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8월 31일: 도쿄 도착 및 요코하마에서 우타다 히카루 'Science Fiction' 공연 보기2
2. 9월 1일: 오전에 간토다이 이치 고교 탐방, 그리고 교토로 이동해 교토 국제 고교 방문
3. 9월 2일: 한신 고시엔 구장 관람 후 100주년 인증 후 간사이 공항으로 이동해 귀국

 

 

2박 3일의 여행 일정은 원래 이랬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고시엔 우승 고교 방문하기. 그래서 고시엔 준결승에서 교토 국제 고교와 간토다이 이치 고교를 응원했다. 순전히 학교 탐방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혹시나 아오모리 야마다 고교 또는 카미무라 가쿠엔 고교가 결승에 진출했다면 학교 방문은 불가능했었을 것이다. 아오모리 야마다 고교는 도호쿠 신칸센을 타고 가볼 생각을 했었겠지만, 카미무라 가쿠엔 고교는 망설임도 없이 포기했었을 것이다. 여튼 교토 국제 고교와 간토다이 이치 고교가 결승전에 진출했고 고시엔 구장 개장 100주년이라는 기념을 위해 2박 3일 동안 도쿄, 교토, 오사카를 전부 볼 수 있다는 희망에 가득차 있었다.

 

 

[고시엔 후기] 고시엔 우승 팀, 게이오 고교 탐방기.

2023.09.23 107년만에 고시엔 우승을 한 게이오 고교를 직접 방문했다. 고시엔을 보면서 언제쯤 우승 학교를 탐방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우연치 않게 가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게이오 고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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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 바램과는 달리, 출국 전부터 일본 주요 뉴스 헤드라인은 태풍 산산에 관한 내용으로 가득차 있었다. 태풍 산산이 오는 것은 이미 뉴스를 통해 알고 있었고, 내가 가는 시점에 상륙하는 것도 인지하고 있어 큰 동요는 하지 않았다. 올해 일본을 갔었을 때마다 비가 왔으니 이번에도 그정도 수준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일본 큐슈 지방에 상륙한 이후, 산산의 이동 속도는 느려졌고 엄청난 양의 비를 쏟아 부으면서 말 그대로 교통을 마비시켰다. 콘서트 3일전이였나? 이번 여행의 주된 목적이었던 우타다 히카루의 카나가와 콘서트도 태풍 상황에 따라 취소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공지도 있었으니 산산의 영향이 어떤지 감히 느낄 수 있었다. 혹시 교토를 못가는 건 아닌지라는 불안도 있었지만, 신칸센이라면 갈 수 있을거야라는 일말의 희망은 있었다. 

 

걱정한 것과는 달리 도쿄의 비는 생각보다 많이 내리지 않았다.우타다 히카루 콘서트도 정상적으로 진행 되었다. 이정도 비라면 내일 교토를 갈 수 있겠다는 내심 들었다. 콘서트를 가기전 보았던 뉴스로는 도카이도 신칸센은 여전히 미시마역 사이와 신오사카역 사이는 전면 운행 중단 중. 계획이 뒤틀어질거 같은 불안감이 생겼지만 비가 그다지 심하게 느껴지지 않아 내일은 괜찮겠지라고 콘서트에 같이 간 신이치상에게 말했더니, 신이치상은 절대 그렇지 않을거야라고 웃으면서 답해주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JR 도카이 홈페이지에 접속을 해서 신칸센 상황을 보니 어제처럼 신칸센 운휴라는 안내가 메인 페이지에 떠있었다. 설마 오늘도?라는 생각이 가득해서 아키하바라를 가면서 도쿄역을 지나가보았다. 아니나다를까, 홈페이지와 동일하게 '도카이도 신칸센 전면 중지'라는 안내가 전광판을 통해 계속 나오고 있었다. 그나마 어제보다 나은 건, 미시마역까지는 코다마 등급으로만 제한적으로 운행하고, 이후부터 나고야역까지는 운휴, 그리고 신오사카역까지는 코다마 등급만 평상시보다 감소하여 운행한다고 것이었다. 어떻게든 신칸센을 타야겠다고 줄 서 있는 일부 관광객들을 제외하고 신칸센 출입구는 말 그대로 한산 그 자체였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아쉬움이 가득한 탄식이 나왔다. 호쿠리쿠 신칸센을 타고 이동하는 방법도 고려해보았지만, 일정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했기에 결국 교토 국제 고교와 한신 고시엔 구장 방문은 포기하였다. 

 

숙소에 짐을 두고 아키하바라에 도착하니 잠시 그쳤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차라리 여름 장마처럼 확 쏟아지면 좋을텐데 그렇지 않으니 불쾌지수만 높아진다. 간토다이 이치 고교가 있는 신코이와역까지는 6정거장. 그리 멀지 않지만 더위와 습도 그리고 피로 때문에 움직이는게 귀찮아지고, 이런 날씨에 정말 가야하나라는 생각만 가득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교토 국제 고교를 못가니 간토다이 이치 고교는 꼭 가야지라는 마음으로 움직였다.

 

신코이와역에서 내려 개찰구를 통과하니 간토다이 이치 고교의 준우승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붙여져 있었다. 고시엔이 끝난지 2주 정도 지났지만, 아직도 축하하는 모습을 보니 좋아보였다. 학교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든 없든,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학교가 전국 대회에서 달성한 대단한 업적을 함께 기뻐한다는 것에 좋다고 느껴졌다. 매일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일상으로 느껴지겠지만 나에게는 흥미로우면서 관심있는 모습으로 비쳐졌다.  

 

간토다이 이치 고교는 신코이와 역에서 도보로 약 10-15분 거리로 나온다. 남쪽 출구로 나오니 '신코이와 뤼미에르 상점 거리'가 정면에 보였다. 신주쿠구, 시부야구 등 상업 지구와는 다르게 전형적인 거주 지역이기 때문에 이곳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현지 주민들이었다.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여행의 묘미는 시장 구경인 듯 싶다. 내가 사는 문화권과 다른 배경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일상을 보낼까를 상상한다면 시장에서 그 정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작년 게이오 기주쿠 고교를 방문했었을 때도 히요시 상점 거리가 독특하게 보여졌고 올해는 이곳이 그렇게 감상이 되어진다. 관광객이 아닌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하기에 물건은 새롭거나 다채롭지 않지만 오래된 투박함이 좋게만 보였다. 9월이 막 시작했지만 벌써부터 할로윈 용품들을 판매하는 것을 보니 이제 곧 가을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더 걸어가니 저 멀리 커다한 현수막이 자랑스럽게 걸려져 있는게 눈에 보였다. 

 

『제 106회 전국고등학교야구선수권대회 

 준우승 간토다이 이치 고교

주최 / 아사히신문사 · 일본고교야구연맹』

 

 

준우승이어도 이렇게 기뻐하고 좋아하는데, 만약 우승이었다면 얼마나 더 자랑스러워 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매일 이곳을 거쳐가는 간토다이 이치 고교 학생들을 비롯해서 학부모들, 학교 관계자들이 이렇게 상점회에서 현수막을 걸어준 것만으로도 엄청난 자부심이 생기지 않았을까 느껴졌다. 현수막뿐이 아니었다. 동도쿄 대표로 고시엔 본선 출장을 축하하는 포스터도 여전히 여러 가게에 붙어 있다보니 새삼 고시엔이라는 

 

'신코이와 뤼미에르 상점 거리'를 벗어나 주택가로 들어섰다. 구글맵 기준으로 5분만 걸어가면 간토다이 이치 고교가 나온다. 일본 주택가를 거닐때마다 항상 느끼지만 정말 조용하다. 지난번 앨리샤가 살고 있는 초후를 갔었을 때도 느꼈던 것과 비슷한 분위기를 경험한다. 역 주변을 제외하고는 사람이 다니는 것을 보기가 힘드니, 조용함을 넘어 쓸쓸함이 들 정도이다. 내가 걷는 소리조차도 민폐가 될 것 같다는 생각도 스쳤다. 그럼에도 곳곳에 보이는 작은 가게 등에서는 아직까지도 간토다이 이치 고교의 고시엔 본선 출장을 축하하는 포스터 등이 붙여져 있어 쉽게 눈에 띄었다. 확실컨데 간토다이 이치 고교 재학생들이 자주 오거나, 재학생 부모 또는 졸업생이 운영하고 있거나, 순수하게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학교이니 응원하고 싶어 붙여 놓았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잠시 걸으니 간토다이 이치 고교의 모습이 나타났다. 1925년 설립된 간토다이 이치 고교의 시작은 실업 고교였다. 상업과 계열로 학생 모집을 하고 이후 전기과, 기계과, 건축과, 공업과 계열이 추가되며 규모를 점차 확장하였다. 하지만 1973년부터 일반 학교로의 전환을 모색하였고 동시에 실업 계열 학과의 모집을 차레로 중단하였다. 그리고 2012년에 공업과 계열 모집 중단을 끝으로 일반 고교로의 전환을 완료하였다. 올해는 남녀 공학이 된지 20주년이 된 해이며, 2025년 4월에는 학교 설립 100주년이 되기에 올해 고시엔에서는 다른 학교보다 남다른 목표가 있었을 것이다.

 

간토다이 이치 고교 야구부는 이곳 도쿄에 위치하고 있지 않다. 차를 타고 약 40분 거리에 있는 치바현 시로이시에 야구부 전용 기숙사와 인조잔디 구장 1개, 일반 구장 1개가 있다. 간토다이 이치 고교처럼 인구 밀도가 매우 높은 대도시권에 위치한 학교의 야구부는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학교와 멀리 떨어져 있다. 도심에 야구부 전용 훈련 부지를 구하고 시설을 투자하는 것에 막대한 비용이 투입될 뿐더러, 늦은 시간까지 훈련을 하는 야구부 특성상 환경적으로도 제한적이기에 이와 같은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간토다이 이치 고교가 설립된 1925년 사진을 보면 학교 주변은 이미 현재와 같이 일반 거주지로 가득채워져 있었다. 따라서 게이오 기주쿠 고교처럼 학교 내에 야구부 훈련 그라운드가 있는 것은 매우 특별하다고 볼 수 있다. 

 

학교 정문은 현재 주차장 공사로 인해 접근 불가. 아무래도 후문으로 가면 학교를 더 자세히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5분 정도 걸었다. 작년 게이오 기주쿠 고교 탐방을 시작으로 이렇게 고시엔에서 우승 또는 준우승하는 학교를 탐방하는 것도 점차 재미가 생긴다. 더불어 관광객으로서 전혀 가볼 수 없는 지역을 구경하는 즐거움도 있으니 내년에는 8강 이상 진출 고교 방문이라는 컨텐츠도 심각하게 고려해봐야겠다. 

 

후문에 도달하니 고시엔 준우승 기념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2015년에 4강에서 아쉽게 탈락했지만 9년이 지난 올해는 준우승을 했으니-그것도 1점차로 아쉽게-당연히 학교로서는 경사를 축하하지 아니할 수 없었을 것이다. 교내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사전 허가를 받지도 않은 전혀 관계없는 일반인이었기에 학교 밖에만 머물렀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후문 경비실의 나이 드신 경비원에게 "고시엔 준우승 축하한다. 준우승이라 아쉽다"라고 말했더니 "감사합니다"라고 웃으면서 대답을 해주셨다.  

 

 

[대회 14일차] 결승 - 68년만에 천년수도로 돌아온 진홍의 대우승기

三振!!史上初、 決勝戦の延長タイブレークを制しました。甲子園 100年の夏、京都国際 初優勝!! 求心に残るダブルエースを擁し、高校野球の原点に立ち返る野球で栄冠を手にしま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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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막을 자세히 보니 '우승'라고 급히 붙힌 흔적이 보였다. 고시엔 우승을 예상하고 현수막을 만들었다가 준우승이 되다보니 급하게 '준'이라는 단어를 작게라도 붙여서 (크게는 못하고) 축하고 싶었던 마음이었나보다. 결승 경기가 한쪽의 우위가 아닌 연장까지 가며 1점차 승부로 끝났을 정도로 치열한 접전이었으니 학교측도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결과로 인해 급작스럽게 취한 조치로 보여서 그런지 더욱 준우승이 더욱 안타깝게만 느껴졌다. 

 

먹구름으로 가득했던 하늘이 갑자기 비구름으로 확연하게 바뀌는게 보여 학교 구경은 여기서 마무리하였다. 계획대로였다면 오전에 이곳을 보고 교토로 갔었을텐데 그러지 못한게 많은 아쉬움이 들었다. 날씨만 괜찮았다면, 아니 태풍만 아니었다면 어떻게든 교토 국제 고교를 갔었을텐데. 통제 불가능한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서는 뛰어난 인간의 기술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진리를 다시 한번 느꼈다. 그래도 준우승한 간토다이 이치 고교를 방문한 것만으로도 좋았다. 올해 멋진 경기를 선보인 간토다이 이치 고교 야구부 선수들에게 마음속으로 고생했다라는 생각을 남기며 올해 고시엔 준우승 고교 방문을 끝냈다.

 

三振!!史上初、 決勝戦の延長タイブレークを制しました。甲子園 100年の夏、京都国際 初優勝!! 求心に残るダブルエースを擁し、高校野球の原点に立ち返る野球で栄冠を手にしました。
삼진!! 역사상 최초로, 결승전 연장 타이브레이크를 제압하였습니다. 고시엔 구장 100년의 여름에, 교토 국제 국제 고교가 첫 우승을 하였습니다. 가운데에 새긴 더블 에이스를 품고, 고교야구의 원점으로 다시 돌아온 야구로 우승을 손에 쥐었습니다. 

    - 니시무라 잇키가 헛스윙으로 마지막 타자의 삼진을 잡는 순간, 캐스터의 우승콜 
 
 

"68년". 교토부 대표 고교가 천년수도 교토에 '진홍의 대우승기'를 다시 가져오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제 38회 대회였던 1956년, 류쿄헤이안 대학 부속 고교가 우승한 이래 반세기가 넘어서야 교토 국제 고교가 고시엔에서 최초로 우승하였다. 승리가 더욱 뜻깊었던 이유는 고시엔 역사를 통틀어 사상 최초로 한국계 학교가 정상에 등극하였기 때문이다. 야구부가 창립된 1999년, 제 81회 대회 교토부 지역 대회에 출전했던 1회전에 탈락한 미미한 실력의 학교가 2024년 제 106회 대회에서 3,715개 고교의 경쟁을 뚫고 일본 제일이 되었다. 

[1999년 야구부 창립 후, 처음 출전한 고시엔 교토부 대회 예선]
[2024년 사상 최초로 고시엔 우승]

 
 


 
 
1. 경기 결과: 교토 국제 고교 (우승)

학교명 1 2 3 4 5 6 7 8 9  10 R H E
교토 국제 고교 (교토) 0 0 0 0 0 0 0 0 0 2 2 9 2
간토다이 이치 고교 (동도쿄) 0 0 0 0 0 0 0 0 0 1 1 4 0

 

 
2. 경기 내용
 교토 국제 고교 

교토부의 여름 고시엔 결승 기록
연도 (대회) 학교명 스코어 상대교 결과
1915년 (제1회) 교토부립 제2 중학교 2-1 아키타 중학교 우승
1921년 (제7회) 교토부립 제1 상업중학교 4-16 와카야마 중학교 준우승
1928년 (제14회) 헤이안 중학교 1-3 마츠쇼 중학교 준우승
1933년 (제19회) 헤이안 중학교 1-2 추코 상업 학교 준우승
1936년 (제22회) 헤이안 중학교 1-9 기후시립 상업 학교 준우승
1938년 (제24회) 헤이안 중학교 2-1 기후 시립 상업 학교 우승
1946년 (제28회) 교토부립 제2 중학교 0-2 나니카 상업 학교 준우승
1951년 (제33회) 류코헤이안 대학 부속 고교 7-4 쿠마가야 고교 우승
1956년 (제38회) 류코헤이안 대학 부속 고교 3-2 기후 시립 상업 고교 우승
1981년 (제63회) 교토 상업 고교 0-2 호토쿠 가쿠엔 고교 준우승
1997년 (제 79회) 류코헤이안 대학 부속 고교 3-6 치벤 가쿠엔 와카야마 고교 준우승
1998년 (제80회) 교토 세이쇼 고교 0-3 요코하마 고교 준우승
2005년 (제87회) 교토 외대 니시 고교 3-5 토마코마이 고교 준우승
2024년 (제106회)  교토 국제 고교 2-1 간토다이 이치 고교 우승

 

- 결승전의 수훈 선수를 뽑자면 당연히 나의 원픽은 나카자키 루이(中崎琉生, 3학년). 9이닝 동안 104개의 공으로 간토다이 이치 고교 타선을 피안타 4개, 탈삼진 5개, 무실점으로 깔끔하게 막아내며 에이스로서 진면목을 여실히 보여줬다. 9회말 만루 상황 이전까지는 어떤 주자도 2루 이상 진루를 허용하지 않는 안정된 피칭으로 프로에서 주목하고 있는 투수라는 것을 각인시켰다. 허용한 4개 안타 중 단 하나만이 외야로 나갔을 뿐, 나머지는 내야 안타 등으로 높은 제구력을 보여주었다. 니시단 고교와의 3회전에 선발로 등판하여 활약을 펼칠 때, 이를 지켜본 현 닛폰햄 감독이자 니시단 고교 OB였던 '신조 츠요시'는 나카자키 루이를 극찬하였다. 좌타자를 변화구로 공략하는 방법이나, 극도의 긴장이 넘치고 있음에도 전혀 떨리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칭찬하였다. 그러한 모습을 다시 결승전에서 보여주었다. 

 

나카자키 루이가 교토 국제 고교로 진학한 배경에는 2021년 교토 국제 고교를 4강으로 이끈, 당시 에이스였던 모리시타 류다이(현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투수)의 영향이 컸다. 당시 1학년이었던 나카자키 루이는 팔꿈치 부상으로 피칭 연습을 하지 못하지만 회복 훈련을 하며 묵묵히 팀을 이끄는 선배의 등을 바라보며 에이스로서의 자격이 무엇인지를 배웠다. 그리고 1년 뒤에 야구부에 입부한 니시무라 잇키(西村一機, 2학년)도 모리시타 류다이를 동경한 수많은 사람들 중 한명이었다. 입부 후에는 니시무라 잇키는 모리시타 류다이의 등이 아닌 나카자키 루이가 팀을 하나로 만드는 뒷 모습을 보며 스스로 성장했다고, 그의 존재에 감사를 항상 말하고 다녔다. 그렇게 두명의 에이스가 있는 팀은 서로 경쟁하며 함께 성장해왔다. 

 
정규 이닝이 끝나고 2006년 이래 사상 두번째이자 2018년 연장 타이브레이크가 적용된 첫 결승 연장. 10회초 교토 국제 고교의 공격. 첫 타자 니시무라 잇키가 우전 안타를 치며 무사 주자 만루가 되었다. 다음 타석에는 리드오프 카네모토 유고(金本祐伍, 3학년)가 들어섰다. 유일한 한국계이자, 주전 멤버 중 교토부 출신 5명 중 한명이자, 이번 대회 0.360 타율을 기록 중에 있어 그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풀카운트 접전 끝에 6구째 공이 낮게 들어오며 볼로 판정되는 순간, 카네모토 유고는 힘껏 손을 쥐며 환호하며 1루로 출루하였고 3루 주자는 웃음을 지으며 홈으로 들어왔다. 전광판에 길게 늘어져 있던 0의 행진이 1로 바뀌며 경기는 교토 국제 고교의 분위기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공격에서 미타니 세이야(三谷誠弥, 3학년)가 타석에 올라왔다. 중학교 3학년때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며 야구를 놓을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너라면 할 수 있다'라고 항상 말해준 아버지의 말을 기억하며, 아들이 고시엔에 출장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아버지의 꿈을 이뤄주고 싶었다. 그리고 우익수 깊이 날아가는 희생 플라이로 승부를 결정 짓는 1점을 추가로 만들어냈다. 

 

 
교토 국제 고교의 10회말 수비가 시작되었다. 9이닝을 책임졌던 나카자키 루이 대신 니시무라 잇키가 구원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수비 실책으로 무사 만루 상황이 되었고, 니시무라는 다음 타자를 땅볼로 유도해 아웃을 잡았지만, 3루 주자가 홈을 밟아 1점을 내주었다. 이로 인해 니시무라의 23이닝 연속 무실점 기록이 깨졌으나, 그는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1점 차로 쫓기는 상황에서, 여전히 1사 1, 3루였기 때문에 추가 실점 방지에 집중했다. 간토다이 이치 고교의 1번 타자에게 연속 4개의 볼을 허용해 다시 만루 상황이 되었고, 이어 2번 타자의 땅볼이 2루수 미타니 세이야 앞으로 향했다. 미타니는 공을 잡자마자 홈으로 송구했고, 포수 오쿠이 소다이(奥井颯大, 3학년) 는 홈으로 파고드는 3루 주자를 태그 아웃시키며 추가 실점을 막았다. 하지만 여전히 만루였고, 이제 우승까지 아웃 카운트 하나만 남은 상황. 니시무라는 간토다이 이치 고교의 3번 타자 사카모토 신타로(坂本慎太郎, 2학년)를 상대하게 되었다. 첫 번째 공은 스트라이크, 두 번째는 볼, 세 번째도 스트라이크. 그리고 마지막 4구째, 직구가 아닌 슬라이더를 바깥쪽 코스로 던졌다. 타자는 충분히 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배트를 휘둘렀지만, 공은 포수 미트에 빨려 들어갔다. 헛스윙 삼진, 쓰리아웃.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 니시무라 잇키는 양손을 번쩍 들었고, 모든 선수들이 마운드로 뛰어나와 사상 최초고시엔 우승이라는 기쁨과 즐거움을 만끽하였다. 

 
1915년 교토부 제2중학교(현 토바 고등학교)가 고시엔 첫 우승(당시 명칭 전국중등학교선수권대회)을 기록하고, 1924년 히로시마 상업 고교가 고시엔 구장에서 첫 우승을 달성한 이래 총 63개 학교가 고시엔에서 첫 우승을 하였다. 그러한 역사의 순간에 교토 국제 고교가 사상 64번째로 고시엔의 첫 우승 학교가 되어 100주년을 맞이한 고시엔 구장에서 새로운 궤적을 만드는 페이지에 가장 처음으로 이름을 새겼다. 
 
[교토 국제 고교 선수별 고시엔 성적] 

투수

투수명 ERA 이닝 투구수 피안타 탈삼진 자책  WHIP
나카자키 루이 1.45 31 441 26 33 5 1.03
니시무라 잇키 0.00 24 339 11 14 0 0.92

 
타자 

등번호 타자명 타율 타수 안타 타점 출루율 장타율 OPS
1 나카자키 루이 0.308 13 4 0 0.308 0.308 0.616
 2 오쿠이 소다이 0.294 26 5 2 0.429 0.412 0.841
 3 타카기시 에이타로 0.188 18 3 1 0.278 0.188 0.466
 4 미쿠니 세이야 0.360 29 9 1 0.393 0.360 0.753
 5 시미즈 우타 0.208 26 5 1 0.208 0.208 0.416
 6 후지모토 하루키 0.391 27 9 4 0.440 0.565 1.005
 7 카네모토 유고 0.360 29 9 4 0.429 0.440 0.869
 8 사와다 하루토 0.375 27 9 1 0.423 0.375 0.789
 9 하세가와 하야테 0.400 26 8 4 0.455 0.450 0.905
 11 니시무라 잇키 0.571 10 4 2 0.571 0.714 1.285
13 핫토리 후우마 0.100 10 1 2 0.100 0.100 0.200

 

 

간토다이 이치 고교

도쿄의 여름 고시엔 결승 기록
연도 (대회) 학교명 스코어 상대교 결과
1916년 (제2회) 게이오 보통 중학교 6-2 오사카 이치오카 중학교 우승
1920년 (제6회) 게이오 보통 중학교 0-17 칸세이 가쿠인 중학교 준우승
1925년 (제11회 와세다 실업 고교 3-5 타카마츠 상업 학교 준우승
1976년 (제58회) 오르베린 고교 4-3 PL 가쿠엔 고교 우승
1980년 (제62회) 와세다 실업 고교 4-6 요코하마 고교 준우승
1989년 (제71회) 테이쿄 고교 2-0 센다이 이쿠에이 고교 우승
1995년 (제77회) 테이쿄 고교 3-1 세이료 고교 우승
2001년 (제83회) 니치다이산 고교 5-2 오미 고교 우승
2006년 (제88회) 와세다 실업 고교 4-3 토마코마이 고교 우승
2011년 (제93회) 니치다이산 고교 11-0 세이코 가쿠인 고교 우승
2024년 (제106회) 간토다이 이치 고교 1-2 교토 국제 고교 준우승

 

- '안타가 적더라도 수비로 지켜내 결승까지 올수 있었다'고 말하는 간토다이 이치 고교의 주장 타카하시 텟페이(高橋徹平, 3학년). 여름 지역 대회 이전까지는 수비에서 많은 실책을 범하면서 이길 수 있었던 시합을 패배한 적이 많았다. 그래서 선수들은 더욱 공격적인 모드로 수비 훈련을 하였다. 철저한 연습의 결과는 고시엔이라는 정상의 무대에서 결과로 나타났다. 고시엔에서 결승까지 포함한 5경기에서 기록한 실책은 단 3개밖에 되지 않았다. 자신들의 특기인 '공격의 수비'를 어김없이 발휘하며 마지막 이닝까지 단 하나의 실책도 없이 활약하였지만, 자신들의 고시엔 첫 우승이라는 목표는 후배들에게 맡기며 준우승에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간토다이 이치 고교는 하타카나 켄신(畠中鉄心, 3학년)을 선발로 출전시켰다. 하타카나 켄신은 초등학교 1학년부터 투수로만 활약했고 등번호는 항상 1번이었다. 에이스 번호를 과시하는 타입은 아니었으나 자신의 노력에 대한 증거였기에 언제나 자랑스러워했다. 빠른 구속의 소유자도 아니고 신장도 작았지만 제구력과 변화구가 매우 뛰어나 올해 센바츠까지는 등번호 1번을 달고 활약하였다. 하지만 같은 학년의 카이 하루(坂井 遼, 3학년)가 빠른 직구로 두각을 보여주기 시작하며 경기에 등판하는 일이 잦아졌다. 요네자와 타카미츠 감독은 거칠지만 빠른 볼 스피드를 지닌 사카이 하루의 폭발력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에이스 넘버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 결국 등번호 1번은 그에게 부여되었다. 사카이 하루에게는 여전히 높은 신뢰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하타카나 켄신에게는 복잡한 감정이 생겼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우선 순위는 팀이 우승하는 것이고, 내 목표는 팀의 전국 선수권 우승"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결승이라는 큰 무대에서 선발로 등판하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거기에 신중한 투구로 교토 국제 고교의 타선을 6이닝 동안 74개의 공으로 피안타 6개 무실점으로 막으며 자신의 고교 마지막 여름을 빛나게 마무리하였다.

 
1점 뒤진 10회말 간토다이 이치 고교의 마지막 공격. 사카모토 신타로(坂本慎太郎, 2학년)가 들어섰다. 초등학교 4학년때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꼭 고시엔 우승이라는 선물을 해주고 싶다는 각오로 가득차있었다. 2아웃 주자 만루였기에 안타든 볼넷이든 출루에만 성공한다면 승부를 다시 원점으로 돌릴 수 있는 기회였다. 어쩌면 역전 사요나라 우승도 바라볼 수 있었다. 교토 국제 고교의 투수는 구원으로 등판한 니시무라 잇키. 이날 따라 니시무라 잇키는 자신이 가장 잘 던지는 체인지업의 제구가 쉽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따라서 직구보다는 변화구에 대응하는게 더욱 유리할 것이라 사카모토 신타로는 생각했다. 
 
1구는 바깥쪽으로 빠지는 직구로 스트라이크, 2구는 체인지업으로 볼, 3구는 다시 바깥쪽으로 빠지는 스트라이크가 되며 볼카운트는 1볼2스트라이크로 사카모토 신타로가 코너에 몰리게 되었다. 어떻게든 배트에 공을 맞춰야겠다고 각오를 하였다. 그리고 4번째 공이 스트라이크 존을 향해 들어오다가 바깥으로 빠지는 궤적을 그렸고, 사카모토 신타로는 강한 스윙을 하였으나 공은 포수 미트에 잡히며 헛스윙 삼진이 되었다. 고시엔 구장이 환호로 뒤덮이는 순간, 교토 국제 고교 선수들이 마운드로 뛰쳐나오는 그때, 사카모토 신타로는 고개를 끝까지 들지 못하고 비통한 눈물만을 흘렸다. 

 

간토다이 이치 고교는 사상 최초 고시엔 우승을 달성하는데 실패하였다. 1987년 센바츠에서 처음으로 결승에 진출하였지만 준우승에 그치며 '자감의 대우승기(紫紺の大優勝旗)'를 가져오지 못했다. 그리고 2011년 고시엔에서 니시다이산 고교가 도쿄도 대표로 우승한 이래 13년만에 다시 '동쪽의 수도'에 '진홍의 대우승기'를 손에 넣고자 하였지만 교토 국제 고교에 막혔다. 동도쿄 대표로만 한정하면 1995년 테이쿄 고교가 우승한 것이 마지막이었으니 아쉬움은 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시엔에서의 자신들의 최고 기록을 기존의 4강에서 준우승으로 새로 만들었으니 어쩌면 뜻깊었던 대회로 느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비롯 일본 제일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자신들의 바램을 다음의 야구 소년들이 이뤄주기를 바라며 간토다이 이치 고교는 뜨거운 추억만을 간직하며 100년의 성지에서 여름을 마무리하였다. 

 

[간토다이 이치 고교 선수별 고시엔 성적] 

● 투수

투수명 ERA 이닝 투구수 피안타 탈삼진 자책  WHIP
사카이 하루 0.00 18⅔ 255 12 16 0 0.80
하타나카 켄신 1.40 19⅓ 266 19 11 3 1.14
오고 타케루 1.50 6 88 5 0 1 1.00
사카모토 신타로 0.00 2 41 1 2 0 2.00

 

 타자 

등번호 타자명 타율 타수 안타 타점 출루율 장타율 OPS
1 사카이 하루 0.400 8 2 0 0.500 0.400 0.900
2 쿠마가이 슌스케 0.333 19 6 2 0.333 0.389 0.722
3 에치고 슌스케 0.533 20 8 1 0.611 0.600 1.211
4 코지마 소오 0.118 20 2 2 0.118 0.176 0.294
5 타카하시 텟페이 0.167 21 3 1 0.286 0.333 0.619
6 이치카와 아유 0.118 19 2 1 0.118 0.118 0.236
7 사카모토 신타로 0.176 22 3 1 0.250 0.235 0.485
8 히다 유고 0.200 23 4 1 0.273 0.200 0.473
9 나루이 사토시 0.250 21 4 2 0.316 0.250 0.566
10 하타나카 켄신 0.000 5 0 0 0.400 0.000 0.400
11 오고 타케루 0.000 1 0 0 0.000 0.000 0.000
12 호리에 타이키 0.000 2 0 1 0.000 0.000 0.000
13 타키카와 유이토 0.500 2 1 0 0.500 1.000 1.500

 

 


 
 


 
 

 
교토 국제 고교의 고시엔 첫 우승을 끝으로 14일간의 치열했던 제106회 고시엔이 마무리가 되었다. 고시엔을 보아온지 이제 어느덧 9년째인데, 이번만큼 경기 리뷰를 제시간에 하지 못하였다. 매경기를 시청하였지만, 회사에서 중요한 업무가 겹치면서 데드라인을 지키기 위해 집에서도 업무를 계속 하고, 작년과는 다르게 보다 작성하는 내용(예: 지역 대회 리뷰, 학교별 본선 프리뷰 등)이 많아지며 그만큼 할애하는 시간이 많아지다보니 이러한 사정이 생기게 되었다. 고시엔이 끝난지 한달만에 결승 리뷰를 한다는거 자체가 스스로에게 매우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게임 출시 준비를 본격적으로 하는 내년에는 경기 시청이 가능할까라는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과 비교하여 다양한 정보와 데이터를 찾고 정리하여 기록으로 남길 수 있어서 자랑스럽다는 생각도 함께 한다. 2015년에 처음 고시엔을 보면서 페이스북에 기록을 남겼지만, 블로그로 이전한 작년부터 경기 리뷰 등 내용이 풍부해졌다고 느낀다. 

[넷토고시엔 106회 고시엔 엔딩 테마 'ずっと好きだから’]

 

앞으로 남은 일을 간략히 정리해보면, 아직 경기 사진들을 올리지 못한 일부 포스팅을 수정하고, 간토다이 이치 고교 방문 후기를 작성하고, 제 106회 고시엔 뒷 이야기 (학교별 및 선수별)와 각종 기록들을 정리하고, 교토 국제 고교 우승 관련된 개인적인 내용을 포스팅하는 것으로 올해 고시엔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11월에 어쩌면 교토와 오사카를 가게 된다면 그때 교토 국제 고교와 고시엔 구장 방문 후기 어쩌면 작성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106회 고시엔에 작별을 고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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