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 2가 궁금하다면 여기로.

 

호요버스를 뒤로하고 이제 메인이라 불리는 4,5,6홀로 건너왔다. 도쿄 게임쇼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메인 부스들을 보자면 반다이남코, 코나미, 스퀘어 에닉스, 세가, 캡콤, 코에이 테크모, 부시로드가 핵심이라 할수 있겠다. 벌써부터 무엇을 볼 수 있을까 기대가 커진다. 

 

 

 스퀘어 에닉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스퀘어 에닉스는 역시 스퀘어 에닉스이다. 예상대로 <파이널 판타지 7: 리버스>가 메인으로 등장했다. 수십번 트레일러를 보았지만 현장에서 보는 트레일러는 색다르게 다가온다. 출시일은 2024년 2월 29일. 아직 5개월 정도 남았지만 기다려진다. 시연을 하고 싶었지만, 대기줄이 길어서 깔끔하게 포기. 이런 기회가 아니면 쉽지 않지만 아직 봐야할 부스가 많이 남아 있기에 트레일러를 본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스타오션>, <폼스타즈>, <인피니티 스트랏슈 드래곤 퀘스트 다이의 대모험>도 <파이널 판타지 7: 리버스>와 함께 홍보 대열에 올라와 있어서 많은 기대를 하게 되었다. 혹시나 싶어 스퀘어 에닉스에 다니는 지인께 도쿄 게임쇼에 와서 지금 스퀘어 에닉스 부스 구경하고 있는데 현장에 계신가요?라고 연락을 드렸더니 마침 부스 근처에 계신다고 만나자고 하신다. 지난 3월에 뵈었을 때는 스퀘어 에닉스 사무실 구경도 시켜주시고, 선물도 주시고, 항상 폐만 끼치는거 같은 느낌이다.

 

6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다시 뵈니 반가울 따름이다. 도쿄 게임쇼는 잘 구경하고 있는지, 부스는 어떤 느낌인지부터 시작해서 회사 생활은 어떤지, 가족은 잘 지내는지, 여러가지를 궁금해주셔서 감사하다. 나보다 나이가 많으심에도 이렇게 현역에서 오래 계시는 모습을 보면서 새삼 존경스러운 생각과 함께 닮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몇년전에 짧은 만남으로 알게된 인연이 이렇게 크게 다가오다니, 앞으로도 더욱 존경할 만한 분의 모습을 닮으면서 그 모습을 내 아이한테도 보여줘야지. 

 

 

세가 + ATLUS 

개인적으로 생각하면 이번 도쿄 게임쇼에서 가장 메인은 세가와 ATLUS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출품한 작품만 하더라도 16개로 아마도 도쿄 게임쇼 참가 업체 중 가장 클 것으로 보인다. 부스 규모도 가장 커서 4,5,6홀 어디서도 눈에 띄게 만들어서 사람들의 발길을 유혹한다.

 

언제적 소닉이라고 말하지만, 닌텐도에 마리오가 어울리듯이 세가에는 소닉이 가장 어울린다. 90년대 태어나서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특히 당시 <소닉 더 헤지혹>을 열심히 플레이한 꼬꼬마들이 지금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찾아주니까. 하지만 이렇게 되기까진 정말 오랜 시간 동안 암흑기를 겪어야만 했다.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소닉이 몰락하던 시점이 이 세가가 마지막 콘솔이었던 드림캐스트 생산을 중단 발표하던 시점과 엇비슷하여(링크: 눈물없이 볼 수 없는 세가의 역사) 그만큼 소닉에 대한 안타까움은 매우 컸다. 하지만 작년 <소닉 프론티어>로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며 부활하였고 이번에는 절치부심하여 <소닉 슈퍼스타즈>를 가지고 나왔기에 그만큼 잘될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점심 시간이 가까워져 배가 매우 고팠지만, 어찌 <소닉 슈퍼스타즈> 시연을 안하고 그냥 떠나겠는가. 대기열도 적당하다고 생각해서 일단 대기를 한다. 플레이까지는 30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데 기다리는 동안 소닉 응원팀?이 나와서 메인 스테이지에서 응원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흥이 났고, 다른 사람들의 게임 플레이를 보며 게임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배가 고픈것도 어느새 잊어버렸다. 드디어 시연을 하는 순간이 왔다. 배가 고파서인가 내가 못해서인가, 게임 플레이가 잘 되지 않았지만 게임 플레이를 시연할 수 있었다는 거 하나만으로 즐거웠다. 어린 시절의 그때의 나를 다시 체험하는 듯한 느낌. 게임 시연 기념으로 소닉에 등장하는 캐릭터 가면을 굿즈로 받았는데 너클즈 가면을 2개나 받았다. 소닉 가면 받고 싶어서 혹시 바꿀 수 있냐고 물어보았는데 안된다고 하네. 소닉 가면 받고 싶었는데. 힝. 

 

 

<소닉 슈퍼스타즈> 이외에도 세가는 <용과 같이 8>을 함께 선보였다. 게임보다는 부스걸이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와이프한테 부스걸만 나온 사진만 보여주니 어디 이상한데 간거 아니냐고 의심하며 물어본다. 그래서 배경까지 포함해서 다시 보내니 그제서야 믿는다. 게임 자체가 야쿠자가 메인이라 야쿠자가 메인으로 나올 줄 알았는데 이런 컨셉으로 부스를 꾸민 전시 기획자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게임에 대해서는 물론 제약이 있지만 이런 컨셉 기획에는 제약을 두지 않는 이런 분위기는 솔직히 말하자면 부럽다. 

만약 지스타에서 이런 컨셉으로 시도를 한다? 이런 시나리오가 그려지겠지.

 

1. 선정적인 의상, 여성의 성상품화에 대한 각종 민원 남발

2. 지스타 조직 위원회에서 부스걸 전원 퇴출 및 해당 회사에 대한 경고 

3. 여성가족부나 혹은 청소년 위원회 같은 곳에서 조사 시작

4. 언론에서 확대 생산해서 게임 업계에 대한 광범위한 비난 

5. 정치권에서 떡밥이다 싶어 논쟁화 시작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이런 시나리오가 자연스럽게 그려지니 그 누구도 이러한 컨셉을 시도하지 않겠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 본다. 하아. 그냥 답이 없다. 

 

 

<소닉 슈퍼스타즈>와 <용과 같이 8>을 보고 다른 게임을 보러 부스 다른 쪽으로 이동한다. 세가의 개발 자회사 ATLUS는 <페르소나3 리로리드>와 <페르소나 5 택틱카>를 선보인다. 역대 페르소나 시리즈 중 최고의 스토리를 선보인 <페르소나 3>의 리메이크작으로 이미 시연대는 사람들로 바글바글. 개인적으로 페르소나 시리즈를 좋아하기에 내년 2월에 발매를 기대하고 있고 어떤 평가를 받을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한정판 박스를 구매하고 싶었다. 굿즈도 맘에 들고, 피규어도 가지고 싶었고. 한정판에 무너지는 나란 남자. 하아. 일본 게임회사들을 비롯해서 해외 게임회사들이 자사 IP를 꾸준하게 발매하여 기존의 팬들을 만족시키고 (게임성과 퀄리티를 보장하는 조건), 리메이크 또는 리로디드 방식으로 새로이하여 신규 팬을 유입시키는 이러한 IP 활용은 짧은 시간 동안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본다. 회사에서의 의지, 상업적인 평가 및 결과, 강력한 팬층 등이 여러 요소들이 복합적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IP 구축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나가 결국은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가는 자체 IP 이외에도 세가 파트너들, 즉 퍼블리싱 타이틀도 함께 선보였다. 대표적으로 <스토커 2: 체르노빌의 유령>, <EA FC 24>, <페이데이 3>, <풋볼 매니저 2024>, <호그와트 레거시>, <귀멸의 칼날: 도전! 최고의 대원> 등 콘솔, PC, 모바일 모든 플랫폼을 아우르는 다양한 장르의 타이틀을 신규 공개 또는 라이브 서비스 중인 타이틀을 보여줬다. 

 

지스타에서는 보기 힘든 이러한 라인업들이 있는게 부러웠다. 지스타가 모바일 게임쇼, 유튜버쇼로 전락해서 아쉬운 점이 많이 있는데 도쿄 게임쇼에서는 그렇지 않다는게 한편으로는 부러우면서도 <P의 거짓>을 시작으로 우리나라 게임업계에서도 앞으로도  수많은 도전이 이뤄질 것이라는 한줄기의 희망을 보았다. 

 

 

세가 부스를 마지막으로 이제 점심을 먹으러 가야지. 점심은 간단하지만 푸짐하게 함바그 스테이크 및 새우 튀김을 주문한다. 콜라까지 포함 가격은 1820엔. 천천히 먹으면서 이제 무엇을 봐야지 생각을 해본다. 아직 코에이 테크모, 캡콤, 부시로드, 반다이 남코가 남았고 나머지 부스는 여유있게 봐야지. 

 

도쿄 게임쇼를 올때마다 느끼는 것은 (비즈니스 데이 한정) 식사 공간이 전시회장 내에 있다는 것은 지스타가 꼭 배워야 할 일이라 본다. 지스타를 매번 갈때마다 가장 아쉬운 것은 아니 개선해야 하는 것은 벡스코 내부에 편의점을 제외하고 그 어떤 식당도 없다는 것이다. 즉슨, 밥을 먹기 위해서는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이나 샌드위치를 사먹거나, 벡스코 건너편에 있는 식당으로 가야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식당이 많기는 하나(신세계 센텀까지 포함), 절대적으로 대규모 인원 수용이 어렵다는 것이다. 관람객들은 물론, 근처 일반 직장인들까지 겹치는 바람에 점심을 먹기가 거의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덜 붐빌만한 식당을 찾아서 다녀야하고 만에 하나 찾았다고 해도 음식 주문부터 음식이 나오기까지 기다리는 것을 따지면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다른 것은 둘째치고 비즈니스 하러 온 사람들이, 일분 일초가 아까운 상황에서 식당 찾으러 밖으로 돌아다닌다? 사람들이 많다? 게다가 주문이 오래 걸린다? 그런데 음식 퀄리티는 최악이다? 다시는 지스타에 오기 싫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B2C관 앞에 푸드 트럭이 있다고 하지만 거기도 이미 일반 관람객들로 사람들이 몰려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길거리에 앉아서 밥을 먹는다. 최악의 최악의 최악 그 자체이다. 

 

 

이렇게 오전 일정은 완료. 아직도 둘러볼 부스가 많이 있다. 어서어서, 도쿄 게임쇼는 계속된다. 

 

2001년 1월 31일 오후 6시 30분, 도쿄 치요다구 마루노우치에 위치한 팰리스 호텔(현: 팰리스 호텔 도쿄)은 사뭇 무거운 분위기였다. 새해가 시작된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에 시내 곳곳은 신년을 환영하는 들뜬 분위기와 기대감으로 가득차 있었으나 유독 이곳만큼은 마치 한해를 마무리하는 듯한 무거움만이 느껴졌다. 약 8일전이었던 1월 23일에 니혼게이자이신문을 통해 보도된 내용의 사실 확인을 위해 수많은 취재진이 몰렸고 기자회견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보도자료가 배포가 되어 보도 내용은 기정사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임원들의 입을 통해 보다 정확하게 확인을 하고 싶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문의 중심에 서있는 회사의 임원들이 입장을 하고 차례대로 단상에 자리를 잡았다. 사토 히데키 대표이사 겸 부사장, 카야마 사토시 특별 고문, 나가이 아키라 전무이사, 오야마 토시미치 상무이사, 나카무라 슌이치 상무이사, 야마자키 쇼이치 상임이사 순이었다. 동시에 웅성웅성했던 기자회견장은 카메라 플래시 소리로만 가득찼고 사토 히데키 대표이사는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세가의 대표이사 사토 이데키입니다. 방금 논의한 바와 같이 오늘 저는 가정용 비디오 게임 콘솔 생산을 중단함을 알려드립니다. 당사는 2001년 1월 31일 오전에 개최된 이사회에서 2001년 3월 31일에 끝나는 회계연도 말에 드림캐스트 가정용 비디오 게임 콘솔의 생산을 중단하기로 결의하였습니다"

 

닌텐도라는 라이벌을 넘는가 싶던니만 소니라는 신흥 강자에 밀려 영원한 2등에 머룰러야 했던, 하지만 어찌보면 콘솔 역사상 가장 치열한 도전자라 할 수 있었던 세가가 콘솔 시장에서의 패배를 인정하고 철수하겠다는 공식적인 선언이었다. 그렇게 세가는 짧았던 영광과 길었던 치욕만을 남긴채 콘솔 시장에서의 도전을 마무리하였다.

 


 

 

미국인에 의해, 미국인을 위한

다시 시간을 되돌려 1940년 5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참일 때, 미국인 사업가 어빙 브롬버그는 미군을 대상으로 사업 기회를 발견하였다. 미국이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면 결과적으로 미군 병력이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고 기지에 주둔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여가 시간을 어떻게든 즐기고 싶어하는 수요가 발생할 것이라 보았다. 그는 자신의 아들 마틴 브롬버그(후에 마틴 브롬리로 개명)와 아들의 친구 제임스 험퍼트를 사업에 끌어들여 미군에게 슬롯머신을 비롯하여 동전으로 작동하는 오락 기기를 제공하고자 하와이에 스탠다드 게임즈(Standard Games)를 설립하였다. 그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고 전쟁이 치열해질수록 사업은 나날이 번창하였다.

 

1945년 5월, 전쟁이 막바지에 이를 시점에 어빙 브롬버그는 스탠다드 게임즈를 청산하고 사업을 정리하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46년 1월, 동일한 사업을 하는 새로운 회사인 「하와이 서비스 게임즈(Service Games)」를 설립하였다. 비록 전쟁은 끝났으나 여전히 군대에서 엔터테인먼트 요소로 수요가 꾸준히 발생하였고 사업은 순탄하게 흘러갔다. 하지만 1940년대 후반부터 미국 전역으로 불법 도박이 기승을 부리고 빠른 속도로 확산되며 많은 사회적 문제가 야기되었다. 특히 불법 도박을 통해 흘러나온 자금이 범죄 조직의 운영 자금 또는 불법적인 사업에 사용되며 조직간의 이권 다툼으로 이어지는 등 여러 부정적인 문제가 초래되었다. 정치권에서도 불법 도박으로 야기된 각종 문제에 심각성을 인지하였으며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였고 1951년 '존슨 법(Johnson Act)라 불리는 '도박 기기의 운송 및 이동에 관한 법(The Transportation of Gambling Act of 1951)' 제정으로 이어졌다. 사전에 승인 받지 않거나 허가 없이는 슬롯 머신을 비롯하여 각종 도박 기기들의 미국 각 주간(interstate) 운송을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연방법으로 불법 사업자들의 도박 기기 획득을 전면 차단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어빙 브롬버그)

 

어빙 브롬버그와 그의 아들 마틴 브롬버그는 이러한 강력한 제제로 인하여 미국에서 사업을 지속하기에는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대신 일본으로 눈을 돌렸다. 당시 일본은 태평양 전쟁이 끝난지 얼마되지 않았기에 연합군의 점령 및 관리하에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할 때, 일본에 주둔 중에 있는 수많은 주일 미군과 이들을 대상으로 관련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미국인들의 엔터테인먼트 수요가 클 것이라 생각하였기에 이곳에서 기회를 발견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1953년 서비스 게임즈는 일본에 자회사를 설립하였고 사명도 일본 서비스 게임즈(Service Games of Japan)」으로 정하였다. 일본에서의 사업은 기대 이상이었다. 한국 전쟁의 영향으로 일본이 전쟁물자 및 보급을 위한 후방 지역이 되고 연합군의 대기 장소로 활용되면서 사업은 더욱 확장이 되었다. 사업이 안정화되며 어빙 브롬버그는 일본 이외의 지역을 눈을 돌렸고 한국, 필리핀, 남베트남 등 아시아에서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국가로 사업을 확장하였다.

 

꽃길만 걸을 줄 알았던 사업의 행보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1959년부터 1960년 사이, 미국 정부는 불법 도박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당시 케네디 행정부는, 특히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이 나서서 불법 도박 확산을 차단하고 엄정한 처벌을 내리고자 하는 강경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 정부는 일본 서비스 게임즈가 미군 기지에서 사업 수주를 위해 각종 뇌물을 제공하고 세금을 탈생하는 등 불법적인 활동을 했다는 정황을 포착하여 중점 관리 대상으로 지정하였다. 다행히 여러번의 소명 기회를 통해 뇌물 수수 및 탈세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미군은 부정적인 시선을 고려하여 일본과 필리핀의 미군 기지에서 이들의 사업을 전면 금지하였다. 핵심 지역에서 사업이 불가능해진 일본 서비스 게임즈는 향후 방안에 대하여 모색하다 겨룰 1960년 5월 31일 회사 청산을 결정하였다. 다만, 일본 서비스 게임즈의 핵심 사업인 유통과 생산을 분할하여 각각 전담할 수 있도록 별도의 회사를 6월 3일 창립하였다. 그렇게하여 탄생한 것이 유통만을 담당하는 일본 오락 물산(日本娯楽物産)」과 생산만을 집중한 「일본 기계 제조(日本機械製造)」다. 1961년, 두 회사는 사업 전략의 일환으로 일본 서비스 게임의 자산을 인수하는 결정을 하게 된다. 다만 인수 과정에서 서비스 게임즈라는 명칭과 익숙함의 가치가 미군 내에서 높았기에 해당 사명을 유지하고 사용하는 조건이 있었고 이를 수용하면서 창립자였던 어빙 브롬버그와 마틴 브롬버그는 140만 달러에 서비스 게임즈의 자산을 넘기는 결정을 하였다. 그리고 3년 뒤인 1964년, 일본 오락 물산과 일본 기계 제조는 합병을 하게 된다. 

 

일본을 사로 잡은 어느 미국인

일본 서비스 게임즈가 나날이 성장을 거듭하고 있을 무렵, 일본에서 주일 미군으로 주둔 중에 있던 뉴욕 출신의 미 공군 장교 데이비드 로젠은 전역 이후 무엇을 해야할지 많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당시 한국 전쟁 특수로 경제성장에 가속도가 붙고 있는 것을 목격한 그는 이러한 성장의 열차에 탑승하여 기회를 찾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1952년 전역을 하고 몇년 후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따서 로젠 엔터프라이즈(Rosen Enterprise)」를 만들었다. 당시 일본은 신분 확인, 고용 증명 등의 목적으로 사진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어서 여기서 사업 아이디어를 발견하여 즉석 사진 기계를 미국에서 수입하여 사업에 활용하였다. 경제 성장이 가져다 준 일상의 여유는 즐길 거리를 찾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욕구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을 인지한 데이비드 로젠은 1957년 시카고로 날아가서 당시 동전 기반 오락 기기를 만드는 업체들을 찾아다녔다. 도박과의 전쟁으로 성장이 멈춰버린, 즉 죽어가고 있는 동전 기반 오락 기기 업체들은 데이비드 로젠의 제안을 받아들여 일본인들을 위한 게임 기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데이비드 로젠)

 

데이비드 로젠의 판단은 정확했다. 파칭코, 캬바레 등 성인만의 전유물이었던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게임 기기는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부담스럽지 않은 신선함을 제공했다. 게다가 영화 배급사였던 토호(東宝株式会社)」의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그들의 극장 입구 또는 로비쪽에 아케이드 게임 기기를 설치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였다. 특히 에어건을 사용하여 사냥을 하는 게임과 슈팅 게임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미국의 오락 기기 업자들에게도 데이비드 로젠은 구원자 같은 존재였다. 판매할 곳이 사라져 창고에 쌓아둘 수 밖에 없었던 각종 오락 기기들의 재고를 처리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업 시장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일본 통상산업성(현: 경제산업성)에서 수입 허가를 받아야만 했고, 오락 기기를 수입하는데 있어 기기 가격의 200%를 관세로 납부하는 등 적자가 예상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기를 들여오고 2달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하였다. 그만큼 일본 시장에서의 수요가 높았다. 데이비드 로젠에 따르면 사업이 정점에 이를 당시에는 당시 일본에 자신의 아케이드 기기가 없었던 곳이 없었을 정도로 사업은 호황을 누렸다고 회상한다.

 

로젠 엔터프라이즈는 1957년부터 약 2년간 아케이드 게임 시장에서 독점을 누렸다. 물론, 언제까지나 독점은 어려웠다. 수요는 계속 증가하였으나 공급이 부족하였기에 경쟁자들이 아케이드 게임 시장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여러 경쟁자 중, 가장 대표적인 회사가 타이토(Taito, 株式会社タイトー)와 일본 오락 물산」 이었다. 두 회사는 아케이드 게임 기기와 비슷한 슬롯 머신 또는 쥬크 박스의 유통과 생산 경험이 풍부하였고 회사 규모 면에서도 로젠 엔터프라이즈와 비교할 수 없었다. 따라서 이들이 아케이드 게임 시장에 진입하는데는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합병 그리고 세가의 탄생

경쟁이 가속하되던 1964년, 데이비드 로젠은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온 일본 오락 물산의 마틴 브롬버그와 만나 종종 대화를 나누었다. 이러한 대화는 단 한번으로 끝나지 않고, 이후로도 비정기적으로 계속 이어졌다. 캐주얼한 대화는 점차 경영진들이 참여하는 협상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 1965년 7월 15일, 두 회사는 전격적으로 합병한다는 소식을 발표하였다. 당시에만 하더라도 로젠 엔터프라이즈와 일본 오락 물산은 일본에서 동전 기반으로 운영하는 오락 기기 사업에서 가장 큰 회사들이었다. 로젠 엔터프라이즈는 미국와 일본에서 넓은 유통망을 보유하고 수입에 대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 일본 오락 물산은 서비스 게임즈와의 제휴를 바탕으로 수많은 오락 기기 라인업과 이를 생산하는 공장 그리고 풍부한 운영 경험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합병은 두 회사에게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해줄 것이라 보았으며 그에 따른 막대한 이익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되었다. 

 

 

합병으로 탄생하는 새로운 회사의 이름은 「세가 엔터프라이즈(Sega Enterprise)」로 결정되었다. 일본 오락 물산이 브랜드 이름으로 계속 사용하던 서비스 게임즈의 앞 부분과 로젠 엔터프라이즈의 뒷 부분을 각각 합친 결과였다. 그리고 데이비드 로젠은 신생 회사의 대표이사이자 CEO가 되어 앞으로의 운영을 맡게 되었다. 그렇게 세가가 비디오 게임의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To be continued. 


 

출처

1. "Did you know that Sega was started by an American?", Next Generation, 1996년 12월 23일

2. "Meet the four Americans who built Sega", Kotaku, 2011년 4월 4일 

3. "IGN Presents the History of SEGA", IGN, 2009년 4월 21일

4. "セガが家庭用ゲームハード事業から撤退。ドリームキャストの製造を終了", famitsu, 2022년 3월 31일

5. "セガがDC製造中止を含めた今後の経営戦略を発表!", dengekionline, 2001년 1월 31일

6. "不安を抱えつつもソフト開発力に賭けるセガ", itmedia.co.jp, 2001년 1월 31일

7. "JAPAN: SEGA ANNOUNCES FUTURE OF DREAMCAST", AP, 2001년 1월 31일

5. "Service Games: Rise and Fall of Sega",Sam Pettus, 2013년 1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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