합군의 대기 장소로 활용되면서 사업은 더욱 확장이 되었다. 사업이 안정화되며 어빙 브롬버그는 일본 이외의 지역을 눈을 돌렸고 한국, 필리핀, 남베트남 등 아시아에서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국가로 사업을 확장하였다.

 

꽃길만 걸을 줄 알았던 사업의 행보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1959년부터 1960년 사이, 미국 정부는 불법 도박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당시 케네디 행정부는, 특히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이 나서서 불법 도박 확산을 차단하고 엄정한 처벌을 내리고자 하는 강경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 정부는 일본 서비스 게임즈가 미군 기지에서 사업 수주를 위해 각종 뇌물을 제공하고 세금을 탈생하는 등 불법적인 활동을 했다는 정황을 포착하여 중점 관리 대상으로 지정하였다. 다행히 여러번의 소명 기회를 통해 뇌물 수수 및 탈세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미군은 부정적인 시선을 고려하여 일본과 필리핀의 미군 기지에서 이들의 사업을 전면 금지하였다. 핵심 지역에서 사업이 불가능해진 일본 서비스 게임즈는 향후 방안에 대하여 모색하다 겨룰 1960년 5월 31일 회사 청산을 결정하였다. 다만, 일본 서비스 게임즈의 핵심 사업인 유통과 생산을 분할하여 각각 전담할 수 있도록 별도의 회사를 6월 3일 창립하였다. 그렇게하여 탄생한 것이 유통만을 담당하는 일본 오락 물산(日本娯楽物産)」과 생산만을 집중한 「일본 기계 제조(日本機械製造)」다. 1961년, 두 회사는 사업 전략의 일환으로 일본 서비스 게임의 자산을 인수하는 결정을 하게 된다. 다만 인수 과정에서 서비스 게임즈라는 명칭과 익숙함의 가치가 미군 내에서 높았기에 해당 사명을 유지하고 사용하는 조건이 있었고 이를 수용하면서 창립자였던 어빙 브롬버그와 마틴 브롬버그는 140만 달러에 서비스 게임즈의 자산을 넘기는 결정을 하였다. 그리고 3년 뒤인 1964년, 일본 오락 물산과 일본 기계 제조는 합병을 하게 된다. 

 

일본을 사로 잡은 어느 미국인

일본 서비스 게임즈가 나날이 성장을 거듭하고 있을 무렵, 일본에서 주일 미군으로 주둔 중에 있던 뉴욕 출신의 미 공군 장교 데이비드 로젠은 전역 이후 무엇을 해야할지 많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당시 한국 전쟁 특수로 경제성장에 가속도가 붙고 있는 것을 목격한 그는 이러한 성장의 열차에 탑승하여 기회를 찾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1952년 전역을 하고 몇년 후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따서 로젠 엔터프라이즈(Rosen Enterprise)」를 만들었다. 당시 일본은 신분 확인, 고용 증명 등의 목적으로 사진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어서 여기서 사업 아이디어를 발견하여 즉석 사진 기계를 미국에서 수입하여 사업에 활용하였다. 경제 성장이 가져다 준 일상의 여유는 즐길 거리를 찾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욕구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을 인지한 데이비드 로젠은 1957년 시카고로 날아가서 당시 동전 기반 오락 기기를 만드는 업체들을 찾아다녔다. 도박과의 전쟁으로 성장이 멈춰버린, 즉 죽어가고 있는 동전 기반 오락 기기 업체들은 데이비드 로젠의 제안을 받아들여 일본인들을 위한 게임 기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데이비드 로젠)

 

데이비드 로젠의 판단은 정확했다. 파칭코, 캬바레 등 성인만의 전유물이었던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게임 기기는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부담스럽지 않은 신선함을 제공했다. 게다가 영화 배급사였던 토호(東宝株式会社)」의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그들의 극장 입구 또는 로비쪽에 아케이드 게임 기기를 설치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였다. 특히 에어건을 사용하여 사냥을 하는 게임과 슈팅 게임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미국의 오락 기기 업자들에게도 데이비드 로젠은 구원자 같은 존재였다. 판매할 곳이 사라져 창고에 쌓아둘 수 밖에 없었던 각종 오락 기기들의 재고를 처리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업 시장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일본 통상산업성(현: 경제산업성)에서 수입 허가를 받아야만 했고, 오락 기기를 수입하는데 있어 기기 가격의 200%를 관세로 납부하는 등 적자가 예상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기를 들여오고 2달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하였다. 그만큼 일본 시장에서의 수요가 높았다. 데이비드 로젠에 따르면 사업이 정점에 이를 당시에는 당시 일본에 자신의 아케이드 기기가 없었던 곳이 없었을 정도로 사업은 호황을 누렸다고 회상한다.

 

로젠 엔터프라이즈는 1957년부터 약 2년간 아케이드 게임 시장에서 독점을 누렸다. 물론, 언제까지나 독점은 어려웠다. 수요는 계속 증가하였으나 공급이 부족하였기에 경쟁자들이 아케이드 게임 시장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여러 경쟁자 중, 가장 대표적인 회사가 타이토(Taito, 株式会社タイトー)와 일본 오락 물산」 이었다. 두 회사는 아케이드 게임 기기와 비슷한 슬롯 머신 또는 쥬크 박스의 유통과 생산 경험이 풍부하였고 회사 규모 면에서도 로젠 엔터프라이즈와 비교할 수 없었다. 따라서 이들이 아케이드 게임 시장에 진입하는데는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합병 그리고 세가의 탄생

경쟁이 가속하되던 1964년, 데이비드 로젠은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온 일본 오락 물산의 마틴 브롬버그와 만나 종종 대화를 나누었다. 이러한 대화는 단 한번으로 끝나지 않고, 이후로도 비정기적으로 계속 이어졌다. 캐주얼한 대화는 점차 경영진들이 참여하는 협상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 1965년 7월 15일, 두 회사는 전격적으로 합병한다는 소식을 발표하였다. 당시에만 하더라도 로젠 엔터프라이즈와 일본 오락 물산은 일본에서 동전 기반으로 운영하는 오락 기기 사업에서 가장 큰 회사들이었다. 로젠 엔터프라이즈는 미국와 일본에서 넓은 유통망을 보유하고 수입에 대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 일본 오락 물산은 서비스 게임즈와의 제휴를 바탕으로 수많은 오락 기기 라인업과 이를 생산하는 공장 그리고 풍부한 운영 경험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합병은 두 회사에게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해줄 것이라 보았으며 그에 따른 막대한 이익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되었다. 

 

 

합병으로 탄생하는 새로운 회사의 이름은 「세가 엔터프라이즈(Sega Enterprise)」로 결정되었다. 일본 오락 물산이 브랜드 이름으로 계속 사용하던 서비스 게임즈의 앞 부분과 로젠 엔터프라이즈의 뒷 부분을 각각 합친 결과였다. 그리고 데이비드 로젠은 신생 회사의 대표이사이자 CEO가 되어 앞으로의 운영을 맡게 되었다. 그렇게 세가가 비디오 게임의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To be continued. 


 

출처

1. "Did you know that Sega was started by an American?", Next Generation, 1996년 12월 23일

2. "Meet the four Americans who built Sega", Kotaku, 2011년 4월 4일 

3. "IGN Presents the History of SEGA", IGN, 2009년 4월 21일

4. "セガが家庭用ゲームハード事業から撤退。ドリームキャストの製造を終了", famitsu, 2022년 3월 31일

5. "セガがDC製造中止を含めた今後の経営戦略を発表!", dengekionline, 2001년 1월 31일

6. "不安を抱えつつもソフト開発力に賭けるセガ", itmedia.co.jp, 2001년 1월 31일

7. "JAPAN: SEGA ANNOUNCES FUTURE OF DREAMCAST", AP, 2001년 1월 31일

5. "Service Games: Rise and Fall of Sega",Sam Pettus, 2013년 12월 20일

 

 

 

'게임을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렇게 시작하였다.  (0) 2023.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