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보이지 않을거 같았던 폭염이 사라지고 가을이 성큼 한 걸음 다가왔다. 그 사이 1차 목표도 마무리하였고 고시엔도 끝나버렸고 이제 얼마남지 않은 초록의 냄새에도 안녕을 고해야지, 그리고 순식간에 지나갈 노랑과 빨강의 아름다움을 만끽해야지. 밤기운이 선선해졌다. 2023년도 이렇게 저물어 가는구나. 꽤 열심히 지내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아니구나. 그래도 더 열심히 즐겁게 남은 시간을 보내야겠다. 판교의 저녁 하늘은 이대로 계속 있어줬으면 좋겠다. 어쩌면 가을 같았던 8월의 어떤 수요일. 

먼저 1년 반이라는 기간 동안 페이즈 1의 결과물을 멋지게 만들어낸 울 회사 모든 분들에게 수고했다고 고생했다고 그리고 멋지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가 만든 결과물을 테스트를 하고 내외부 평가를 거치면서 매우 만족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으며, 그리고 우리의 능력이 벌써부터 인정 받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마치 물건이 제대로 나왔다라는 확신마저 들었으니까. 

 

타운홀 미팅을 통해서 공유된 우리가 앞으로 걸어갈 길, 그 과정에서 해야하는 일, 나아가 길 끝에 놓여진 비전에 대해서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자신감과 굳건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힘차게 뛰어왔던 모두에게 주어진 꿀 같은 휴식. 

 

이곳에 온지 이제 1년 가까이 되는데,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멋진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매우 감사하다고 느낀다. 회사라는 곳은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라 어떤 사람들을 만날까 설레이기도 하고 아닐 수도 있는데 스스로 설레임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 여기까지 올 수 있다는 것에 매우 감사하다고 느낀다. 

 

그러면서 내 몫을 온전히 해낼 수 있는 사람으로서, 매일마다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으로서, 이곳에서 잘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에 행복할 따름이다. 아침이 되면 출근하는게 즐거운 기분이 생기도록 해주는 회사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기회가 주어진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행운이다. 

 

앞으로 걸어갈 길은 많이 남았지만, 때로는 험하고 힘들겠지만, 이런 마음이 그때까지 계속 유지되도록 많이 노력해야겠다. 이런 기분이라면 같이 가는 즐거움이 더 커지지 않을까 싶다.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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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29일, 마지막 토요일. 

아침에 아빠한테 카톡이 왔다. 간단한 문장 하나였다. "쨍이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14년 전, 동생이 결혼하면서 우리집에 맡겨진 쨍이.

동생이 잠깐만 봐달라고 했는데 그 잠깐이 지금까지였나보다. 

 

우리집 막내가 된 쨍이. 

은퇴하고 유유자적 지내던 아버지의 산책 메이트가 되고

혼자 남아 외로워하던 단비의 친한 친구가 되고

밤늦게 돌아오는 나의 마중 상대가 되고

엄마에게 많이 혼났지만 그만큼 웃음을 주고.

 


 

더 많은 사랑을 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더 많이 놀아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더 많이 시간을 함께하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그래도 사랑해. 또 사랑해. 우리 가족이 되어줘서 정말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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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7월 20일, <데스티니 차일드> 정기 점검이 끝나고 평소처럼 접속하여 플레이를 하려했다. 어랏, 이상하다. 업데이트 내용은 보이지 않고 갑작스런 서비스 종료 공지가 먼저 눈에 띄었다. 지난 7년간 열심히 서비스를 해왔으나 서비스를 지속할 수 없다는 판단으로 서비스 종료를 알릴 수 밖에 없었다라는 흔하디 흔한 한국 게임회사의 서비스 종료 내용이었다. 어느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으나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내용이라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2. 

분명 앞으로 2-3개월 분량의 업데이트가 남아 있을 뿐더러, 시프트업의 시작과 함께한 게임이었기에, 개인적으로도 많은 돈을 써가며 플레이한 게임이었기에 이런 방식의 서비스 종료는 전혀 생각치 않았다. 정기 점검을 시작하기 전에 여름 업데이트, 가을 업데이트 내용에 대해 공식카페에서도 이야기가 이루어지고 있었고 나를 포함한 유저들도 그렇게 연착륙을 할 것이라 생각하였기에 이것은 마치 등 뒤에서 칼에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3.

정기 점검이 거의 완료될 시점에, 블라인드에서 <데스티니 차일드> 개발팀의 권고사직 이야기가 올라왔다. 내용은 즉슨, 정기 점검 당일 오전에 팀장급 간부회의가 있었고 회의가 끝나자마자 개발팀 전원이 희망퇴직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 개별 면담을 진행하며 전환배치 또는 권고사직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물어보았고 그렇게나 중요한 것을 면담 자리에서 결정하라고 했다는 피플팀의 이야기가 있었다는 경악할만한 수준의 내용이었다.

 

 

4. 

업계에 이제 10년 이상 몸을 담고 있다보니 권고사직, 희망퇴직이라는 용어가 이제는 낯설지 않은 단어가 되어버렸다. 하도 많이 갑작스럽게 팀이 폭파되거나 뿔뿔이 흩어지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보고 들어서 무뎌졌는지는 몰라도 무의식적으로 또 그랬구나라고 생각만하고 흘러보냈는 이번 사태는 그럴 수가 없을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독 분노가 치밀러 솟아오르는 이유는 헤어질때의 매너조차도 싸그리 무시하고 마치 아무일도 아닌 것처럼 이번 사태가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시프트업이라는 회사, 특히 업계 탑급으로 여겨졌던 '그' 사람에게 실망하였기 때문이다. 40명 정도 되는 개발팀 개개인에게는 가족이 있고 생계가 걸려있는 아주 중요한 사안인데 생각할 여지도 주지도 않고 2-3분 안에 결정을 내리라는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블라인드에서 시작한 여파는 루리웹을 비롯하여 여러 커뮤니티에 퍼졌고 주말이 지나고 나서는 그제서야 공지 과정에서 일부 오해가 있었다라는 말도 안되는 변명으로 일관한 것도 시프트업에 대한 분노를 잠재울 수 없었던 것이다. 전환 배치라는 것도 신규 입사 하는 것처럼 면접을 거치고 합격을 해야 가능하고, 권고사직도 3개월치의 위로금이 전부인 상황에서 과연 어떠한 선택을 할수 있을까. 

 

5.

소문에 의하면 IPO를 앞두고 있는 시프트업은 좋은 기업 가치 평가를 받기 위해 <데스티니 차일드>를 급하게 종료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말은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시프트업의 시작과 함께한 지금의 시프트업을 만들어준 게임이었기에, 아무리 게임 운영에 있어 욕을 먹었어도, 종료를 알리고자 했을 때는 더욱 세심하게 다가가야 하지 않았을까? 2016년부터 애정을 가지고 꾸준하게 결제하면서 플레이를 해왔던 사람으로서 이러한 방식은 더더욱 이해가 가지않고 업계인으로서도 아니다는 생각밖에 안든다. 지금까지 플레이를 해왔던 모든 유저들을 기만하였으니까.

 

6. 

마지막으로 한때 권고사직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시프트업의 치졸한 방식은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관리자 입장에서는 몇명 나가는거 쉽다고 생각하겠지만, 통보를 받는 입장에서는 당장 무엇으로 먹고 살아야하지라는 생각으로만 가득차니까 잔인할 수 밖에 없다. 헤어짐에도 예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단순히 사람 사이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회사와 계약관계에 있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너있게 마무리를 졌어야 하지 않았을까. 이번 방식이 시프트업의 <니케: 승리의 여신>, <스텔라 블레이드> 개발팀에게는 어떻게 느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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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만 퇴근이 늦었으면, 못 봤을 비가 잠시 그쳤던 오늘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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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마음을 먹고 책으로 가득 쌓여있던 방 정리를 했다. 읽은 책보다 안 읽은 책이 많았고, 엄청나게 공부한 흔적으로 가득 했고, 게중에서 예상치 못한 것을 발견해서 놀라웠다. 1998년 영화 잡지 '스크린' 11월호 애독자 카드였다. 글자 하나하나가 정성을 담아 쓴 것처럼 또박또박 적혀있었다. 꼭 나를 봐주세요, 뽑아주세요 그런 마음이었나보다. 어떤 내용을 적었을까 궁금했다. 김하늘을 무척 좋아했었나보다. 좋아하는 여자 배우, 원하는 표지 인물에 김하늘이라고 매우 크게 썼네. 98년에는 영화 업계에서 일하고 싶었나보다. 하고 싶은 말에 미국 영화 연구소에서 무슨 공부를 해야하는지, 조건은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한 것을 보면 그땐 영화를 무척 좋아했었나보다. 갑자기 많이 그리워진다. 별 것 없는 시절을 할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지나보니 참 좋은 시절이었던 그 시절. 이 엽서는 차마 보내지 못하고 가끔씩 98년의 내가 그리워질 때 꺼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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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더욱 녹아든 시기. 오월이 그랬다. 열심히 하는 것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거. 개인적인 욕심과 실행 가능한 능력 사이에는 아무것도 채울 수 없는 거대한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완벽해지고 했던 마음을 살짝 열어두니까 그 사이로 초록색의 바람이 스쳐지나가며 여유라는 선물을 놓고 간 느낌이다. 오월의 마지막 날 들은 말들은 오래오래 기억해야지. 그 말들이 있어 6월을 잘 맞이할 수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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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
 
조용하던 가족 단톡방에 알림이 떴다. 여행가신 부모님이겠지라고 카톡을 열었다. 안부나 그런 것은 없고 사진 몇장이 전부였다. 아제르바이잔 바쿠라는 곳이였다. 바쿠가 어디였더라. 대학원때 초빙 교수님이 대사로 계셨던 곳, 캅카스 지역에 있는 곳, 이란과 국경을 맞댄 곳, 그리고 최근 전쟁이 발생한 곳. 한번도 가보지는 않았지만 낯선 곳은 아닌 느낌이다. 
 
난 이 사진이 매우 좋다. 아빠가 또 멋진 모자를 쓰셔서, 엄마는 편하게 쉴 수 있어서. 그리고 두 분이 함께 있어서. 평소에는 조카를 돌보느라, 교회 봉사 하느라, 일 하느라, 특히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많이 지치진 모습을 느꼈는데 이렇게라도 다른 생각을 할 틈 없이 두 분이 편하게 웃으실 수 있어서.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이렇게 여행을 다니시면서 지금만큼 행복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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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서 일요일은 고장난 마음에 광기에 사로잡힌 주인공 팻에게도 여유롭게 스포츠 경기를 볼 수 있는, 망나니 티파니에게도 요리를 함께 나눠먹고 담소를 선사한다.
 
동네 앞 공원을 걸었다. 돗자리에 누워서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았다. 어떤 생각을 할까 하다가 생각을 하지 않았다. 멍하게 하늘을 쳐다본지가 언제였을까. 무슨 결심을 한 것도 아닌데 머리를 짧게 밀었다. 군대가는 듯한 머리가 되었다. 낮설었는데 디자이너 선생님은 정말 잘되었다고, 반삭을 안해서 정말 다행이라고 이야기해주는데 다시 보면 볼수록 시원한 느낌이 들어 만족할 따름이다. 

 

힘겹게 한 주를 보내며 상처 받고 고생했던 영혼들을 달래 듯, 일요일은 단비 같은 느낌을 준다. 아이러니하게도 삶은 달콤한 일요일을 짧게 선물하고 치열한 삶을 한 주동안 선사한다. 그래서 더더욱 일요일이 기다려지는가 보다. 그리고 내게도 일요일이 있다는 사실이 감사할 따름이다. 


Guess what? Sunday's my favorite day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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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을 남기는 건 이런 느낌일까>

#1.

몇년전 팟캐스트를 진행할 때, 해외 자료를 참고하기 위해 다양하게 조사한 경험이 있다. 특정 사건 또는 이슈에 대해 엄청난 분량의 자료들이 꼼꼼히 기록되어 보관되고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는 것에 놀라움을 표할수 밖에 없었다. 정보의 파편들을 단순하게 나열한 자료부터 관여했던 실제 인물들의 인터뷰까지 여러 형태로 정리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기록을 남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았다. 

 

블로그를 시작한 것도 거창한 이유는 없다. 온전하게 기록을 남기기 위한 용도로만 사용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의 조그마한 일상의 이야기들이 주인공이 될 수도 있고, 순간순간의 감정이나 생각들을 남기거나, 좋아하는 기록들을 정리해서 보관하거나 이런 용도로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꾸준히 열심히 이곳에 나의 이야기를 남겨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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